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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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선불교의 간단한 유래

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한국선학회 회장


1. 용어의 유래와 중국전래


선禪이란 용어는 선나禪那에서 유래하며, 선나는 우리말의 명상의 뜻에 해당하는 산스크리트어 ‘dhy.na’, 또는 팔리어 ‘jhy.na’를 소리 나는 대로 표기한 것이다. 이 용어를 구마라습은 정定이라고 번역했고, 당나라의 현장 이후에는 려慮라고 번역하기도 했다.
불교의 수행 방법을 설명하는 여러 범주가 있는데 그 중에서 계戒, 정定, 혜慧 3학學이 널리 쓰이고 있다. 이 중에서 정定에 대응하는 인도의 용어는 삼매(三昧 sam.dhi), 드야나(dhy.na), 사마타(.amatha), 위빠샤나(vipa.n.), 요가(yoga), 심일경성(心一境性 cittaik.grat.) 등이 있다. 이 중에서 가장 넓은 뜻으로 사용되는 것은 삼매지만 중국의 선불교에서는 드야나에서 유래한 선禪이 많이 사용된다.
이상과 같은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되는 명상에 관한 사상은 인도불교의 각종 경전이나 논서 등에 중요한 대목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이것들은 중국어로 번역되기도 하는데, 대표적으로 안세고가 번역한 『안반수의경』, 『선행법상경』, 지루가참이 번역한 『반주삼매경』, 『도행반야경』을 들 수 있는데, 이 중에서 2세기경에 번역된 『안반수의경』이 많이 읽혀졌다. 『안반수의경』은 수식관數息觀을 설명하고 있는 데, 숨이 들고 나는 것을 관찰하여 마음의 산란을 막고 정신을 하나로 통일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5세기 말 보리달마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선불교를 전래하기 이전에는 이런 종류의 수행이 중심을 이루었다. 그러나 중국을 비롯하여 한국 일본 등지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 선사상은 이런 선사상이 아니고, 실질적인 시원은 보리달마에서 시작된다.
달마-혜가-승찬-도신-홍인-혜능으로 이어지는 계보는 부분적으로 왜곡된 부분이 있지만, 육조혜능(638~713) 이후에는 그 계보가 역사적인 사실로 받아들여져서 선의 역사 속에서 의심 없이 받아들여졌다. 6세기 초엽에 활동한 달마의 경우는 대승경전에 소개되는 반야사상과 공사상을 기반으로 한 수행법을 제시한다. 이런 내용은 그의 사상이 담긴 책으로 전해지는 『이입사행론』에 잘 드러나고 있다.


2. 계보의 출현과 동산법문의 발상


그런데 달마의 사상은 7세기 중엽을 거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달마의 사상을 계승한다고 자처하면서 자신들의 실천운동의 근거를 『능가경』에서 확인하려는 수행자 집단이 등장하는데 학자들은 이들을 ‘능가종’이라고 이름 붙인다. 이들은 자신들의 계보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달마-혜가-승찬으로 연결되는 전법 계통을 세우는데, 이런 작업이 어떻게 형성되고 정착되는지는 『전법보기』, 『능가사자기』 등에 나타난다. 자귀 해석에 치우치는 당시의 교학 불교와는 달리 실천을 중시하는 공사상의 구현을 통해 기성 불교계의 향방을 바꾸려는 종교 실천가들의 집단이 형성된 것이다. 이들은 주로 하북성, 하남성 그리고 산동성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한편 이 무렵 호북성을 중심으로 하는 양자강 지역에서도 대승의 실천 운동이 일어났다. 그 핵심 인물은 도신(道信 580~651)과 그의 제자 홍인(弘忍 601~678)이다. 이들은 호북성 황매현에 있는 쌍봉산의 동쪽에서 활동했는데, 훗날 세상에서는 이들의 설법을 동산법문東山法門이라 불렀다. 동산법문의 핵심인물은 홍인이었다. ‘능가종’ 계통의 선사들은 교리적으로 반야의 공사상을 받아들여 무상의 관찰에 매진한 반면, 이들 ‘동산법문’ 계통의 선사들은 사람들 마다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부처와 같은 본성을 자각할 것을 강조한다. 이 변화는 불교 교리사적으로 보면 공사상에서 여래장如來藏 사상으로의 변환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선사상은 대전환이 일어난다. 그 이전까지는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은 인연에 의해서 만들어진 무상한 것임을 체험하는 수행을 해왔다. 그러나 이 단계가 되어서는 자신 속에 간직된 거룩한 완전성의 체험을 기본으로 하는 수행법을 시작했다.
그들은 이것을 주장하기 위하여 『화엄경』의 「십지품」에 나오는 불성 사상을 경전상의 근거로 제시한다. 「십지품」에서는 금강석과 같이 단단한 불성을 사람마다 모두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마치 허공에 태양이 있는 것과 같다고 한다. 구름에 가려서 태양이 가려지는 경우는 있지만 결코 허공 속의 태양이 사라지지는 않는 것에 비유하여, 불성이 비록 사람들의 욕망으로 감추어지기는 하지만 소멸되지 않음을 주장한다. 홍인선사의 이런 사상을 계승한 그의 제자 대통신수(大通神秀 606~706)이나 육조혜능이나 이런 측면에서는 입장을 같이 한다.
하택신회(670~762)는 대통신수를 이단이라 몰아붙이고 반면에 자신의 스승인 혜능만이 달마의 정통을 계승한 정통이라고 추켜세우기는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당시 불교계의 사회-정치적인 역학관계에서 유래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렇게 하택신회는 혜능을 여섯 번째 조사로 만드는 일등공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훗날 혜능의 계보는 남악회양이나 청원행사로 이어졌고, 하택신회는 이단으로 낙인찍었다.
이 과정에서 혜능의 후계자들은 혜능의 제자인 신회의 어록인 『남양화상돈교해탈선문직료성단어南陽和尙頓敎解脫禪門直了性壇語』를 참조하고 혜능의 언행을 모아 『육조단경』이라는 혜능의 어록집을 만들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홍인이나 대통신수나 육조혜능이나 하택신회나 누구를 막론하고 ‘동산법문’을 통해서 확립된 선풍은 청정한 불성을 단박에 자각할 것을 뿌리로 하며, 동시에 욕망에 대하여 무심하게 대처하는 수행방법이다. 이를 두고 선 학자들은 돈오무심頓悟無心이라 부르고 있다. 그리고 이런 전통은 혜능을 높이 받드는 후대의 선종 조사들에 의하여 면면하게 계승되어, 특히 마조(馬祖 709~788)를 거치면서 더욱 확산되어갔고 게다가 여러 선사들의 다양한 개성이 보태지면서 선불교의 황금기를 맞이한다.


