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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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가불자의 귀의와 수행










                                                                 

달라이 라마 | 티벳 승왕



귀의한다는 것의 의미
귀의의 요점은 불교가 해탈을 가져오는 수단으로써 효과가 있다는 것을 깊이 믿고, 해탈을 얻으려는 강한 열망을 갖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 부처님(佛)은 우리에게 길을 보여주는 스승이고, 불교(法)는 실제적인 귀의의 대상이며, 승가(僧)는 같은 길을 가는 동반자들이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불교에 대한 깊은 확신이 있어야만 부처님과 승가에 대한 깊은 믿음과 존경심이 생깁니다.

다르마끼르띠(法稱, Dharmakirti)는 ≪올바른 인식의 집성서에 붙인 주석 Pramanavarttika≫이라는 논서에서 「부처님은 진리를 깨달은 스승」이라는 사실이 타당하고 믿을 수 있다는 것을 합리적으로 증명하려고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옹호하기 위해서 부처님의 가르침 자체를 정밀히 분석했고, 부처님이 가르친 사성제가 논리와 경험에 입각하고 있기 때문에 믿을 수 있다고 논증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진리로 인정한 다음에야 부처님을 진정한 스승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극히 모호한 분야에 관련해서는 이와 역전된 논리가 적용됩니다. 즉, 어떤 모호한 문제에 대해서 부처님이 설명하신 말씀을 믿을 수 있는 까닭은 부처님이 믿을 만한 분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복합적인 논증 과정입니다. 그런 논증을 받아들이려면 우리가 사성제에 관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확신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누구에게나 사성제를 분석할 자유가 있습니다. 사성제를 개인적으로 깊이 통찰하고 나면, 부처님이 믿을 만한 스승이라고 확신하게 됩니다. 논리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문제에 관해서 부처님의 가르침이 믿을 만하고 합리적이라는 것이 증명되었기 때문에, 모호한 문제에 관한 부처님의 가르침도 믿을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삼보에게 귀의하는 것의 완전한 의미는 불교에 귀의하는 것에서 옵니다.


특별한 의식을 통한 귀의의 목적
불교에는 수많은 계율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보살계, 금강승계, 해탈계(출가자의 계율), 재가자의 계율 등이 있습니다. 보살계를 받으려면 남들 앞에서 받지 않더라도 불상(佛像)이나 탱화처럼 부처님을 상징하는 것들 앞에서 혼자 보살계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금강승계(金剛乘戒)와 해탈계(解脫戒)는 끊임없이 계승되어 온 전통적 계열이 필요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서 받아야만 합니다. 지도자나 다른 사람 앞에서 계(戒)를 받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것을 지키겠다고 서약하는 느낌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양심상 그 약속과 의무를 지키게 됩니다.


재가불자들의 체계적인 수행법
가장 빠르고, 가장 쉽고, 가장 효과적이고, 가장 싸게 드는 불교 수행이 어떤 것이냐고 서양 친구들이 제게 종종 물어봅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런 방법을 찾아내기란 불가능합니다. 그런 것을 찾아내려는 생각 자체가 실패할 징조일지도 모릅니다.
실제로는 하루의 24시간 동안 수행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해진 명상 시간인 실제적인 명상 기간과 명상 후의 기간을 구분합니다. 이것은 명상 기간이든 그 기간이 지나서든 항상 수행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나온 개념입니다.

사실상 우리가 얼마나 수행을 잘 하고 있는지를 가늠하는 시험을 보는 것이 명상 후의 기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명상 기간 동안에 우리의 배터리를 충분히 재충전해서 명상 기간이 끝난 후에 일상생활을 잘 운영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합니다. 배터리를 충전하는 목적은 기계를 돌리기 위한 것이 아닙니까? 그와 마찬가지로 어떤 수행을 하든지 그 수행을 통해서 우리 자신을 준비시켜야 합니다. 육체를 가진 우리들은 일상생활을 피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명상 기간 동안 잘 준비해서 명상 기간이 끝난 후 일상생활을 할 때도 수행의 원리에 따라서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초보자의 경우 처음에는 집중적인 명상 기간이 필요합니다. 수행을 시작할 수 있는 기반이 그 기간 동안에 만들어집니다. 이 기반이 매우 중요합니다. 일단 기반이 생기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일상생활에 적용하면서 살 수 있습니다.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노력 없이는 삶과 수행을 조화시킬 수 없습니다.

진지한 수행자들이라면 더욱 진지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짧은 기도문 몇 편 외우고, 염주를 돌리며 만트라(眞言)를 외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런 행위만으로는 우리 마음을 변화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부정적인 감정들은 무척 강력해서 그것들을 없애려면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끊임없이 수행하면 우리는 확실히 변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