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5월호

    다시듣는 큰스님 법문
    이달의 법문
    화보
    다람살라소식
    화엄경 열두 꼭지
    시심불심
    숲에서 배우는 불교
    텃밭불교
    불교관리학
    불서
    건강한 생활

과월호보기

정자나무, 당산나무

홍성범
숲해설가


 


‘고향’을 떠올리면 서로 공유하는 점이 사람마다 많이 달라졌다.
도시화에 따라 이제 농촌이 고향인 사람들이 적어졌기 때문이다. 과거 고향하면 농촌이 떠오르고, 동구 밖에서 장에 가신 부모님을 기다리던 아이는 성장하여 그때 위안이 되었던 커다란 나무를 고향과 함께 그리워하곤 했는데 이제 그러한 추억은 소설 속에서나 마주하는 풍경이다.
고향 마을 초입이나 중심에는 큰 나무가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 그 그늘에서 쉬었고 가끔은 어르신들이 모여서 마을 일도 논의하는 공동체의 광장이었다. 그것은 하나의 풍습이 되었고 중심이 된 가장 오래된 나무를 마을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정자나무나 당산나무로 삼았다.
우리나라 마을에서 정자나무이자 당산나무로 가장 많은 것은 단연 느티나무이다. 남부지방이나 섬마을에서는 팽나무도 많았다. 팽나무는 일부 지방에서는 ‘신목神木’으로 여긴 나무이다.
느티나무와 팽나무와 더불어 은행나무도 우리나라 3대 정자나무 중 하나이다.
우리 민족과 함께 마을 공동체의 희로애락을 함께 해온 정겨운 정자나무, 당산나무에 대해 알아보자.
느티나무는 가지가 사방으로 퍼지는 성질이 있어 한군데 모아서 심으면 가지를 뻗지 못해 스스로 죽게 된다. 그래서 군집으로 자라는 것보다 홀로 크게 자란 느티나무를 쉽게 접하게 된다.
느티나무는 상부가 퍼진 형태로 자라기 때문에 무성한 가지와 잎으로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준다. 우리나라 정자나무의 약 80%가 느티나무인 이유는 이 나무가 만들어 주는 특별한 그늘 때문이다.
시원한 정자나무 밑으로 마을사람들이 모이듯 그 마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느티나무는 당산나무 역할도 하여 민초들이 속내를 풀어내고 소원을 비는 장소가 되기도 하였다.
농업이 중심이던 시절 공동체 의식이 강한 농민들에게 느티나무는 마을 공동으로 무병장수와 풍년을 기원하는 대동제 공간이기도 하였다. 이런 이유로 오래된 느티나무는 신령이 깃들어 있다고 믿고 마을을 지켜주는 상징으로 보호되어 그 긴 수명을 더 길게 할 수 있었다. 지금도 느티나무는 우리나라 많은  지역에서 보호수로 지정 보존되고 있다.
느티나무에는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전설이 많다. 마을 입구에 있는 느티나무 줄기나 잎을 꺾으면 그 마을에 재앙을 불러온다고 믿었다. 또한 이른 봄에 느티나무의 싹이 트는 모습을 보고 그 해 농사 작황을 예측하기도 하였다. 모두 느티나무를 귀히 여기고 잘 보호하려는 선조들의 지혜라 생각된다.
전라북도 임실군 오수에는 주인 살린 충견의 이야기가 전해 오는데 자신의 개 덕분에 목숨을 살린 주인이 그 개를 양지바른 곳에 잘 묻어주고 자신의 지팡이를 꽂아 주었는데 세월이 흘러 그 지팡이는 싹을 틔우고 큰 나무로 자랐는데 그 나무도 느티나무다. 지금도 이 마을에 가면 수백 년 된 느티나무를 볼 수 있다.
느티나무의 껍질은 어릴 때는 반들반들하다가 세월이 흐를수록 거북의 등처럼 갈라진다.  꽃은 4월에서 5월 사이 한 나무에 암꽃과 수꽃이 따로 피고 열매는 10월에 익는다. 어린 잎은 나물로 먹기도 한다.
목재는 재질이 뛰어나 건축재와 선박재로 귀중하게 사용되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느티나무도 많은데 특히 제주 표선면과 충북 괴산군에는 수령 1,000년이 되는 느티나무가 있으니 주변에 갈 일이 있으면 꼭 보시길 권한다,
