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4월호

    다시듣는 큰스님 법문
    이달의 법문
    화보
    다람살라소식
    대승 보살 운동의 핵심 경전 범망경
    불교관리학
    숲에서 배우는 불교
    텃밭불교
    불서
    자연과 시
    건강한 생활

과월호보기

봄은 요동치면서 온다

 


정성운
텃밭농부


나는 노래 부르고 듣는 것을 그리 즐겨하지 않는다. 음치이기도 하거니와 내 감정을 실을만한 노래를 여럿 접하지 못했기에 그렇다. 그런들 흥얼거릴 노래가 없지는 않으니 ‘산 너머 남촌에는’이라는 제목의 곡이다.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나. 꽃피는 사월이면 진달래 향기, 밀 익는 오월이면 보리 내음새. 어느 것 한 가진들 실어 안 오리. 남촌서 남풍 불 제 나는 좋데나.”


가사가 봄에 딱 어울릴 뿐만 아니라 곡조 또한 흥얼거리기에 알맞다. 봄은 노래를 즐기지 않는 나를 흥얼거리게 하는 흥겨운 계절이다.
어제는 볕이 좋고 바람조차 부드러워 볕바라기를 했다. 내쳐 점심을 편의점 탁자에서 먹었다. 샌드위치와 초코우유로 차린 식탁이었지만 봄을 곁들였으니 즐거운 잔치였다. 건너편 아파트 정원에 핀 산유수의 노란빛이 내 식탁을 장식해주었으니 즐거움을 더했다. 다만 나 혼자 즐겼다는 것이 아쉽다. 벗들과 봄나들이를 하여야겠다.


교체기는 늘 격렬하다


봄은 짧은 길 놔두고 애먼 길을 돌고 돌아서, 때론 뒷걸음질 치다가 온다. 봄의 성질이 느려서 그런 게 아니다. 길을 몰라서 그런 것도 아니다. 겨울이 맘껏 아쉬움을 달래도록 놓아두는 것이다. 겨울도 지칠 즈음에서야 봄은 온다. 늦어서 미안하다면서 꽃소식으로 온다. 계절이 바뀌는 것처럼 교체기는 늘 격렬하다. 생주이멸生住異滅이 세상의 이치인 것처럼 물러나고 들어옴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조금 거리를 두고 보면 그렇다. 그러나 가까이에서 보면 한바탕 요동을 치른 후에야 물러남과 들어옴이 자리를 바꾼다.
씨앗이 싹을 틔우려면 껍질을 찢어야 한다. 씨앗은 물을 머금어 겉을 부드럽게 만든 후 싹눈을 부풀리며, 이 힘으로 껍질을 밀어낸다. 껍질은 마침내 찢어지는 요동을 치른다. 껍질은 겨우내 싹눈을 지켜주는 역할을 했지만, 이제는 물러나야 한다. 자기 역할이 끝났음을 알아야 한다. 이를 알지 못하면 새 생명은 발생하지 않는다. 식물의 세계에서는 죽음이 삶을 떠받친다. 삶은 죽음이 받쳐주므로 발현한다. 계절의 바뀜만이 요동이 아니다. 해가 뜨고 지고 달이 뜨고 지는 하루도 요동이다. 매 순간이 요동이다. 내 마음도 요동치기를 멈추지 않는다. 매 순간 죽고 죽어서 태어난다.


