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범
숲해설가
맹렬한 여름의 한복판에 들어서면, 대지는 온통 초록의 함성으로 가득 찬다. 이글거리는 태양빛 아래에서 세상의 모든 생명이 숨을 죽일 때, 오히려 그 뜨거움을 정면으로 받아내며 가장 찬란한 생명의 정점을 보여주는 존재들이 있다. 바로 우리 땅의 여름을 지키는 나무들이다.
한국의 여름은 단순히 ‘더운 계절’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장마철의 눅눅한 습기와 장대비, 그리고 비가 개인 뒤에 찾아오는 가혹할 정도의 뙤약볕이 교차하는 역동적인 시간이다. 이 시기 우리 선조들의 삶 속에서 나무는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땀을 식혀주는 거대한 부채였고, 소통의 광장이었으며, 고단한 풍파를 이겨내게 하는 신앙이자 위로였다. 마을 어귀의 웅장한 느티나무부터 선비의 기상을 담은 회화나무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여름을 대표하는 나무들을 살펴본다.
1. 마을의 영혼을 품은 거대한 그늘, 느티나무
한국의 시골 마을을 여행하다 보면 가장 흔하게, 그러면서도 가장 압도적인 모습으로 나그네를 맞이하는 나무가 바로 느티나무다. 정자나무의 대명사로 불리는 느티나무는 여름이 되면 그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느티나무는 수명이 수백 년에 이르는 장수목으로, 사방으로 넓게 퍼지는 가지와 빽빽하게 돋아나는 잎사귀가 특징이다. 여름날 느티나무 아래에 서면 마치 거대한 초록색 지붕 밑에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이 든다. 흥미로운 점은 느티나무 그늘이 다른 나무 그늘이나 인공 차양막보다 훨씬 시원하다는 사실이다.
이는 느티나무의 수많은 잎이 끊임없이 증산작용을 하며 주변의 열을 빼앗아가기 때문이다. 기온이 섭씨 30도를 웃도는 한여름에도 느티나무 아래에서는 천연 에어컨을 튼 것처럼 서늘한 바람이 불어온다.
이 거대한 나무는 예로부터 마을의 공동체 중심지였다. 마을 사람들은 느티나무를 보전하고 신성시하며 ‘당산나무’나 ‘신목神木’으로 섬겼다. 해마다 음력 정월 대보름이나 오월 단오가 되면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당산제를 이 나무 아래에서 지냈다.
여름철 농번기가 되면 느티나무는 고된 노동 끝에 찾아오는 달콤한 휴식처가 되었다. 땀에 젖은 수건을 목에 걸고 느티나무 그늘에 모여 앉아 막걸리를 나누어 마셨다. 아낙들은 집에서 삶은 감자나 옥수수를 광주리에 담아와 아이들과 함께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어른들에게는 마을의 대소사를 논의하는 의사당이었으며, 노인들에게는 장기를 두며 소일하는 사랑방이었다.
선조들은 느티나무의 상태를 보고 그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기도 했다. 봄에 느티나무 잎이 밑동에서부터 위쪽으로 고르게 한꺼번에 피어나면 그해에는 풍년이 들고, 위쪽이나 아래쪽 어느 한곳에서 듬성듬성 피어나면 가뭄이나 흉년이 들 징조라고 믿었다. 여름철 잎이 유난히 푸르고 무성하면 가을에 풍성한 수확을 확신하며 고된 여름 농사를 버텨냈다. 느티나무는 단순한 나무가 아니라 마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모두 지켜보는 인자한 어른이었던 셈이다.
2. 백일 동안 피어나는 붉은 순정, 배롱나무
느티나무가 여름의 ‘쉼’을 상징한다면, 배롱나무는 여름의 ‘멋’과 ‘열정’을 상징하는 나무다. 7월부터 시작해 한창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9월까지, 꼬박 백일 동안 붉은 꽃을 피워낸다고 하여 이 나무를 ‘백일홍百日紅’이라 부르기도 한다. 다만 화단에 심는 한해살이풀인 백일홍과 구분하기 위해 나무 백일홍, 즉 배롱나무라는 이름이 더 널리 쓰인다.
