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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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행증으로 읽는 화엄경 (30) 체험의 길(6/6) 등각 법문을 배우는 선재동자③

신규탁(연세대 철학과 교수)



1.
「입법계품」 중에서 선재동자가 미륵보살과 만나는 장면은 분량이 많다. 80권으로 된 󰡔화엄경󰡕 중에서 제77권의 약 1/3 이후부터 78권을 지나 79권에서 끝난다. 그만큼 미륵보살의 가르침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전체는 모두 다섯 문단으로 나눌 수 있으니, ①첫째는 덕생 동자와 유덕 동녀의 가르침에 따라 새 스승에게로 나아가 가르침을 구하는 부분, ②둘째는 미륵보살을 만나 뵙고 우러러 공경하고 가르침을 부탁하는 부분, ③셋째는 미륵보살을 공경하고 찬탄하고 이어서 가르침을 받는 부분, ④넷째는 미륵을 작별하며 문수보살을 만나 가르침을 받으라고 추천받는 부분, ⑤다섯째는 선재 동자가 미륵보살의 가르침과 이별을 아쉬워하며 하직하는 부분이다.
이 중 핵심은 ③셋째 문단인데, 이 부분도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칭찬하는[稱讚] 부분이고 둘째는 ‘법계를 가르쳐주는[授法]’ 부분이다. 이 중에서 두 번째 문단, 즉 ‘법계를 가르쳐주는[授法]’ 부분은 화엄이 추구하는 법계法界가 거듭 드러나는 대목이다. 화엄 경학에서는 이 대목에 특별히 주목한다. 이하에서는 ③셋째 문단 중에서 ‘법계를 가르쳐주는[授法]’ 부분을 요점만 소개하기로 한다.


2.
문단을 나누어서 독서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모두 네 문단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법의 본바탕[法體]’을 알려주는 대목이고, 둘째는 법의 이름을 드러내는 부분이고, 셋째는 누각이 멋지게 생긴 원인을 밝히는 부분이고, 넷째는 미륵의 정체를 본성과 작용의 측면에서 따져 묻는 부분이다. 순서대로 요점을 소개하기로 한다.


[1]첫째는 법의 본바탕[法體]를 알려주는 부분이다. 미륵보살이 멋진 누각 앞에 가서 손가락을 튕겨 소리를 내자 문이 열렸다. ‘비로자나 장엄 누각’ 안으로 들어간 선재동자는 멋진 각종 건축과 장식을 구경한다. 이어서 미륵보살도 본다. 다시 이어서 미륵보살을 따르는 수많은 보살도 본다. 또 여러 부처님도 본다. 이렇게 구경을 다 시켜주더니 미륵보살은 신통력을 거두고 누각으로 들어가 손가락을 다시 튕기면서 선재에 말한다.


“착한 남자여, (삼매에서) 일어나라. 법의 성품이 이러한 것이니, 이는 보살의 보는 법을 아는 지혜의 인연이 모여서 나타나는 현상이니, 이러한 성품이 눈어리 같고, 꿈 같고 그림자 같고, 영상 같아서, 모두 성취하지 못하느니라.”


여기에 나오는 비유는 󰡔화엄경󰡕에서 5차례 정도 나오는 유명한 비유이다. 한문을 함께 인용하니 독자들도 기억해두시기 바란다.


“善男子, 起. 法性如是, 此是菩薩, 知諸法智, 因緣聚集, 所現之相. 如是自性,如幻, 如夢, 如影, 如像, 悉不成就.”


법의 자성이란 이렇게 무상하고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그저 인연의 모임과 흩어짐일 뿐이란다.


[2]둘째는 법의 이름을 드러내는 부분이다. 그 이름은 좀 길다. 운허 스님의 번역으로 소개하면, “세 세상의 모든 경계에 들어가서 잊지 않고 기억하는 지혜로 장엄한 갈무리”이다. 한문으로는 “입삼세일체경계불망염지장엄장入三世一切境界不忘念智莊嚴藏”이다.


[3]셋째는 장엄 누각이 생긴 원인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부분이다. 미륵보살의 손가락 튕기는 소리에 삼매에서 깨어나자 멋진 누각은 사라졌다. 그 멋진 누각이 싹 사라졌다. 이에 선재동자는 미륵보살에게 묻는다.


“이 장엄하였던 누각이 어디로 갔나이까?”
미륵보살이 대답했다.
“왔던 데로 갔느니라.”
선재가 말하였다.
“어디서 왔나이까?”
미륵이 대답했다.
“보살의 지혜의 신통한 힘으로부터 와서, 보살의 지혜의 신통한 힘을 의지하여 머무른 것이며, 간 곳도 없고 머무른 곳도 없고 모인 것도 아니고 항상 찬 것도 아니어서 모든 것을 멀리 여의었느니라.”


