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頂宇 스님
본지 발행인 | 구룡사 회주
언제부터 유난히 천재지변이 끊임없이 반복되어지는 자연재해가 많습니다.
장마철인 6월 말, 7월 초까지도 가뭄이 극심해서 담수호까지 메말라가는 것을 보면서 걱정을 많이 하게 됩니다. 다음 달부터는 태풍이 몰려올 것입니다.
어제는 통도사 극락암 경봉 노스님 40주기에 다녀왔습니다.
경봉 노스님은 저의 은사이신 운조당 홍법 스님이 지병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통도사를 다 팔아서라도 살려야 한다고 하셨던 스님이시기도 합니다. 불지종가佛之宗家이자 국지대찰國之大刹이요 삼보사찰三寶寺刹인 통도사를 팔아서라도 살리라고 할 만큼 그렇게 절박한 말씀을 하실 수 있었을까요.
은사스님은 1978년 49세로 세연世緣을 마감하시고 열반하셨습니다.
구룡사 전 주지 각성이도 49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란분절을 앞두고 49일 동안 지장기도를 모시게 되었는데, 예사로운 방편이 아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가지며 살고 있습니다.
대중포교의 현장에 포교당 불사를 하면서 표어처럼 쓰는 글이 있습니다.
“한 부처님 출연하시면 만 중생이 깨달음을 얻고, 한 법당이 이룩되면 사바세계 안에 곧 극락정토가 이루어진다.”는 『무량수경無量壽經』의 가르침입니다.
백중기도 입재날이 토요일인데도 구룡사와 여래사도 코로나 이후 가장 많은 불자들이 동참했다는 소임자 스님의 말을 들으며 환희심이 났습니다.
경봉 노스님 추모다례를 모시기 위해 통도사를 갔을 때도 4월 초파일만큼은 아니지만, 많은 자동차들이 들어오고 있는 것을 보면서 자랑스럽고 고마운 마음을 가졌습니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걷는데도 저를 알아보시고 반색을 하시는 불자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통도사 주지 소임을 볼 때 많은 변화를 가졌지만, 그중에서도 도량을 둘러싸고 있는 양 울타리를 걷어낸 것과 자동차를 스스럼없이 댈 수 있도록 주차장을 확장했던 일들이 새삼 떠올랐습니다.
법당에 모셔져 있는 모든 보살님은 화관을 쓰고 계시는데 유일하게 스님처럼 머리를 깎고 화관을 쓰지 않으신 분이 계십니다. 바로 지장보살님이십니다.
지장보살은 수행자의 모습이신데, 이는 중생구제를 위해서 성불을 뒤로 미루고 중생들의 처소인 세간에 스스럼없이 머물면서 죄업에 빠진 중생들을 제도하겠다는 대원大願입니다. 지장보살님의 이러한 모습은 언제나 고통 받는 중생들과 함께 하겠다는 동체대비同體大悲의 정신이기도 합니다.
불교의 가르침 중에 치문緇門이 있는데, 치문이란 삭발염의削髮染衣 왈曰 치緇요, 입산수도入山修道 왈曰 문門이라, 즉 입산해서 삭발하고 먹물 옷을 입은 수행자의 공동체를 스님이라는 승가의 뜻입니다.
근기가 약한 중생들은 머리를 깎고 있어야 스님인 줄 알고 눈물을 흘려야 슬픔이 있는 줄 아는 그런 경계를 상기해 봅니다.
