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탁
연세대 명예교수, 철학 전공
1.
범망경에서는 대승의 불자들이 실천해야 할 윤리 덕목을 크게 네 범주로 묶고, 각 범주마다 10가지씩 마음먹기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는 <발심하여 불도를 이루겠다는 마음>, 둘째는 그렇게 발심한 마음을 <기르고 키워가려는 마음>, 셋째는 <금강석처럼 굳세게 먹는 마음>, 넷째는 마침내 <본마음 자리 드러내기>이다. 한문으로는 ⑴발취심發趣心, ⑵장양심長養心, ⑶금강심金剛心, ⑷지地이다. 이런 단계로 마음을 길러가자는 제안이다.
현재 필자는 ⑵장양심長養心, 즉 <기르고 키워가려는 마음>을 설명해 가고 있다. 열 가지란, ①자심慈心, ②비심悲心, ③희심喜心, ④사심捨心, ⑤시심施心, ⑥호어심好語心, ⑦익심益心, ⑧동심同心, ⑨정심定心, ⑩혜심慧心인데, 이번 5월호에는 ⑦익심益心을 소개할 차례이다.
‘익심益心’의 뜻을 풀어보면, 중생에게 이익을 주려는 마음이다. 이 점에 대해 먼저 범망경 본문에서 뭐라고 말하고 있는지를 인용하기로 한다.
불자야, ‘중생에게 이익을 주려는 마음[利益心]’이란, 중생에게 이익을 주고자 할 때는 ‘진실한 지혜 자체의 본성[實智體性]’에 입각하여 ‘방편 지혜의 도[智道]’를 널리 행하는 것이다. 일체의 밝은 법문을 모으고, 관행觀行과 ‘일곱 가지 재물’을 모아, 앞에 있는 사람에게 이익을 얻게 하기 위하여 (원력으로) 육체와 목숨을 받아 이익삼매利益三昧에 들어가기도 하며, 일체의 몸과, 일체의 입과, 일체의 뜻을 나타내어 3천대천세계를 진동시킨다. 일체의 행위와 작업이 남들을 법종法種과 공종空種과 도종道種 속으로 들어가 저들이 이익을 얻고 즐거움을 얻게 하려고 하는 것이다. (서원에 따라 자신의) 형체를 6도에 나타내되 무량한 괴로운 일을 근심하지 않고 그저 남들을 도와 이롭게 한다.
2.
문장은 짧지만, 대승불교에서 제시하는 대승의 보살행을 실천하는 사람이, 특히 타인에게 어떤 이익을 또 어떻게 이익을 주어야 하는지를 총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상의 본문에서 우리들이 주목해야 할 부분은 필자가 늘 강조하고 있지만, 개별적 윤리 덕목을 실천할 ‘근본의 제시’이다. 본문에서 “진실한 지혜 자체의 본성[實智體性]에 입각하여”라는 말이 근본이다. 지혜의 본성에 ‘근거’하여, 다양한 방편으로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다.
한자의 원문을 대비해서 보면, 필자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더 나아가 범망경에 등장하는 불교 윤리의 특징이 무엇인지, 그런 점들이 명확하게 드러날 것이다. <실지체성實智體性>에 근거하여 <지도智道>를 널리 실행해야 한다고 한다는 것이다. 괄호 속 두 용어의 핵심은 <지智>이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지혜’인데, 불교에서는 ‘반야’로서 ‘지혜’를 뜻한다. 불교 관련 책을 좀 읽어본 독자라면, 많이 들어본 용어이지만 막상 그게 무슨 뜻인지를, 나 자신에게 또 남에게 설명하려면 쉽지 않다. 중요한 개념이다. 운허 스님의 불교사전에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범어로는 ‘Prajῆā’로 표기하고, 한문으로는 반야般若 등으로 소리 번역하고, 뜻으로는 명明·지혜智慧 등으로 번역한다. 법의 실다운 이치에 계합한 최상의 지혜. 이 반야를 얻어야만 성불하며, 반야를 얻는 이는 부처님이므로 반야는 모든 부처님의 스승, 또는 어머니라 일컬으며, 또 이는 법의 여실한 이치에 계합한 평등·절대·무념·무분별일 뿐만 아니라, 반드시 상대 차별을 관조하여 중생을 교화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사전적인 설명이라서 문맥에 따른 의미가 특정되어 있지는 않지만, 대개의 의미는 전달될 것이다. 인간 내면의 생각에서 움직이는 여러 현상이나 의식 밖에서 일어나는 여러 현상을 있는 그대로 파악할 수 있는 ‘생각하는 힘’이다. 이것을 범망경 위의 본문에서는 ‘지智’라는 문자로 표기했고, ‘지智’이긴 ‘지智’인데 본바탕에 갖추어진 성질을 강조하기 위해 ‘체성體性’이라는 말을 덧붙였고, 또 그것이 거짓이 아닌 참임을 드러내기 위해 실實 자를 붙였다. 필자가 자주 사용하는 용어로 쉬운 우리말로 바꾸면 ‘본마음’이다. 한자리 깔고 하는 마음이 아닌 본래의 티 없는 마음이다.
