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 / 서울신문 문화(종교)전문기자
한국은 지구상 선(禪)불교의 온전한 전통을 가장 잘 이어가고 있는 대표적인 나라로 꼽힌다. 선불교의 역사성과 전통은 비단 한국불교의 자랑에 그치지 않고 세계 불교계가 인정하는 중요한 장점이다.
실제로 한국의 선불교를 배우기 위해 한국을 택한 세계인들이 적지 않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현재 한국에서 계(戒)를 받고 활동 중인 외국인만 해도 50∼60명 정도는 족히 된다. 바로 한국 불교의 우수성과 전통을 곧바로 증명하는 예일 것이다.
이처럼 지구촌의 많은 이들이 한국의 선불교를 귀의처로 택해 찾아들고 있지만 불행하게도(?) 한국불교는 일반적인 인식만큼 그다지 세계에 널리 알져져있지 않다. 베트남 출신의 세계적인 명상가 틱낫한이나 인도 다람살라에서 티베트 망명정부를 이끌고 있는 정신적인 지도자 달라이 라마의 위상에 가린 때문일까.
세계에 이름을 알린 한국의 고승대덕(高僧大德)은 아주 드물다. 불교자체만 하더라도 티베트불교와 남방불교, 일본불교에 비해 한국불교의 인지도는 한참 뒤졌음을 우리 불교계도 인정한다.
물론 ‘중생구제’의 원을 세워 나를 버리고 구름처럼 물처럼 떠도는 눈푸른 운수납자(雲水衲子)들은 우리 불가의 보물이다. 안거(安居) 때마다 전국의 선방이며 사암에서 뼈를 깎는 용맹정진 수행에 매진하는 선승들은 대승 한국불교의 존심이자 큰 자랑거리가 아닐 수 없다.
요즘 도심 선방에는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을 위한 납자들의 삼매 수행에 영향 받은 일반인들이 구름처럼 몰려든다. 욕심과 망상에 빠진 허상의 나를 놓고 ‘참 나’를 찾아 세상의 목탁이 되려는 불교 신도며 비 신도들이 나날이 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속에서 한국불교의 우수성이 널리 알려지지 않아 자리를 못 잡는 것은 바로 ‘우물 안 개구리’격의 자기 안주 때문일 것이다.“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제대로 알리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목소리가 스님들 사이에서 높아지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굳이 ‘세계화’와 같은 거창한 명제를 들먹거리지 않더라고 우리가 가진 우수한 것들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열 것은 열어야 한다는 당위 차원의 뒤늦은 자각이라고나 할까.
이달 초 174차 조계종 중앙종회 임시회의에서 종회의원들이 “한국불교의 불기(佛紀)가 잘못됐다.”며 바로잡을 것을 만장일치로 결의했다. 최근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의 학력위조를 둘러싼 종단의 어수선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중앙종회에서 ‘불기 수정’의 한 뜻을 모은 것이 여간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올해 연두기자회견 때만 해도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이 “한국불교의 불기를 바꿔 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잘라 말했던 터여서 종회의 만장일치 결의에 더욱 불교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불기가 무엇인가. 불멸기원(佛滅紀元)을 줄인 말 그대로 석가모니 부처님의 열반 해를 기준으로 삼은 연대표시이다. 종단의 이런저런 행사나 절집들의 크고 작은 불사에 어김없이 등장할 만큼 불가에선 당연한 것으로 통한다.
그리스도의 기원, 즉 서력기원(西曆紀元)이 아닌 불기를 굳이 씀은 바로 부처님 세상과 불자들의 정체성 상징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오랫동안 써온 불기를 바꾼다고 한국불교의 최고 입법기관인 중앙종회가 나선 것이다.

내막은 이렇다. 세계의 불교계가 모두 다 불기 2540년을 쓰는데 우리만 2541년을 고집해 세계불교계의 외톨이로 남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불교학자들의 조사에 따르면 불기 2541년을 쓰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우리의 불기를 그대로 따른 중국, 베트남, 스리랑카 정도에 불과하다.
그동안 국내외의 불교대회나 행사 때 이 불기 표기로 인한 마찰이 빈번했고 심지어는 행사가 무산된 적도 있었다. 기회 있을 때마다 불교학자며 스님들이 불기 수정 문제를 들고 나왔으나 작은 목소리로 묻혀버리곤 하다가 이번 중앙종회 결의로 분위기가 바뀐 것이다.
2∼3년 내에 한국서 열릴 굵직굵직한 국제 불교행사에서 모두 세계 공용불기를 따라 올해 기준 불기2540년을 쓸 것을 결정해놓은 사정을 감안할 때 종회의원들도 더 이상 불기 수정을 늦출 수 없다는 현실적인 압박감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그 때문인 지 중앙종회는 이번 만장일치 결의 후 아예 불기수정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나섰다. 내친 김에 뿌리를 뽑자는 생각에서다. 특위는 우선 우리 불교계가 세계불교계의 불기보다 한 해 앞서가기 시작한 원인부터 찾아낼 예정이다.
세계 불교국가들이 1957년 네팔 카트만두 WFB에서 1957년을 불기 2500년으로 책정해 공통불기로 쓸 것을 결의한 뒤 한국도 1966년 조계종 임시중앙종회에서 이 ‘불기 2500년’설을 채택해 모든 종단이 써왔는데 왜 한해 앞서가기 시작했는지 연유가 불분명하다.
특위는 11월 정기 중앙종회에서 불기수정 결의를 최종 요청할 예정인데 종회에서 무리 없이 통과할 것이란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종단 내에선 출판물이며 종단사 등의 표기를 모두 바꿔야한다는 현실적인 어려움 토로도 없지 않다. 하지만 바꿀 것은 더 이상 늦추지 말고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앞선다.
이번 중앙종회에서 불기 수정 발의와 특위 구성에 앞장섰던 한 스님은 “한국불교가 오랜 선불교의 전통과 역사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로 나가지 못한 채 답보에 빠진 것은 바로 우리만의 고집에서 헤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스님의 말대로라면 우리 불교계의 고집은 비단 불기 수정문제에만 머물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바꿔야할 게 많다는 말이다.
최근 계룡산에서 만난 한 외국인 스님은 조심스럽게 놀라운 이야기를 꺼냈다. 한국에서 50∼60명 정도의 외국인 스님들이 수행, 혹은 포교활동을 하고 있지만 그 세배쯤 되는 외국인들이 한국불교를 떠난다는 귀띔이었다. 한국의 문화적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한 탓이 큰 이유이긴 하지만 그 중심에는 한국불교의 폐쇄적인 고집성이 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한국불교가 열어야 할 문은 높고 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