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頂宇 스님
본지 발행인 | 구룡사 회주
불기 2570년 부처님오신날입니다. 부처님의 탄생 연도로 생각하기 쉽지만, 엄밀히 말하면 부처님께서 입멸入滅에 드신 열반의 주기에 해당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우리와 같이 부모에게 받은 몸으로 늙고 병들고 죽는 과정을 함께 겪으시며 이 사바세계에 80여 년 동안 머무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2650년 전에 이 땅에 오셨고, 80여 년을 머무시다 2570년 전에 열반에 드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열반에 드실 때 “내가 떠나감을 보고 그것을 죽음으로 알지 말라. 열반은 죽음이 아니니라.”라 하셨습니다. 청정법신淸淨法身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원만보신圓滿報身 노사나불盧舍那佛, 천백억화신千百億化身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께서는 늘 우리 곁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의 탄생에는 헤아리기 어려운 이적異蹟이 있습니다. 어머니 마야부인께서 45세에 아이를 낳게 되는데, 풍습에 따라 친정으로 산후조리를 하러 가던 중, 룸비니 동산에서 산고를 겪으셨습니다. 그런데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걸으며 오른손은 하늘을 가리키고, 왼손은 땅을 가리키며 탄생게를 외쳤다고 하십니다.
“천상천하天上天下에 유아독존唯我獨尊이요, 삼계개고三界皆苦하니, 아당안지我當安之하리라. 하늘 위와 하늘 아래 나 홀로 존귀하도다. 삼계의 모든 중생이 다 고통과 괴로움 속에 있으니 내가 마땅히 이를 편안하게 하리라.”
초식 동물들이 태어나자마자 어미가 혀로 핥아주면 가장 먼저 일어서서 걸어야 어미젖을 먹을 수 있듯, 생존을 위한 발돋움은 당연한 현실입니다.
하지만 인간 세상에서 갓 태어난 아기가 사방으로 걸으며 이런 사자후獅子吼를 했다는 것에 대해서 소년 시절에는 상당한 의구심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를 온전히 믿기로 했습니다. 이는 지옥地獄, 아귀餓鬼, 축생畜生, 아수라阿修羅, 인간人間, 천상天上의 육도六道에서 허덕이는 모든 중생을 구제하고, 모두가 존귀함을 선언한 인간 존엄의 위대한 메시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종단의 봉축 표어는 ‘마음은 평안으로, 세상은 화합으로’입니다. 문법적으로 ‘편안便安’이 몸의 안락함을 의미한다면, ‘평안平安’은 몸과 마음이 모두 평화로움을 뜻합니다. 이 ‘평안’과 ‘화합’에서 글자를 따오면 바로 ‘평화平和’가 됩니다. 마음이 평안하고, 세상의 공동체는 서로 화합하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평화입니다.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서는 이념과 사상, 물질적 욕심 때문에 수많은 분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제가 군종교구장 소임을 보던 시절, 공동경비구역(JSA) 안에 무량수전無量壽殿 법당을 세우고 참전 16개국 전사자들과 국군 전사자들과 민간인의 위패를 모셨습니다. 그때 빈 위패 하나를 더 설치했습니다. 전쟁만 일어나지 않았다면, 군인이 아니었다면, 전쟁에 휩쓸려 희생될 이유가 없었을 북한군과 중국군까지 포괄적으로 위로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인도와 네팔 성지순례를 다니다 보면 네팔 룸비니 인근에 ‘람그람’이라는 사리탑 동산이 있습니다. 그곳에 가면 동산에 아주 거대한 거목 한 그루가 서 있는데, 사실은 네그루의 서로 다른 나무가 마치 한 그루처럼 어우러져 자라고 있습니다. 선대 스님들께서 카스트라는 엄격한 신분 계급을 타파하고, 화합과 안심입명安心立命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심으신 원력이 아닐까 합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아름답게 어울려 사는 그 나무처럼 우리 사회도 분쟁을 멈추고 평화로운 세상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어느 해 부처님오신날 부처님 탄생 예찬 시詩 중에 이런 구절이 있었습니다.
“꽃보라 휘날리는 룸비니 동산, 한 줄기 찬란한 빛이 우주를 덮고 거룩한 고담 고타마 싯다르타 태자 탄생하실 때, 천상천하 유아독존 큰 소리로 온 누리에 퍼졌네. 발자국마다 비치는 연잎 태양보다 밝은 등 높이 드옵시고, 태란습화 사생四生의 모든 고난 녹여 주신 분 이 세상에 오신 날 4월 초파일”
저 역시 1982년도에 혼자 단수여권을 가지고 인도·네팔 성지순례를 하던 중 룸비니 동산에 이른 적이 있었습니다. 30대 초반의 나이에 밀려오는 정신적 감동이 어찌나 크던지 메모장에 글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정신적 혼란이 올 정도로 벅차올랐을 때, 제가 마지막 구절에 묘수를 두어 글을 갈무리했습니다. “룸비니 동산은, 룸비니 동산은, 룸비니 동산 이었다.”고 점을 찍으니 비로소 마음이 가라앉았습니다. 그때 청년 정우가 남겼던 글의 서시가 불현듯 떠오릅니다.
