2023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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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행증으로 읽는 화엄경 (28) 체험의 길(6/6) 등각 법문을 배우는 선재동자①

신규탁(연세대 철학과 교수)


1.
필자는 현재 󰡔화엄경󰡕 「입법계품 제39」를 소개해가고 있다. 선재동자는 문수보살을 포함하여 총 53명의 선지식을 만나 불도 수행의 방법을 여쭈었고 대답을 들었다. 형식은 이렇지만, 실은 대승을 수행하려는 즉 대승의 보살도를 가려는 우리가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지를 설명해주는 것이다.
스토리의 형식은 정형적으로 반복한다. ①누구를 만나보라고 소개한다. 그러면 그 말씀에 따라 선재 동자는 구법의 여행을 떠난다. ②그러면 소개받은 선지식을 알현하고 찾아온 이유를 여쭌다. ③이에 선지식께서는 수행을 위해 노력하는 선재동자를 칭찬하고 한마디 가르쳐 준다. ④헤어지면서 선재 동자는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 더 배울 선지식을 추천받는다. 「입법계품」에서 등장하는 선지식은 53명이지만, 실은 끝이 없는 셈이다. 생을 마치는 그 순간까지 계속해서 수행하는 것이다. 왜? 이렇게 끝이 없을까? 대답은 간단하다. 나 자신의 번뇌도 끝날 날이 없기 때문이고, 또 살펴야 할 중생도 끝이 없기 때문이다.


2.
인생살이란 이런 것이라고, 인도에서 󰡔화엄경󰡕을 암송하여 계속해서 지금에 이르도록 우리에게 전승해준 역대의 큰스님들은 그렇게 말씀하신다. 번뇌도 다함이 없고, 중생도 다함이 없다고 말이다. ‘다함 없음’, 이것이 화엄이 인류에게 주는 메시지이다. 중생이나 번뇌나 모든 게 끝이 없지만, 부득이 말로 설명을 하자니 53명의 선지식을 등장시킨 것일 뿐이다. 전삼삼前三三 후육육後六六, 앞으로도 즐비하고 뒤로도 즐비하다.
비록 그렇더라도 수지독송을 위해서는 일정한 격식을 갖추어야 한다. 화엄에서는 그 격식을 보살 수행의 단계적 향상으로 갖추었다. 한 단계 한 단계 높여가면서 늘어놓는 방식을 경학經學의 전문용어로 ‘항포行布’라 한다. 청소할 때, 안방을 청소하고 이어서 건넛방으로, 또 대청으로, 나아가 마당으로 골목으로 이렇게 하듯이 말이다. 이렇게 순차적 발상은 우리 일상에서 흔히 경험할 수 있다. 그런데 화엄에는 ‘원융圓融’이라는 묘한 발상이 있다. 안방 청소를 깨끗하게 마쳤더니, 나머지 건넛방은 물론 마당 골목까지 모두 깨끗해지는 것이다. 하나를 잘했는데, 일체가 다 잘 되는 것이다.
그러니 독자 여러분께서도 화엄에 등장하는 수많은 보살행을 어찌 다 할 수 있을까? 이렇게 ‘현애심懸崖心’을 내 필요는 없다. 수십 길이나 되는 높은 절벽 앞에 서서, 저걸 어떻게 올라갈까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한 발 높이 디뎌 한 단을 올라가는 순간, 모든 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인생살이를 돌아보면, 이 험한 길을 어떻게 헤쳐나왔을까? 회상해보면, 하나를 시작했더니, 어느결에 이만큼 와 있는 자신을 볼 수 있다.
‘항포’와 ‘원융’, 󰡔화엄경󰡕이 아니고서는 이런 발상을 볼 수 없다. 그런데 경전의 이야기도 굳이 말로 설명하자니 순서가 없을 수 없다. 선재 동자에게 ①신信 수행을 성취하도록 인도하고, 이어서 ②10주住 수행을 하도록 인도하고, 이어서 ③10행行 수행을 하도록 인도하고, 이어서 ④10회향廻向 수행을 하도록 인도하고, 이어서 ⑤10지地 수행을 하도록 한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⑥등각等覺 수행으로, 또 ⑦묘각妙覺 수행으로 인도해 간다.


3.
본 연재의 제목 <체험의 길(6/6)>은 ⑥등각等覺을 소개하기 위해 필자가 붙인 것이다. 등각의 단계에서 선재 동자는 모두 ‘세 부류의 스승’을 만나 보살도를 닦는다. 첫째는 ⑴이전의 ①에서 ⑤까지 단계별로 쌓은 수행 공덕이 ‘보조적인 원인(緣)’이 되어 마침내 깨달음의 실상으로 들어간다. 경학經學 용어로 이를 ‘회연입실상會緣入實相’이라고 한다. 처음 만난 마야 부인을 포함하여 마지막에 만난 덕생 동자와 유덕 동녀에 이르는 총 11명의 선지식을 만난다. 둘째는 ⑵그동안 쌓은 일체의 공덕을 모두 모아 성불의 ‘결정적 원인(因)’을 완성한다. 역시 경학 용어로 ‘섭덕성인상攝德成因相’이라 하는데, 여기서는 미륵보살이 등장하여 선재 동자에게 수행 길을 알려준다. 셋째는 ⑶반야의 지혜와 관조하는 명상이 서로 통하는 진리를 배운다. 선재 동자가 처음 수행의 여행길을 떠날 때 인도했던 문수보살을 다시 만나는 장면이다. 역시 경학 용어로 ‘지조무이상智照無二相’이라 한다. 첫 만남에서 반야의 지혜를 배웠고, 마지막 만남에서 관조의 수행을 배웠는데, 이 둘이 다른 게 아니란다.
자, 그러면 ⑥등각等覺의 단계에서 배우는 ⑴회연입실상會緣入實相, ⑵섭덕성인상攝德成因相, ⑶지조무이상智照無二相, 중에서 ⑴회연입실상會緣入實相을 소개하기로 한다. 마야 부인을 만나는 장면을 보자.
마야 부인이 부처님을 낳으신 생모生母임은 다 아는 사실이다. 이전의 ‘신-주-행-회향-지’의 총 50단계에서 배운 각각의 각각의 수행이 하나의 진실(實)로 집결된다. 모든 인연이 집결되어 ‘부처’ 즉 ‘깨침’이 생기듯이 말이다. 일체 모든 낱낱의 수행 인연이 모두 마야 부인의 자궁으로 들어간다. 용광로에 온갖 쇠가 들어가 녹아 하나가 되듯이, 어머니 뱃속에서 하나 되어 나온다. 그렇게 수많은 수행이 녹아 하나 된 것이 ‘부처’이다.


