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탁(연세대 철학과 교수)
1.
화엄경의 내용 전체를 ‘신-해-행-증’의 네 단락으로 나누어 읽는 방법에 대해서는 누차 반복했다. 이런 맥락에서 필자는 2022년 2월호부터 ‘행行’을 소개하며, ‘행行’을 우리말로 ‘실천’이라 번역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화엄경 「이세간품 제38」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세간품」은 크게 여섯 주제의 문답으로 구성되었다는 말도 지난달에 소개했다. 여섯 주제를 번호 붙여 표시하면, 믿음[信] 관련 문답, 마음먹기[住] 관련 문답, 실천[行] 관련 문답, 회향(回向) 관련 문답, 수행의 단계[地] 관련 문답, 충족한 수행과 그에 따른 완전한 과보[因圓果滿] 관련 문답이다. 이번 달에는 여섯 문답 중에서 네 번째 문답을 소개하려는 뜻에서 (4/6)이라고 제목에 표시했다. 독자들께서는 이 점도 살펴 주시기 바란다.
2.
자, 그럼 ‘회향廻向 관련 문답’을 살펴보기로 한다. 그런데 ‘회향’을 주제로 한 설법은 「십회향품 제25」에도 나온다. 그러면 「이세간품」의 ‘회향’과 어떤 관계인가? 결론을 먼저 말하면, 저기의 ‘회향’은 이론적 측면을 말했고, 여기의 ‘회향’은 실천적 측면에서 설법했다. 이렇게 「십회향품」과 「이세간품」의 는 서로 호응하고 있다고, 예부터 경학의 대가들이 해석하고 있다. 자, 그러면 우선 「십회향품」에 소개된 열 가지 회향의 내용을 명목만 다시 들어보자.
⑴일체중생을 구호하면서도 중생이라는 상相을 여의는 회향(4개의 답변), ⑵깨뜨릴 수 없는 회향(2개의 답변), ⑶모든 부처님과 평등한 회향(2개의 답변), ⑷온갖 곳에 이르는 회향(1개의 답변), ⑸다함이 없는 공덕장 회향(1개의 답변), ⑹일체 평등한 선근에 들어가는 회향(1개의 답변), ⑺일체중생을 평등하게 따라주는 회향(1개의 답변), ⑻진여의 모양인 회향(10개의 답변), ⑼속박도 없고 집착도 없는 해탈 회향(3개의 답변), ⑽법계에 들어가는 무량한 회향(4개의 답변).
「십회향품 제25」에서는 이상과 같이 열 가지 회향 관련 ‘이론’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곳 「이세간품 제38」에서는, 그 열 가지 회향 ‘실천’에 즈음하여, 좀 더 구체적으로 총 29방면으로 질문을 던져 답변하고 있다. 29방면이란 어떤 방면인가? 이것은 위의 반달 괄호 즉 ‘( )’ 속에 적어두었으니 독자들께서도 살피시기 바란다.
원체 방대해서 다 설명할 수 없으니, 하나만 즉, “⑴일체중생을 구호하면서도 중생이라는 상相을 여의는 회향(4개의 답변)”을 실례로 설명해보자. 「십회향품 제25」에 따르면 중생들을 위해 6바라밀 몸소 실천하고, 또 ‘자-비-희-사’의 중생을 어여삐 여기는 4무량심을 닦을 때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는 것이다. 즉, “이 선근 공덕으로 일체중생을 두루 이익케 하여 모두 청정케 하며, 필경에는 지옥 아귀 축생 염라왕 등의 한량 없는 고통을 길이길이 여의게 하여지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그렇게 하겠다는 ‘생각’이다. 이어서 경전 본문에서는 왜 그렇게 생각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유를 대고 있으니, 즉 “보살마하살이 일체 법이 평등한 성품에 들어간 연고” 때문이라고 한다. “일체법 평등”, 이것이 대전제이고 모든 주장의 기반이다. 그래서 모든 중생을 친구로 생각하고, 나아가서는 자신을 해치려는 자도 자비심으로 그들을 구호한다는 것이다.
이상은 「십회향품 제25」에서의 ‘회향’인데, 저곳에서는 ‘생각’으로 그렇게 한다. 그런데 이곳 「이세간품 제38」에서는 회향의 ‘실천’이다. ‘해解’에서 ‘행行’으로 옮겨가는 것으로, 경학 연구자들은 화엄경 전체의 맥락을 그렇게 분석해왔다. 그럼, 이하에서는 한두 가지 사례만 뽑아, 화엄경 구성작가가 어떤 방식으로 ‘해解’에서 ‘행行’으로 옮겨가도록 이야기를 구성하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3.
첫째, 「십회향품 제25」에 나오는 “⑴일체중생을 구호하면서도 중생이라는 상(相)을 여의는 회향(4개의 답변)을 보자. 보혜보살이 보현보살에게 ⑴의 실천을 위해, 첫째 <머뭄> 방면에서, 둘째 <금강과 같은 대승의 서원> 방면에서, 셋째 <마음 내어 실천하기> 방면에서, 넷째 <궁극의 큰일> 방면에서, 이렇게 네 방면으로 구체적으로 나누어 질문을 한다. 그러자 보현보살은 네 방면마다 10가지 사례를 들어 답변한다. 이하에서 그중에서 <궁극의 큰일> 방면만을 뽑아 어떻게 답하고 있는지를 소개하기로 한다.
