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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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행증’으로 읽는 화엄경 ⑳ 실천(6/6) 깨친 자의 삶을 어떻게 실천할까?

신규탁(연세대 철학과 교수)


1.
필자는 본 연재에서 󰡔화엄경󰡕의 구조를 설명하고 있다. 불교에는 수많은 경전이 있는데, 이런 경전들이 어떻게 해서 세상에 출현했는지를 알아둘 필요가 있다.
아시다시피, 인도 땅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셨다. 그 ‘이야기’는 진리를 말씀한 것이라 하여 ‘설법說法’이라고도 부른다. ‘이야기’의 주제와 방식은 상대의 상황에 따랐다는 뜻으로 ‘대기설법對機說法’이라 한다. 건축에 설계 도면을 먼저 확정하고 그에 따라 시공하듯이, 총체적인 짜임이 있었던 건 아니다. 상황 따라, 사람에 따라, 그에 적절한 이야기를 40여 년 동안 하신 것이다.
제자들의 기억에 남은 이런 ‘이야기’들을 훗날 제자들이 ‘암송’해서 이어갔다. 그러다가 기원후 1세기 무렵 ‘기록’하는 풍조가 생겼다. ‘암송’과 ‘기록’이 병행되면서 부처님께서 남기신 ‘이야기’는 더 발견되기도 하고, 다듬어지기도 하고, 분류되기도 했다. 그러면서 이런 ‘이야기’는 인도 지역에 널리 퍼지고, 다시 북쪽으로 올라가서는 동서양 내륙으로, 남쪽으로 내려가서는 해양으로 퍼졌다.
한편, 부처님 사후 뛰어난 제자들은 각 ‘이야기’ 내內에, 또는 여러 ‘이야기’들 간間에, 얽히고설킨 양상을 밝히려 연구했다. 그 연구의 산물을 적어놓은 걸 <논>이라 한다. 부처님이 남긴 이야기 모음집인 <경>과, 그것을 대상으로 제자들이 연구한 <논>은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다. <경>을 기준으로 <논>을 평가하고, <논>을 활용해서 <경>을 해석하는 교차적 독서가 절대 필요하다. 새의 두 날개와 같고, 수레의 두 바퀴와 같다.
이렇게 만들어진 <경>들과 <논>들은 인도의 북쪽 내륙을 통해 중국 지역으로 전해져 한문으로 번역되었다. 그중 <경>들은 <〇〇阿含經아함경>이라는 이름으로 번역되었다. 한편 남쪽 바다를 통해 미얀마나 태국 남중국 쪽으로 전해지던 <경>들은 <〇〇Nikāya니카야>라고 한다. 각 지역으로 전해진 <아함경>이나 <니카야> 속에는 󰡔〇〇경󰡕으로 이름 붙일 수 있는 수많은 경, 즉 작은 ‘이야기’들이 들어있다. <잡아함경> 속에는 짧은 ‘이야기’가 모두 1,362개 들어있다. 처음에는 경 이름도 붙어있지 않고 나열되는 번호도 없었다. 이름과 번호는 모두 뒷날 붙인 것이다.


2.
그러면, 독자님들이 주변에서 많이 들을 수 있는 불경들은 어떠한가? 예컨대 󰡔법화경󰡕, 󰡔지장경󰡕, 󰡔아미타경󰡕, 󰡔금강경󰡕 등을 보자. 이런 경전들에는 공통의 특징이 있는데, 남방으로 전해진 경전들에 비교해 ‘이야기’의 내용이 길다. 그뿐만 아니라 그 내용에 짜임새가 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는데, 누군가가 손을 댔기 때문이다. 위에서 예로 든 소위 대승 경전들은 인도 땅에 역사적 사실로 증명되는 부처님께서 특정 장소와 특정 상대에게 하신 말씀이 아니다. 대승 경전의 존재가 확인되는 때는 기원후 1세기 무렵이다. 이 이전에는 그런 ‘이야기’를 암송하는 출가공동체도 없다. 그래서 필자는 경전 작가의 작품이라고 하는 것이다.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작가들은 기존에 암송되어 오던 부처님의 ‘이야기’를 소재로 삼고, 또 당시 사회에 유통되는 종교 지도자들의 ‘이야기’도 소재로 삼고, 또 작가의 작가적 체험도 소재로 삼고, 그렇게 종합적으로 엮어내었다. 󰡔화엄경󰡕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 전체 분량이 많아지고, 그 속에 담긴 내용도 다양하고 복잡해졌다. 같은 이름의 대승 경전도 세월이 지나면서 구성도 치밀해지고 내용도 늘어났다. 그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름의 경전들도 세상에 유통되었다.
