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야사 ‘마야카페’에서
                             
이서연
시인
설마, 그랬다. 설마 했다. 설마 정말 그럴까… 그러다 구름은 바람결에 따라 하늘의 무늬가 되듯 설마하다가 이 순간도 세월의 결로 묻히곤 한다. 엄마처럼 열심히 살았는데 그냥 지나가는 시간이 있었겠는가 하지만 아무리 아끼며 살아도 지나간 시간이 아깝기만 하다. 엄마도 그러셨으리라. 그런들 어쩌랴, 조금이라도 세월 앞에 덜 후회하고 삶 앞에 덜 미안할 방법은 지금 이 순간 조금만 더 겸허하게 열심히 사는 것일 뿐.  
가을이라는 시간이 들어서 있는 곳이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해마다 조금 다르게 가을을 맞이하게 되고, 가을에 묻히게 되고, 함께 가을이 되는 곳이 있다. 특히 어머니가 보고픈 날, 마음으로 어머니의 뜰을 짓게 하는 도량이 있다. 부처를 낳은 마야부인의 마음을 중생 속으로 들어가 어머니 마음으로 수행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창건된 사찰 마야사. 이제 겨우 열 돌을 넘기는 사찰이지만 어제 저 곳에 있던 돌 하나가 오늘은 이곳에 자리하면서 풍경이 달라지듯 때를 기다려 핀 꽃 하나, 나무 한 그루, 돌멩이 하나하나가 부지런히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 간다.
주차장에서 돌계단으로 올라가는 길에 휘어진 감나무가 마치 일주문처럼 서있다. 그 아래에는 ‘회두시안回頭是岸’이라 하며 “머리를 발 아래로 돌려 보니 내가 서 있는 이곳이 극락이다. 행복은 멀리서 아니라 지금, 여기다”는 글귀가 있어 저절로 마음부터 굽히고 도량으로 들어가게 된다. 마야부인이 35세 쯤 부처님을 낳았을 것이란 추정에 의해 35평 전통양식으로 만들어졌다는 대웅전에 들어가 삼세불에 참배를 한 후 도량을 둘러보았다. 법당 뒤편 작은 코끼리 두 마리가 코로 인사하는 룸비니 동산의 작은 산책로로 올라가면 마야사 도량이 한 눈에 들어온다. 아늑한 마당에 하늘이 다 담길 거 보니 결코 작지 않은 도량이다. 꽃이 있고 물이 있고 돌이 있는 자리 자리 그 어디 하나 그 아름다움이 허술하지 않다. 최대한 꾸미지 않으려고 한 작은 연못은 그 자연스러움 자체가 아름다움이다. 연못 곁에는 소원의 갯수만큼 작은 연등을 달아 놓은 나무가 추억이라도 만들고 가라는 듯 그늘이 되어 주고 있다. 손에 만져지는 것이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는 바람인것처럼 이렇게 가꾸지 않은 듯이 잘 가꾸어진 도량이 정갈한 어머니를 느끼게 한다. 
코끼리가 불교에서 상징적 동물이 된 것은 마야 왕후가 태몽으로 흰코끼리를 품은 꿈을 꾼 후 부처님을 낳으셨기 때문인데 후손이 조상을 생각하고 조상이 후손을 생각하는 법당(위패모신법당) 앞에 있는 자연석 하나가 작은 코끼리를 닮아 인상적이다. 요사채 앞은 그냥 지나치기 어렵게 하는 돌이 있다. ‘신비한 소원돌’이다. 갑자기 ‘내 소원이 무엇이었나’헤아려 본다. 하나만 빌어야 하는데 어떤 소원이 우선인지 잠시 골라보고 속는 셈치고 소원돌을 들어본다. 이번엔 소원을 이룰 듯하다. 그 옆에 세월을 좀 가늠하기 어려운 돌부처님이 내 속을 보고 계신 듯 흐뭇해하시는 거 보니 분명하다. 그래, 이곳은 마음이 닿는 풍경에서 소원처럼 지금의 행복을 건져가게 한다. 어머니의 마음이 그러했고, 지금 이곳에 담긴 풍경이 그러하다. 이 도량은 봄이면 봄이 가득했을 것이고, 여름엔 여름이 가득했을 것이다. 이제 가을이 채워지는 자리마다 아름다움을 터뜨리니 겨울에도 분명 그러할 것이다. 곳곳에 앉아서 책이라도 보고 싶은 테라스가 있다. 이곳에서 잠시 어디선가 나를 보고 계실 어머니께 가을 엽서를 써 본다.
나에게 세상의 관을 주신 어머니
 