경제성장이 목표가 아니다


지난 3월 20일은 UN이 정한 ‘세계 행복의 날’이다. 별의별 날이 많지만 행복의 날이 있다는 것이 새로웠다. 이날 ‘2025 세계행복보고서(World Happiness Report)’가 발표됐다. 이 보고서는 영국 옥스퍼드대학 웰빙연구센터와 갤럽, 유엔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가 공동으로 펴낸 것이다. [이 자료를 국민총행복전환포럼에서 나에게 보내왔다. 국민총행복전환포럼 블로그를 방문하면 더 많은 관련 자료를 볼 수 있다.]
행복한 나라를 10위까지 보면, 핀란드, 덴마크, 아이슬란드, 스웨덴, 네덜란드, 코스타리카, 노르웨이, 이스라엘, 룩셈부르크, 멕시코이다. 우리나라는 58위를 나타냈다. 국민소득이 많다고 하여 행복하다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는 1인당 국민소득은 2023년 기준으로 3만6194달러, 세계 12위다. 일제의 수탈과 전쟁의 참화와 폐허를 딛고 경제 발전을 이룬 나라는 우리나라 말고는 없다. 우리가 그토록 넘어서려고 했던 일본조차 따돌렸으니, 자부심을 가져도 크게 가질 만하다. 우리나라를 부러워하거나 시샘하는 시선도 있다. 그러나 행복 순위에서는 뒷자리에 머물러 있다. 국민소득과 행복의 관계에 대한 여러 연구가 있는데, 대체적인 결과는 일정한 소득 수준에 이르기까지는 행복도가 올라가지만 그 지점을 넘어서면 국민소득이 행복도를 높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행복보고서’는 6가지 평가항목을 제시하고 응답자가 주관적으로 점수를 매기는 방식으로 조사한다. 1인당 GDP, 사회적 지원, 건강 기대수명, 삶의 선택의 자유, 관용(기부), 부패인식이 평가항목이다. 우리나라는 건강 기대수명에서 상위를 나타냈을 뿐 나머지 항목에서는 저조했다.
행복보고서에서는 행복을 높이는 요소 3가지를 제시했다. ‘함께 식사하는 문화’를 첫 번째 요소로 꼽았다. 전 세계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이 행복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둘째는, 가구 구성원 수가 행복과 관계가 있다. 멕시코와 유럽에서는 4~5명의 가족이 함께 사는 경우 가장 높은 행복도를 보였다. 셋째는, 사회적 연결의 중요성이다. 특히 젊은 성인들에게 사회적 관계는 매우 중요한 요소로, 스트레스의 부정적인 영향을 완화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옥스퍼드대 웰빙 연구소장으로 이번 행복보고서의 편집자로 참여한 경제학자 얀-엠마누엘 드 네브는 “이번 연구는 측정하기 어려운 인간적 요소들이 행복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수치로 보여줍니다. 식사 시간을 공유하는 것과 타인을 신뢰하는 것이 예상보다 훨씬 강력한 행복 예측 요인이라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라고 평가했다.
국민총행복전환포럼과 국회, 지자체 행복협의회는 행복의 날에 즈음해 ‘국민총행복기본법’ 제정을 위한 특별 결의문을 발표했다. “국민의 행복을 담보하지 못하는 경제성장은 더 이상 국가적 자부심이 될 수 없다. 성장은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닌 구성원의 행복을 위한 수단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참으로 명쾌한 진단이다. 나도 박수를 치며 동의한다.


텃밭은 최상의 놀이터


가끔 텃밭농사를 한다고 하면, 거기에 들어가는 돈으로 사 먹지, 뭣 하러 그런 수고를 하느냐는 말을 들을 때가 있다. 들어가는 돈과 얻는 소득으로 셈하면 틀린 거 하나 없는 말이다. 경제적 관점에서 본다면 텃밭농사는 크게 손해보는 일이다. 그러나 삶은 경제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삶은 총체적이다. 인간의 삶이 복합적이기 때문이다. 감정과 정서, 가치, 물질, 몸, 관계가 어우러져 삶을 이룬다. 경제는 물질적인 조건을 지우는 역할을 한다. 나는 텃밭농사를 하며 땅을 일구는 노동을 하는 가운데 몸의 고됨과 심장 펄떡이는 살아있음을 겪는다. 씨앗의 한살이를 보는 재미도 좋다. 수박을 길러 먹는 재미도 좋다. 봄부터 가을까지 늘 식탁에 내가 기른 푸성귀를 올린다. 이만한 재미를 주는 놀이터가 어디에 또 있는지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으니 텃밭은 내게는 최상의 놀이터이며, 작은 농사는 재미를 느끼게 해주는 더없는 이벤트다. 건강을 해치는 것도 아니고, 이웃에게 해를 끼치는 일도 없다. 다만, 밭에 사는 벌레를 내쫓는 것만은 늘 마음이 무겁다.
달라이 라마는 행복과 관련해서 16가지를 주제로 놓고 미국의 심리학자 하워드 커틀러와 이야기를 나눈다. 그중 서로 가까워지는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고립감과 외로움을 극복하고자 한다면 근본적인 태도가 바뀌어야 합니다. 태도를 바꾸기 위한 최고의 방법은 친절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대하는 일입니다. … 친밀감은 많은 사람들, 다시 말해 가족, 친구, 동료, 심지어는 낯선 사람까지도 기꺼이 마음을 열고 모두 같은 인간 존재라는 생각 속에서 그들과 진실하고 솔직한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태도를 바꾼다는 것, 쉽지 않다. 그러나 바꾸지 않고서는 달리 방법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