그러면,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친히 하신 ‘이야기’도 아닌데, 왜 당시 스님들이 불경佛經으로 인정했는가? 친히 하신 이야기 즉 <〇〇阿含經아함경>나 <〇〇Nikāya니카야>의 내용과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그렇게 새롭게 유행하는 경전이 석가모니 부처님의 본뜻에 더 가깝다고 생각했다. 물론 현재 고고학이나 문헌학의 관점에서 말해보자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생각’이다. ‘사실’은 검증해보아야 한다. 아무튼 당시 부파剖派의 일부 스님 중에는 전승되는 초기 경전과 새롭게 유행하는 대승 경전을 동시에 접했던 사례도 있었다. 그 한 예로 용수(CE 150~250) 스님을 들 수 있다.
그들은 ‘대승’을 자처하며, <아함경>이나 <니카야>만을 <경>이라고 하는 스님들보다 생각의 폭이 넓다는 우월 의식도 가졌다. 그러면서 당시 유행하던 모든 <경>을 대상으로 그 속에 담긴 여러 ‘이야기’들의 양상을 조직적으로 규명하려 연구했다. 이것도 역시 <논>이다. <경>과 <논>을 상호 보완적으로 읽어야 당시 사람들의 생각을 온전하게 알 수 있다.


3.
필자가 연재하는 󰡔화엄경󰡕은 소승 경전은 말할 것도 없고, 대승 경전 중에서도 짜임새로 보나, 내용의 풍부함으로 보나, 문학적 표현의 완성도로 보나, 어느 면으로 보아도 모든 경전 중에서 최고이다. 단지 단점이라면 분량이 방대하고 내용이 복잡한 점이다. 이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인도에서부터 전문 학승들은 다양한 안내서를 만들었다. 소위 <논>을 지었다.
󰡔화엄경󰡕을 읽을 때도 역시 그런 <논>을 함께 읽어야 한다. 󰡔화엄경󰡕을 대상으로 한 천재 수행자들이 남겨놓은 여러 <논>을 종합적으로 정리한 분이 당나라 때의 청량 국사이다. 그 책이 바로 󰡔대방광불화엄경수소연의초󰡕(줄여서 󰡔화엄경소초󰡕)이다. 지금 필자는 이 책을 책꽂이에 꼽아 두고 참고하면서 본 연재를 집필하고 있다.
연재의 진도로 볼 때 8월호는 「이세간품 제38」의 마지막 대목을 지나고 있다. 「이세간품」은 크게 ‘여섯’ 덩어리의 문답으로 구성되어있다는 말씀은 여러 번 드렸다. 즉, 󰊱믿음[信] 관련 문답, 󰊲마음먹기[住] 관련 문답, 󰊳실천[行] 관련 문답, 󰊴회향回向 관련 문답, 󰊵수행 단계[地] 관련 문답, 󰊶충족한 수행과 그에 따른 완전한 과보[因圓果滿] 관련 문답이다. 이 중에서 필자는 지금 󰊶을 소개하려고 한다.
