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운
텃밭농부
햇볕은 뜨겁고 공기는 축축하다. 텃밭농사에서 가장 힘든 시기이다. 덥다. 긴 장마까지 닥쳤으니 이 7월을 어떻게 넘겨야하나. 이 고비를 견뎌내지 못해 텃밭농사를 중간에 작파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더위는 몸을 힘들게 한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르고, 후덥한 공기를 들이마시느라 호흡이 가빠진다. 이런 때에 밭일은 고역이다. 그래서 비교적 선선한 이른 아침과 햇볕이 누그러지는 늦은 오후에야 움직인다.
장마는 병해를 불러온다. 밭에 상존해있는 유해한 바이러스가 습한 기운을 타고 작물에 달라붙어 탈을 낸다. 더위와 비에 지친 터인데 방제에도 나서야 한다고 생각하니 맥이 탁 풀린다. 방제를 하지 않으면 수확량이 현저히 떨어진다. 이 시기에 자칫 게으름을 피워 제때에 방제하지 않으면 반타작할 수밖에 없다. 아예 죽어나가는 작물도 있다. 
고향 떠나온 고추도 힘들다
고추는 매우 예민한 작물이다. 키우기 어려운 작물 가운데 하나다. 장마철이 고비다. 고추의 원산지는 멕시코 또는 칠레의 안데스산맥 북부 고지대이다. 고추는 이곳의 고온건조한 기후 조건에 맞추어 진화했다. 고추가 한창 자라는 시기의 한가운데에 있는 7월의 우리나라는 장마철이다. 고온다습하다. 우리나라의 기후에 맞춰 품종을 개량하였어도 고온다습한 날씨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고향을 멀리 더나온 고추도 힘이 들 것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고추를 심었다. 품종은 수비초. 수비초는 경북 영양군 수비면에서 오래도록 재배해온 품종으로 다른 고추와 현저히 다른 성질을 지녀 수비초라는 별도의 이름을 얻었다. 영양군은 전체가 태백산맥에 속해 있으며, 해발 400~1000미터 지대이다. 햇살이 좋고 상대적으로 다습하지 않아 독특한 모양과 맛의 고추를 길러내기에 적합했다. 수비초는 키가 작다. 열매가 작고, 끝이 뾰족하다. 중상 정도로 매운데, 감칠맛이 있다. 김치와 고추장을 담그면 시간이 흐를수록 깊은 맛을 더한다. 먹어본 사람은 다시 찾는 맛이다. 나는 40그루를 심었다. 여기서 나오는 고춧가루는 우리 식구의 1년 양념으로 충분하다.
수비초는 고추 중에서도 비싼 편이다. 영양의 수비초 재배 농가는 다른 밭들과 떨어진 산중에서 노지 재배한다. 수비초 특유의 성질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수확량이 다른 고추에 비해 적다. 그러니 비쌀 수밖에 없다. 산중 재배는 다른 고추와의 교잡을 피하기 위해서다. 고추는 교잡이 잘 되는 작물이다. 교잡이 되면 특유의 성질이 변한다. 가령 꽈리고추와 아삭이고추는 맵지 않은 품종인데, 가끔 청양고추처럼 매운 것이 있다. 주변의 매운 고추와 교잡되었기 때문이다. 공동텃밭은 여러 사람이 짓는 곳이어서 교잡을 피할 수 없다. 공동텃밭이 아니어도 인근에 다른 밭이 접해 있으면 교잡 가능성이 있다.
풀이 기세를 올리고 있다. 농부들은 이 시기의 풀을 여름풀이라고 한다. 바랭이가 대표적이다. 뿌리를 넓고 깊게 내린다. 줄기는 넝쿨식물처럼 땅을 기면서 뻗어가는데 마디마다 뿌리를 내린다. 바랭이는 크기 전에 뽑아주지 않으면 온밭을 뒤덮을 정도로 기세를 올린다. 뿌리를 뽑아내지 않고 줄기만 자르면 뿌리가 더 억세진다. 쇠비름은 번식력이 엄청나다. 씨방이 터지면서 씨를 사방으로 흩뿌리기 때문에 밭을 덮는다. 텃밭농사하면서 제초제를 치거나 비닐을 덮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잡초와 공존할 수밖에 없다. 잡초를 이기려 한다면 품이 너무 많이 든다.
잡초를 어찌 이기랴
잡초를 억제하고 병충해를 예방·치유하는 것이 농사의 절반 이상이며, 여름철의 농부는 이 일에 온힘을 쏟는다. 고된 농사일을 덜어주는 것이 있으니 바로 농약이다. 텃밭 농사야 그 규모가 손바닥만 한 것이어서 농약을 치지 않고도 가능하다. 텃밭 농사의 주목적은 작물을 키우는 재미, 흙을 만지고 밟는 느낌을 즐기는 것이며, 가족들이 함께 하는 시간이며, 이웃을 만나는 공간이다. 생업이 아니니 소출이 적어도 괜찮다.
