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한국선학회 회장
1.
벌써 한 해의 중간 지점인 유월이다. 장미가 탐스럽게 여기 저기 피어 있다. 요즘은 담장이 있는 단독 주택들이 줄어들어 별로 볼 수가 없지만, 연세대학 교정의 곳곳에는 많이 보인다. 거기다가 목단도 한창이다. 그 보다는 약간 때 이르게 꽃 피웠던 작약도 꽤 있었다.
더위 때만 볼 수 있는 꽃들인데, 탐스럽고 풍요롭지만 마음을 설레게 하지는 않는다. 나는 이 꽃들의 그런 모습이 좋다. 흘러가는 시간도 이 꽃들 속에서는 멈추는 것 같다. 무언가 내면의 세계 속으로 푹 익어 들어가는 그 무엇이 있는 듯해서 더욱 좋다.
출가 불자들에게 이런 여름의 계절은 출입을 삼가고 자기를 성찰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인도 땅에서부터 많은 출가 수행자들은 이 계절을 활용하여 한적하고 시원한 곳에 모여 명상을 했다. 여름에 하는 명상이라 하여, ‘하안거夏安居’라 했다. 음력 4월 보름이 바로 이 하안거가 시작되는 날이다. 이로부터 약 90일이 지나면 음력 7월 보름 백중이 된다. 그 날까지 수행승들은 선방禪房에 모여 화두에 집중하는 명상 수련을 한다.
한 여름을 이렇게 보내는 것은 불교 수행자의 오랜 전통이다. 7월의 ‘백중’, ‘우란분절’이라고도 하는데, 이 날이 되면 재가 불자들은 온갖 과일로 안거를 보낸 출가 수행승들에게 공양을 올린다. 그런 공덕으로 선망 부모와 자매질손들 중에, 혹 지옥에 간 영가가 계시더라도 좋은 세상으로 천도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렇게 한다.
이런 수행의 계절을 맞이하여, 우리 재가 불자들도 저마다의 형편에 따라 수행을 해야 한다. 불교는 수행의 종교이다. 생업에 종사하는 재가 불자들도 수행을 해야 한다. 그런 수행의 핵심을 위대한 대승의 불자들은 다섯 수행으로 요약했다.
첫째는 보시 수행이고, 둘째는 지계 수행이고, 셋째는 인욕 수행이고, 넷째는 정진 수행이고, 다섯째는 지관 수행이다.
이 중에서도 덥거나 추워서 행동에 제한이 있을 때에 많이들 하는 수행이 바로 지관止觀 수행이다. 마음을 고요하게 하여 마음을 안으로 거두어들이고, 마음속에 일어나는 일체의 현상을 관찰하는 일이다.
2.
마음을 고요하게 하기 위한 ‘수단’ 내지는 ‘방법’은 옛부터 여러 가지로 개발되고 전해내려 오고 있다. 숫자를 세는 것도 그런 방법 중의 하나이고, 고요한 소리에 마음을 집중하는 것도 그런 방법 중의 하나이고, 그 밖에도 호흡을 깊이 하는 것도 그런 방법의 하나이다. 중국에서 특히 송나라 시대를 거치면서 ‘화두’에 의식을 집중하여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것도 이런 전통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 어떤 방법도 좋다. 저마다의 형편과 습관에 따라 하면 된다.
금년 여름에는 소리를 관찰하는 명상 수행을 권하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핸드폰’을 가지고 다닌다. 알람시계를 오전 10시에 맞추어 놓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진동이든 소리이든 신호가 오면, 하던 일을 멈추고 각자 자신들이 다니는 절 법당의 부처님이나 보살님의 거룩하신 상호(모습)를 떠올리면 되겠다.
단 3분이라도 좋다. 눈을 지그시 감고 부처님 전에 내가 절을 올리는 모습을 상상하자. 법당의 향냄새가 코끝을 스칠 것이다. 은은하게 추녀 끝의 풍경 소리도 들려온다. ‘마지’를 올리는 법당 안의 금고金鼓 소리가 피부에 진동으로 울려온다. 따듯하게 지어 올린 ‘마지’의 구수한 냄새가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주지 스님의 염불 소리가 들려온다.
공양시방조어사 供養十方調御士
연양청정미묘법 演揚淸淨微妙法
삼승사과해탈승 三乘四果解脫僧
원수애납수~ 願垂哀納受~,
원수애납수~ 願垂哀納受~,
원수자비애납수 願垂慈悲哀納受
시방 삼세에 계시는 부처님과,
청정하고 미묘한 진리를 전해주는 가르침과,
성문 연각 보살의 승단에 소속되어 수행하시는 스님들께,
공양을 올리오니 자비로우신 마음으로 받아주소서.
