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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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因緣

관조 이수갑
구룡사 거사림회


불가佛家에서는 인연을 ‘일체중생은 인因과 연緣에 의하여 생멸生滅한다.’고 하더라. 2012년, 스승의 날! 불자佛子인 나는 참으로 거대하고 깊은 인연의 세계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
벌써 오래 전, 때는 1962년 어수룩한 고등학생 시절에 내가 만난 한 사람, 그는 바로 나의 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은 체구가 크고, 뒤끝이 없는, 한마디로 화끈한 분이셨다. 우리들은 그런 선생님을 ‘경상도 사나이’라고 불렀다.
그 때, 선생님은 미혼으로 서대문 우리 집 가는 길목에서 하숙 생활을 하고 계셨고, 거리상의 인연이 닿은 턱에 나는 종종 선생님의 심부름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선생님과 나는 사제지간이라기보다는 동네 형, 혹은 아저씨처럼 가까이 지낼 수 있었고, 고3에 올라가서도 각별한 관계를 계속 이어갔다.
그 후, 세월이 흘러 어느덧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까지 한 나는 신촌에서 보금자리를 틀고 있었다. 어느 토요일 오후였을까, 아이들과 신나게 야구를 하고 있는데 내가 던진 공이 서류가방을 든 한 신사의 얼굴로 향하고 만 것이다. 한걸음에 뛰어가서 죄송하다고 용서를 구하고자 했다. 그런데 아픈 얼굴을 감싸 쥐고 있던 손 밑에서 나온 얼굴은 바로 나의 스승이었던 것이다.
(아! 인연이란…)
알고 보니 선생님은 우리 집 건너편에 살고 계셨단다. 그렇게 신촌이란 곳에서도 우리의 인연은 계속 될 수 있었다.
야속한 시계바늘은 더욱 빠르게 흘러 나는 반포에 아파트를 구입해 이사를 오게 되었고, 우리는 짧은 송별식을 끝으로 다시 헤어짐을 갖게 되었다.
(만남이 있었기에…)
세 아이의 아빠, 한 여자의 남편으로 정신없이 산다는 핑계로 나는 스승님을 잠시 잊고 살았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더 이상 우연 같은 인연이 닿지 않자 나는 서울교육위원회에 전화를 걸어 선생님의 연락처를 찾아냈다.
그 때의 기쁨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으랴!
다시 만난 스승님은 과천에 살고 계셨다. 그 사이, 사모님은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홀로 아이를 키우다 재혼을 했다고 하셨다. 우리는 다시 서로 멀지 않은 거리에 살면서 관악산 산행도 하며 함께 세월을 마실 수 있었다.
(스승님과 함께여서 더욱 달콤하게…)
올 해 초, 스승의 날이 다가와 오랜만에 연락을 드려 보았다. 사모님께서는 몸이 안 좋아서 멀리 있는 요양원에 계시니 오지 말라고 하셨다. 깜짝 놀란 나는 계신 곳이 어딘지 여쭈었지만 대답을 회피하셨다.
그렇게 물어보기를 몇 번, 나의 스승님은 다름 아닌 내가 새로 이사 온 일산의 집에서 훤히 내려다보이는 거리에 계셨던 것이다. 
2012년 5월 15일 스승의 날, 난 다시 학창시절의 교복을 입은 ‘이수갑’으로 돌아가 자그마한 케이크 하나와 카네이션을 사 들고 병든 선생님을 찾아뵈었다.
고등학교 때 만난, 나의 ‘경상도 사나이’ 선생님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만치 작고 야위어 있었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지만 꾹 참고 그 시절, 선생님께서 가르쳐 주셨던 용기를 내어 말씀을 드렸다.
“선생님, 얼른 나으셔서 우리 다시 만나야죠.”
하지만 말기 암 환자가 되어 버린 스승님은 내가 누구인지도 알지 못하셨다. 나는 금방이라도 부러질 듯 뼈만 앙상하게 남은 선생님의 손에 빨간 카네이션을 전해드리고, 내가 끼고 있던 단주를 빼서 손목에 공손히 끼워 드렸다.
올 6월 초순 즈음일까, 꿈에 선생님이 보였다. 더 이상 아프지 않은, 건강한 모습이었다. 선생님 건강이 좋아지신 걸까 하는 기대감에 사모님께 몇 번 연락을 해 보았지만 닿지 않아 결국 자제분에게 전화를 걸어 보았다.
그리고 나는 이곳에서 나와 깊은 인연이 닿았던 한 사람, 나의 사랑하는 스승님이 돌아가셨단 얘기를 전해 들었다.
‘아, 그랬구나. 그랬었구나. 그래서 내 꿈에 오셨던 거구나. 못난 제자에게 따뜻한 작별 인사 해 주러 오셨던 거구나.’
스승의 은혜는 하늘같아서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 지네.
참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쳐 주신 스승의 마음은 어버이시다.
아아아~ 고마워라. 스승의 사랑.
아아아~ 보답하리. 스승의 은혜
선생님이 떠나간 큰 자리를 바라보며 나는 실로 오랜만에 노래를 불렀다. 나의 눈은 홀로 부르는 노랫말과 함께 어느새 뜨거워졌다. 그리고 ‘경상도 사나이’ 선생님과의 인연이 여기서 끝이 아니란 걸 알기에, 아니 믿기에 미처 다 흘리지 못한 눈물은 나중으로 미뤄두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