이렇게 문답을 마치고는, 미륵보살은 용왕이 비를 내리는 비유, 마술사의 비유를 들어서 이런 이치를 설명해준다.


3.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선재동자는 긴 여정을 거쳐 이제 52번째로 미륵보살을 만났다. 그의 손가락 장난(?)에 멋진 궁전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광경도 보았다. 기가 막힐 일이다. 아무리 수행을 다짐한 선재동자라 해도 화(?)가 날만하다. 적어도 필자의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그래서 물음표(?)를 필자 나름 붙여보았다. 이제 들이받을(?) 순간이 온 듯하다.


[4]넷째는 미륵보살의 정체를 따져 묻는 부분이다.


선재동자가 말했다.
“성인께서는 어디에서 오셨습니까?”
미륵보살이 대답했다.
“보살은 오는 일도 없고 가는 일도 없이 그렇게 오느니라.”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하더니 다시 이어진다.


“착한 선남자여, 보살은 크게 가엾이 여기는 곳에서 오나니, 중생들을 조복하려는 연고며, 크게 인자한 곳에서 오나니, 중생들을 구호하려는 연고며, 깨끗한 곳에서 오나니, 좋아함을 따라서 태어나는 연고며, 크게 서원한 곳에서 오나니, 옛날의 서원한 힘으로 유지하는 연고니라. 신통한 곳에서 오나니, 모든 곳에 좋아하는 대로 나타나는 연고며, 동요함이 없는 데서 오나니, 모든 부처님을 항상 떠나지 않는 연고며, 가지고 버림이 없는 데서 오나니, 몸과 마음을 시켜서 가고 오지 않는 연고며, 지혜와 방편인 데서 오나니, 모든 중생을 따라 주는 연고며, 변화를 나타내는 데서 오나니, 영상처럼 화하여 나타나는 연고니라.”


위의 인용문을 읽으면 대승의 보살 정신은 알겠는데, 황당하다. 무슨 동문서답도 아니고, 어린 선재에게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또 선수들(?)끼리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건 한마디로 치사하다 못해 구차하다.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 󰡔화엄경󰡕의 구성작가는 다음의 이야기를 삽입한다.


“그러나 선남자여, 그대가 내게 묻기를 어디서 왔느냐 하였으니, 선남자여, 나는 태어난 곳인 마라제국摩羅提國으로부터 여기 왔노라. 선남자여, 그곳에 방사房舍라는 마을이 있고, 거기 장자가 있으니 이름이 구파라瞿波羅니라. 그 사람을 교화하여 불법에 들어오게 하느라고 거기 있었으며, 또 태어난 곳[生處]에 있는 사람들로서 교화를 받을 이들에게 법을 말하고 또 부모와 권속들과 바라문들에게 대승을 연설하여 들어가게 하느라고 저기 있다가 여기 왔느니라.”


이제야 좀 현장감이 든다.


4.
그런데 이런 현장감도 잠시이고, 이어서 대승불교에서 강조하는 <보살이란 무엇인가?>라는 특별 강연회가 개최된 듯한 긴 법문이 이어진다. 운허 스님의 <한글대장경>을 인용한다. 어느 한 구절 뺄 수 없고 또 어쭙잖게 필자가 요약할 수도 없어 길게 인용한다.


선재동자가 말하였다.
“거룩하신 이여, 어떤 것이 보살의 태어난 곳[菩薩生處]이오니까?”
미륵보살이 대답하였다.
“선남자여, 보살은 열 가지 태어나는 곳이 있느니라. 무엇이 열이냐. 선남자여, ①보리심이 보살의 나는 곳이니, 보살의 집에 나는 연고며, ②깊은 마음이 보살의 나는 곳이니, 선지식의 집에 나는 연고며, ③모든 지[諸地]가 보살의 나는 곳이니, 바라밀의 집에 나는 연고며, ④큰 원이 보살의 나는 곳이니, 묘한 행의 집에 나는 연고며, ⑤크게 가엾이 여김이 보살의 나는 곳이니, 네 가지 거두어 주는[四攝] 집에 나는 연고며, ⑥이치대로 관찰함이 보살의 나는 곳이니, 반야바라밀의 집에 나는 연고며, ⑦대승이 보살의 나는 곳이니, 방편인 교묘한 집에 나는 연고며, ⑧중생을 교화함이 보살의 나는 곳이니, 부처님 가문에 나는 연고며, ⑨지혜와 방편이 보살의 나는 곳이니, 죽살이 없는 법 지혜[法忍]의 집에 나는 연고며, ⑩모든 법을 수행함이 보살의 나는 곳이니,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여래의 가문에 나는 연고니라.”


