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 동화작가·대전변동초등학교장
얼마 전 일요일에 나는 아내와 함께 선친의 묘소를 찾았다. 예년이나 마찬가지로 성묘 겸 벌초를 하러 간 셈이다. 지난해에 비해 유난히도 무덥고 긴 장마 끝이라서 인지 성큼 다가선 가을은 더욱 청명하기만 했다. 늘 그랬었지만 그 날도 유년이 묻혀버린 고향의 가을은 나를 포근하게 안아주었다. 고개를 숙이기 시작한 볏논은 벌써 풍년을 예약하고 있었고, 당장이라도 차에서 내려 논에 들어가면 그 옛날처럼 우렁이를 한 사발쯤 잡을 것 같은 정서가 느껴진다. 그 뿐만이 아니다. 논두렁 밭두렁에는 콩과 녹두가, 그리고 옥수수밭의 풍성함과 수확기의 고구마 밭은, 나에게 향수를 불러일으켜 주기에 충분했다.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승용차를 큰댁 바깥마당에 주차하고 곧장 앞산으로 향했다. 시냇물을 건너자 바로 울울창창한 숲이 나와 아내를 맞는다. 오솔길로 들어서니 유년시절의 기억들이 더욱 진득진득 묻어난다. 가을이 되면서 점점 높푸르러졌었던 그 하늘 아래서의 추억들이 어제일인 냥 눈에 삼삼하다. 진녹색 솔잎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하늘은 나를 아예 유년의 늪으로 빠뜨리기에 충분했다.‘가을 산은 사촌보다 낫다??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상수리랑 도토리, 그리고 토실토실 여문 알밤이 가득했던 산 속을 헤집으며 바라보았던 그 하늘빛은 지금도 그대로 그리운 청자 빛이었다.
뒤따라오던 아내는 쫙 버러진 밤송이를 바라보며 탄성을 지른다. 그녀 역시 젊은 날 아니, 지난해의 추억에 빠졌나보다. 그래서 벌초를 염두에 두지 않은 사람처럼 산밤을 줍고 싶어 한다. 역시 가을은 푸짐했다. 소나무 사이에 군데군데 서 있던 토종 밤나무들은 지금도 예전이나 마찬가지로 여전히 주렁주렁 밤송이를 달고 있었다. 조금 더 오솔길을 지나니 그 옛날 사슴벌레들을 잡았었던 참나무 숲이 나타난다. 그 때도 울창했던 상수리나무들이었는데 지금은 아름드리가 되어 까마득하다. 조금 더 올라가니 다시 또 몇 그루의 토종 밤나무가 우리를 맞이한다. 
이렇게 고향의 숲은, 세월이 흘러 중년을 지나고 노년기에 접어드는데도 한결같은 모습으로, 나를 유년의 끈으로 묶는다. 물론 이 선산은 전쟁 뒤의 상흔과 선친에 대한 그리움의 추억이 묻어 있는 곳이다. 그래서 더러는 청자 빛 하늘이 아니라 먹빛 깜장 하늘일 때도 많았지만 소박한 이웃들의 따뜻함은 물론 산나물과 버섯, 으름과 다래를 찾아 철마다 곧장 이어진 칠갑산까지 헤맸던 일들이 아련하기만 하다. 시내를 막아 보를 이루었던 작은 저수지에서의 멱 감기와 고기잡이, 얼음배 타기는 특별했었다. 그러면서 선친의 묘소가 있는 이 앞산에서의 추억은 어린 나를 늘 가슴 밑바닥까지 그리움이라는 명제로 다가들게 하면서 아픈 흔적을 만들어주었다.  
그 무렵 그러니까 유년시절에 내가 하던 중요한 일 중에 하나는 학교에서 돌아와 소꼴을 먹이는 일 외에 산을 지키는 일이 하나 더 있었다. 그 때는 나무를 땔감으로 쓰던 시절이라서 산을 지키지 않으면 나무들을 도적맞는 일이 아주 흔했다. 그래서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산 근처에서 소꼴을 먹이며 산을 지키곤 했었다. 4월이 되면 진달래꽃을 꺾어가며 산을 지켰고, 초봄에는 칡뿌리를 캐가면서 산을 지켰다. 그 중에서도 소를 몰고 와 지켰던 가을 산이 제일 좋았다. 산밤이 많았기 때문이다. 장대를 하나 들고 가면 알밤을 많이 털어 낼 수 있었다. 게다가 상수리나무 밑에 가면 사슴벌레를 잡을 수 있어 재미있었다. 알밤과 사슴벌레를 양손에 들고 산 숲에서 즐거워했던 일이 어제 일처럼 선하다. 