느티나무와 함께 마을을 지키는 친숙한 당산나무 중 하나는 팽나무다.
바람이 많이 부는 바닷가 마을의 당산목은 대부분 팽나무였다. 느티나무, 은행나무처럼 오래 살기도 하거니와 짠물과 갯바람을 버틸 수 있는 강인한 생명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팽나무는 나무의 뿌리가 튼튼해 강풍이나 심지어 태풍에도 잘 견딘다. 그래서 어선이 드나들던 작은 포구에는 팽나무가 꼭 한 그루씩 있었다,
남해 바닷가 마을에서는 팽나무를 포구나무라고 부르기도 했고 지방에 따라 자단수, 청단, 박자수, 목수나무, 달주나무, 편나무, 매태나무라고 다양하게 불리었는데 우리 민족과 그만큼 친숙한 나무임을 뜻한다.
팽나무의 강인함 때문에 선비들도 자신의 정원에 키 큰 나무로 심고 사랑했다.
팽나무는 세상에서 가장 잘 생긴 나무 중 하나이다.
매끄러운 수피, 균형 잡힌 자세, 일정한 굵기, 전체적인 조화가 팽나무의 강점이다. 봄에 피는 꽃은 희미한 은색이라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열매는 콩알만 하게 달리는데 익으면 황색이 된다. 이 열매에서 팽나무의 이름이 나왔다. 팽총은 팽나무 열매를 총알로 쓰는 아이들의 장난감 총이고 ‘팽’이 열리는 나무여서 팽나무가 된 것이다.
팽나무는 재산을 가진 나무로도 유명하다. 경남 고성군 마암면 삼락리에 있는 팽나무는 ‘금목신金木神’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논 400평을 재산으로 소유하고 있다. 이 논에서 나온 쌀을 팔아 마을 사람들은 팽나무 앞에서 당산제를 지내고 있다.
부처님께 올리는 감로차의 재료로 사용되기도 한다. 신비롭고 은은한 맛으로 보통 여름에 마시는 것이 좋은데 단풍나무, 개오동, 떡갈나무와 함께 깨끗이 씻은 잎을 잘 말린 다음 차로 마시면 당뇨나 혈압에도 좋다고 하여 요즘은 사찰에서 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즐긴다.
제주도 현경면 조수리와 낙천리 올레길에서 만난 수령 400년과 140년이 된 보호수 팽나무의 넉넉하고 아름다운 자태는 지금도 눈에 선하다.
불교와 함께 우리나라에 들어온 은행나무는 중국이 그 원산지인데 가로수나 사찰 등에서 흔히 볼 수 있으며 느티나무와 팽나무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당산목이다.
전남 담양군 봉안리에 있는 은행나무는 나라에 변고가 있을 때마다 서럽게 운다는 일화가 전해온다.
경기도 양평 용문사에 있는 은행나무는 우리나라에 생존하는 은행나무 중 가장 나이가 많다. 크고 우람하며 수령 1,100년을 자랑한다. 높이 60여 미터에 줄기 둘레가 13여 미터 남짓으로 동양에서도 가장 큰 은행나무이다.
용문사의 은행나무는 그동안 수차례의 전란 등으로 고초를 겪었지만 무사하여 ‘천왕목天王木’으로 불리기도 한다.
10월경에 익는 은행나무 열매는 껍질에 유독 성분이 있고 종자에는 생물성장호르몬인 키토신 성분이 있어 약으로 사용된다. 뿌리는 허약체질 개선으로 복용하며 잎은 타닌 성분을 포함하여 20여개의 유용한 성분이 있어 양약의 재료로도 사용된다.
용문사의 은행나무 외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은행나무는 많은데 도심에서는 종로 명륜동의 수령 400여년 된 은행나무를 가까이서 자주 접할 수 있어서 좋다.
이처럼 우리민족과 가까이서 희로애락을 함께 해온 대표적인 당산나무 느티나무, 팽나무, 은행나무가 이제 그 무성한 잎을 자랑할 여름이다.
화려한 꽃을 찾아 떠나는 여행도 좋지만 큰 어른을 찾아 지혜를 구해 떠나는 마음으로 당산나무의 너른 품을 찾아 떠나 보자.
잊혀 가는 고향의 정겨움, 개인주의가 만연하여 중요함이 사라져 가는 더불어 살았던 공동체 사회를 그리며 그 매개가 되었던 정자목, 당산목을 만나 보자.
큰 나무를 보면서 우리들의 좁은 마음도 살찌워 보는 여름을 맞이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