위와 같이 분류해서 경전을 읽는 전통은 오래되었다. 조선 시대의 스님들은 󰡔화엄경󰡕 전체를 분류하여 과목표를 만들어, 그것을 참조하면서 󰡔화엄경󰡕을 읽었다. 한글 시대에는 남쪽 부산 쪽에서 활동하는 용학 스님이 한글로 된 과목표를 만들어 널리 보급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화엄경󰡕을 포함한 불교의 경전을 읽으려면 경전 전체의 구조를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화엄경󰡕 속에는 여러 ‘이야기’가 들어있는데 그것들 사이에는 일정한 연결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4.
「이세간품 제38」에는 질문이 모두 200가지가 제기된다. 그리고 이 질문 200가지도 다시 여섯 덩어리로 나누어진다. ‘여섯’이라는 숫자에 주목하시기 바란다. 「이세간품 제38」 다음에 나오는 「입법계품 제39」도 ‘여섯’ 대목으로 나누어진다. 이렇게 ‘여섯’으로 나누어지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세간품 제38」 이전에 나오는 총 28개의 품을 󰡔화엄경󰡕 구성작가는 위의 󰊱〜󰊶와 같이 ‘여섯’ 주제로 배기했기 때문이다.
󰡔화엄경󰡕 구성작가의 의도를 안 이상, 「이세간품」의 200가지 질문 중에서 ‘여섯’째 단락에 속한 ‘51가지 문답’을 읽을 때도 그런 구도를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한다. 그리고 ‘여섯’째의 ‘51가지 문답’은 󰊶의 <인원과만因圓果滿> 중에서, 등각等覺에 해당하는 6개의 품과 묘각妙覺에 해당하는 5개의 품이, 상호 연동된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
‘등각’에 해당하는 문답은 총 32개, ‘묘각’에 해당하는 문답은 총 19개 나온다. 그중에서 ‘등각’을 먼저 보자. 32개의 문답은 다시 세 덩어리로 나누어지는데, 첫째는 깨달음의 결과와 직결되는 수행의 본질 관련 문답(총14), 둘째는 첫째에서 소개한 수행을 보조하는 방편 관련 문답(총8), 셋째는 수행 과정에서 만나는 장애 제거 관련 문답(10)이 등장한다. 이렇게 쪼개서 읽어야 󰡔화엄경󰡕이 보인다.
지면 관계상 하나의 사례만 들어보자. ‘셋째, 수행 과정에서 만나는 장애 제거 관련 문답’ 10개 중에 ‘견불見佛 부처님 만나뵙기’ 관련 항목이 있다. 10종류의 장애를 제거하면 10종류의 부처님을 뵙게 된다고 한다. 즉, (1)열반에 집착이 없으면, 세속에 나와 정각을 이루는 부처님[成正覺佛]을 만나게 되고, (2)원력으로 험한 세상 태어나면, 원불願佛을 만나게 되고, (3)깊은 믿음이 있으면, 업보불業報佛을 만나게 되고, (4)중생을 수순하면, 주지불住持佛을 만나게 되고, (5)죽음을 보이면, 열반불涅槃佛을 만나게 되고, (6)온 법계에 퍼져 중생을 구제하면, 법계불法界佛을 만나게 되고, (7)모든 게 마음의 조화임을 체득하면, 심불心佛을 만나게 되고, (8)일체 사량 분별이 끊어지고 의지함이 없으면, 삼매불三昧佛을 만나게 되고, (9)본각의 진실한 성품을 깨치면, 본성불本性佛을 만나게 되고, (10)나와 남을 나누지 않고 두루 받아들이면, 수락불隨樂佛을 만나게 된다.
위에서 10종류의 사례를 들어 조건적으로 “〇〇을 하면”에서 “〇〇”은 장애에 해당한다. 이런 장애만 없으면 부처님을 뵙게 된다고 했다. 󰡔화엄경󰡕을 주제로 한 법회가 있으면 참석하여 전문 강사 스님들의 법문을 들어야 할 것이다. 출가나 재가를 막론하고 전문적으로 경을 연구한 사람이 아니고는, 󰡔화엄경󰡕 표면의 문장만 보아서는 이렇게 잘 짜인 구조를 온전히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