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4월호

    다시듣는 큰스님 법문
    이달의 법문
    화보
    다람살라소식
    대승 보살 운동의 핵심 경전 범망경
    숲에서 배우는 불교
    텃밭불교
    자연과 시
    불교관리학
    불서
    건강한 생활

과월호보기

고난에 찬 사람에게 더욱 필요한 불법 ⑩

교도소


성운대사 지음
조은자 옮김


<지난 호에 이어서>
총통부 앞 카이다거란(凱達格蘭) 대로에서 열린 부처님오신날 봉축행사에서 저는 당시 총통을 맡고 있는 마영구 선생에게 천 선생의 가벼운 처벌을 부탁했지만, 그는 역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저는 천수변을 수감시킬 필요 없이 가족과도 함께 지낼 수 있게, 장학량張學良처럼 집에 거주제한을 하는 것도 좋겠다는 글을 ‘연합보聯合報’에 하나 게재했습니다. 어쨌든 한 나라의 총통을 지낸 사람 아닙니까?
그 김에 저는 또 세계은행 부행장을 지낸 북경대 경제학자 임의부林毅夫 선생도 타이완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해서 가족과 만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제의했습니다. 현재 양안도 이미 평화롭게 왕래하고 있으니 은원恩怨을 해소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정부의 관련기관에서는 결국 고국으로 돌아와 분상(奔喪: 먼 곳에서 부모가 돌아가신 소식을 듣고 급히 집으로 돌아감)하고 가족을 만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국민당의 처사가 옳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30년 전에 저는 국민당의 정부에 여러 차례 건의했습니다. 2.28 사건(1947년 2월 28일~5월 16일, 중국 본토에서 건너온 국민당 정부 관료의 폭압에 대항하여 일어난 타이완 본토인들의 민중봉기. 국민당 정권은 이를 무력 진압하였음. 1987년 타이완 계엄령이 해제되기 전까진 금기사항이었음.)의 가족에게 사죄를 드려야 한다고…. 이 사건으로 그들의 가족이 제재를 받아 자손이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없게 했으니, 그들에게 공정함을 돌려주어 그들이 죄가 없고 깨끗하다는 것을 표시해 주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심지어 우리도 타이베이 검담청년활동센터(劍潭靑年活動中心)에서 ‘2.28 공정회복법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국민당은 끝까지 실천하지 않았으며, 그래서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재난과 인과가 계속해서 중복되고 있으니 탄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천수변 선생 이야기가 나왔으니, 현재 법무부는 그가 집에서 요양하도록 하면서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게 해줬습니다. 제 자신이 어느 정도 공헌했다고 감히 말할 수는 없지만, 저는 늘 종교로 사회를 다스리고 사회를 관리해야만 인심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임에 틀림없습니다.


관리는 헌신이다
제가 이란에 머무는 기간 동안 이란 구치소는 제가 늘 가는 곳이었습니다. 후에 불교를 믿지 않는 사람이 교도소 교화과를 맡으며, 점차 불교를 배척하고 유교를 교화에 사용했습니다. 아마도 그들 가운데 기독교 신자가 많이 있지는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타이완 교도소의 교화업무와 그 내용 역시 점차 변화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별 문제가 안 됩니다. 우리는 전문직업인이 아니라 모두 봉사하는 것이었고, 인연 따라 교화하였을 따름입니다.
이란 교도소 안에는 과거 일제 강점기부터 내려오는 불당이 하나 있었는데, 아미타불 불상이 한 분 모셔져 있었습니다. 실제로도 무척 장엄했습니다. 저는 이 교도소에 갈 때마다 불당에 들어가 아미타불께 합장하고 정례를 올렸습니다.
나중에 교도소의 총무과 도屠 과장이 제가 이 아미타불을 좋아함을 알고 찾아와 지금 이 아미타불을 교도소에 모시기 불편하니 원하신다면 팔겠다고 했습니다. 제가 얼마냐고 묻자 그는 2만원이라 답했습니다.
당시 2만 원의 가치는 황금 열 냥은 넘었습니다. 그때 저는 차라리 2만 원을 지불할지언정 저들이 함부로 이 불상을 치워버리게 두지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 아미타불을 모시고 뇌음사로 돌아왔고 나중에 여러 존으로 복제했습니다. 지금 타이완 곳곳에는 이 아미타불을 모시고 아미타불의 분신과 마찬가지로 법을 널리 알려 중생을 이롭게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일본의 국력이 비교적 강하니 사회 각 방면의 요구와 보살핌이 그래도 비교적 완전하다고 생각합니다. 국민당 정부의 지도자는 마음이 편협했습니다. 특히 장개석 총통의 부인 송미령 여사는 사람들에게 불교를 믿지 못하도록 하고 불교의 발전도 저지하게 하여 사실상 국민정서와 위배되었으니, 점차 민심을 잃어간 것도 이유가 없지는 않습니다. 국민당이 타이완에서 발생한 ‘2.28 사건’에 대해 사과도 인정도 하려 하지 않으니, 이는 정말이지 정치의 오만이자 권력의 교만입니다.
저는 소년시절 한 스승님이 국민당 당원이 되라 하였고, 나중에 타이완에 도착해서는 국민당 당국 원로이신 이자관李子寬 거사께서 역시 우리를 격려하며 반드시 국민당의 당원이 되어야 홍법하는 데 편리할 것이라 하여, 홍법을 위해 국민당에 가입했습니다. 이건 마치 한 여인이 시집가면 그 집 귀신이 되어야 하는 것처럼 저는 그저 “그 집에 머물면 그 집을 지키고, 그 나라에 머물면 그 나라를 지킨다”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한평생 국민당에 충성했고 국민당을 사랑하고 아꼈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국민당의 갖가지 상황 때문에 결코 국민당이 만족스럽지는 않습니다.
사실 타이완의 정치 분쟁에 대해 저는 흥미가 없습니다. 저는 정치에 간여하지 않고, 정부로 뛰어다니지도 않았습니다. 도와달라거나 무엇을 해 달라며 정치에 손 내민 것도 없습니다. 심지어 평생 사찰을 그렇게 많이 건립하였지만, 우리는 정부에 가로등 하나 세워 달라, 화장실 하나 만들어 달라고 요구한 적도, 보조금을 달라고 한 적도 전혀 없습니다.
관리는 헌신해야 하는 것이지,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요구를 한 적도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할 재원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연이 닿으면 인연은 당신을 찾아올 것이고, 당신이 만일 인연이 없고, 인연을 맺지 않고, 인연을 맺으려고 하지 않는다면 인연을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