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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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미삼근(一米三斤)

세등스님
뉴욕 원각사 총무


지구 온난화에 대한 햇님의 경고였을까?
올해 뉴욕의 여름은 유난히도 더웠다. 매체에서는 지난 100년간 뉴욕 여름날씨 역사상 가장 더웠다고 난리다. 폭염으로 수은주가 섭씨 37도를 넘기던 지난 7월, 원각사 신도님들과 함께 절 근처에 있는 먼로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아이스크림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더위를 식혔던 적이 있다.
더위와 갈증에 지쳐서인지 그날따라 무척이나 아이스크림이 생각났던 터라 미디엄 싸이즈로 주문을 했다. 그런데 한국식 크기에 익숙해져 있던 나는 아이스크림을 받아 들고선 생각지 못했던 엄청난 크기에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한국에서는 그 정도 크기면 시어머니 며느리 손자까지 나눠 먹을 수 있을 만큼 큰 울트라라지 사이즈였다. 절반 정도를 먹고 나니 배가 불러 더 이상 먹기 힘들었다. 설상가상 날씨마저 더워 아이스크림이 녹아 줄줄 흘러내리는 바람에 더욱 난처해졌다. 그래서 눈치를 살피며 주위를 둘러보니 미국사람들은 절반 정도 먹다 남은 아이스크림을 아무렇지도 않게 쓰레기통에 휙 던져버리는 것이 아닌가! 나도 어쩔 수 없이 먹다 남은 아이스크림을 쓰레기통에 버릴 수밖에 없었다. 절로 돌아오는 길에 드넓게 펼쳐진 초원과 푸르른 산과 하늘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참 아름답구나. …’
가도가도 끝없이 드넓은 대지와 풍부한 자원, 아름다운 자연이 살아숨쉬는 미국을 보면 뭐랄까… 부럽다 못해 샘이 난다고나 할까? 가뜩이나 좁은 땅에 남북이 나뉘어져 있는데다, 요즘처럼 긴장감이 형성될 때는 한국인으로서 가슴속에 무언가 탁 걸려 내려가지 않는 답답한 느낌이 든다.
중국유학시절에도 모든 면에서 한국이 월등히 우월하다고 문화적 자부심을 느꼈지만 말로 형언할 수 없을 만큼 넓은 땅을 볼 때면 가슴이 착잡해지곤 했다. 세계지도를 펼쳐 놓고 위도 45도~23도 온대기후 옥 노른자 땅에 동서로 한 덩어리씩 붙어있는 미국과 중국을 볼 때면 가끔 내 자신이 수행자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부러움을 넘어선 시기심까지 일게 된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무슨 복을 지었길래 이렇게 풍요로운 것일까? …’
그 순간 먹다 남은 아이스크림을 쓰레기통에 휙 던져버린 미국 아이의 얼굴과 15년 전 통도사 공양간 소임 보던 날들이 희미하게 겹쳐지는 것이었다.


절집에는 “시은(施恩)이 일미삼근(一米三斤)”이라는 말이 있다. 시주자의 쌀 한 톨에 피땀이 세근이나 된다는 뜻이다. 그만큼 시주의 은혜가 무겁고 쌀 한 톨이라도 가벼이 여기지 말라는 옛 어른스님들의 당부가 담긴 지혜의 말씀이다.
출가한지 얼마 되지 않은 스님들은 주로 절에서 후원 소임을 보게 된다. 세속 식으로 이야기하면 밥 짓고 국 끓이고 청소하는 일들이다. 경상남도 양산에는 합천 해인사, 순천 송광사와 더불어 한국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사찰인 통도사가 있다. 나에게 있어서 통도사는 순수한 강원 학인 시절을 보낸 영혼의 고향 같은 곳이다.
출가한지 얼마 안 되어 강원에서 수학하고 있던 학인 시절, 치문반(1년차) 동안거 해제 철(봄) 내가 맡은 소임은 반두(飯頭)였다. 한국 전통사찰 후원 소임에는 밥을 짓는 반두, 국을 끓이는 갱두, 그리고 반찬을 담당하는 채공 이렇게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그 중 밥을 짓는 반두에는 상반두와 하반두로 나뉘어 진다. 상반두는 하반두를 이미 거친 일 년 선배스님이 맡게 된다.
반두 소임을 보는 첫날 이었다. 밥 짓는 공양간을 들어서니 소림사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어마어마한 크기의 가마솥이 3개 걸려있고, 벽 옆쪽에는 잘 닦아 반질반질 광이 나는 삽들이 주욱 걸려 있었다.
