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탁(연세대 철학과 교수)
 
1.
반복하는 말이지만 화엄경 총39품 전체를 크게 나누면 ‘네 부분’이 된다고 했다. 이렇게 반복해서 말하는 이유는 화엄경 전체가 분량이나 이야기 내용이나 너무도 방대해 가닥을 쳐 줄거리를 잡지 않으면, 추단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처럼 말이다.
‘네 부분’ 중에서 ①첫째 부분은 제1품~제6품까지인데, 이곳의 줄거리는 부처님의 법문을 듣기 위해 여러 세상에서 청중들이 몰려들고, 그렇게 몰려온 대중들이 질문을 던지고, 이어서 부처님은 어떤 분이시고 그 부처님의 원력으로 만들어진 드넓은 세상을 설명하는 부분이다. 이렇게 설법 무대와 법사와 청중이 ①에서 갖추어진다.
이상의 ①첫째 부분이 화엄경 전체의 [서론]에 해당한다면, 뒤에 나오는 세 부분은 ‘각각’이 저마다 [본론]에 해당한다. 세 부분은 <②-1>, <②-2>, <②-3>으로 각각 부호를 붙여서 간편하게 표기하기로 한다. <②-1>은 가장 분량이 많은데 제7품~제37품이고, <②-2>는 단독으로 「이세간품 제38」 한 품이고, 역시 <②-3>도 단독으로 「입법계품 제39」 한 품이다. 그럼 [결론]은 어느 품인가? 화엄경에는 [결론]이 없다. 보통 경전에는 [서분], [본분], [유통분]이라 하여 서론, 본론, 결론으로 구성되는데, 화엄경에는 없다. 왜냐? 화엄경은 끝이 없는 법문이기 때문이다.
2.
자. 내용의 줄거리를 잡아보면 <②-1>에서는 다양한 수행을 인과론적으로 이야기를 엮어간다. 독자들도 이미 아시다시피,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친히 설법하신 내용은 <아함>이나 <니카야> 속에만 들어있다. 대승 경전은 기원전 1세기부터 석가모니 부처님 돌아가신 뒤 4백 년 이후부터 조금씩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화엄경도 역시 그렇다. 화엄경 작가는 기존의 초기 경전 말씀을 토대로, 그 위에 수많은 불교 수행자의 말씀을 잘 조합하여 당시 사람들의 수준에 적합하게 화엄경 이야기를 엮어낸다. 엮어내는 방식은 ‘수행이라는 원인’과 ‘깨달음이라는 결과’가 어떤 인과 관계로 맺어지는지에 주목한다. 그러니 독자들께서는 ①을 읽고 이어서 <②-1>만을 읽어도 좋다.
그럼, <②-2>와 <②-3>은 무엇인가? 그것은 <②-1>의 내용을 다른 각도에서 반복하는 것이다. 다만 이야기를 엮어가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어떻게 다른가? ‘질문-대답’의 형식으로 재편성하여 집중적으로 엮어간다는 점에서 다르다. 간결한 것이 특징이다.
끝으로, <②-3>은 어떠한가? 이 부분에서는 선재 동자라는 가상의 젊은 구도자를 등장시켜 이야기를 엮어간다. 젊은 구도자는 다양한 사람들 만나 자신의 수행 정도를 높여간다. 이야기가 매우 구성지다. 약 2천 년 전에 그것도 멀리 이국땅에서 만들어지고, 게다가 한글과는 다른 언어로 기록되었는데도, 크게 공감하게 된다.
3.
