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頂宇 스님
본지 발행인 | 구룡사 회주

세상을 살다 보면 마음이 번거로우면 세상 일이 번거롭고, 마음이 맑고 깨끗하면 세상 또한 맑고 깨끗하게 다가온다는 사실을 우리는 체험하며 살아갑니다. 어릴 적 동요에도 “마음에 빛이 있다면 여름엔 파랄 것이고 겨울엔 하얄 것”이라 했듯이, 자연환경이 우리들 마음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생각이 듭니다. 법정 스님의 『영혼의 모음』이라는 수필집이 있습니다.
이 책은 70년대 후반에 발간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조약돌」과 「설래목雪來木」이라는 글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조약돌」에는 정으로 쪼아 다듬어진 것이 아니라 물이 바위를 스치고 지나가며 오랜 시간에 걸쳐 자연스럽게 다듬어졌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설래목」은 겨울 폭설로 인해 아름드리나무들이 넘어지는 장면을 그린 글인데, 도끼나 톱으로 찍어 넘어진 것이 아니라 솜털 같은 눈송이의 그 미세한 물방울 입자들이 쌓이고 쌓여 마침내 나무를 쓰러뜨리는 장면이 인상 깊었습니다.
일상의 삶 속에서도 이와 같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벌어지는 일들이 있습니다.

사회 전반의 일들을 정치적 언어로만 설명할 수는 없지만, 국민 정서로는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정치권에서 벌어집니다. 정치가 직업이 아니라 본분을 다하려는 직분에서 출발한다면 지금처럼 서로 험한 꼴을 겪지는 않아도 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법정 스님께서 열반하셨을 때, 어느 신문 1면에 크게 실린 사진 한 장이 떠오릅니다. “꽃은 진다. 청춘이 그런 것처럼.”
꽃은 봄을 보내지 않으려 해도 봄은 가고 사람들은 나이를 먹지 않으려 해도 세월은 그렇게 흘러갑니다.
스님의 법문 중에는 이런 내용도 있습니다. “봄꽃처럼 맑고 향기로운 삶을 살면 좋겠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매화는 반쯤 피었을 때, 벚꽃은 활짝 피었을 때, 복사꽃은 멀리서 보았을 때, 배꽃은 가까이에서 볼 때 가장 아름답드라.”
우리 3월 달력에는 통도사 자장매를 한 컷 올려두었고, 4월에는 구룡사 앞 어린이 놀이터에 핀 벚꽃을 담았습니다. 그리고 5월에는 작년 11월 룸비니 동산 근처에 세운 학교의 25주년 행사에 다녀온 인연으로, 네팔 룸비니 사리탑을 담았습니다. 그 사리탑 동산에는 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네 종류의 각기 다른 나무가 서로 얽히고 어우러져 마치 하나의 나무처럼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사 서로 멀리 떨어져 지내며 그리워하기도 하고 회포를 풀어야 할 때가 오히려 더 아름다울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누가 심지 않아도, 가꾸지 않아도, 자연의 섭리에 따라 꽃을 피우는 들꽃들을 통해서도 우리는 자연의 지혜를 배울 수 있습니다.
그 지혜를 우리가 볼 수만 있다면 우리는 얼마나 선근과 지혜가 어우러진 좋은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일까, 그런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 입니다.