세속의 가족 관계를 비유로 보살의 가족을 소개하는 법문이 이어진다.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로 어머니를 삼고, 교묘한 방편으로 아버지를 삼고, 단바라밀은 유모가 되고, 지계바라밀은 양모가 되고, 참는 바라밀은 장엄거리가 되고, 정진바라밀은 양육하는 이가 되고, 선정바라밀은 빨래하는 사람이 되고, 선지식은 가르치는 스승이 되고, 여러 보리분은 동무가 되고, 모든 선법은 권속이 되고, 모든 보살은 형제가 되고, 보리심은 집이요, 이치대로 수행함은 집안 규모[家法]요, 모든 지地는 집이 있는 곳이요, 모든 지혜는 가족이요, 큰 서원은 집안 교법이요, 모든 행을 만족함은 집안 규모를 순종함이요, 대승심을 내도록 권함은 가업家業을 이음이요, 법물을 정수리에 부어 일생보처가 되는 보살은 왕의 태자요, 보리를 성취함은 가족을 깨끗이 함이니라.”


세속에 살면서 중생과 동행하는 보살의 행동 강령도 비유로 일러주고 있다.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이렇게 훌륭한 집에 태어나서는, 모든 법이 영상과 같음을 알므로 세간에 싫어함이 없고, 모든 법이 변화함과 같음을 알므로 모든 존재의 길[有趣]에 물들지 않고, 모든 법이 나[我]가 없음을 알므로 중생을 교화하는 마음에 고달프지 않고, 대자비로 자체를 삼는 연고로 중생을 거두어 주는 데 괴로움을 느끼지 않으며, 나고 죽음이 꿈과 같음을 아는 연고로 모든 겁을 지내어도 두려움이 없으며, 모든 쌓임[薀]이 눈어리 같음을 아는 연고로 일부러 태어나도 고달프지 않으며, 계界와 처處가 법계와 같음을 아는 연고로 모든 경계에 망그러질 것이 없으며, 모든 생각이 아지랑이 같음을 아는 연고로 모든 길[諸趣]에 들어가도 의혹하지 않으며, 모든 법이 눈어리 같음을 아는 연고로 마의 경계에 들어가도 물드는 생각을 내지 않으며, 법의 몸을 아는 연고로 모든 번뇌에 속지 않으며, 자유자재함을 얻은 연고로 모든 길에 통달하여 걸림이 없느니라.
선남자여, 나의 몸은 모든 법계에 두루 나므로 모든 중생의 차별한 형상과 같고, 모든 중생의 갖가지 음성과 같고, 모든 중생의 갖가지 명호와 같고, 모든 중생의 좋아하는 거동과 같아서 세간을 따라 교화․조복하고, 모든 청정한 중생의 일부러 태어남과 같고, 모든 범부 중생의 짓는 사업과 같고, 모든 중생의 생각과 같고, 모든 보살의 서원과 같아서, 몸을 나타내어 법계에 가득하니라.”


이렇게 세속에 몸을 드러내어 살아가는 보살의 길을 일러주고는, 미륵 자신은 다음 생에는 도솔천으로 왕생할 것이라는 소식도 전해준다.
“선남자여, 나는 중생들의 마음을 따라 주기 위하여, 나는 도솔천에서 함께 수행하던 하늘을 성숙케 하기 위하여, 나는 보살의 복과 지혜와 변화와 장엄이 모든 욕심 세계보다 뛰어남을 보이기 위하여, 그들로 하여금 모든 욕락을 버리게 하려고, 함이 있는[有爲] 법이 무상함을 알게 하려고, 모든 천인들도 성하면 반드시 쇠함을 알게 하려고, 장차 내려올 적에 큰 지혜의 법문을 일생보처 보살과 함께 토론하려고, 같이 수행하는 이[同行]를 거두어 교화하려고, 석가여래께서 보내시는 이를 교화하여 연꽃처럼 깨닫게 하려고, 여기서 목숨을 마치고는 도솔천에 태어나느니라.”


이렇게 법문을 마치고 미륵보살은 깊고도 긴 여운의 이별 법문을 던진다.


“선남자여, 내 서원이 만족하고 온갖 지혜[一切智]를 이루어 보리를 얻을 때는 그대가 문수보살과 함께 나를 보게 되리라.”


법문을 듣고 있는 지금의 선재동자, 그 법문을 하는 미륵보살, 선재를 긴 구법 여행으로 인도한 문수보살. 이렇게 3명의 수행자를 함께 묶는다. 생각해 보면, 문수는 과거의 부처이고, 선재는 미래의 부처이고, 미륵은 현재의 부처인 셈이다. 이쯤 되면 누가 문수이고, 누가 미륵이고, 누가 선재인지 구별이 없다. 하나가 셋이고 셋이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