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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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랑이와 개구리 울음소리

박상준
고전연구실 뿌리와 꽃 원장


초여름이 성큼 다가왔다. 신록은 푸르름을 더해간다. 우리네 삶도 열 가지 면에서 풍요로워질 것이 틀림없다.
고문진보에 나오는 고엄賈奄의 초여름 시를 감상해본다.


江南孟夏天 강남맹하천
紫竹筍如編 자죽순여편
蜃氣爲樓閣 신기위누각
蛙聲作管絃 와성작관현


양자강 남쪽땅 초여름 날씨에
보랏빛 죽순이 엮은 듯이 솟아나네
아지랑이 피어올라 누각을 이루고
개구리 울음소리 관현악을 연주하네


서울시 강남고속버스터미널이 있는 강남이 아니라 중국의 강남이다. 지금이야 많이 달라졌지만 옛날에는 습기가 많은 지역이었다. 귀양 간 사람들은 날씨에 적응을 잘하지 못하는 바람에 큰 병이 들거나 심한 경우에는 아예 세상을 하직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았다고 한다.
죽순이야기가 나오니까 20년 저편쯤 중국에 갔을 때 마음속에 살짝 걸려서 풀리지 않던 고리 하나가 두둑 풀어진 기억이 추억으로 떠오른다.
중국 북송 때 왕우칭이라는 문장가가 지은 ‘황주죽루기’라는 문장이 고문진보에 나오는 것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이다. 그 내용 중에 이 지역에서는 대나무가 많이 나오는데 큰 것은 서까래만해서 죽공들이 마디를 긁어내어 기와 대신 쓴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대나무기와로 지붕을 이어놓으면 여름에 소낙비가 지나가거나 겨울에 눈이 지붕에 내려앉을 때 소리가 난다. 왕우칭은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夏宜急雨 하의급우
有瀑布聲 유폭포성


여름에는 소나기가 좋으니
폭포소리가 들려오고


冬宜密雪 동의밀설
有碎玉聲 유쇄옥성


겨울에는 부서지는 싸락눈이 좋으니
옥구슬 부서지는 소리가 들린다


대나무기와로 된 지붕 아래 방에서 앉아 소낙비가 우다닥 지나가면서 지붕을 때리는 소리를 들으면 머릿속의 번뇌가 타다닥 떨어져나갈 것만 같다.
그런데 그 글을 읽을 때는 대나무가 얼마나 크면 마디를 긁어내서 기왓장처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의 고리가 살짝 걸려있었다.
20여 년 전 어느 고인이 되신 큰스님과의 인연으로 중국 구화산을 갔었다. 저녁 늦게 구화산 아래 숙소에 도달해서 하룻밤 지내고 다음날 아침 차를 타고 가는데 길 옆에 솟아날 준비를 하고 있는 죽순이 눈에 들어왔다. 아! 고리가 풀려나갔다. 족히 한아름쯤 되는 죽순들이 여기저기 삐죽삐죽 솟아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랬구나. 죽순이 저렇게 크니 죽순이 솟아올라 단단한 대나무가 되면 반으로 쪼개서 마디를 긁어내어 적당한 크기와 길이로 자르면 기왓장이 되고도 남겠구나. 상상했던 기왓장보다 훨씬 더 스케일 큰 기왓장들이 수없이 만들어지고도 남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대나무문화충격을 떠올렸었다.
소동파는 대나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可使食無肉 가사식무육
不可居無竹 불가거무죽
無肉令人瘦 무육영인수
無竹令人俗 무죽영인속
人瘦尙可肥 인수상가비
士俗不可醫 사속불가의


식사에 고기반찬 없는 건 괜찮지만
거처에 대나무가 없는 건 안 된다네
고기가 없으면 사람을 삐쩍 마르게 하지만
대나무가 없으면 마른 것은 살찌게 할 수 있지만
선비가 속된 것은 고쳐볼 수가 없나니


속俗이라는 글자는 사람이 고정관념의 골짜기에 푹 빠져있는 것을 말하는 글자이다. 속리산에 대해서 유명한 구절이 있다.


山不離俗 俗離山 산불리속 속리산
산이 속세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속세가 산을 떠난다네


속세가 산에서 떠나버린 산이 속리산이다. 속세가 산에서 떠나면 그 자리에 진리의 법이 머문다. 법주사이다.
다시 초여름 시로 돌아간다. 중국 강남 지역은 앞에서 말한 대로 습기가 많기 때문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이 아지랑이는 스케일이 제법 크다. 멀리서 아지랑이를 보면 들판을 만들어 떼 지어 달리는 모양으로 보인다. 야마野馬라는 말이 있는데, 들판을 달리는 말이다. 바로 아지랑이라는 뜻이다. 넓은 늪 지역에서 쓰리디입체적으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를 멀리서 바라보면 황야 넓은 들에 수없는 말떼들이 달려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야말로 신기루이다.
넓은 늪 지역에서 개구리들이 합창을 하면 그 소리는 가히 상상이 되고도 남는다. 고막이 견뎌줄까 걱정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송나라 때 시랑벼슬을 지냈고 대혜종고스님에게 가르침을 받은 장구성張九成은 화장실에서 거한 일을 보다가 개구리 울음소리를 듣고 다음과 같은 게송을 개구리 관현악 연주에 실어서 노래했다.


春天月夜一聲蛙 춘천월야일성와
撞破乾坤共一家 당파건곤공일가
正恁.時誰會得 정임마시수회득
嶺頭脚痛有玄沙 영두각통유현사


봄날 달밤에 한줄기
개구리 울음소리가
건곤을 쳐부수리
모두가 한 집안이로다
바로 이러한 때
그 누가 알아차렸던가
고갯마루에서 발가락이 뜨끔했던
현사 사비스님 계시는구나


현사 사비스님이 고갯마루를 넘어가다가 돌부리에 발이 걸리면서 발가락이 부딪치는 바람에 번쩍 알아차렸다는 이야기는 많이 알려진 이야기이다. 가구 모서리나 문턱을 맨발로 무심결에 걷어차 본 사람은 얼마든지 공감이 갈 것이다. 알아차림이야 그렇다치고 하여간 그 찰나에 온 몸에 엄습해 들어오는 찌르르흐한 통증은 어이구 고개가 지금 생각만 해도 뒤로 돌아간다.
건곤을 무너뜨리는 개구리 울음소리를 장구성 거사가 스마트폰으로 녹음해 놓았으면 하는 아쉬움은 가질 필요도 없지만 고갯마루에 올라가서 돌부리를 일부러 걷어찰 일도 아니다.
전신의 모세혈관 속의 혈액방울 하나하나까지 풀리지 않는 문제의식으로 똘똘 뭉쳐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이지 하릴없이 낮잠 자는 사람은 핵탄두미사일이 귓불을 스치고 지나가도 건곤이 쳐부수어질 리가 없다.
녹음 짙푸른 산을 바라보노라면 온산의 이 나무 저 나무에 매달려있는 이파리들이 한꺼번에 바람 따라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늘을 날아가는 새떼들은 어떤 통신수단이 있길래 그 긴 줄이 한꺼번에 방향을 휙 돌리는 것일까.
새들에게 물어도 대답해 줄 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