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운
텃밭농부
 
절기節氣는 농사에 매우 유용한 지혜이다. 기온의 변화와 태양의 움직임을 바탕으로 1년을 24개로 배치했다. 때에 맞춰 농사의 일을 알려주는 농사달력이라고 할 수 있다. 절기는 중국에서 만들어졌는데, 우리나라에 도입되면서 명칭과 의미를 약간 달리하면서 토착화하였다. 절기가 만들어질 당시는 농경사회였으므로 생활력이라고도 할 수 있다. 6월에도 두 개의 절기가 있는데, 망종과 하지이다.
망종芒種은 6월 6, 7일 중에 있으며, 올해는 6일이다. 이 절기명의 한자를 풀어보면 망종의 의미를 알 수 있다. 망은 바늘처럼 생긴 까끄라기를 말하는데, 벼와 보리, 밀 등의 알곡에 까끄라기가 있다. 망종에 즈음한 시기에 까끄라기가 있는 곡식의 종자를 뿌리고, 보리를 거둬들이면 알맞다는 뜻이다. 요즘은 우리나라의 기후가 더 따뜻해지면서 5월 말에 벼의 모내기를 마친다. 만생종을 조생종으로 품종을 개량한 것도 모내기를 앞당겨진 이유다.
밭농사에서는 봄에 심는 작물의 파종을 이때까지는 마쳐야 한다는 의미로도 활용된다. 망종 이후에 씨를 뿌려도 싹이 트지만, 기온이 급속하게 오르고 곧 장마가 시작되기 때문에 어린 작물이 견뎌내기 힘들다. 수확량도 뚝 떨어진다. 그래서 밭농사에서는 망종 전에 파종을 하려고 서두른다.
농부들은 절기를 참고하되 꼭 따르지는 않는다. 그 지역에 적절한 시기는 거기에 사는 이들이 가장 잘 안다. 한 예로, 특정한 꽃이 피는 시기를 살펴 씨앗을 뿌렸다. 이 방법이 가장 적절하다. 큰 지혜다. 수목은 인간보다 자연의 변화에 훨씬 민감하다. 햇빛과 물과 바람이 조건이 모두 갖춰져야 비로소 꽃을 피워낸다. 농부들은 이를 농사에 적용한 것이다. 자연의 변화에 민감해야 농부라 할 수 있다. 나는 아직도 파종 시기를 인터넷 검색을 해서 정한다. 텃밭농사를 한 지 6년째에 들어섰지만, 나는 아직도 초보에서 맴돌고 있다.   
하지夏至는 낮이 가장 긴 날이다. 서울 기준으로 낮의 길이가 14시간 50분쯤이다. 저녁 8시가 되어도 어둡지 않고, 이른 5시면 훤하다. 식물의 광합성을 돕는 햇빛의 양이 가장 많으니 논밭 작물의 성장이 가장 왕성한 시기이다. 아직 뜨거운 여름에는 이르지 않으니 사람들의 바깥 활동도 활발하다. 노천에서 음식을 먹으며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이 정겹다.
작물만이 아니다. 이때는 나무와 풀의 성장도 활발해 하루가 다르게 자란다. 쑥쑥 큰다는 표현이 과장이 아니다. 잡초의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르는 시기이다. 밭에서의 잡초는 심지 않은 식물을 가리킨다. 드물게 지난해 거둬들이다 떨어뜨린 작물의 씨앗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 들깨와 서리태가 대표적이다. 심지도 않았는데 나오는 것은 그만큼 생명력이 강하다는 얘기다.
잡초 중에 가장 골치를 썩이는 것이 바랭이들이다. 내 밭의 잡초는 냉이, 애기토끼풀, 민들레, 씀바귀, 제비꽃, 독미나리, 깨풀, 쑥, 방동사니, 쇠비름, 강아지풀, 명아주, 망초, 환삼덩굴, 패랭이 등 이름을 아는 것만 열 가지가 넘는다. 패랭이는 중학생 적 생물 시간에 세포를 관찰했던 식물이다. 밭에서 패랭이를 뽑아내며 오래 전 그 시절의 장면이 떠오른다. (농업진흥청에서는 『귀농인을 위한 잡초 방제』란 소책자를 펴내 농사를 돕고 있는데, 이 책자에는 100가지에 가까운 잡초의 생리 특성에 따른 방제 방식을 알려주고 있다. 도움이 된다.)
바랭이는 벼과 식물인데, 어느 정도 자라면 뿌리를 넓게 펼친다. 쉬 뽑아지지 않는다. 뿌리를 뽑아내면 흙도 한 움큼 딸려나오면서 주위의 작물 뿌리를 건드린다. 줄기를 잡고 잡아당기면 밑동은 남긴 채 위만 잘린다. 밑동에선 예전보다 더 많은 가지를 치는데, 이는 이들의 생존 전략이다. 바랭이 중에 눕는 바랭이는 마디마다 뿌리를 내려 온 밭을 터전으로 삼는다. 뽑아서 고랑에 던져놓으면 거기서 다시 뿌리를 내려 영역을 넓혀간다. 그들은 흙냄새만 맡아도 뿌리를 내릴 정도로 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바랭이는 6월이 오기 전에 때 뽑아내야 하는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 작물이 그들에게 치여 광합성을 방해받지 않을 정도로만 다스려도 그나마 다행이다.