“우담발화優曇鉢華꽃 활짝 핀 곳 가지가지 나무에 한 마리 새가 되었다. 룸비니 동산은 다정한 눈빛, 룸비니 동산은 부드러운 미소, 룸비니 동산은 인정이 담긴 곳, 룸비니 동산은 따뜻한 도량, 룸비니 동산은 소박한 몸짓, 룸비니 동산은 온화한 향기로움. 룸비니 동산은, 룸비니 동산은, 룸비니 동산이었다.”
만 불전 법당에는 1년 등이, 마당에는 한 달 등이 켜져 있고, 놀이터 공간에도 불자들을 위한 등이 밝혀져 있습니다. 우리 어린 시절에는 대나무를 쪼개고 연잎을 정성스레 비벼 붙여 연등을 만들고 초저녁 촛불을 켰습니다. 지금은 과학의 발전으로 전기를 이용해 편리하게 불을 밝히지만, 등불이 지닌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등불은 스스로를 태워 주위를 밝히며, 지혜의 등불은 나눌수록 더욱 세상에 밝아진다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부처님오신날은 개인적 수행에만 머무는 날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어둠을 걷어내는 소중한 여정입니다. 지난주 토요일은 동국대학교에서 조계사까지 이어지던 제등행렬에 수많은 외국인들이 동참해 마치 브라질의 축제처럼 세계인이 환희법열歡喜法悅을 나누는 모습은 큰 감동이었습니다. 오늘 저녁 우리 구룡사 대중들도 양재동 말죽거리를 한 바퀴 돌아오며 탑돌이를 하듯이 제등행렬을 펼치고자 합니다. 불자님들께서는 편안한 신발을 신고 동사섭同事攝하는 마음으로 동참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문체부를 통해 청와대에서 보내온 봉축 메시지가 전달되었습니다. 정부에서 보내온 봉축 메시지를 담담한 마음으로 대중 여러분께 대독해 드리겠습니다.
[대통령 봉축 메시지]
“불기 2570년 부처님오신날을 봉축합니다. 전국 각지의 사찰에서 수행과 정진, 그리고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고 계시는 스님들과 불자 여러분께 축하의 인사를 전합니다. 한국불교는 오랜 세월 우리 사회의 든든한 버팀목이었습니다. 자비와 나눔의 실천으로 소외된 이웃을 따뜻하게 보듬었고 사회의 갈등과 아픔을 치유하며 국민 통합에 크나큰 기여를 해 왔습니다. 그 수많은 노력과 헌신에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사회가 마주한 여러 도전을 극복하고 화합과 상생의 내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부처님의 지혜와 가르침이 절실합니다. 서로 존중하고 상생하는 사회를 위해 앞으로도 불교계가 큰 힘이 되어 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정부 또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국정의 등불로 삼겠습니다. 나와 이웃이 결코 둘이 아니라는 자타불이의 마음으로 국민 모두가 평안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따뜻한 공동체를 일구어 나가겠습니다. 다시 한 번 뜻깊은 부처님오신날을 봉축하며 모든 사찰과 불자 여러분의 가정에 부처님의 자비와 광명이 늘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고맙습니다.”
이 메시지의 내용은 공직자는 진심으로 국민을 위한 직분을 다해 주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울러 우리 구룡사는 그동안 불자님들이 관세음보살님 전 재난 구호 성금함에 모아주신 정성을 국내외의 아픔을 꾸준히 나누어 왔습니다.
전란의 고통을 겪는 우크라이나에 대사관을 통해 5만 달러를 전했고, 6·25 참전국인 필리핀의 소외된 이들을 위해 현지 선교사님을 통해 3천만 원을 지원했습니다. 또한 지진 피해를 입은 불교 국가 미얀마에 3천만 원, 국내 산불 재난 지역에 7천만 원, 기아와 물 부족으로 허덕이는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위해 1년간 매달 200만 원씩 총 2,400만 원을 보냈습니다.
특히 올해는 6·25 전쟁 당시 아프리카 대륙에서 유일하게 6만 명의 군인을 파병해 우리를 지켜주었던 에티오피아 참전 용사와 그 가족들을 돕고자 합니다. 고국으로 돌아간 후 사회주의 정권으로 바뀌면서 한국전 참전으로 인해 지금까지도 엄청난 핍박과 실용을 당하며 살고 있다는 안타까운 뉴스를 접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올해 1차로 매달 200만 원씩 연간 2,400만 원의 성금을 전하기로 했으며 남미의 콜롬비아에도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이러한 나눔은 결코 구룡사의 재정이 풍족해서가 아닙니다. 불자들이 법당을 참배하며 보시한 마음을 절에서 투명하게 관리하여 꼭 필요한 곳에 올바르게 회향하는 것뿐입니다. 이런 자리를 빌려 이 일을 말씀드리는 것은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 모두는 서로를 일깨우며 자비를 실천하자는 권청입니다.
부처님오신날은 혼자만의 수행에 머무는 날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의 어둠을 걷어내는 소중한 여정입니다. 부처님 품 안에서 따뜻한 가정을 이루며, 개인은 평안하고 세상은 화합하는 길에 앞장서 주시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