대한민국의 모든 절에서는 10시 즈음에 ‘사시마지’를 올린다. 종단이 달라도 모두 그렇게 한다. 이것은 아주 오래된 한국불교의 전통이다. 생업에 종사하는 재가 불자들이 매번 부처님과 승단에 공양을 올린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매일 10시에, 저마다 핸드폰 알람 소리에 맞추어, 눈을 지그시 감고, 명상으로 공양을 올리는 수행을 권한다. 실제적인 공양은 정해진 법회에 출석하여 공양금供養金으로 올리면 될 것이다. 불교의 공양은 수행이다. 특히 재가 불자는 반드시 해야 할 의무이기도 하다.
남방 불교도들이 사는 나라에 여행을 해본 사람들은 이런 풍경을, 스님들이 아침이면 ‘밥그릇’을 들고 줄을 맞추어 ‘빌어먹으러’ 나오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중국에서는 ‘걸사乞士’라고 불렀다. ‘사문沙門’이라고 인도나라 말을 소리 나는 대로 음사音寫하기도 했다.
불자라면 수행을 해야 한다. 그런 수행 중에서, 이 더운 여름에는 명상 수련이 적격이다. 새소리 바람 소리 들리고, 바위 사이로 흐르는 물소리 들리는, 깊은 산 속이 적격이겠지만, 그것도 인연이 따라야 한다. 그러나 이런 인연이 없다고 수행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하루에 단 3분만이라도 명상을 하자. 오전 10에 핸드폰 알람으로 그 시간을 저장해 두자.
3.
대승불교 중에서도 가장 포괄적이며 유기적으로 궁극의 가르침이 집결된 경전으로 『화엄경』을 꼽을 수 있다. 그래서 예부터 고승들은 ‘일승원교一乘圓敎’라는 수식어를 『화엄경』 앞에 붙여, ‘일승원교 대방광불 화엄경’이라고 강조해왔다. 모든 사원에 새벽에 ‘종성鐘聲’을 할 때에도 ‘나무 일승원교대방광불화엄경’이라고 소리 내어 예경禮敬한다.
바로 이 『화엄경』에서는 ‘일심一心’을 관찰하는 수행을 적극 권하고 있다. 『화엄경』은 모두 39품品으로 되어 있는데, 그 중에 「십지품」이 있다. 여기에 ‘일체유심조’라는 말이 나온다.
불교의 관찰 수행에서는 관찰의 대상을 다양하게 거론하고 있다. 그런데, 그 많은 관찰의 대상 중에서, 가장 효과적인 대상이 ‘일심’이다. ‘일심’을 관찰하는 수행이 대승불교 중에서도 성종性宗의 전통으로 우리나라 불교는 이 전통에 서 있다. 일체의 공을 관찰하는 ‘공종空宗’은 티베트불교의 전통이다. 10시의 핸드폰 알람을 ‘계기’로 삼아, 또는 그것을 ‘방법’으로 삼아, 잠시나마 우리의 의식이 집중되면, 그리하여 ‘무심’해지면, 일심은 저절로 현전한다. 이로 인해 생기는 각종 공덕은 한량이 없다. 복 중의 복이요, 은혜 중에 은혜이다.
‘일심’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일심’의 체험이 빠져있는 수행은 헛짓이다. ‘일심’을 부르는 명칭은 다양하다. 자성청정심, 진여자성, 본래면목, 자기, 원각, 본지풍광. 기독교의 성경에 나오는 ‘성령’이다. ‘성령체험’ 없는 어떤 기도나 수행도 모두 헛짓이다. 불교식으로 말하면 ‘돈오’가 수반되지 않는 ‘점수’ 실천은 세속적 가치는 있지만, 불교의 궁극으로 향하는 실천은 아니다. 이런 소식을 『화엄경』에서는 “비로자나부처님의 법계를 깨치고, 보현보살의 실천을 수행하라.”고 한다. ‘깨치고’ 그러면서 동시에 ‘수행하는’ 것이다. ‘오悟-수修’가 나란히 간다.
이번 여름에는 10에, 3분 동안 하는, 명상 속에서 불공 올리는 수단(방법, 방편)으로, 재자 불자들도 ‘여름 안거’에 동참하자. 그리하여 그 공덕으로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7월 보름 백중에 우리의 조상을 천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여기에 전문적으로 수행한 출가 수행자의 공덕이 보태진다면 선망 조상님들은 반드시 극락왕생하실 것이다.
ananda@yonse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