<궁극의 큰일>은 한문으로는 ‘구경대사究竟大事’인데, ‘구경’은 ‘궁극’, ‘끝까지’라는 뜻이고, ‘대사’는 일생일대의 가장 큰 일이라는 뜻이다. 운허 스님은 ‘끝까지의 큰일’이라 번역하셨다. 그런데 이렇게 풀이해도 의미가 확연하게 전달되지 않는다. 내용을 보자. 10가지 사례가 나온다.
“①모든 여래께 공경하고 공양하는 끝까지의 큰일과, ②중생을 생각하는 대로 모두 구호하는 끝까지의 큰일과, ③온전히 모든 불법을 구하는 끝까지의 큰일과, ④모든 선근을 쌓아 모으는 끝까지의 큰일과, ⑤모든 불법을 생각하는 끝까지의 큰일과, ⑥모든 서원을 만족하는 끝까지의 큰일과, ⑦모든 보살의 행을 성취하는 끝까지의 큰일과, ⑧모든 세계의 여래께서 계시는 데 나아가는 끝까지의 큰일과, ⑨모든 선지식을 받들어 섬기는 끝까지의 큰일과, ⑩모든 부처님의 바른 법을 듣고 지니는 끝까지의 큰일입니다.”
저곳 「십회향품」에서 제시한 열 가지 회향 가운데 첫째로 제시된 “⑴중생을 구호하면서도 중생이라는 상相을 여의는 회향” 관련 ‘이론’에 대해서, 이곳 「이세간품」에서는 네 방면 가운데 <궁극의 큰일>과 관련하여 10가지 사례를 들어, 그것의 ‘실천’을 설법하고 있다. 그러면, 이 내용을 종합해서 2인칭 화법으로 바꾸어 다시 구성해 보자.
“그대들이 만약 대승의 보살행을 실천하려 한다면 다음과 같이하거라. ①에서 ⑩에 이르는 ‘궁극의 큰일’은 말 그대로 그대 일생일대의 궁극적 최대의 사업이다. 그대! 보살들은 이 열 가지를 실천하라. 그렇게 하면 그 수행이 원인이 되어 결과로서의 공덕이 반드시 생길 것이다. 그런 다음에 그렇게 생긴 공덕으로 일체중생을 구호하되, 그러면서도 중생이라는 상(相)을 내지 말거라.”
4.
둘째, 「십회향품 제25」에 나오는 “⑸다함이 없는 공덕장 회향(1개의 답변)”을 보자. ‘공덕장’은 공덕이 갈무리되어 있는 창고라는 뜻이다. 소위 ‘다함이 없는 공덕의 창고’인데, 이것을 중생에게 돌려주는 실천을 어떻게 하는지 보기로 하자. 운허 스님의 <한글대장경> 번역을 그대로 소개한다. 번호는 필자가 붙였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묻힌 갈무리[伏藏]가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①모든 법이 공덕의 행을 일으키는 갈무리[藏]임을 알며, ②모든 법이 바르게 생각하는 갈무리임을 알며, ③모든 법이 다라니로 밝게 비치는 갈무리임을 알며, ④모든 법이 변재로 연설하는 갈무리임을 알며, ⑤모든 법이 말할 수 없는 잘 깨닫는 진실한 갈무리임을 알며, ⑥모든 부처님의 자유자재한 신통이 관찰하여 나타내는 갈무리임을 알며, ⑦모든 법이 교묘하게 평등함을 내는 갈무리임을 알며, ⑧모든 법이 온갖 부처님을 항상 뵈옵는 갈무리임을 알며, ⑨모든 부사의한 겁이 모두 눈어리[幻]같이 머무는 것을 잘 이해하는 갈무리임을 알며, ⑩모든 부처와 보살들이 환희한 신심을 내는 갈무리임을 아나니, 이것이 열입니다. 만일 보살들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모든 부처님의 위 없는 지혜의 법 갈무리를 얻어 일체중생을 잘 조복합니다.”
독자들도 ‘복장伏藏’이라는 용어를 불공할 때 들어보셨을 것이다. 3보를 청해 모시는 소위 ‘청사’에 나온다. “어빈궁자, 영득복장”이라고 말이다. 불법승 3보께서는 빈궁한 사람에게 보배창고를 얻게 해주신다며 찬송하면서, 이 법회에 강림하셔 저희가 올리는 공양받으시기를 간청하는 대목이다. 보배창고는 중생마다 모두 간직하고 있지만, 미혹한 중생은 보지 못하기 때문에 ‘파묻혔다’는 뜻으로 ‘복伏’ 자를 덧붙였다.
위에서 필자는 중생을 하나의 사례로 들었지만, 일체 모든 법(法, 사안, 사태, 현상)마다 거기에는 하염없는 보배가 갈무리되어 있다. 「이세간품」에서는 그것을 ①에서 ⑩에 이르는 열 가지로 묶었을 뿐이다. 그러니 그런 줄을 알라는 뜻으로 반복해서 “알며[知]”라는 용어를 되풀이하고 있다. 보살도를 실천하는 사람들이라면, 일체 모든 법에 상즉해서 관찰해야[卽法而觀] 한다. 그렇게 하면 “모든 부처님의 위 없는 지혜의 법 갈무리를 얻어 일체중생을 잘 조복합니다” 라고, 보현보살이 보혜보살에게 대답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십회향품 제25」에서 말하는 “⑸다함이 없는 공덕장 회향”의 ‘실천’이라신다. 이렇게, 저기 「십회향품」에서는 ‘이론’을, 여기 「이세간품」에서는 ‘실천’을 말씀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