3.
다시 본문을 인용한다. “‘진실한 지혜 자체의 본성[實智體性]’에 입각하여 ‘방편 지혜의 도[智道]’를 널리 행하는 것이다.” 즉, ‘본마음’에 입각하여 ‘방편’으로 이런저런 실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상의 본문에서 말하는 ‘방편’이란 목적을 이루는 과정에서 활용하는 ‘방법’을 뜻한다. 우리는 보통 개별의 윤리 덕목에 대해, 그것을 조문화하고 그리하여 서로 지킬 것을 교육하고 있다. 그런데 범망경 윤리의 특징은 ‘본마음’에서 입각하는 ‘본마음’을 우선적으로 강조한다. 개별적 구체적 윤리 덕목은 그 다음이다.
개별적 윤리 덕목도 중요하지만, 범망경에서는 그런 개별적 덕목 밑에서 움직이는 ‘본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점이 초기 불교의 윤리와는 다른 대승 범망경의 윤리이다. 범망경에서 제시하는 개별 윤리 덕목을 살펴보자. 본문의 순서대로 보면, ⑴일체의 밝은 법문을 모으고, ⑵관행觀行을 모으고, ⑶일곱 가지 재물을 모은다.
남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는 이상에서 말한 ⑴·⑵·⑶을 갖추어야 한다고 한다. 좀 설명을 보태면, 첫째, 남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는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많이 배워 익혀야 한다. 둘째, ‘관찰[觀]’이라는 수행[行]을 몸소 익혀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관찰’이란 ‘관법’ 수행으로 ‘위파사나’를 뜻한다. 셋째, 일곱 가지 재물을 갖추어야 한다. 일곱 가지 재물이란, ①신(信 믿음), ②진(進 정진), ③계(戒 계율), ④참괴(慙愧 남의 죄 부끄러워하기, 자기 죄 부끄러워하기), ⑤문(聞 법문 듣기), ⑥사(捨 마음의 평정), ⑦정혜(定慧 선정과 지혜) 등이다.
자, 이렇게 ⑴·⑵·⑶을 갖춘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런 다음에는 반드시 세상에 태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윤회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을 죄의 결과로 보는 인도 전통의 브라만교나 힌두교와는 차원이 다르다. 대승에서는 태어나기는 나는데 번뇌의 업이 원인이 되어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원력이 원인이 되어서 태어난다는 것이다. ‘원력’, 이것이 핵심이다. 소망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사는 것이다. 이렇게 원력으로 이 세상을 살면서 크게 두 가지 일을 한다. 첫째는 ⑴“이익삼매利益三昧에 들어가기도 하며”, 둘째는 ⑵“일체의 몸과, 일체의 입과, 일체의 뜻을 나타내어 3천대천세계를 진동시킨다.” ⑴은 자기 자신의 이익에 해당하고 ⑵는 타인의 이익에 해당한다. ⑴에서처럼 자신을 위해서는 삼매를 수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⑵에서처럼 타인의 이익을 위해서는 신·구·의 3업業으로 중생들을 위해 법을 설하는 것이다.
4.
한마디로 말하면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실천이다.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목표하는 것은 무엇인가? 본문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일체의 행위와 작업이 남들을 법종法種과 공종空種과 도종道種 속으로 들어가 저들이 이익을 얻고 즐거움을 얻게 하려고 하는 것이다.”
종種은 씨앗이다. 남에게 진리의 씨앗[法種]을 심어주고, 남에게 공이라는 진리의 씨앗[空種]을 심어주고, 남에게 진리에 이르는 방법의 씨앗[道道]을 심어주는 것이다. 이런 일련의 행위가 모두가 자신이 세운 서원에 따라, 자신의 몸을 지옥을 비롯한 ‘여섯 갈래[六度]’에 적극적으로 드러내되, 무량한 괴로운 일을 근심하지 않고 그저 남들을 도와 이롭게 하는 것이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본마음’을 바탕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몸에 익혀, 중생살이의 다양한 속으로 몸소 들어가, 그들에게 바른 지혜를 심어주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실천이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