작물은 잡초와 햇빛과 양분을 놓고 경쟁을 펼치는데, 승자는 늘 잡초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애초에 작물은 없었다. 잡초가 작물이 된 것인데, 작물의 조상은 잡초이다. 우리 인간의 조상들은 1만2천 년 전 농경을 시작했다. 잡초를 개량해서 작물화했다. 위험하고 수확이 불확실한 사냥과 채집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먹을 것을 찾아 떠돌지 않고 한 곳에 정착할 수 있었다. 몸을 유지하는 영양소를 비교적 안정적으로 얻게 되었다. 생존을 넘어설 수 있게 되었으니 문화를 만들어냈다. 농경의 시작은 인간의 역사에서 우뚝 선 봉우리다.
잡초를 개량하여 작물로 만든다는 것은, 사람들이 먹기 좋고 소화가 잘 되도록 부드럽게, 알곡이 떨어져나가 유실되지 않도록, 더 많은 알곡이 맺히도록, 가공이 쉽도록, 오래도록 저장되도록 또 더위와 추위에도 견디도록 적응시키는 것이었다. 인간의 필요에 의해 야생성을 순치시키는 과정에 다름 아니었다. 그러니 농사란 개량된 잡초의 성질을 계속 유지시키는 과정이다. 부드럽게 하기 위해서는 재배 기간을 단축시켜 억세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거름을 주어 성장을 빠르게 한다. 더 많은 알곡을 얻기 위해 교잡이라는 방법을 알아냈다. 그러니 사람들의 보살핌이 필요하다. 이 보살핌은 야생성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다. 농사는 애초의 야생에 가하는 인위의 행위이다.
하지를 전후해서 장마가 시작된다. 농사에서 가장 어려운 때다. 더위도 힘들거니와 물난리에는 방도가 없다. 감자, 마늘, 배추 등의 작물들을 거둬들여야 한다. 자칫 때를 놓쳤다가는 밭에서 썩을 수 있다. 그동안 들인 정성을 까먹는다. 하지에 이르기 전 배수로를 정비해야 한다. 한 달 동안이나 계속되는 큰 비에 대비하지 않으면, 농사를 망치고 만다. 본격적으로 더위가 닥쳐온다. 몸 관리를 허술히 했다가는 몸도 망치고 농사도 망친다. 부지런하되 잘 쉴 줄도 알아야 한다.
며칠 전 심어져 있는 작물의 가지 수를 헤아려봤다. 고추, 마늘, 감자, 옥수수, 땅콩, 더덕, 잔대, 고사리, 참깨, 들깨, 호밀, 토마토, 가지, 오이, 참외, 수박, 배추, 상추, 시금치, 잎당귀, 돌미나리, 작두콩, 강낭콩, 생강, 고구마, 아피오스(인디언감자), 아스파라거스, 갓, 우엉, 수세미, 땅두릅. 대파, 부추, 밭벼, 담배, 제충국, 고수, 바질, 여주. 39가지다. 하지 지나서는 쥐눈이콩과 무, 배추, 쪽파 등의 김장용 채소를 심을 예정이다. 이 밭을 함께 일구는 전직 소방관의 작물 수까지 합하면 70가지는 족히 될 성싶다.  
수박은 올해 처음 심었는데, 무등산수박이다. 토종 씨앗을 전국 각지에 나눠준 후 다시 씨앗을 돌려받는 방식으로 토종 씨앗을 보존하려는 이가 내게 모종 두 개를 주어 기르게 되었다. 밭벼도 씨앗 증식을 하려고 심었다. 수세미는 불교환경연대에 제공해 천연수세미로 나눔 하려고 심었다. 제충국과 담배는 천연 살충제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 호밀은 녹비용으로 심은 것이다. 그 외의 것들은 우리집에서 먹기 위해서다.
여러 가지를 심는 것은 작물 기르는 법을 알기 위해서다. 손바닥만한 크기의 텃밭농사를 하면서 진짜 농부들만큼 바쁜 이유다. 가끔 가까운 이들이 혼자만 좋은 거 먹지 말고 내놓으라고 요구한다. 벼룩시장을 하는 친구들도 참여를 바란다. 그러나 좁은 터에 여러 작물을 심으니 한 작물의 소출이 적다. 집에서 먹을 만큼이다. 그나마 콩을 몇 차례 나눴다. 나눌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 동안 많은 작물을 키우면서 나름대로 얻은 경험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