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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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을 실천하는 불자

정우頂宇 스님
본지 발행인 | 구룡사 회주


어제처럼 오늘도, 오늘처럼 내일도 시간은 그렇게 가고 있는데, 음력 5월 초하루 날이면 가회동에 있던 구룡사 주지 소임을 맡은 지 36년이 되었습니다.
엊그제 30대 청년이었는데 어느덧 70대 노인이 되어 살고 있습니다.
68년도 통도사에 출가 이후 어디에 살고 있던 통도사를 떠나본 적 없습니다.
구룡사에서 살아온 36년, 여러 곳에서 소임을 보았지만, 한 번도 구룡사를 떠난 적 없다는 생각은 여전합니다. 전생의 인연으로 불교에 귀의하여 출가한 그 인연은 지금도 불자들과 함께 더불어 지내는 그 마음도 변함없습니다.
36년의 세월 속에 매년 오월 초하루 날이면 가회동 언덕배기의 구룡사에 소임을 맡은 날이 엊그제 일처럼 떠오름 역시 같은 마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몇 명도 되지 않던 불자들이 담 너머로 걸어오고 있는 청년 스님인 주지의 모습을 보면서 반가워 해주던 그날의 일들은 엊그제 일처럼 눈에 선합니다.


불교는 인간을 가장 이상적인 존재라고 합니다. 지옥도地獄道 아귀도餓鬼道 축생도畜生道 아수라도阿修羅道 인간도人間道 천상도天上道의 육도 중에 인간 세상보다 더 좋다는 천상에 태어나는 일조차, 인간으로 태어나는 일이 불교를 수행하고 공부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세상에서 인간 세상을 가장 이상적인 존재라고 하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면 출가자로 살아온 시간이 어언 50년이 넘었습니다.
출가자로 성장해오면서 구룡사의 생활이 가장 값지고 소중하게 여겨지는 것은 여러 불자들과 함께한 어울림이 가득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 마음입니다.
우리는 다른 생명들을 돕기 위해서 소중한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고귀한 존재입니다. 누구나 다 행복을 원하고 고통과 괴로움을 싫어합니다. 그것은 인지상정입니다. 이 마음을 중생의 번뇌라고 합니다. 그 욕심은 끝이 없고, 우리의 윤회는 반복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휴대폰에 박완서 작가의 ‘일상의 기적’이라는 글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안구 하나 구입하려면 1억이라고 하니 두 눈을 고치려면 2억이 들고, 신장을 이식하는데 3천만 원, 심장 이식에 5억 원, 간 이식하는데 7천 만 원, 팔다리가 없어 의수와 의족을 끼워 넣으려면 더 많은 돈이 든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두 눈을 뜨고 두 다리로 건강하게 걸어 다니는 사람은 몸에 최소한 51억 원 가치의 재산을 지니며 살고 있는 것과 같다 하였습니다.
도로 한 가운데를 질주하는 어떤 고급 자동차보다도 더 비싼 두 발을 지니고 세상을 걸으며 활보하고 산다는 기쁨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갑작스런 사고로 앰블런스에 실려 갈 때 산소호흡기를 쓰게 되면 한 시간에 36만 원을 지불해야 한다고 하니, 건강한 감각 기관을 지니고 걸어 다니면서 산소를 마시고 있다면 그는 하루에 860만 원씩 버는 셈입니다.
우리는 최소한 51억 원짜리 몸에 하루에 860만 원의 산소를 자연에서 호흡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요?”라는 글이었습니다.
숨 쉴 때마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늘 감사하는 마음과 복된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할 것이라는 내용이 아닌가 싶습니다.


