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한스님 / 봉담선원장
꽃가루 때문에 한동안 꼼짝 못했다. 눈동자가 벌겋게 충혈 되고 간지러운데다 콧물 재채기까지 가세해 정신을 못 차리게 했다.
해마다 봄이면 나는 꽃가루 알레르기에 한바탕씩 산고를 치른다. 나의 꽃가루 알레르기는 좀 유별난 편이다. 같은 날씨에도 다른 사람들보다 꽃가루에 더욱 예민하게 반응하고 증세도 훨씬 심하다. 그래서 봄이면 나는 봄이 주는 기쁨과 눈물의 이율배반에 항상 웃다가 울고, 울다가 웃곤 한다.
올 봄 나의 꽃가루 공습은 예년보다 조금 더 일찍 찾아왔다. 저 지난 일요일, 한낮의 햇살이 하도 좋아 토굴 뒷산에 올랐다. 오가는데 채 한 시간도 걸리지 않는 야산이다. 그런데 갈 땐 괜찮았는데 오는 길에 조금씩 눈 꼬리가 간지럽기 시작하더니 밤새 눈이 퉁퉁 붓고 벌겋게 충혈 되고 만 것이다.
꽃가루가 공습해올 땐 안· 이· 비· 설· 신· 의, 내 밖의 경계를 모조리 다 관제하고, 달팽이처럼 내 안의 경계로 들어오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렇게 꽃가루를 피해 한 며칠 토굴 안에서 뒹굴다보면 꽃가루가 슬금슬금 꼬리를 감춘다.
그런데 꽃가루를 피해 파충류처럼 그늘 안에만 숨어있다 보면 이번엔 내 안의 경계에 문제가 생긴다. 꽃가루 알레르기를 피해 며칠 동안 토굴 안에만 처박혀 있다 보면 이번엔 몸과 마음이 극도의 무기력증에 빠지고 만다. 특히 나처럼 천성적으로 봄을 타는 사람은 봄이 오면 더 많은 활동을 해야 하고 햇볕도 더 많이 쬐어야 하는데 며칠간이나 햇볕으로부터 강제 격리되어 있다 보니 심한 우울증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처음에 눈이 간지럽고 충혈 되었을 땐 그걸 핑계 삼아 한없이 게으르고 달콤한 잠의 늪 속으로 빠져 드는데, 시간이 지나면 그 잠은 점점 더 달콤한 욕망이 되어 끝내는 쓰디쓴 소금으로 변하고 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나는 정말 내 몸과 마음의 주인이 아니라 객임을 새삼 절감한다. 꽃가루를 피해 토굴 속에 처박혀 파충류처럼 손발을 무기력하게 늘어뜨리고 있는 동안 나는 내 몸뚱어리는 물론 내 마음조차 내 마음대로 다스릴 수 없는 원후류(猿 類)가 되고 만다.
그럴 때마다 새삼 나는 느낀다. 내 몸과 마음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내 몸과 마음이 나의 주인임을. 그리고 그 몸과 마음은 여지없이 하나임을. 불이(不二)임을.
그런데 공교롭게도 오늘 아침 기상예보에 ‘꽃가루에 더위까지’라는 제목으로 본격적인 꽃가루 알레르기를 예고하는 주간 날씨소식이 있었다. ‘이번 주 중에는 초여름 날씨를 방불케 하는 더운 날씨와 함께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꽃가루에도 주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 특히 전문가들은 6월 초순까지 앞으로 한 달 동안 나무와 풀에서 날리는 꽃가루가 알레르기성 비염이나 결막염, 천식 등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꽃가루에 노출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기상예보를 듣는 동안 내 몸과 마음은 더 깊은 무기력증에 빠져 들었다. 아니 아직도 한 달 넘게 꽃가루를 피해 다녀야 한다니, 절로 한숨 먼저 나왔다. 그나마 마지막 기사 몇 줄이 내 몸과 마음의 무기력증을 조금은 달래주었다. ‘한양대 의대 오재원 교수(소아과)는 꽃가루는 해뜨기 직전부터 오전 10시 까지 특히 많이 날리기 때문에 알레르기에 민감한 사람들은 이 시간대에 되도록 아침 운동이나 외출을 삼가는 게 좋다고 말했다.’ 마지막 이 한 구절이 꽃가루 앞에 한없이 추락하는 내 몸과 마음의 부피를 얼마나 크게 클릭해주던지, 눈이 간지럽던 나는 마침 책꽂이에 꽂혀 있는 한 권의 책에 눈길이 갔다. 몇 해 전에 감명 깊게 읽은 뒤 생이 불온해지거나 무기력해질 때마다 가끔씩 꺼내보는 책이다. 파울로 코엘류의 ‘연금술사’다. 
책뚜껑을 열자 내가 읽을 때마다 연필로 한 번씩 밑줄을 그어 놓았던 구절들이 시커멓게 눈에 들어왔다. 눈과 코가 간지러워 정독을 할 수 없었음으로 나는 그렇게 밑줄 그어둔 부분만 읽어나갔다. 그러다가 한 구절에 턱 걸렸다. 아니 걸린 게 아니라 감전된 듯 그  구절에 내 몸과 마음이 저절로 머물렀다. 늙은 왕이 우리의 주인공인 산티아고에게 해주는 말이었다. ‘만물이 다 한 가지라는 것을 명심하게. 또한 표지가 말하는 것을 잊지 말게. 특히 자네 자아의 신화의 끝까지 멈추지 말고 가야 해.’ 그리고 또 한 구절, ‘산티아고는 이미 익숙해져 있는 것과 가지고 싶은 것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 그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삶에서 일어나는 좋은 일들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루하루가 매일 해가 뜨고 지는 것처럼 똑같을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라는 것이었다.
순간, 무기력증에 빠져 있던 나는 용수철처럼 몸과 마음을 일으켜 세웠다. 다른 해보다 더 일찍 나에게 찾아온 꽃가루는 자아의 신화를 잊은 채 한없는 무기력에 빠져 있는 나에게 내 마음의 연금술사가 준 표지(標識)였던 것이다. 단순하게 사는 법을 잊어버리고, 아직도 속세의 사회적 지위와 명예와 재산과 권력의 포물선을 그려보고 있는 내 속물적 승속(僧俗)의 삶에 내 마음의 연금술사는 꽃가루 알레르기를 통해 ‘아플 땐 단순히 아파버리라고, 몸과 마음이 아프다는 것은 몸과 마음이 좀 쉬고 싶다는 뜻이라고, 무기력증과 우울증 또한 제어 장치 없이 달려가는 감각적 삶에 과속 위험신호를 보낸 생의 표지’라고 일러주고 있는 것이었다.
한없는 삶의 자비로움에 그 순간 나는 고개가 숙여졌다. 그리고 내 마음의 연금술사를 향해 독백했다. 그래. 꽃가루야, 아프다고 간지럽다고 귀찮다고 거추장스럽다고 나무래서 미안하다. 그 동안 산티아고처럼 단순한 양치기의 마음으로 살지 못하고 내 눈과 귀를 쓸데없는 곳에 너무나 오래, 너무나 많이 현혹되게 내버려두었구나. 그래서 네가 스스로 마음의 표지(標識)가 되어 좀 더 일찍 와주었구나. 고맙다. 꽃가루야, 지금 당장 양치기의 마음으로 되돌아가 사막과 평원의 여정을 다시 시작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