1년 중 가장 많은 인연이 절과 맺어지고 새로운 불자들이 부처님의 품안으로 오는 시기가 바로 부처님오신날일 것입니다. 이때는 부처님과의 소중한 인연을 시작하고 사찰과 가까워질 수 있는 좋은 계기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올해도 주변의 가족, 이웃, 그리고 인연 있는 이들에게 함께 부처님 전에 나아가자고 권해 보기를 바랍니다.
부처님 당시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가르침 중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자, 길을 떠나자.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으니, 조리 있는 말로 알아들을 수 있도록 전하자. 갔던 길로 되돌아오지 말고, 두 사람이 함께 가지도 말자. 모든 이의 이익과 안락과 행복을 위해 길을 떠나자. 나도 우루벨라 병장촌 고행자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법을 설하리라.”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가족, 이웃, 지인들과 함께 부처님 전에 나아갈 수 있는 작은 인연이라도 맺도록 해보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1년 법당 등을 올리거나 마당에 한 달 등을 밝혀두는 일처럼 인연을 함께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기도하는 시간이 단지 절에 있을 때만의 시간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세속 거리에서 방황하는 사람처럼 기도하면서도 삶의 모습과 행동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그를 어찌 참된 불자라 하겠으며, 간절한 신심의 기도를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기도 정진은 항상 우리 마음속에 살아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전도의 힘은 체험을 통해서 얻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도 그 힘을 종종 느끼고 체험하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신념 없는 기도는 의심을 낳고, 의심은 삶을 불안하게 만들며, 결국 분별심으로 흔들리게 합니다. 그런 기도는 머릿속에 떠도는 관념의 그림자일 뿐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어야 할 것 입니다.
중국의 위지안 교수는 세상을 떠나며 어린 딸에게 “사랑은 나중에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하는 것이다. 살아 있는 지금, 우리는 가족과 친구, 소중한 이웃들에게 어떤 형태로든 사랑의 빚을 지며 산다. 그러니 행복이란 언젠가 갚아야 할 빚이다.”는 글을 남겼습니다.
우리가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사는 것은 각자를 행복하게 해주는 일이지만, 동시에 언젠가 은혜로 갚아야 할 빚이라는 사실도 기억해야 합니다.

지공화상은 양나라 시대에 지금의 파키스탄 히말라야 근처인 천축국에서 태어나신 스님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오셔서 깊은 영향을 남기셨고 인도 정부에서는 그를 기려 통도사에 동상을 세우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지공화상께서 남긴 글 중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헛되고 거짓된 말은 오래 가지 못하네. 선열의 진수성찬도 오히려 멀리하거늘, 뉘라서 다시 무명의 술을 마실 것인가. 버릴 것도 없고 지킬 것도 없기에 거침없이 거닐며 막힘이 없도다. 비록 고금의 일을 다 안다 할지라도 여전히 어리석음에 빠져 밖으로만 달릴 뿐이네.”
다른 시詩에서는 도를 배우려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도를 배우려면 가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모양은 본래 거짓이 모인 것이요, 모양 없는 것 또한 참됨이라 할 수 없도다. 맑고 고요하면 번잡하지 않으니, 어리석은 이를 이웃 삼지 말라. 쓸데없는 말에 마음을 쓰지 않으면 잠깐 동안이라도 출가한 이와 다르지 않느니라.”
이렇듯 지공화상은 하루 24시간을 두고 두 시간마다 삶을 관조하는 글을 남겼으며, 그것을 통해 마음을 다스리는 수행의 본을 보여 주었습니다.
요즘 명상이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위빠사나 수행은 여래선이요. 여래선은 반야지혜 수행법인 묵조선입니다. 조사선은 사마타 수행법으로 선정삼매로 화두를 참구하는 간화선 등으로 불리는 다양한 방식의 수행들이 있지만, 본질은 모두 마음의 평화에 있습니다. 세계 곳곳의 대사들도 명상에 관심을 보이며 수행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현대는 더욱 탁해지고 불안한 시대이기에 마음의 평화를 찾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 평화는 누가 주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나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든, 내 삶을 사랑하고, 내 생활을 사랑하며, 내 인생을 함께한 이들을 사랑함으로써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있게 된다.”
결국 나와 함께 사는 이들에게 편안함과 따뜻함, 넉넉함을 주는 삶이 바로 나 자신의 평화를 가능하게 합니다. 그래서 모든 출발점은 나 자신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인생 수업』에는 이런 글이 있습니다.
“배운다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갑자기 행복해지거나 강해지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고 자기 자신과 더 가까워지고 평화로워지는 것이다. 그 배움은 나만의 여행을 떠날 때 가능하다.”
이러한 삶의 지혜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단지 보이는 것, 들리는 것에만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삶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톨스토이는, “너를 모욕하는 사람의 기분에 휩쓸리지 말라. 그가 이끄는 길로 들어서지 말라. 그 사람처럼 행동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복수다.”
안심입명安心立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기 마음을 조복 받은 이는 누가 어떤 유혹으로 끌어내려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원망을 원망으로 갚으면 원망은 끝이 없다. 원망을 멈추면, 원망도 멈춘다.”
우리 불자들은 인식 기관과 작용 대상, 작용 자체를 제어할 수 있는 힘이 자신에게 있음을 늘 자각하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이제 부처님오신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 기간만이라도 주변 가족, 이웃, 인연 있는 이들에게 함께 절에 가자고, 부처님 품 안에 함께 하자고 권하는 불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