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운
텃밭농부
즐겨 찾는 인터넷 사이트에 ‘한국농정신문’이 있다. 농민, 농업, 농촌에 대한 나의 궁금증을 풀어보고 싶어서다. 이 신문에서 농부의 생활과 농사 이야기를 듣고, 정부의 농업정책에 대한 농민들의 반응을 접한다. 퇴직 후 작은 사과농장을 일구는 ‘윤석원의 농사일기’는 빼놓지 않고 읽는 코너다.
이 신문은 지난 2월 마지막 주의 커버스토리를 ‘농업 개혁의 출발, 조합장 선거’로 꾸몄다. 전국 동시 조합장 선거를 앞두고 농협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개선안을 제안하는 내용이었다. 농협은 농민들이 조합원으로 참여하는 조직임에도 농민들은 불만이 많다. 다음의 인용문이 불만 내용을 압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2023년 지금까지, 농협은 그 어떤 협동조합보다도 조합원의 의사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대다수 농협이 농민조합원의 안정적인 영농보다 조합의 안정적인 경영을 우선시하며, 정부를 대신해 농민들을 훈계하고 억압한다. 농협중앙회는 더더욱 농민들과 멀어져 협동조합 본분을 망각한 채 이윤을 좇는다. 협동조합의 꽃이라는 조합장 선거가 제 기능을 못하고 있기에 발생하는 일들이다.”
조합장 선거가 농협이 변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터이지만 사정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이 신문이 조합장 선거 전에 실은 ‘초등학교 반장선거보다 못한 조합장 선거제도’라는 제목의 사설을 보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사설에 따르면, 현행의 조합장 선거는 한마디로 ‘깜깜이 선거’다. 토론회, 연설회, 정견 발표 등을 할 수 없다. 선거운동 방법을 6가지(선거벽보, 어깨띠, 전화, 조합 홈페이지, 명함 등)로 제한하고, 후보자 외에는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고 한다. 유권자들을 철저히 소외시키는 방법이라는 지적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개혁적인 전망을 가진 인물이 조합장으로 선출되는 일을 애초에 차단하는 제도로밖에 볼 수 없다. 오죽했으면 ‘초등학교 반장선거보다 못한’이라는 민망한 제목을 붙였을까.
더 가난해지는 농민
통계청에서 5년마다 조사해 발표하는 ‘농림어업총조사’라는 것이 있다. 전국 농림어가의 규모, 인구의 분포, 경영형태 및 지역별 특성, 살림살이 정도를 파악하는 농림어업 부문의 가장 기본이 되는 통계조사이다. 최근의 조사 결과는 2021년 9월 발표했다. 이 조사 결과는 농업의 현실을 보여주는 지표로 역할한다. 이런 조사가 현실의 농업과 농민, 농촌의 구체성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거시적인 흐름을 보여준다. 농업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2015년의 조사와 비교하면 변화상을 알 수 있다.
농가는 103만5천 가구, 농업인은 231만4천 명으로 집계됐다.(우리나라의 전체 인구의 4.5%) 5년 전에는 108만9천 가구였는데, 5년 사이 5만4천 가구가 줄었다. 농업인은 25만4천 명이 감소했다. 농업을 접었거나, 농촌을 떠났거나, 고령의 농민이 숨진 만큼의 유입이 적었다는 얘기다.
농업인의 평균 연령은 65.8세다. 지난 조사 때보다 1세 높아졌다. 농가의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중은 42.3%로 절반에 육박한다. 농촌의 고령화는 전체 인구의 고령인구 비율보다 2배를 훨씬 뛰어넘는 수치다. 이대로 가면 농업은 있되 농민은 없고 대규모의 농업회사에서 일하는 농업노동자로 대체될 것이다. 농촌, 농업, 농민이라는 말도 잘 쓰이지 않는, 사전을 열어봐야 알 수 있는 고어古語가 될 것이다.
농민들의 주요 수입원은 농축산물 판매금액인데, 1천만 원에 미치지 못하는 농가가 70.3%였다. 전 조사 대비 2.4%포인트 높아졌다. 농촌의 가난이 더 깊어진 것이다. 5천만 원 이상의 농가 비율은 7.9%였는데, 이는 열에 한 집 빼고는 근근이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수입이 적으니 농사만 지어서는 살 수 없다. 투잡, 쓰리잡을 하는데, 공공근로나 공사장 잡역부를 한다. 농한기에는 인근 도시에 나가 택시 운전을 한다는 얘기도 들었다.