농사를 밥벌이로 하는 농부들은 사정이 다르다. 병충해를 이겨내야 하고, 잘 길러서 좋은 값에 팔아야 생계를 이어갈 수 있다. 그러니 농약을 치고 비료를 주어 품을 줄이고, 크고 보기 좋게 기르는 것을 탓하기 어렵다. 그들도 무농약, 유기농 작물을 재배하고 싶어 한다. 실제 유기농으로 전환하는 농가들이 있다. 정부의 지원도 있다. 그러나 소출이 적다. 비쌀 수밖에 없다. 서민들은 접근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윤리적 딜레마에 빠지기도 한다. 그래서 유기농을 포기하고 다시 약을 치는 농사로 회귀하는 경우도 있다. 
다행이 요즘 사용하는 농약은 저독성이다. 바람과 비에 씻겨 잔류량이 거의 없다. 물론 허용기준치 이하의 미량의 잔류물일지라도 예민한 체질의 사람들에게는 오랜 시간 축적되면 문제가 될 수도 있으니, 조심스런 일이다.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비해 토양과 물에 스며들어 오염을 일으키는 것에는 아직은 관심이 덜한 게 현실이다.
천연농약을 사용하는 농가들도 많다. 예로, 고추에 치명적인 탄저병이나 모자이크병을 예방하기 위해 락스, 식초, 매실 추출액 등을 사용하는 것이다. 식초와 매실에는 소독 기능이 있어 이를 농사에 활용하는 것이다. ‘자연을 닮은 사람들’에서는 유황을 활용해 방제하는 자세한 방법을 널리 알리고 있다. 락스는 가정에서 화장실이나 싱크대, 하수구 소독용으로 많이 쓴다. 지독한 냄새 때문에 꺼려하며, 소독용제를 먹는 것에 사용하는 것에 저항감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락스는 냄새가 없는 물질이다. 냄새의 원인은 락스를 사용해 살균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락스는 소금을 주원료로 만든다. 저농도의 락스는 과일과 채소 세척용으로 널리 쓴다. 한때 농작물에 락스를 사용하는 것을 두고 논란이 일기도 했다. 농업진흥기관에서는 검증되지 않은 방법이라고 사용을 자제할 것을 권고했다. 반면 이 방법으로 효과를 본 농부들은 락스가 식품 세척용으로 쓰이는 안전한 물질이라는 점을 주장했다. 농업진흥청 등에서 과학적인 실험을 통해 결론을 냈으면 좋으련만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열 농부에 열한 가지 농법이 있다는 말이 있다. 농부에 따라 농사짓는 법이 다르다는 뜻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농사는 경험이 중요한데, 각자의 경험이 다르다. 밭의 흙이 다르기 때문이다. 밭이 옆에 붙어있어도 농부가 다르면 흙이 달라진다. 거름의 사용량이 다르고, 키우는 작물이 다르면 밭 흙에 섞여있는 미생물과 영양물질이 달라진다. 병충해 방제 경험도 다르다. 앞서 얘기한 천연농약 외에도 무수한 방법이 있다. 소주, 막걸리, 미원, 계란껍질, 은행잎과 열매, 제충국(국화의 한 종류), 담뱃잎, 님오일, 마요네즈, 자리공, 애기똥풀 등을 이용해 천연농약을 만들어 쓴다.
밭도 무상(無常)하다
농사에는 정답이 없다. 각자의 사정에 따라 다르다. 다만 가이드라인이 있을 뿐이다. 예로, 감자는 중부지방에서는 대개 6월 중순 이후 장마가 오기 전에 수확하라고 한다. 그러나 나들이 할 일이 있으면 빨리 또는 늦게 캘 수도 있다. 감자를 캐고 후작으로 콩을 심어야 한다면 늦어도 7월이 오기 전에 수확한다. 후작하지 않는다면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점차적으로 캐는 이들도 있는데, 밭에 보관하는 셈이다.     
7월은 내 텃밭의 풍경이 바뀌는 시기이다. 마늘을 거둬낸 자리에 쥐눈이콩을 심었다. 작물과 풀로 뒤덮였었는데, 오랜만에 흙이 드러났다. 호밀을 베어낸 자리엔 참깨, 생강, 상추, 토마토, 수박, 고구마, 오이, 참외, 옥수수가 자라고 있다. 더덕은 1미터 넘는 넝쿨을 뻗었다. 고추는 열매를 내주고 있다. 8월 말이 되면 또 한번 변신한다. 배추, 무, 쪽파, 갓 등 김장채소가 들어선다. 제행무상(諸行無常)이듯 밭도 무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