솥 하나는 한 번에 최대 350명분의 밥을 지을 수 있는데 솥이 3개 걸려 있으니 솥 3개를 풀가동하면 한 번에 약 1,000명분의 밥을 지을 수 있다. 첫 밥을 지을 때는 솥이 데워지는 시간이 어느 정도 걸리기 때문에 45분 정도가 걸려야 밥이 나올 수 있지만, 두 번째부터는 약 25분 정도면 밥이 나온다.
통도사에 초파일 같은 큰 행사가 있으면 대략 최하 15,000인분 이상 밥을 짓는데 그럴 때면 밥솥 3개를 풀가동 한다. 손발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후원 스님들을 볼 때면 ‘이 사람들이 스님들인가, 밥 짓는 기계들인가? …’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첫날 밥 짓기 전 먼저 경상도 하동이 고향인 무뚝뚝한 일 년 선배인 상반두 스님의 짧은 훈시가 있었다.
“스님, 밥 짓는 것도 복이요. 신도들이 통도사 와서 절하고 기도하다가 배고파서 공양간 내려와서 밥 드실 적에 얼마나 고맙게 생각하겠소? 또 정진하시는 스님들이 우리가 지은 밥 드시고 힘내서 도 닦아 부처되면 우리 공덕이 얼마나 크겠소? 그러니 힘들어도 복 짓는다 생각하고 열심히 하면 다 밥 짓는 것도 다 수행인기라. …”
말씀을 마치시곤 최소의 장작으로 최대 화력을 내는 방법, 쌀 씻는 방법, 가마솥 소지하는 방법, 삽 닦는 방법 그리고 공양간에서 지켜야 할 행동 수칙 등을 말씀해 주셨다.
절집에서 밥 짓는 방법은 속세와는 조금 다르다. 아무래도 솥이 크다 보니 속세처럼 쌀 넣고 물 양 맞춰서 끓인 다음 뜸들이게 되면 층밥이 되어버린다. 아래 부분은 타고 중간부분은 익고 윗부분은 설익은 밥이 되어버린단 얘기다. 그래서 절에선 먼저 솥에 물을 가득 채우고 팔팔 끓인다. 그 뒤에 쌀을 넣고 뚜껑을 덮은 후 약 1분 정도가 지난 뒤 삽으로 한번 저어준다. 그렇게 세 번 같은 동작을 반복한 뒤 뜰채로 쌀 위에 대고 남아있는 물을 다 퍼낸다. 물을 퍼낸 다음 반쯤 익은 쌀을 골고루 섞은 뒤 뚜껑을 덮고 아궁이에 장작을 으깨서 아궁이 저 끝 안쪽으로 밀어 넣고 몇 분만 뜸을 들이면 밥이 되는데 숙달된 상반두 스님은 모락모락 올라오는 김의 모양만 봐도 밥이 다 되었는지 덜 되었는지 안다고 한다.
중요한 건 뜸 들이는 중간에 절대 뚜껑을 열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밥이 다 된 뒤에는 밥통에 옮겨 담아야 하는데 아무래도 양이 많다 보니 삽을 이용해서 밥을 푼다. 밥을 풀 때는 아궁이 안쪽에 밀어 놓았던 숯을 평평하게 깔아 밥을 푸는 시간 동안 솥을 데워 노릇노릇하게 누룽지를 만드는데 그 맛이 천하일품이다. 밥을 다 푸고 난 뒤 삽으로 쓱싹 누룽지 위를 밀고 당기면 누룽지가 정확한 긴 사각형 모양으로 착착 떨어지는데 그 화려한 손놀림은 새내기 출가자의 혼을 홀딱 빼놓는다.
밥 짓는 과정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은 물을 얼마나 신속하게 퍼내느냐, 그리고 물량을 얼마나 남기느냐인데 물 잔량의 많고 적음에 따라 진밥 혹은 꼬두밥이 되곤 한다. 그래서 다른 부분은 다 새내기 하반두에게 시켜도 그 부분만큼은 능숙한 상반두 스님이 하신다. 말은 쉬운 것 같아도 숙련된 고난이도의 기술을 요한다.
상상해 보라! 아궁이에는 장작이 활활 타고 있고 가마솥은 펄펄 끓어 연기와 뜨거운 수증기에 눈뜨기조차 힘든 상황에서 밥물을 조절한다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물량을 조절한 뒤 삽으로 신속히 바닥까지 고르게 저어준다. 그래야 밥이 타지 않고 쌀이 타지 않고 골고루 익게 된다. 이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엄청난 양의 물을 가득 먹은 반쯤 익은 쌀이 쉽게 움직일 리 없다.