가을이 그대처럼 옵니다
그리고 계절이 그 손길처럼 무르익습니다
눈으로 오는 시간을 맞이하니
마음이 오롯하게 그대를 향합니다
그대도 보이시나요, 당신의 계절이
그대가 눈도장 찍은 듯 알알이
여여한 미소가 열리는 이 결실
 
오늘, 그대의 가슴에 빛나는 관을 드립니다
-어머니 닮은 가을에 마야사에서-
위패모신 법당에서 멋진 별채로 내려가는 길엔 ‘월하문月下門’이라는 작은 문이 있다. 달이 뜨면 내려가는 곳이라 손님을 맞이하는 마음으로 이름을 지었다는데 ‘나에게 들어가는 문’이라는 생각으로 들어갔다. 월하문을 지나면 이런 뜰 하나 갖고 싶은 정원이 나온다. 그리고 이젠 산사에 가서 없으면 허전할 것 같은 공간, 카페가 있다. 헌 한옥을 개조했다는데 처음부터 자연의 풍경과 어울리게 설계한 현대식 미술관처럼 느껴진다. 교육관에서 불자들이 열심히 찬불가를 연습하는 소리를 들으며 발 딛는 곳마다 꽃과 풀들을 다듬어 놓을 길을 따라 ‘마야카페’로 들어갔다. 순간, ‘내 방도 이렇게 치우지 못하는데…’하는 생각을 하며 허술하지 않게 마음도량을 잘 가꾸고 있는 수행자의 자세를 정갈한 풍경에서 볼 수 있었다. 카페 안에서 볼 바깥풍경이 궁금했다. 우선 들어가자마자 진하게 풍겨 나오는 향기에 그만, 더 고를 것도 없이 가을을 닮은 커피를 두 잔 주문했다. 늘 함께 해도 따로 온 듯 바깥을 서성이는 이도 오늘만은 가을이 담긴 커피 한 잔 하겠지 하는 마음에 묻지도 않고 주문했다. 커피가 내려지길 기다리는 동안 카페를 둘러 보았다. 넓은 창으로 들판이 보이는 풍경도 좋지만 이 자리도 앉고 싶고 저 자리도 앉고 싶을만큼 자리마다 진열된 소품들이 미소를 짓게 한다. 카페마다 특유의 분위기가 있지만 카페가 다 그렇지 뭐 할 수 없을만큼 이곳은 이곳대로 공간 활용을 잘 한 인테리어에 마음 끌리어 이층까지 갔다. 내가 만약 지금 네 다섯 살 된 아이를 갖고 있다면 그 아이와 함께 앉아 책을 보고 싶은 공간이 눈에 들어 왔다. 만약 다시 아기를 키울 수만 있다면 저 공간에 녀석을 앉히고 함께 책을 읽는 풍경이 되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도솔천에 머물고 계시는지 모르겠지만 가끔 마야부인도 어쩌면 내 마음이리라 싶을 때 커피가 나왔다는 진동벨이 울렸다. 차를 받아 큰 창을 다 차지할 자리에 앉았다. 그러다가 돌 하나를 옮기고, 그 돌의 자리가 전체 풍경에 맞는지 이리 저리 보시며 꼼꼼하게 따져보시는 일꾼(?)스님이 너머로 보였다. “삶은 어차피 불편한 것이다”라더니 “꽃을 사랑한다”는 책을 내시고 늘 풀과의 전쟁을 수행처럼 치루시는 현진 스님, 이 도량을 가꾸시는 그 분이구나 싶은데 그야말로 향냄새보다 흙냄새가 더 짙게 풍기시는 그 분에게 이런 인테리어 감각이 있음이 믿기질 않았다. 커피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커피를 내려놓는 곳마다 진한 가을이 커피 잔으로 빠진다. 바람도 가을, 꽃도 가을, 나뭇잎도 가을 그리고 커피를 마시는 내가 온전히 가을이 된다.
나무들이 이야기를 거는 시간 
꽃들이 덩달아 말을 건네 온다
-이대로 올 때 갖고 있던 맘 벗어 놓고 가
-바람은 거처 없이도 풍경을 이루지
-그 풍경만 챙겨가
        
어머니의 향기가 흙에서 계절을 이룰 때
거처가 없던 시간들이 내 거처에 머문다
산사에 가을이 들면 찻잔에 어머니가 깃든다
-‘마야카페’ 가 커피를 내리는 시간에-
인연법이 따로 있겠는가. 그렇게 마음 가는 곳에서 나무마음, 꽃마음, 낙엽의 마음을 지어보고, 다시 그 마음을 다 지우고 오는 이치를 깨닫고 오는 거겠지. 차 한 잔에 낙엽 하나 지워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