좀 말이 길어졌는데, 그러니까 독자들께서는 화엄경 서론에 해당하는 ①을 읽으시고, 그런 다음에 <②-1>, 또는 <②-2>, 또는 <②-3>를 각각 읽으셔도 화엄경이 전하려 하는 메시지를 파악하실 수 있다는 뜻이다. 다시 반복하지만, 다만 이야기를 엮어가는 방식에 있어 <②-1>처럼 ‘수행이라는 원인’을 제시하여 ‘깨달음이라는 결과’를 매칭(matching) 하는 방식이냐? 아니면 <②-2>처럼 질문하고 대답하는 방식이냐? 아니면 <②-3>처럼 주인공 선재 동자가 만나는 여러 선지식과의 입을 통해 설명하는 방식이냐? 그 방식이 다를 뿐이다. 이렇게 방식만 다를 뿐이고, 기본 골격은 ⑴믿음, ⑵이론, ⑶실천, ⑷발원, ⑸체험, ⑹등각, ⑺묘각, 이렇게 단계별로 진행된다.
<②-1>에서도 ⑴믿음, ⑵이론, ⑶실천, ⑷발원, ⑸체험, ⑹등각, ⑺묘각으로 내용이 진행되고, 또 <②-2>에서도 ⑴믿음, ⑵이론, ⑶실천, ⑷발원, ⑸체험, ⑹등각, ⑺묘각으로 진행되고, 물론 <②-3>에서도 ⑴믿음, ⑵이론, ⑶실천, ⑷발원, ⑸체험, ⑹등각, ⑺묘각으로 반복 진행된다.
지난 4월에 필자는 <②-3> 해당하는 「입법계품 제39」 중에서, ⑹등각等覺을 설명했다. 그리고 선재 동자에게 등각等覺 관련 법문을 해 주는 선지식으로 모두 21명이 등장한다는 말도 했다. 더불어 21명의 선지식이 선재 동자를 지도하는 내용에 있어서 저마다 역할을 분담하고 있는데, 그 역할이 모두 셋이라는 말도 했다. 첫째는 ‘회연입실상會緣入實相’이고, 둘째는 ‘섭덕성인상攝德成因相’이고, 셋째는 ‘지조무이상智照無二相’이라고 했다. 이제 이하에서 둘째의 ‘섭덕성인상攝德成因相’을 소개하려고 한다.
4.
첫째의 ‘회연입실상會緣入實相’에서 10명의 선지식을 만나, 다양한 수행의 인연을 모아 진실의 세계로 들어가는 공부를 마쳤다. 이제 둘째의 ‘섭덕성인상攝德成因相’에서는 이제는 마지막 수행 길이 남았다. 이번 한 생만 정진을 잘 마치면 부처가 된단다. 마지막으로 힘을 쏟는다. 많이들 들어보셨을 것이다. ‘일생보처一生補處’라는 말이다. 경전 작가는 미륵보살을 등장시켜 선재 동자를 지도하는 형식으로 이야기를 꾸몄다.
초기 불교 경전을 읽어보신 독자라면 수행의 네 단계를 들어보았을 것이다. 첫째 단계가 수다원, 둘째 단계가 사다함, 셋째 단계가 아나함, 넷째 단계가 아라한이다. 셋째의 ‘아나함(Anāgāmin)’은 그냥 소리 나는 대로 적은 것이고, 한문으로는 ‘불래不來’ 또는 ‘불환不還’이라고 번역했다. 뜻으로 풀어보면 이 세상에서 수행을 마쳐 모든 번뇌가 모두 사라졌기 때문에, 이제는 번뇌를 녹이기 위해 이 세상에 수행하러 다시 올 일은 없다는 뜻이다. 오더라도 중생 구제라는 서원으로 올 수는 있겠지만, 업에 따른 과보로 오지는 않는다.
화엄경의 구성작가는 초기 불교 경전의 본생담本生談 속에 들어있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에서 소재를 구한 것이다. 석가모니 사후에 작가들은 많은 불전문학佛傳文學을 생산해내었다. 그에 따르면 석가모니께서 성도成道하시기 이전 전생에, 도솔천에서 보살의 몸으로 수행했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가 훗날 대승 경전 작가들에 의해 미륵보살 이야기로 확장되어 간다.
5.
