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범
숲해설가
여름이다. 사람들은 뜨거운 태양을 피해 그늘이 그리울 것이다. 적은 바람이라도 간절할 것이다.
나무에게 여름은 자신의 몸집을 크게 키울 기회이다. 봄에 꽃을 피우고 자손을 번식할 생식성장을 했다면 여름을 통해 자신의 잎들을 크게 키우고 가지와 줄기도 한껏 키우는 영양생장을 할 기회를 갖는다.
덕분에 인간은 더운 여름, 나무가 제공하는 시원한 그늘 아래에서 노동으로 지친 몸을 쉬었고 긴 여정의 다리쉼을 하였다. 이러한 나무는 마을 중심의 정자나무 뿐만아니라 사람들과 차가 자주 오가는 신작로의 가로수로 선택되어 오늘까지도 사랑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 가로수의 시초는 느티나무, 소나무, 은행나무인데 보통 이정표의 기능을 위해서 마을 입구에 심어졌다. 지방에 따라 그 지방을 상징하는 대표 수종을 선정하기도 하지만 최근 가로수를 선정할 때의 가장 고려해야할 요소는 환경정화능력이다.
감태나무, 메타세쿼이어, 물푸레나무, 찰피나무, 자작나무, 칠엽수가 그러한 나무들이다.
전라남도 담양군이나 전라북도 진안군에 가로수 명품 길이 있는데 이곳에 심어진 나무는 메타세쿼이어다.
메타세쿼이어는 어린잎이 깃털처럼 부드럽고 수형도 아름답기 때문에 멋진 가로수로 제격이다. 이 나무는 잎 모양이 낙우송과 비슷하여 간혹 혼동하는 경우도 있는데 낙우송 잎은 어긋나는 방식이지만 메타세쿼이어는 잎이 마주나기로 다르다.
메타세쿼이어는 학교나 관공서 풍치수로 어울리고 국도와 지방도의 가로수로도 손색이 없는 나무이다.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보급된 것은 1950년대 이후지만 지금은 전국 각지에 가로수길이 생겨 이 나무의 생장 속도만큼 빠르게 전파되었다.
햇빛을 좋아하기 때문에 양지바른 곳에 심어야 한다. 반그늘에서는 성장이 더디거나 불량하다. 어린 묘목은 벌레가 생기지 않고 한번 심으면 별 탈 없이 잘 자라 관리에 용이하지만 35m까지 높이 생장하므로 도심지의 가로수 보다는 지방의 도로에서 마음껏 자라게 심으면 더 좋다. 추위에도 비교적 강하고 강풍에도 넘어지는 일이 없어 방풍림으로도 적당하다.
서울에서도 양재천변에 가면 멋진 메타세쿼이어 길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
플라타너스는 우리나라 말로 ‘버즘나무’라 불리고 열매가 방울처럼 생겼다 하여 ‘방울나무’로도 불린다.
유럽과 서아시아가 원산지인 플라타너스는 가로수 수종이 개발되지 않았던 시절에 우리나라 가로수로 권장되었던 나무이다. 당시 미국에서 수입한 양버즘나무를 도로가에 많이 심었다.
플라타너스는 햇빛은 물론 반그늘에서도 생장이 양호하다. 추위에도 강해서 우리나라 곳곳에서 자라며 수분이 많은 비옥토를 좋아하지만 건조한 땅에서도 잘 적응한다,
플라타너스가 가로수로 사랑받은 이유는 공해에 강하고 공기정화능력이 탁월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생장속도가 빠르고 뿌리를 내리는 힘도 강해 손쉽게 재배할 수 있어 널리 보급되었다. 최근에는 플라타너스가 병충해가 많은 나무로 밝혀져 가로수로 점차 사라지는 추세이다.
한여름 뙤약볕 아래 등하교 길, 플라타너스의 넓은 잎으로 해를 가리며 깔깔 거렸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서울 종로 대학로하면 마로니에가 생각난다.
마로니에, 즉 칠엽수가 무성했던 종로 거리.
칠엽수는 잎이 손가락처럼 5~7개로 나뉘어져 붙여진 이름으로 일본에서 들여온 나무이다.
주로 정원수나 가로수로 심으며, 꽃의 향기로 벌들을 불러 모은다. 칠엽수의 어린 묘목은 체구에 비해 잎이 커다랗기 때문에 약간 기형적으로 보이지만 잘자라면 30m 높이까지 자라는 거목이다, 그래서 큰 길의 가로수 뿐만아니라 큰 빌딩이나 공원의 관상수로도 좋다.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칠엽수 대부분은 일본에서 건너 왔는데 마로니에 나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유럽의 여러 나라들, 특히 프랑스 파리의 가로수로 쓰인다는 서양칠엽수 마로니에는 우리나라 칠엽수와는 학명도 다른 나무이기에 혼동하지 않길 바란다.
감태나무는 높이가 5m 안팎으로 자라는 작은 키 나무지만 작은 도시의 가로수로 손색이 없는 나무이다.
잎은 광택이 나고 향기도 좋아 정원수로도 잘 어울린다.
감태나무는 그늘보다는 햇빛에서 잘 자라는 양수로 추위에 약해 주로 중부이남지방에서 잘 자란다. 공해와 소금기에도 강해 도시는 물론 해안가에도 좋다.
토양은 가리지 않는 편으로 기름지지 않은 토양에서도 잘 생육한다,
키 높이가 낮기 때문에 가정에서 묘목으로 키울 수 있고 종자 번식은 가을에 수확한 종자를 모래와 섞어 땅 속에 저장한 뒤 이듬해 봄에 파종한다.
물풀레나무는 가지를 물에 담그면 물 색깔이 파랗게 변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목재 생산과 약용을 목적으로 물푸레나무를 심었고 목재는 재질이 좋아 운동기구나 농기구, 악기의 재료로 활용되었다.
물푸레나무는 햇빛과 비옥한 토양을 좋아하고 추위에 강하다. 습기도 좋아해 하천가에서도 잘 성장한다.
경기도 파주군 적성면에 가면 수령 150여년에 높이가 15m인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되고 있는 물푸레나무를 볼 수 있다.
자작나무는 잎이 넓적하고 회색의 나무껍질이 잘 벗겨져 쉽게 알아볼 수 있는 나무이다. 잘 벗겨지는 껍질 때문에 상처투성이 나무로도 불리지만 목재는 품질이 좋아 건축, 조각, 펄프, 가구용으로 사용된다.
자작나무는 추위에 강한 나무로 우리나라에서는 중부이북지방의 잘 자라는 나무이다. 강원도에서는 조림수로 권장되어 자작나무 숲이 많다.
자작나무는 가로수로도 좋은 수종이며 특히 호숫가나 강변에도 잘 어울려 수경조경에도 권장할만한 나무이다.
세계적으로 권장하는 가로수 수종들은 대부분 공해에 강하거나 건조함에 강한 나무들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자동 물 공급 시설로 인한 재배 기술 발달로 조경수로 가치가 있는 나무들로 가로수의 영역이 점차 넓혀지고 있다.
산벚나무, 이팝나무, 산사나무, 팽나무, 배롱나무 등을 거리에서 쉽게 보게 된 이유다.
이제 여름, 거리의 가로수는 그 잎이 무성할 것이다.
평소 무심했던 가로수.
걸어가면서도 좋고 차로 이동하면서도 좋고 그 당당하고 의연함에 애정 어린 눈길을 보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