배롱나무의 가장 큰 특징은 꽃뿐만 아니라 줄기에 있다. 자라면서 오래된 껍질이 벗겨지고 나면, 마치 갓 목욕을 하고 나온 사람의 살결처럼 매끄럽고 윤기 나는 하얀 속살이 드러난다. 이 수피가 너무나 매끄러워서 ‘간지럼나무’라는 정겨운 이름으로도 불렀다. 실제로 줄기의 흰 부분을 손가락으로 살살 긁으면 나무 전체가 파르르 떨리는 것처럼 보이는데, 아이들은 이를 보며 나무가 간지럼을 탄다고 깔깔대며 즐거워했다.
배롱나무는 조선 시대 선비들이 가장 사랑했던 나무 중 하나다. 그래서 지금도 안동의 병산서원이나 담양의 명옥헌 원림 등 전국의 유명한 서원과 정자, 사찰에 가면 어김없이 거대한 배롱나무를 만날 수 있다.
선비들이 이 나무를 뜰에 심은 데는 깊은 뜻이 있었다.
첫째는 배롱나무의 매끄러운 줄기처럼, 자신 또한 속세의 탐욕과 때를 모두 벗어버리고 청렴결백한 공직자가 되겠다는 다짐이었다. 껍질을 숨김없이 벗겨내 속을 투명하게 보여주는 나무의 생태에서 선비의 청렴함을 읽어낸 것이다.
둘째는 여름 내내 지지 않고 피어나는 붉은 꽃처럼, 학문과 수양을 향한 열정을 백일 동안 끊임없이 이어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실제로 배롱나무 꽃은 한 송이가 백일 동안 피어 있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꽃망울이 차례대로 피고 지기를 반복하며 백일을 이어가는 것이다.
이 지치지 않는 생명력에서 쉼 없는 정진의 자세를 배웠다.
3. 하늘을 향한 정진의 등불, 회화나무
조선 시대 사대부의 집이나 궁궐, 혹은 서원에 반드시 심어지던 또 하나의 귀한 나무가 있으니, 바로 회화나무다. 중국에서는 학자수學者樹라고 불렸고, 우리 고유어로는 ‘홰나무’라고도 한다. 영어권에서도 이 나무의 고고한 자태를 기려 ‘파고다 트리(Pagoda Tree)’라는 격조 높은 이름을 붙였다.
회화나무는 한여름인 7월에서 8월 사이에 가지 끝에서 연한 황백색의 자잘한 꽃들을 무수히 피워낸다. 화려하게 시선을 사로잡는 배롱나무와 달리, 회화나무 꽃은 수수하면서도 은은한 기품이 있다. 꽃이 질 때면 마치 지상에 노란 눈이 내리는 것처럼 마당 가득 꽃비가 내리는데, 그 풍경이 가히 환상적이다. 잎은 아카시 나무와 비슷하게 생겼으나 훨씬 정돈된 느낌을 주며, 가을이 되면 콩꼬투리 모양의 열매를 맺는다.
우리 선조들은 회화나무를 집안에 심으면 가문에서 훌륭한 학자가 나오고 부귀를 누리게 된다고 믿었다. 이 나무가 가진 기운이 인간의 잡념을 없애고 정신을 맑게 해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위 관직에 오른 사대부들은 이사하거나 집을 지을 때 마당 가장 좋은 자리에 회화나무를 심는 풍습이 있었다.
회화나무는 조선 시대 선비들의 가장 큰 목표였던 ‘과거 급제’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과거 시험을 보기 위해 한양으로 떠나는 선비들은 회화나무 앞에서 절을 하며 급제를 기원했고, 마침내 급제하여 고향으로 돌아올 때는 임금이 하사한 어사화를 모자에 꽂았다. 이 어사화를 장식하던 종이꽃의 원형이 바로 한여름에 피어나는 회화나무 꽃이었다고 전해진다. 뜨거운 여름날, 땀방울을 흘리며 정진하다 지붕 너머로 보이던 회화나무의 푸른 잎사귀와 은은한 꽃은 큰 동기부여가 되었을 것이다.
이번 여름에는 스마트폰 화면에서 잠시 눈을 돌려, 주변의 거대한 초록 줄기를 가만히 안아보거나 돌담에 피어난 주황빛 꽃송이에 가만히 귀를 기울여보는 것은 어떨까.
그 옛날 선조들이 나무 아래에서 얻었던 그 청량하고도 따스한 위로가, 오늘을 사는 우리의 지친 어깨 위에도 소리 없이 내려앉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