처음 하는 사람들은 용을 쓰고 힘을 주어보아도 삽이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상반두 스님은 능숙한 솜씨로 쓱싹 마치 시멘트 비비듯 밥을 골고루 젓는데 혼자 보기 너무 아까워 비디오카메라로 찍어 방송에 내보내고 싶은 마음마저 들 정도다. 하지만 아무리 능숙한 상반두 스님도 그렇게 밥을 젓는 과정에선 쌀이 밖으로 튀어 나가기 마련이다.
 솥을 젓던 도중 순간 쌀이 몇 톨 튀어나갔는데 그때 나는 넋 놓고 상반두 스님의 화려한 삽놀림을 구경하고 있던 터라 아무 생각 없이 쳐다보고만 있는데 상반두 스님이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스님 뭐 하는교!”라고 소리치셨다. 깜짝 놀라 멍하니 서있는데 상반두 스님은 다시 바쁘게 삽을 움직이셨다. 이내 밥 젓는 과정이 끝나고 가마솥 뚜껑을 덮고 괭이와 삽들을 정리해 놓으시고선 나에게로 다가와, 아궁이 위 널려있는 숯가루가 묻은 반쯤 익은 쌀들을 가리키며, “스님, 저 쌀들 보면 무신 생각 안 드는교?”라고 하셨다. 그리고선 말씀을 이으셨다
“시은이 일미삼근이라 했소. 어림 봐도 쌀이 200톨은 될 듯한데. …” 하시면서 솥밖에 떨어진 쌀들을 주워서 입으로 가져가시는 것이었다. 나도 황급히 뛰어가 같이 주워 먹는 도중 순간 가슴이 짜릿해 오는 것이었다.
집안에 아들이 나 하나밖에 없어 출가 전 나를 끔찍이도 아끼셨던 어머니께선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시면서 밥을 떠먹이곤 하셨다. 출가 전 무심코 먹다 버렸던 음식들, 속가 어머니께 툴툴거렸던 생각들이 떠올라 상반두 스님께 “스님 잠시 해우소 좀 다녀오겠습니다.”라고 하고선 화장실로 달려가 눈물을 뚝뚝 떨궜다.
이는 출가한 이가 속세에 미련이 남아 흘리는 눈물도 아니요, 하루 종일 눈코 뜰 새 없는 절집 생활이 고단해서 흘리는 눈물도 아니었다. 이제껏 무명에 덮여 복 까먹는 짓만 하고 살아온 나의 모습이 부끄러워 흘리는 참회의 눈물이요, 이런 소소한 일상 속에서 참된 수행자로 거듭나는 나의 모습이 뿌듯해 흘리는 눈물이요, 어렵게만 생각했던 복 짓는 일이 너무나 쉽고 명료하게 드러나 환희심 복받쳐 흘리는 감격의 눈물이었다. 
“부처님 오늘 복 짓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 어머니 제가 오늘 복을 지었습니다. …”
그 후에도 공양간 반두 소임을 보는 동안 수채에 걸러진 쌀들을 주워 먹으면서 상반두 스님께 때로는 경책, 때로는 칭찬도 들으면서 강원 치문반(1년차) 시절을 보내었다.
먼로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먹다 남은 아이스크림을 버리는 모습들은 분명 복을 까먹는 짓이다. 한국에는 이런 말들이 있다.
“그 사람 먹는 게 참 복스럽네.”, “고 녀석 복 달아나는 짓만 골라서 하네.”
우리들이 무심코 쓰는 상용어지만 어떤 행위가 복스러운 행동인지 혹은 복 달아나는 행동인지를 이미 알고 있다는 말이다.
경제발전이 가져다 준 물질의 풍요로움이 영혼의 풍요로움까지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과학발전과 산업혁명이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하룻밤 사이에 수만 권 찍어낼 수는 있게 하지만, 수만 명 민중에게 읽게 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미국아이의 음식낭비로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엄청난 경제발전을 짧은 시간에 이룩한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케케묵은 절집 이야기를 꺼내어 고리타분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물질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특히 미국에서 자라고 있는 우리한인 2세들의 가치관이 물질만능주의로 인해 ‘복 까먹는 짓’에 물들면 어쩌나 걱정된다.
TV만 틀면 수백편의 광고가 쏟아져 나오고 온통 일회성 유희가 난무하는 요즘 시대에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소중한 산물과 참 노동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절집에 전해 내려오는 “일미삼근”이라는 말씀이 더욱 새삼스럽게 가슴에 새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