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돈
한의학 박사|전 원광대학교 한의대 외래교수|햇살고운 한의원 대표원장
여름은 더운 계절이다. 올 여름이 유난히 더 덥다고 느꼈는데, 기상관측 이후 111년 만의 더위라고 한다. 지구의 온난화로 우리나라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폭염으로 인한 피해가 갈수록 늘고 있다.
보약하면 서늘한 가을이나 겨울에 짓는 것으로 알고 있었던 것과 달리 요즘에는 여름철에 보약을 찾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갈수록 더워지는 날씨 때문에 기력이 떨어지거나 밥맛을 잃어가거나 식은땀을 많이 흘려서 이 시기에 보약 지으러 한의원을 찾는 환자들이 늘어난다.
한편으로는 감기증상으로 내원하는 경우도 많다. 오뉴월 여름감기는 개도 걸리지 않는다는데, 사람들이 여름감기에 걸리는 이유는 다름 아닌 냉방문화에서 시작되었다. 냉방시설에서 나오는 찬 공기를 오랫동안 쐰 후 감기와 비슷한 증상을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봤을 것이다.
이 질환은 실내외의 심한 온도 차이로 인해 인체가 그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일종의 적응 장애로 볼 수 있다. 머리가 무겁고 재채기가 나오며 몸이 으스스하거나 기력이 떨어진다. 또 자고나도 피로가 풀리지 않으며 배가 더부룩한 소화장애 증상까지 오기도 한다. 이런 증상을 냉방병이라고 한다. 더위를 피하려 시원한 곳을 찾거나 맥주 참외 등 차가운 음식을 자주 먹어서 몸에 탈이 나는 경우도 냉방병에 속한다.
냉방병이 현대에만 생기는 것은 아니며 과거에도 이미 있었던 질환이다. 동의보감에 의하면 서늘한 정자나 차가운 물속에 오래 있을 때 이런 증상의 냉방병이 온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책에서는 냉방병을 중서中暑라고 표현했는데, 맞을 중中 자, 더위 서暑 자를 조합하여 더위에 맞았다는 의미이다(여기서의 중中 자는 가운데 중이 아니다).
이때의 치료방법으로 땀으로 냉기를 물리치고 속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처방을 사용했다. 민간에서 삼복에 오히려 삼계탕 추어탕과 같이 뜨거운 음식을 먹어 땀을 내게 했던 것은 냉기를 풀어주고 속을 보전하려는 선조들의 지혜가 깃들어 있다.
한의학에서는 여름철을 무난히 나게 하는 대표적인 처방이 있다. 바로 생맥산生脈散이다. 이 처방은 무기력하게 죽어가는 맥을 다시 살린다는 뜻이 있다.
인삼 오미자 맥문동, 세 가지의 약재를 배합한 단순한 처방이지만 그 효과는 아주 좋은 편이다. 설사 인삼이 잘 맞지 않는 체질이라고 할지라도 오미자 맥문동이 인삼의 열을 조절해주는 역할을 하므로 누구나 섭취가능하다.
인삼은 성질이 따뜻하고 원기를 북돋아 주며 몸에 진액이 분비되게 하는 효과가 있다. 더운 여름철에 오히려 따뜻한 약재인 인삼이 들어가는 이유는 차가운 음식을 자주 먹어 차가워진 속을 개선시키려는 의도다.
오미자는 달고 시고 맵고 쓰며 짠맛, 이 다섯 가지의 맛을 가지고 있는 약재다. 식은땀이 나는 것을 거두어 주고 부족한 체액을 보충해주며 식욕을 돋우어준다. 인삼과 마찬가지로 따뜻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맥문동은 땀 등으로 몸에서 진액이 많이 빠져 나갔을 때 보충할 수 있는 효과적인 약재다. 따라서 입이 마르고 갈증이 날 때 좋으며 그뿐 아니라 소화기관을 보해주면서 부족한 체액을 보강해준다.
생맥산을 구성하는 세 가지 약재는 시중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으므로 가정에서 들통에 달여 여름철에 보리차 대용으로 마시면 냉방병이나 원기저하 배탈 등 여름병에 활용하기 좋다.
여름철 대표 과일인 수박과 참외는 성질이 서늘하여 더위를 풀어준다. 갈증이 난다고 차가운 음료수를 자주 먹는 것보다는 수박이나 참외를 적당히 먹어주는 것이 더위를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
여름병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뙤약볕에서 장시간 노출을 피해야 한다. 또 찬 음료를 많이 마시지 말고 에어컨 바람을 오래 쐬지 않는 게 좋다. 한낮의 지나친 활동은 피해야겠지만 덥다고 너무 누워있거나 움직이지 않으려 하는 것도 좋지 않다. 햇볕이 약해지는 아침저녁에 산책 등 적당한 운동으로 땀을 흘려주어야 더위에 견딜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