오늘은 왜 사후에 49일간 천도재薦度齋를 모시게 되는지에 대해서 알려 드리고자 합니다. 업(業, 카르마)이라 하는 것은 선업善業이든 악업惡業이든 무기업無記業, 공업共業, 정업正業이든 간에 나의 실생활 속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크게 나누면 몸과 말과 뜻으로 짓는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입니다. 몸으로 짓는 업은 살생殺生 투도偸盜 사음邪淫, 입으로 짓는 업은 망어妄語. 기어寄語 양설兩舌 악구惡口, 마음으로 짓는 업은 탐욕貪慾 진에瞋恚 우치愚痴입니다. 그래서 『천수경千手經』에서도 이 열 가지 업을 매일매일 참회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살생중죄금일참회殺生重罪今日懺悔 투도중죄금일참회偸盜重罪今日懺悔
사음중죄금일참회邪淫衆罪今日懺悔 망어중죄금일참회妄語衆罪今日懺悔
기어중죄금일참회綺語衆罪今日懺悔 양설중죄금일참회兩舌衆罪今日懺悔
악구중죄금일참회惡口衆罪今日懺悔 탐애중죄금일참회貪愛衆罪今日懺悔
진에중죄금일참회瞋恚衆罪今日懺悔 치암중죄금일참회癡暗衆罪今日懺悔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요 심약멸시죄역망心若滅時罪亦亡이라, 죄는 원래 실체가 없고 마음의 분별심에 따라 일어날 뿐입니다.
그러니 만약 마음이 소멸하면 죄업도 또한 없어진다고 하였습니다.
어둠도 실체가 없어서 밝은 빛이 비추이면 어둠은 저절로 사라지는 것과 같은 것으로 보시면 쉽게 이해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업은 배경이 있습니다.
인식기관인 육근六根과 인식 대상인 육경六境, 인식 작용인 육식六識이 합쳐졌을 때 일어납니다. 육근六根은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 눈 귀 코 혀 몸 정신이 오온五蘊의 작용으로 견물생심見物生心을 일으키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좋은 것은 취하려 하고, 나쁜 것은 배타하려 합니다.
지혜의 변별력이 없는 오취온五取蘊으로 살게 되면 힘든 일만 생깁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망할 짓만 합니다. 그러나 지혜智慧가 있고 선근善根이 있으면 일거수일투족이 보리심菩提心으로 발현되어 자비심慈悲心으로 가득해져 행하는 일마다 모든 일이 복된 길이 되는 것입니다.
여래사 주지 각심스님이 자주 공양미와 과일을 많이 가지고 다녀오는 곳이 있습니다.
“스님, 내일은 원석이에게 다녀오겠습니다.” 원석이는 86년도에 구룡사 천막 법당 시절 인연을 맺게 되었는데, 그 인연을 이야기하려면 가회동 구룡사의 애완견과 인연을 먼저 말해야 합니다. 가회동 구룡사에 다니는 불자의 딸이 어려운 형편에도 장학금으로 미국 유학을 가게 되었답니다. 그 딸이 혼자 계시는 어머니가 적적하실까봐 예쁜 애완견 한 마리를 집에 데려다놓고 갔답니다.
그러나 그 불자는 매일 일을 나가야 하기 때문에 애완견을 키울 수 없어서 대신 맡아줬으면 하는 부탁으로 구룡사에 데리고 왔습니다. 당시 양재동 구룡사는 신도도 몇 명 되지 않았고 이층집을 세 얻어 살고 있을 때여서 절에서 개를 키운다고 하는 이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정을 붙이며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감기에 걸리더니 이내 간질까지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 모습이 하도 애처로워 을지로에 있는 동물병원에 데려가서 강아지를 맡기면서 꼭 좀 살려 달라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전날 밤 꿈이 너무 생생하게 기억나서 동물병원에 전화를 했더니 병원에서 그럽니다. “스님, 스님의 눈빛이 애처로워 제가 살려보려고 퇴근도 안 하고 옆에 있었는데 지금 막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다음날 강아지를 데려다가 구룡산 자락에 묻어 주고 49일 되는 날 염불을 해줬습니다.
그날 밤 꿈에 “스님,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몸 바꿔 스님 곁에 다시 오겠습니다.” 4년이 지난 어느 날, 3살 먹은 아이를 안고 절에 찾아온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품에 안긴 아이의 얼굴에 이중 영상으로 3년 전 있었던 애완견 얼굴이 어른거립니다. 그래서 내가 도사라도 된 듯 말을 건넸습니다.
“나를 아세요?” “모릅니다.”
“여기는 어떻게 찾아왔습니까?” “가다가 도로 표지판에 구룡사 간판이 있어서 여기 가면 되겠다 싶어서 왔습니다.”
“그러면 어찌하려구요?” “스님이 아이를 맡아주시면 저는 이 길로 출가하겠습니다.”
