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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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철학자가 권하는 불교의 지혜

철학자의 불교 공부 노트


 


김명환
불광출판사 제작부장


『철학자의 불교 공부 노트』
정가 18,000원
지지엔즈 지음
김진무/류화송 옮김
148×210mm|320쪽
불광출판사 펴냄



의심 없이 믿는 거, 난 반댈세!
사고思考 없이는 불교를 믿을 수 없다고 말하는 철학자
이 책의 저자 지지엔즈(冀劍制)는 철학과 교수다. 미국 뉴욕주립대학교에서 서양 철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대만으로 다시 넘어와 화판대학 철학과에 자리 잡았다. 그런데 화판(華梵)대학교는 유교와 불교에서 공히 중시하는 ‘깨달음의 교육’을 지향하는 학교였다. 이곳에서 본격적으로 ‘불교’를 만난 저자는 예의 철학자의 입장에서 불교에 대해 파고들어 가기 시작한다. 그는 철학자답게 ‘사고思考’와 ‘의심’을 불교 공부의 기초로 삼았다. 그는 우선 윤회나 정토 같은 ‘신앙’에 속한 문제들은 한 켠에 놓아두었다. 비록 양자역학이나 시간의 불가역성(不可逆)에 대한 반론 등을 언급하며 “최근의 과학 연구 성과들이 우리가 믿기 힘들어하는 것들에 대해 다시 생각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으나 아직 엄밀한 과학적 견지에서 완벽하게 증명하고 있지 못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대신 그는 불교의 목적인 ‘이고득락離苦得樂’과 깨달음의 ‘실천’에 주목했다. 인생이 고통이라는 진리와 그걸 극복하기 위해 삼독(三毒, 탐욕·분노·어리석음)을 제거해 나가는 수행, 그리고 마침내 무아(無我)를 체득해 궁극의 경지에 올라가는 길이 우리가 불교를 공부해야 하는 가장 ‘합목적적’인 이유라고 본 것이다.
이를 추구해 나가는 과정 역시 철학자다웠다. 기존의 세계관에 대한 의심과 파괴를 통해 새로운 세계관에 접근하는 길을 선택했다. 그는 여전히 ‘자신은 불교신자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스스로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탐구와 추리를 통해 하나의 결론에 도달한다. 바로 “삶의 고민을 털어내고 싶다면 인생에서 꼭 한 번은 불교를 만나라.”는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불교의 닮은 점, 다른 점
흔히 사람들은 불교가 철학이 아니냐고 질문한다. 저자는 같지는 않지만 닮은 점은 있다고 말한다.
둘 사이에 공통점 중에는 다른 학문 분야에는 없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양자 모두 지식에 대해서는 건설적이기보다는 파괴적이라는 것이다. 철학과 불교 공히 기존 지식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에 대해 초점을 맞춘다. 철학이든 불교든 모두 사람들이 여러 가지 잘못된 지식을 가지고 있고, 또 그것들을 온힘을 다해 찾아내서 없애야 한다고 여긴다. 불교에서는 이런 잘못된 지식에 빠져 있는 상태를 ‘무명無明’이라고 정의하고 그걸 없애는 방법으로 ‘정견正見’을 제시한다.
잘못을 찾아내는 방법 역시 비슷하다. 깊고 근본적인 사유를 통해 불안정과 불확실을 찾아가고 심지어는 아예 텅 빈 것임을 발견한다. 이를 통해 기존 관념에 대해 회의적이거나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하게 이른다.
하지만 그 길에서 양자는 또 다른 것이 되어간다. 철학은 보통 사고를 통해서만 잘못을 없애고, 아울러 가능한 한 다시 사고를 통해서 더 합리적인 해답을 제시한다. 그러나 영원히 종점에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고, 끊임없이 더 합리적인 해답을 찾기만 할 수도 있다. 불교는 사고를 통해서 잘못을 없애는 것 이외에 자신의 내면을 변화시키는 수행을 통해서 최종적인 해답을 직관直觀하여 얻는다. 양자가 가장 다른 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또 철학은 논리를 의심해서는 안 되고, 불교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는 차이점이 있다. 철학적 사고는 논리 법칙을 기초로 한다. 예컨대 철학에서는 “모순된 서술은 분명히 틀린 것이다.”라고 한다. 그러나 불교는 적어도 언어의 사용에 있어서는 논리에 국한되지 않으며, 심지어는 늘 모순된 서술이 나타난다. 예컨대, 불교는 “모든 고통은 어리석음[無明]에서 나온다.”라고 주장하고, 바로 이어서 또 “무명이 없다.[無無明]”라고 말한다. 이처럼 불교를 배우는 사람들은 반드시 언어의 모순 속에서 지혜를 여는 계기를 찾아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지혜를 향상시키면 잘못된 관점에서 비롯된 이러한 모순을 발견하게 되고, 아울러 이러한 관점을 타파할 수 있다. 그리고 관점을 타파한 뒤에도 논리가 옳은 것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직관하는 가운데 논리 밖의 무언가 형언할 수 없는 것을 잡아내야 한다. 저자는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공성空性’이라고 주장한다. 이미 모든 것이 다 비었으니 논리도 텅 빈 것이고, 전적으로 의존할 수 없는 것이라고 표현하였다.


자신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한 불교 강의
이 책은 교리를 다룬 상편과 수행을 다룬 하편으로 나눠진다.
교리를 다룬 상편에서는 불교에서 말하는 세 가지 번뇌(탐·진·치)와 삼법인(무상·고·무아) 등에 대해서 다루고, 수행을 다룬 하편에서는 좌선, 정념, 염불 등 수행에 대해서 다룬다.
딱 보면 여느 불교 입문서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저자는 철학을 연구하면서 체득한 논리적 사고와 정의 내리는 방법을 활용해 불교를 설명한다.
여기에 더해 저자는 불교에서 말하는 무상無常, 고苦, 무아無我를 좀 더 진지하게 탐구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철학자들을 등장시키고 그들의 철학 이론을 소개한다. 칼 포퍼의 반증주의, 데이비드 흄의 회의주의, 칸트의 순수이성비판과 실천이성비판, 하이데거의 현상학, 유가의 중용지도, 장자의 대자재大自在, 송나라의 명리학 같은 동서양의 철학 사상 등은 불교를 이해하는 좋은 수단이었다.
불교의 이론 중 ‘미신’으로만 취급되는 부분을 반박하기 위해서 칼 포퍼의 ‘반증주의적’ 지혜에 대해 살펴보고, 불교에서 말하는 무아無我에 대해 살펴보면서 데이비드 흄이 문제를 제기했던 자아에 대한 의심에 대해 살펴보기도 한다. 또 불교에서 흔히 쓰이는 말인 발심發心의 본질에 대해 살펴보기 위해 칸트가 제기했던 ‘도덕실천’을 살펴보기도 한다.
하지만 어려운 철학과 어려운 불교가 만나 난해할 것만 같은 이 책은 가장 쉬운 불교 입문서가 되었다. 저자 자신이 처음 불교를 접했을 때 느꼈던 너무 쉽거나 난해하거나, 즉 너무 뻔한 이야기이거나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뜬구름 잡는 소리에 대한 불만의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쉬운 말과 이해하기 쉬운 비유, 이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