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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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것은 왜 이리 짧은가

 


정성운
텃밭농부


봄의 바람은 훈훈하다. 때로 선선하기도 하다. 조금 더 있으면 온기가 전해질 것이며, 사람들의 복색은 한결 가벼워지고 화사해진다. 온기의 시간을 지나면 열기가 닥쳐온다. 섭씨 35도가 넘는 한여름의 뜨거운 공기는 열기熱氣라는 말로서도 모자란다. 가만히 있어도 숨이 턱 막히고 땀을 줄줄 쏟아낸다. 이런 공기를 증기蒸氣라고 해야 하나. 찜통 속 같은 뜨거운 공기이니 열탕기熱湯氣라고 해야 하나.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뜨거움을 표현할 새로운 말이 만들어질 것 같다.
저녁밥 먹고 설거지를 마치면 집 밖으로 나선다. 산책 겸 운동을 한다. 현관문을 나서는데 바람이 훈훈하다. 매화가 진 지는 오래고, 벚꽃이 눈처럼 흩날린다. 봄은 매화향으로 소식을 알리고 벚꽃이 짐으로써 더위를 느낀다. 이제는 짙은 봄이다. 봄날은 짧다. 찬란한 것은 왜 이리도 짧은가. 봄이 왔는가 했더니 어느새 떠나고 있다. 짧으니 더욱 즐겨야 한다.
날씨 얘기가 나왔으니, 한 가지 더 덧붙여본다. 잔뜩 흐리고 비라도 내리는 날을 궂은날이라고 표현한다. ‘궂은’은 궂다의 형용사인데, ‘비바람이 치는 궂은 날씨’, ‘마음도 심란한데 날씨마저 궂다’ 등의 용례처럼 언짢고 나쁜 경우를 나타낸다. 험하고 고생스럽거나 꺼림직한 일을 가리킬 때 궂은일이라고 쓴다. 햇빛이 쨍하고 선선한 경우엔 날씨가 좋다, 좋은 날씨라고 말한다. 


좋은 날만 있을 수는 없다


날씨를 놓고 궂으니 좋으니라고 말하는 것은 일상생활의 편리와 불편에서 갈린다. 좋고 나쁨은 상대적이다. 각자의 처지에 따라서 같은 날씨를 놓고도 좋고 나쁨이 갈린다. 마냥 좋을 수도, 마냥 나쁠 수도 없는 것이다. 농부에게 봄비는 그지없이 좋다. 씨앗을 뿌려놓은 후 내리는 비는 발아에 도움이 되니 반갑기 그지없다. 논밭을 촉촉하게 적셔주니 농사에 큰 도움이 된다. 그래서 단비라고 불렀다. 그러나 직장인에게 이 비는 궂은비다. 더구나 봄비 내리는 날이 주말이라면 많은 사람들의 이맛살을 찌푸리게 할 것이다. 오랜만에 가족 나들이를 계획했거나, 이 가족들을 기다리는 음식점이나 놀이공원 관계자들에게는 그야말로 봄비는 한숨을 쏟아내게 만드는 궂은비다.
날씨의 변화는 지구가 자기를 유지하기 위해 균형을 맞추는 웅장한 과정이다. 더워지면 식혀야 하고, 추워지면 달구어야 하는 이치를 실현하는 지구의 몸짓이다. 태풍과 사이클론, 허리케인도 그것의 하나다. 태풍은 북서태평양과 필리핀, 동아시아 해역에서 5~10월에 발생하는 열대성 저기압인데, 적도 부근의 뜨거워진 바닷물을 식히는 과정이다. 뜨거워진 공기는 바닷물을 수증기로 증발시킨다. 이 양이 어마어마하게 커서 큰 구름을 만들며, 뜨거워져 팽창한 공기는 빈 곳을 찾아 이동한다. 구름은 비를 뿌리고, 열기는 큰 바람을 일으킨다. 이게 태풍이다. 태풍은 사람살이를 어렵게 한다. 큰비와 거세게 휘몰아치는 바람은 사람의 생명을 해하고, 농작물과 구조물을 쓰러뜨린다. 그러니 태풍이 없었으면 좋겠지만, 지구가 균형을 찾아가는 일이니 사람으로서는 어쩔 수 없이 맞이할 수밖에 없는 자연의 현상이다. 다만 피해를 예방하는 일이 사람에게 주어져 있을 뿐이다.
경전에서는 비를 끌어온 비유가 있다. ‘비의 경’이다.


“비구들이여, 이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비를 내리지 않는 자, 한 곳에만 비를 내리는 자, 모든 곳에 비를 내리는 자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여기에서의 비는 보시를 가리키며, 세 번째를 권장한다.


“모든 사람들에게 보시한다. 비구들이여, 사람이 이렇게 모든 곳에 비를 내리는 자가 된다.”