하지만 이 산은 내게 즐거운 추억이 서려 있게 한 곳만은 결코 아니었다. 산등성이로 올라가다 남쪽으로 향한 7부 능선에 자리한 선친의 묘소는 나의 유년을 늘 고독하게 했다. 소를 몰고 풀을 뜯기다보면 더러는 산등성이까지 올라왔고 이내 선친의 묘소에 닿았다. 전쟁 중에 젊은 나이로 세상을 뜬 선친은 내게 언제나 그리움의 대상이었다. 지금까지도 나의 사전에는‘아버지'란 실체가 없다. 유년에 쌓였던 그리움뿐이다. 
  
아내가 알밤을 주워 내게 내민다. 속껍질까지 벗긴 노오란색 누드(?) 밤을 내민다. 내가 선친을 향한 그리움에 깊이 빠져 있는데도 그 걸 알아차릴 수 없는 아내가 준 알밤이다. 두 알박이 산밤인 데도 제법 알이 굵다. 지난해도 또 저 지난 해에도 이 때쯤 벌초를 하러 와서 알밤을 주웠기 때문에 아내는 이미 알밤 줍기에 익숙해 있었다. 아내의 탄성이 다시 나온다. 나는 아내가 준 알밤을 아드득 깨문다. 고솝다. 참 고솝다. 여덟 살 때 조모가 산에서 주워서 까 주셨던 알밤 맛 못지않다.
나는 아내를 향해 엷은 미소를 흘렸다. 이 풍성한 가을에 아내와 함께 산에 올라올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축복이었다. 결혼 이후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희석시킬 수 있는 최선이 바로‘아내였기 때문이다. 사춘기에 접어들 때까지도 소는 소대로 산등성이에서 꼴을 뜯고, 나는 선친의 묘마당에 앉아서 밤나무랑 참나무 그리고 소나무들이 자라는 산밑을 바라보다가는 이따금 고개를 들어 청자빛 하늘을 바라보곤 했었다. 그 때 나는 해가 저물어 별빛이 묻어날 때까지 선친의 묘소에서 서성이다가 서둘러 집으로 내려올 때가 참 많았었다.
그 무렵 조모께서는 선친에 대한 외로움을 타는 나에게 그런 말씀을 하시곤 했었던 기억이 난다.‘사람은 죽으면 별이 된다"는 것이다. 조모의 그 말씀을 나는 오래도록 믿었었다. 나도 언제인가 죽으면 하늘에 올라가 별이 되고, 그 때 별이 된 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당시 조모의 그 말씀은 내게 큰 위안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 결혼 후부터는 아내가 그 역할을 담당해왔다. 아이들이 생기고 가족이 형성되면서 그 외로움은 조금씩 엷어졌지만, 그런데도 유년에 가라앉은 앙금은 이 풍성한 계절에도 쉽게 지워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 가을 산을 찾아 와서도 그리움의 잔재들을 떨구지 못하는 것이다. 스물여섯에 산화된 선친의 넋이 지금도 내 가슴을 자꾸 무너뜨린다.
다시 아내가 알밤을 주워서 내게 내민다. 조금 전과 같이 토실토실한 누드 알밤이다. 나는 그 알밤을 건네받아 아드득아드득 깨문다. 고솝다. 참 고습다. 정말 유년 시절에, 조모가 까 주었던 알밤 맛 그대로이다. 나는 흘깃 아내를 뒤돌아본다. 그러면서 선친의 묘소가 있는 7부 능선을 향해 좁다랗게 뻗어있는 오솔길을 따라 바지런히 걷기 시작한다. 아내도 이제 더 이상 알밤을 줍지 않고 내 뒤를 따라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