4.
선재동자는 마야 부인을 만나 인사를 올린 뒤 찾아온 목적을 아뢴다. 문수보살의 지도로 보리심을 내었고, 그 후 선지식을 만나 여기까지 이르렀노라고 말이다. 그러면서 여쭌다. “보살이 어떻게 보살의 행을 배워서 성취하는 것을 말씀해주시옵소서.” 이에 마야 부인이 대답한다. “불자여, 나는 이미 보살의 큰 원과 지혜가 눈어리 같은 해탈문을 성취하였으므로, 항상 여러 보살의 어머니가 되노라.”
따옴표 안의 인용문은 『한글대장경』에 실린 운허 스님의 번역이다. 마야 부인은 모든 보살의 어머니가 되었다는 내용인데, 무슨 수행을 했기에 그렇게 되었는가? 인용문 앞에 그 이유가 나온다. “보살의 큰 원과 지혜가 눈어리 같은 해탈문”을 성취했기 때문이란다. 한문 원문을 보면 “보살대원지환해탈문菩薩大願智幻解脫門”이다. 즉, ‘대원大願’ 즉 ‘큰 원’을 실천했기 때문에 모든 불·보살의 어미가 되었고, 또 ‘지혜가 눈어리 같은 해탈문’을 실천했기 때문에 불·보살의 어미가 되었단다. 운허 스님께서는 ‘지환해탈문智幻解脫門’을 이렇게 우리말답게 번역하신 것이다.
멀쩡하게 잘 보이는 눈을 비비거나 찍어누르면 사물이 ‘어리하게’ 보이는 걸 경험했을 것이다. 허공 꽃(空花)이다. 지혜이긴 지혜인데, 허공 꽃 같은 지혜이다. 마술 같은 지혜이다. 그러니 원력으로 살아내되 마술 같은 지혜로 살아내었기 때문에 부처님을 잉태하여 낳을 수 있었단다. 현재의 부처님도 이런 수행을 하신 마야 부인의 태에서 나왔으며, 과거 무수한 부처님들도 그랬고, 현겁賢劫의 부처도 그랬고, 마침내 삼세와 시방의 모든 부처님도 이런 수행을 하신 마야 부인의 태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대, 선재동자 당신도, 큰 원력을 세워 실천하되 마술 같은 지혜를 발휘해서 수행하면, 그러면 당신도 부처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5.
마야 부인의 ‘마야’는 한문으로 ‘摩耶’ 또는 ‘摩也’로 표기한다. 범어로는 [māyā]이다. 뜻으로 번역하면 ‘환幻’이다. 환상, 마법의 뜻이다.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실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저런 인연이 모여서 그렇게 보인다. 있는 듯하지만 가까이 가면 없고, 그래도 중생의 눈앞에 어려 이끄는 마력이 있다. 󰡔법화경󰡕 「화성유품」처럼, 보살의 길을 가는 수행자에게 보배 있는 곳이 멀지 않다고, ‘보소불원寶所不遠’이라고 손짓한다. 그곳에 가면 쉴 수 있고 편안해질 수 있다고 한다. 중생 지도와 구제에는 그런 마력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마력으로 이끄는 목적지는 중생 구제의 길이 되어야 한다.
이런 마야 부인을 만나, “보살의 큰 원과 지혜가 눈어리 같은 해탈문”을 성취하고, 다음으로 천주 광녀로 ‘환幻’ 같은 몸을 보여 정념을 지키게 하고, 다음에는 변우 동자로 ‘환幻’ 같은 몸을 보여 다음 세상의 스승 되게 하고, 다음에는 선지중예 동자로 ‘환幻’ 같은 몸을 보여 각종 기술을 익히게 하고, 다음에는 현승 우바이로 ‘환幻’ 같은 몸을 보여 어디에도 의지하지 않음을 배우게 하고, 다음에는 견고해탈 장자로 ‘환幻’ 같은 몸을 보여 집착 없는 수행을 하게 하고, 다음에는 묘월 장자로 ‘환幻’ 같은 몸을 보여 청정한 지혜 광명을 내게 하고, 다음에는 무승군 장자로 ‘환幻’ 같은 몸을 보여 지혜의 모습을 보이게 하고, 다음에는 최적정 바라문으로 ‘환幻’ 같은 몸을 보여 진실한 서원을 내게 하고, 다음에는 덕생 동자와 유덕 동녀로 ‘환幻’ 같은 몸을 보여 티 없이 살다가는 환주幻住를 보여준다.
이렇게 <지환智幻>에서 <환주幻住>로 몸을 달리 보이지만, 그 본질은 모두 마야 부인이시다. 일一과 다多가 어우러지는 ‘원융圓融’의 법문이요, 일一에서 다多로 점차로 진행하는 ‘항포行布’의 법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