태풍처럼 한 곳에 거세게 쏟아부을 것이 아니라 골고루 적당하게 내려 단비가 되어주듯이 하라는 것이다. 부처님은 수행자와 거지, 방랑자, 부랑자, 구걸하는 사람들에게 먹을 것, 마실 것, 의복, 탈 것, 화환, 향료, 크림, 침대, 주거, 등불을 보시하라고 가르치셨다.


풍성한 봄날의 밥상


요즘에는 밭에 나가는 일이 잦아졌다. 골고루 거름을 뿌려주었으며, 감자를 심었다. 지난 가을에 심은 마늘과 양파가 잘 자라도록 김매기를 했다. 1년생 더덕을 캐어 옮겨 심었다. 수확도 있었으니 한 뼘 넘게 자란 아스파라거스와 부추, 돌미나리, 곰취를 잘라 밥상에 올렸다. 봄날에 밭에 다녀오면 밥상이 풍성해진다. 고사리는 순을 내밀기 시작했다.
올해도 고추 농사에 도전한다. 작년에는 장마 지나면서 병이 번져 거의 죽고말았다. 고추는 습기에 유독 약하다. 밭둑을 더 높여주고 배수로를 내서 물빠짐을 좋게 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흙에 있는 바이러스와 곰팡이를 없앨 수는 없으니, 튼튼하게 해주어야 한다. 달걀 껍데기를 식초에 녹여 만든 난각칼슘, 님나무 열매에서 추출한 님오일을 이용할 계획이다.
무너진 이랑을 북돋아 주었는데, 이 일이 꽤 고되다. 고랑에 있는 흙을 퍼서 올리기 위해서는 삽질을 해야 한다. 내가 일구는 50평 남짓의 밭의 이랑을 북돋아 주려면 사나흘은 족히 걸린다. 겨우내 쓰지 않던 근육을 쓰니 어깨, 허리, 장딴지 근육이 팽팽해진다. 며칠은 근육통에 시달리지만, 몸이 단단해지는 과정이니 흔쾌히 받아들인다. 경운기나 관리기를 쓰면 30분이면 끝내겠지만, 텃밭을 하면서 기계를 쓰는 일은 삼간다. 옆 밭의 늙은 농부가 관리기로 경운을 해주겠다고 했지만 사양했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경운을 하지 않는 첫 번째는 이유는 자연농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자연농은 사람뿐만 아니라 세상의 온갖 것들이 같이 살자는 것이다. 자연농은 기계를 들이지 않는다. 기계는 땅을 짓누르고, 탄소에너지로 작동한다. 나는 최소한의 장비, 즉 삽, 호미, 레기 등을 활용한다. 내가 일구는 밭은 기계를 쓰지 않고도 작물을 가꿀 수 있는 넓이다. 그렇다고 하여 내가 반기계주의자는 아니다. 기계의 발명은 인간의 지혜의 산물이다. 인간의 육체적 한계를 극복하게 해준다. 노동의 고통으로부터 해방시켜준다. 더 많은 생산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러니 기계를 반대할 일이 아니다.


불안한 시절


내 밭에서는 또 화학 비료와 농약을 쓰지 않는다. 비료는 생산량을 대폭 늘려주고, 농약은 병충해로부터 벗어나게 해준다. 비료와 농약을 사용함으로써 인류는 배고픔으로부터 벗어났다. 고마운 물질이다. 그러나 흙을 산성화시키는 부작용을 낳았다. 밭에서 난 것을 다시 밭으로 투입해 유기질을 풍부하게 하는 순환을 몰아냈다. 밭에서 사는 미생물과 벌레들을 멸절시켰다. 흙을 불모의 존재로 만들었다. 흙에 남은 비료 성분은 지하로 스며들고 하천으로 흘러들어 물까지 오염시킨다.
오염을 저감시키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중화시키는 약제를 살포한다든지, 정화식물을 심기도 한다. 화학비료보다는 유기질비료를 보급하는 방법도 있으며, 최근에는 널리 쓰이고 있다. 병충해 예찰과 생산 후 잔류농약 검사를 엄격히 시행함으로써 오염을 최소화한다. 그나마 다행이다.
세상이 어지럽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고율 관세 부과로 국가 간의 무역장벽이 높아졌다. 넘치는 것을 외국에 팔고, 모자란 것을 사들여 나라살림을 꾸려가는 것이 세계적인 관례였는데, 이 법칙이 깨졌다. 오랜 동맹 관계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진통이 뒤따를 것이다. 언론은 ‘전쟁’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경제에 국한한다면 다행이겠지만, 어느 곳에서 돌발 상황이 발생해 무력을 불사할지 알 수 없다. 불안한 시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