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담스님
좌우 어디를 봐도
가로수 하나 없다
오래 전에 립스틱 벗겨진 듯
상가 건물은
세트장으로는 그만이다
시장은 아침부터
사람들이 분주하다
어디서 몰려온 사람들인지
무엇이 그렇게 필요한 것인지
사람들은 이른 아침부터
시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어쩌면 이들은
무슨 물건을
사고 파는 사람들이 아니라
어떤 영화에 필요한
엑스트라는 아닌가 모르겠다
역시 영화는 이렇게
화면이 꽉 차야 안심이다
소품인지 주인공인지
그 복잡한 구석에
나를 한 십년쯤
뒤로 당기면 될 듯한
노인 하나가
오랫동안 그렇게 기다린 듯
향 꾸러미를 맡긴다
향은 분홍도 노랑도 아닌
진한 검은색
그 노인의 오랜 눈빛이
가득 담긴 것 같다
향기는 달고 진했다
아마 깊은 산골
오래된 나무뿌리가 내는
그런 진한 향냄새였다
그러나 나는
노인이 떠맡기는
향 보따리 보다
떠맡기는 손마디와
그 표정 그리고
노인이 가지고 온
깊은 산속
흙투성이 보따리가
더 갖고 싶었다
갑자기 이제까지
내가 먹던 차와 향
어쩌면 여기까지
걸어온 길이
몇 걸음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이런 각본과 설정이 좋다
대사는 없지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아직 먹어보지 못한
어떤 향기와
차 한 잔이 아닐까싶다
배우나 세트장이나
너무 건조하고
목이 마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