“아이 어머니는 어디 있습니까?” “순복음교회 전도사로 있다고 하였습니다.”
아이 아버지는 해인사로 출가하겠다고 하고, 그 아이 어머니는 전도사라 하니, 이 아이는 태중에 있을 때부터 이미 종교적 갈등으로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 아이를 맡았는데, 외형적으로는 아무런 표시가 안 나는데, 간질도 앓고 있고 자폐증까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화여자대학교 신경정신과 교수였던 이근후 교수에게 부탁해서 병원에 입원시켰다가 결국 특수시설에 보냈습니다. 3살 아이가 벌써 30이 넘어서 이젠 전화도 스스럼없이 하고 있습니다. “스님 이번 법문 잘 들었습니다.”
인터넷을 켜고 법문을 듣고 할 정도가 되었는데, 이번에는 그럽니다.
“구룡사 각성스님이 세상을 떠나서 마음이 아픕니다.” 그러면서 자기 방은 구룡사에 있는지 여래사에 있는지도 묻습니다.
그래서 내가 “양쪽 절에 다 방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이제 여래사 각심이도 묻고 구룡사 성견 이도 묻고 구룡사 성륜 이도 묻습니다.
형들의 안부를 묻더니 “스님 아프지 마세요. 그리고 법문 꼭 해 주세요.”
인터넷을 통해서라도 법문을 듣겠다는 말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래서 어제 구룡사 주지와 상의해서 이젠 구룡사로 데려오기로 하였습니다.
인연因緣은 이런 저런 인연이 있기 마련이지만, 참으로 소중한 인연은 이렇게 맺어지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백중을 맞이하여 49일 동안 지장기도를 하는 것도 소중한 인연을 찾기 위함입니다.
첫 번째 주는 눈으로 지은 업을 참회하는 기간이라 합니다. 눈을 감고 있었으면 몰랐을 일도 눈 뜨고 있다가 저지르는 일도 많습니다. 참아야 되는데 좋은 물건보고 욕심이 생겨 참지 못하고 악업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두 번째 주는 귀로 지은 업을 참회하는 기간입니다. 귀로 듣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안 들었으면 그런 일 없을 것을….
세 번째 주는 코로 지은 업을 참회하는 기간입니다. 냄새 맡는 것 역시 안 맡았으면 그런 일 없었을 것을, 그래서 옛 어른들은 보고도 못 본 채, 들어도 못 들은 채 하라 하셨습니다.
넷째 주는 입으로 지은 업을 참회하는 기간, 다섯째 주는 몸으로 지은 죄를 참회하는 기간, 여섯째 주는 마음으로 지은 죄를 참회하는 기간입니다.
마지막 일곱째 주에는 도산지옥刀山地獄을 관장하는 제1 진광대왕秦廣大王, 화탕지옥火湯地獄을 관장하는 제2 초강대왕初江大王, 한빙지옥寒氷地獄을 관장하는 제3 송제대왕宋帝大王, 검수지옥劍樹地獄을 관장하는 제4 오관대왕五官大王, 발설지옥拔舌地獄을 관장하는 제5 염라대왕閻羅大王, 독사지옥毒蛇地獄을 관장하는 제6 변성대왕變成大王, 거해지옥鉅骸地獄을 관장하는 제7 태산대왕泰山大王, 철상지옥鐵床地獄을 관장하는 제8 평등대왕平等大王, 풍도지옥風途地獄을 관장하는 제9 도시대왕都市大王, 흑암지옥黑闇地獄을 관장하는 제10 오도전륜대왕五道轉輪大王 등 10대왕이 함께 육근과 육경과 육식으로 지은 죄업을 심판한다 합니다.
그러니 백중 우란분절 49일 기도 기간 중에는 항상 10업으로 지은 죄를 참회하는 기도 정진을 하시기 바랍니다. 나와 함께 스치고 지나가는 인연만 해도 참으로 지중한 인연이라고 합니다. 하물며 부모형제 처자 권속으로 맺어진 인연을 상기시켜 보면 얼마나 큰 인연입니까. 그 인연법을 소중히 생각하고 과거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업연을 잘 갈무리 짓는 백중 우란분절 49일 기도정진 기간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