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한스님 / 봉담선원장
우리말의 큰 매력 가운데 하나는 익살과 해학이다. 그 익살과 해학 속에는 우리 민족과 조상들의 웃음과 멋과 맛이 있고, 속되고 은밀한 것을 속되지 않고 눈살 찌푸리지 않게 하는 마력이 있다. 그 익살과 해학의 어휘 속엔 자신도 모르게 우리를 한통속이 되게 하는 관계의 친밀함이 있고, 힘들어도 따스한 눈물이 있고, 원초적인 삶의 본능과 생리적 현상이 곡진하게 스며있다.
 나는 그런 익살과 해학의 우리말 가운데 ‘뒷간’이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변소 간다.’ ‘화장실 간다.’ ‘측간 간다.’ 할 때보다도 ‘뒷간 간다.’라고 말하면, 그 ‘뒷일’ 보러 가는 생리적 행위가 순수하게 우리식으로 느껴져 좋다.
 ‘변소’와 ‘화장실’이라는 말에서는 어디선가 ‘양변기 냄새’가 풍기고 ‘측간(廁間)’이라는 말에서는 ‘중국적 위압감’이 느껴져 ‘일 보는’ 일이 가볍고 개운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뒷간에 간다.’고 하면 무언가 은근하고 아기자기하고 고풍스러운 조상미가 느껴진다. 야릇하면서도 솔직하고 친밀한 생리적 모습까지 함께 겹쳐져 정서적 저항감이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
 그 익살과 해학의 매력은 ‘뒷간’이라는 글자 속에 그대로 들어 있다. ‘뒷간’이라는 말을 소리 나는 대로 적으면 ‘뒤깐’ 이 되고, 거기에 조금 더 연상 작용을 보태면 ‘뒤를 까다.’는 뜻이 된다. 즉, ‘뒷간’은 ‘뒤를 까고 일을 보는 곳’이라는 뜻으로 유추할 수도 있다.
 그래서 그럴까?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한국적인 변소로 알려진 전남 순천 선암사 화장실에 가면 화장실 이름이 진짜 ‘뒤’이라고 쓰여 있다. 순 우리말 독법대로 읽으면 ’뒤‘라고 쓰여 있다. 나는 이 말처럼 우리나라 변소 이름이 아름답고 알기 쉽고 적나라하고 친밀하게 써진 곳을 아직 보지 못했다. 맞는 해석인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선암사 화장실의 그 ‘뒤’가 늘 ‘먼저 (옷)을 깐 뒤 일을 보라.’는 뜻으로 읽혀지기 때문이다. 먼저 ‘희고 둥근 뒤를 까지 않고서는 절대로 일을 볼 수 없다’는 우리 민족과 조상들의 익살과 해학의 결집으로 읽혀지기 때문이다. 해석의 옳고 그름을 떠나 이 얼마나 질펀하고 친근하고 재미있는 익살이자 해학인가. 그러고 보면 우리 민족과 조상의 혼은 멋과 맛으로서의 조상의 혼이었다.
 끌고 오다보니 이야기가 옆길로 많이 샜다. 그래도 이렇게 한 번씩 삶의 무거움에서 벗어나 무소득의 헛길로 일탈해보는 것도 유쾌하고 즐거운 삶의 한 멋이리라.
 각설하고, 선암사 ‘뒤’를 빌어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어느 날 도회지의 한 ‘뒷간’에서 ‘뒷일’을 보다가 읽게 된 한 고사성어의 때문이다. 평소에 잘 알고 있는, 그리고 널리 알려져진 고사성어의 배경 이야기지만 ‘뒤를 까고 일을 보는 그 십여 분’ 동안에 곰곰이 되씹어 읽은 그 고사성어의 배경 이야기는 소금물처럼 짜고 쓴 삶의 눈물이 되어 가랑비처럼 땡초의 오목가슴을 적시고 흘러내렸다.
 도회지의 ‘뒤’에서 내가 경계의 뒤를 까고 아무런 경계 없이 만난 고사성어의 배경 이야기는 ‘소중한 날들을 기억하라. 사랑하고 사랑받는다는 것은 태양을 양쪽에서 쪼이는 것과 같다.’ 라는 긴 제목을 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제목 아래 고사성어의 배경 이야기가 ‘뒤’ 문짝에 붙어 욜랑거리고 있었다.
 ‘중국 후한 광무제의 신하 가운데 송홍이란 사람이 있다. 그는 본시 미천한 신분이었으나 탁월한 식견과 장대한 풍채를 두루 갖춘 인물로 점점 광무제의 총애를 받아 대위의 벼슬에까지 이르렀다.
 광무제에게는 누이인 호양공주가 있었는데 그녀는 일찍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지내는 처지였다. 그런데 호양공주가 언젠가부터 이 송홍을 짝사랑하게 되었다. 그래서 광무제에게 송홍과 결혼하게 해달라고 졸라댔다. 하지만 송홍은 이미 아내가 있는 몸이었다. 광무제는 마음이 찜찜했지만 사랑하는 누이동생의 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날을 잡아 호양공주를 병풍 뒤에다 숨겨 두고 송홍을 불러 넌지시 마음을 떠보았다.
 “사람의 신분이 높아지고 부유해지면 아내를 바꾸는 것도 흠이 되지 않는다고 하는데 공의 마음은 어떻소?”
 그러나 송홍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로 무제의 안색을 머쓱하게 만들어버렸다.
 “전하, 옛날부터 가난할 때 사귄 친구를 잊어서는 안 되고, 고생을 함께 한 아내를 버려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제가 이제 벼슬이 올라 부귀를 누린다고 해서 술지개미와 쌀겨를 함께 씹어 먹던 아내를 내칠 수가 있겠습니까?”
 그 도심의 ‘뒤’에서 ‘뒤를 까고’ 일을 보는 동안 나는 일 보는 것도 잊고 그 내용을 새삼 볶은 땅콩처럼 한동안 곱씹었다.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그 이야기는 볶은 땅콩처럼 어금니에 더욱 잘게 부서져 고소하고 맛있는 음식물이 되어 가슴으로 흘러내렸다. 사랑이란, 가난할 때 술지개미와 쌀겨를 함께 씹어 먹던 그 조강지처(糟糠之妻)의 마음으로 서로에게 따스한 햇볕을 나눠주고 사는 것일진대, 절을 찾아오는 사람들 가운데 많은 분들이 그 술지개미와 쌀겨를 잊고 싸늘한 그늘에서 사는 경우를 많이 본다.
 어느 날 나는 그 이야기를 어느 처사에게 해주었다. 그 처사는 자신의 외도로 보살과 파탄 직전에 있는 분이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그 처사는 많은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날 밤 집으로 돌아가서 보살에게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치고 빌었다. 며칠 뒤 그 처사는 보살과 함께 다시 절을 찾아왔다. 그리고 법당에 올라가 보살과 함께 108배를 하고 있었다. 나는 직감적으로 그 처사 부부가 술지개미와 쌀겨의 사랑을 다시 회복했음을 느꼈다. 그들의 사랑이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선 것을 알았다. 이것이야말로 ‘뒤’에서 퍼 올린 진짜 사랑 이야기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