3. 조사선의 전개


마조 문하에서 남전보원 선사, 백장회해 선사 대매법상 선사와 같은 걸출한 선객들이 배출되었고, 그들의 문하를 서로 넘나들면서 위산영우 선사, 황벽희운 선사, 조주종심 선사 등의 차세대 선승들이 배출되었고, 이들의 뒤를 이어 앙산혜적 선사, 향엄지한 선사, 임제의현 선사, 설봉의존 선사 등이 배출되었다. 이와 더불어 마조선사와 때를 같이하는 석두 문하에도 약산유엄 선사, 단하천연 선사, 덕산선감 선사, 동산양개 선사와 같은 선승들이 배출되어 서로의 스승을 넘나들면서 선학의 황금기를 만들었다. 이들이 펼쳤던 선사상을 훗날의 사가들은 ‘조사선祖師禪’이라 이름 붙였다.
이들은 저마다의 색깔은 조금씩 달랐지만, 그 근저에 깔려 있는 이념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불성佛性의 자각이고, 둘째는 당사자의 주체적인 체험이다. 이 두 가지 이념을 바탕으로 마조선사는 각자의 마음이 부처이며 이 마음이 부처임을 믿으라고 힘주어 말했고, 임제 선사는 자신 속에서 불성을 체험할 것을 강조하고, 조주 선사는 일상적인 삶 속에서 자신의 불성을 체험하라고 역설했다. 이들 선사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수행이란 자신의 발견인 것이지 특별한 게 아니다.
한편 이들은 자신의 발견 못지않게, 자신만의 체험을 언어로 잘 드러내는 것에도 섬세한 노력을 하였다. 이런 그들의 정신은 당시 시 문학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으니 그 결정체의 하나로 『벽암록』을 꼽을 수 있다. 자신의 체험과 그 체험을 언어로 드러내려는 정신은 마침내 당시唐詩를 비평하는 평론의 기준으로 활용되었고, 송대의 엄우嚴羽가 지은 『창랑시화滄浪詩話』에도 반영되기도 했다. 책에 보면 “대저 선을 하는 바른 길은 오직 오묘한 깨침에 있고, 시를 짓는 바른 길도 역시 오묘한 깨달음에 있다. 생각건대 깨달음이란 당사자가 해야 하는 것이고 꾸밈없이 해야 한다.” 『벽암록』 제46칙에도 등장하는 경청도부(864~937) 선사가 말한 “번뇌에서 벗어나기는 그래도 쉽지만 그것을 그대로 말하기란 더욱 어렵다”고 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이념들이 바탕이 되어 깨달음이 무엇인가를 물어오는 제자에 대해 스승들은 해답을 찾아주기보다는, 그것은 수행자 당사자의 몫임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일깨워준다. 때로는 몽둥이질을 때로는 버럭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심지어는 깨달음에 목말라하는 제자가 스승을 구석에 몰고 멱살을 흔들면서 해답을 물어도 그냥 당하기만 한다. 왜냐하면 깨달음은 각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향엄지한 선사도 이렇게 스승을 윽박지르고 스승을 떠나 유랑한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스승의 그 의도를 깨친 유명한 일화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