「입법계품」 중에서 선재 동자에게 가르침을 주는 인물로 설정된 선지식 중, 미륵보살에게 할애한 분량이 제일 많다. 80권으로 된 화엄경 중에서 77권의 약 1/3이 지나고 그 뒷부분부터 시작하여 78권과 79권에 걸치는 무려 세 권에 달한다. 이렇게 분량을 많이 할애할 만큼 대승의 경전 작가는 ‘미륵보살’ 이야기가 대중들에게 인기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런데 그 기대는 적중했다.
내용의 가닥을 쳐보기로 한다. 해안국海岸國에 도착한 선재 동자는 먼저 지난날의 죄업과 게으름을 참회한다. 이는 바로 앞서 만났던 덕생 동자와 유덕 동녀의 가르침에 따라 새 스승에게로 나아가 가르침을 구하는 <첫째 문단>이다. <둘째 문단>은 미륵보살을 만나 뵙고 우러러 공경하고 가르침을 부탁하는 부분이다. 미륵보살을 공경하고 찬탄하는 대목이 77권 내내 끝까지 계속된다.
그러다 마침내 제78권 처음에 이르러 비로소 질문을 던진다. “그때 선재 동자는 합장하고 공경하며 여쭈었다, 큰 성인이시여, 저는 이미 아누다라삼약삼보리심을 내었사오니 보살이 어떻게 보살행을 배우며 보살의 도를 닦는지를 알지 못하겠나이다.” 이렇게 말문을 열어 법문을 청하기 시작한다. 그러자 미륵보살이 선재 동자를 칭찬하면서 가르침을 일러주는 <셋째 문단>이 시작된다. 즉, “이때 미륵보살마하살이 도량에 모인 대중들을 살펴보시고 선재 동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당신들이시여, 그대들은 이 장자의 아들이 나에게 보살의 행과 공덕을 묻는 것을 보는가?” 이렇게 시작한 미륵의 법문은 늘어지고 늘어진다. 제78권도 모두 지나고, 제79권이 끝나는 부분까지 법문이 이어진다.
79권 끝에 가서 <넷째 문단>은 이렇게 시작된다. “착한 남자여, 그대는 문수사리 선지식에게 가서 묻기를 ‘보살이 어떻게 보살의 수행을 배우며, 어떻게 보현의 수행의 문에 들어가며, 어떻게 성취하며, 어떻게 광대하게 하며, 어떻게 따르며, 어떻게 청정하게 하며, 어떻게 원만하는가?’ 하라. 착한 남자여 그는 그대에게 분별하여 연설하리라.”
<다섯째 문단>은 짧다. 선재 동자가 미륵보살의 가르침과 또 이별을 아쉬워하며 하직한다.
6.
이상으로 큰 얼개로 보았듯이 선재와 미륵과의 만남 장면의 문단은 모두 다섯으로 나누어지는데, 핵심은 <셋째 문단>이다. 분량으로 보아도 78권과 79권 거의 모두에 해당한다. 이 문단은 크게 선재 동자를 칭찬하는 대목과 가르침을 일러 주는 대목 둘로 나누어진다. 칭찬하는 대목에서 미륵보살은 두 방면으로 갈라서 진행하는데, 하나는 그 자리에 모인 대중들 들으라고 선재 동자의 수행을 칭찬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선재 동자의 수행 자체를 칭찬한다.
핵심은 가르침을 주는[授敎] 대목이다. 제79권 처음부터 경문은 시작된다. 미륵보살이 손가락을 튕겨 소리를 내니 마침내 성곽의 문이 열려 선재가 ‘비로 장엄 누각’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안으로 들어간 선재는 누각 구경을 시작한다. 구경하는 방식도 참으로 묘하다. “선재 동자가 한 곳에서 모든 곳을 보듯이, 모든 곳에서도 다 이렇게 보았다.” 이것이 소위 ‘일一-다多’가 겹겹으로 하염없이 얽히고설키는 화엄의 법계연기法界緣起이다. 선재가 ‘비로 장엄 누각’에서 본 내용 자체가 수행의 길이고, 누각 속에서의 구경 자체가 체험 내용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법계法界’이다. 이 부분은 6월호에 소개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