위와 같은 농민, 농업, 농촌 얘기를 늘어놓는 것은 내가 텃밭농사를 하므로 농민과의 친연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우리 삶을 지탱해주는 먹거리를 생산해주는 농민들의 처지가 나아졌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머지않은 시기의 농촌은 중․대농이 많아지는 쪽으로 변해갈 것이다. 생산과 함께 1, 2차 가공산업으로 확장해 수익성을 높일 것이다. 지금도 그렇게 하는 농촌이 많다. 정부의 정책도 대농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것 같다. 농촌 인구의 고령화에 따른 자연스런 수순으로 볼 수 있다. 이런 방향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다만, 유기농업의 확대, 공장식 축산의 감소, 식량자급률을 높이는 획기적인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유기농업을 확대하려면 가격이 걸림돌이 된다. 유기농산물은 생산비가 더 들어가며, 소비자들의 부담도 커진다. 생산비와 일정 수익을 보전해주는 정책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동물복지 축산도 현실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영국은 최근 채소 가격의 급등을 겪었다. 영국의 신선 채소는 대부분 모로코 등의 북아프리카에서 수입하는데, 그 지역의 기후변화로 인해 생산량이 줄어든 것이 원인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밀 가격이 급등하기도 했다. 국제정세의 불안정과 기후위기는 이제 상수로 작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우리가 제어할 수 없는 요인에 의해 먹거리 불안정이 발생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물가 상승은 언제나 서민들의 삶을 힘들게 한다.
내 밭의 새 작물-아피오스, 고사리
완연한 봄에 접어들면서 밭에 자주 나간다. 상추, 쑥갓, 겨자 등의 잎채소는 모종을 사다가 심었다. 감자는 지난해 캔 감자를 씨감자로 삼았다. 지인에게 얻은 아피오스(인디언감자)도 심었다. 아피오스는 콩과식물인데, 감자처럼 뿌리에 맺힌 덩이를 식용한다. 맛이 특이하다. 인삼, 고구마, 밤 맛이 난다. 사포닌 함량이 많아서 면역력을 높이는 건강식품으로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올해 내 밭에는 몇 가지 새로운 작물이 들어선다. 앞에 말한 아피오스와 아스파라거스, 고사리를 기를 계획이다. 아스파라거스는 겨우내 베란다에서 싹을 틔웠다. 이달 말쯤에 밭에 옮겨 심으려 한다. 3년 전 심었던 쥐눈이콩도 이번에 심기로 했다. 매년 서리태를 심어 밥에 넣어 먹었는데 특유의 콩비린내가 싫어졌다. 쥐눈이콩은 비린 맛이 덜하며 고소하다.
고구마 순 내기도 준비하고 있다. 밭 한켠에 고구마를 묻어두면 순이 흙을 뚫고 나온다. 고구마도 추위에 약하니 볏짚이나 신문지를 덮어 보온을 해줘야 한다. 5월 초 즈음에 일곱 마디쯤 자란 줄기를 잘라 심으면 된다. 이번에 심을 고구마는 강화도 특산물인 속노랑 고구마다.
요즘은 날씨에 민감하다. 기상청에서 제공하는 중기예보를 보며 기온은 물론 비 오는 날이 언제인지를 살핀다. 예년에 비해 기온이 크게 올랐다. 완연한 봄날이지만, 조심스럽다. 서리와 저온 때문이다. 어느 날 급작스럽게 서리가 내리면 감자 싹이 죽고 만다. 다시 싹이 올라오긴 하지만, 수확이 급감하며 병충해에 약해진다. 5월에도 서리가 내린 적이 있었다. 이때는 고추가 피해를 입는다. 고추의 원산지는 고온건조한 중남미이니만큼 추위에 유독 약하다. 기온이 오르니 빨리 심고 싶어진다. 이상기온이 없다면 일찍 심을수록 좋다. 그러나 이상기온이 닥치면 늦은 것만 못하다.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작년보다 늦지 않으면 된다.
이 시기에 맞춤인 노래가 있다.
“3월은 늦봄이라 청명 곡우 절기로다. 봄볕이 따사로워 만물이 화창하니 백화는 난만하고 새 소리 각색이라. 대청 앞 쌍제비는 옛집을 찾아오고 꽃밭에 범나비는 분분히 날고 기니 미물도 때를 만나 즐겁고 사랑스럽다.”
‘농가월령가’ 중 3월령(음력)의 앞부분이다. 내게는 어서 밭으로 나가라는 답청가踏靑歌로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