『능엄경楞嚴經』에 ‘맑고 깨끗한 마음이 어둡고 침침한 허공과 만나서 부딪히고 요동치고 흔들리다가 바람기운 생기고 마찰력에 불기운 생기고 녹은 것은 물 기운이 되고 굳은 것은 흙의 기운이 되었다.’ 하였습니다.
또 『화엄경華嚴經』에는 ‘흙은 물의 기운이 함께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고 물은 불기운이 함께 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으며 불은 바람 기운이 함께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고 바람은 흙의 기운이 함께 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다.’ 하였습니다.
흙은 물이 함께 하지 않으면 분진입니다. 물은 불이 함께 하지 않으면 얼음덩어리입니다. 불은 공기와 함께 하지 않으면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또 바람은 흙 기운이 함께 하지 않으면 건강한 바람을 일으키지 못합니다.
우리의 육체도 지수화풍地水火風의 조화를 이루어져야 건강을 유지합니다.
불기운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여기저기 몸이 아프기 마련입니다.
늙는다는 것은 물 기운의 부조화 현상입니다. 누우면 편하다는 나이가 되어보니 이는 늙었다는 것이니 부조화 현상에 노출되었다는 생각을 가지게 합니다.
궁극적으로 최상의 행복은 참 진리를 깨닫는 것입니다. 사회적인 표현으로 말하면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고苦의 씨앗은 번뇌煩惱와 망상妄想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번뇌와 망상을 멈추어야 고의 씨앗을 없앨 수 있는데, 번뇌와 망상을 멈추게 하는 것은 수행정진修行精進하는 도道입니다. 사람이 가는 곳은 인도人道, 자동차가 다니는 길은 차도車道인 것처럼 불자佛子가 가는 길은 불도佛道이어야 합니다.
도를 닦아서 그 고를 보아야 생각이 멈춰집니다. 의지함 없는 지혜로 한결같은 불퇴전不退轉의 길을 걷게 하는 것이 바로 수행과 정진입니다.
중국中國 명明나라의 주굉 스님은 『죽창수필竹窓隨筆』에서 ‘좋은 도량에서 훌륭한 스승을 모시고 좋은 도반인 벗들과 함께 공부할 수 있으면 금생今生에 공부를 마칠 수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현묘한 옥이라도 그 옥을 다듬어 구슬로 만들었을 때 그 옥의 가치가 있는 것처럼, 형상이 사람이라도 다 사람의 모습은 아닙니다. 사람다운 모습, 인간다운 모습을 잊지 않을 때, 그를 일러 사람다운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옥불탁玉不琢이면 불성기不成器요, 인불학人不學이면 부지도不知道입니다.
 
어리석은 이에게 들려줘서는 안 될 말이 있다 하였습니다. 그는 말에 집착해서 자기 생각대로 생각하고 되는대로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좋은 벗을 가까이 하는 이익을 알지 못하면 도리어 그 말이 독毒이 될 것입니다. 벗을 얻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훌륭한 벗, 좋은 도반을 얻음은 어려운 일이라고 했습니다. 이익만을 구하는 이는 좋은 벗이 될 수 없습니다. 선행을 서로 권하는 이가 좋은 벗입니다. 그러니 올바른 수행의 길로 인도하고 최상승의 법을 보여주며 나의 등불이 되고 나의 눈이 되며 나의 길잡이가 참된 선지식善知識 도반道伴이요 좋은 벗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물질적인 몸에 깃든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실상이나 인생의 여덟 가지 고통과 괴로움 속에 나타나는 허망함을 깨달아야만 어떤 재앙이나 괴로움이 닥치더라도 거기에서 일어나는 고통을 벗어날 수 있는 참 자유를 얻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 방법으로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을 제시하셨습니다.
항상 된 나, 즐거운 나, 참된 나, 깨끗한 나, 상락아정常樂我淨에 들기 위해서는 깨달음을 이루지 않고서는 증득할 수 없다는 가르침입니다.
항상 한 나는 법신法身입니다. 무상한 나는 육신肉身입니다. 즐거운 나는 열반涅槃입니다. 괴로운 나는 번뇌煩惱입니다. 참 나는 부처인데 자아는 아트만입니다. 상일성常一性과 주재성主宰性이 없는 것이어서 한결같지 못합니다.
부정한 것은 현상이고 깨끗한 것은 법입니다. 그러나 현상이라고 하는 것이 따로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우리들의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느끼고 있는 인생팔고人生八苦가 포함되어 있는 다양한 생활 속에 드러나는 현상입니다.
그러니 현상이 따로 구분지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계정혜 삼학으로 탐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두운 방에 여러 가지 물건이 있다고 해도 등불이 있으면 그 물건을 모두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기도祈禱를 하거나 참선參禪을 하거나 간경看經을 하거나 주력呪力을 하거나 정진精進을 할 때 설혹 잡스러운 번뇌의 생각이 떠오른다 해도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참선하고 간경하고 주력하는 정진을 하게 되면, 저절로 지혜광명智慧光明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어두운 공간에 등불이 없으면 눈이 있어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물건이 있어도 밝은 빛과 눈(안목)이 있으면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지혜가 있다고 해서 가르침을 듣지 않으면 이런 사람은 능히 선善과 악惡의 뜻을 변별하지 못합니다. 자기 좋은 대로 생각하며 살게 될 뿐입니다.
말법시대末法時代가 되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기 어렵고 만나기 어렵다고 합니다. 우리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이렇게 보고 듣고 실천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복福된 인생입니까. 항상 그러한 생각을 저버리지 말고 계정혜 삼학을 실천하는 불자가 되시기를 염원합니다.


1985년 음력 5월 초하룻날 가회동 구룡사에서 주지 소임을 맡은 지 36년이 지난 지금도 불자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늘 고마운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스스로가 주체가 되고 주인이 되어 항상 부처님 도랑의 중심으로 살아가는 불자들에게 모든 법열의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