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환
불광출판사 제작부장
『사찰 속 숨은 조연들』
정가 30,000원
노승대 지음
170×230mm|456쪽
불광출판사 펴냄
절집의 ‘신 스틸러(scene stealer)’
그들의 진귀한 비밀을 캐내다!
웹툰 <신과 함께>에서 주인공 자홍을 심판하던 명부의 왕들, 영화 〈사바하〉에서 악귀를 잡는 악신으로 소개된 네 명의 장군 신들, 이들은 누구이고, 왜 우리 절집에 자리하고 있는가.
자, 사찰을 하나의 무대라고 상상해 보자. 그 무대의 주인공은 단연 ‘부처님’이다. 하지만 우리의 시선을 끄는 ‘황금 조연’들이 있으니…. 그들은 사찰에 들어오는 이들을 향하여 주먹을 날릴 것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거나, 여섯 개의 팔에 날 선 무기를 지닌 채 성난 표정을 짓고 있다. 그 옆엔 이 분위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천진한 미소를 지닌 동자들이 뛰놀고, 벌거벗은 사람들에게 벌을 주면서도 한없이 바빠 보이는 존재도 있다. 도대체 이들은 누구이고, 왜 이곳에 자리하고 있는가?
전각과 불상, 탑 등을 이야기하는 여느 문화재 안내서와 달리 조각이나 그림으로 남아 절집에 모여 사는 동식물, 우리 전설 속 존재 등 뜻밖의 대상을 소개한 전작으로 주목을 받은 저자. 이번에는 가히 신神이라 할 수 있는 사찰 속 기묘한 존재들의 진기한 내력을 뒷조사한다. 그렇다면 40여 년 사찰 문화답사 경력의 전문가인 저자가 만난 ‘절집의 숨은 존재’는 과연 누구일까?
절집의 신비한 존재를 찾아 떠나는 모험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었다
1부는 불교에서 말하는 사후세계, 즉 명부冥府의 존재에 관한 내용이다. 지옥 중생의 구제를 대원大願으로 삼은 지장보살과 협시夾侍인 도명존자‧무독귀왕, 그리고 열 명의 지옥 심판관인 시왕과 중생의 생전 선악善惡 행위를 빠짐없이 기록해 보고하는 선악동자 등이 그 주인공이다.
2부는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 그리고 그 가르침을 따르는 모든 자를 보호한다고 하여 ‘호법신중護法神衆’이라 불리는 존재들의 이야기이다. 사찰 입구에서 위협적인 모습으로 방문자들을 맞이하는 사천왕과 금강역사, 여덟 그룹의 신중 부대인 팔부신중, 신중들을 호령하는 젊은 장군 신 위태천 등이 거론된다.
마지막 3부는 부처님의 가장 가까이에서 오른팔과 왼팔 역할을 하는 협시, 그리고 괴팍한 성격을 가졌지만 중생의 소원을 잘 들어준다고 알려진 영험한 존재 나한을 다루었다.
저자는 이들 존재가 탄생하게 된 배경부터 신앙의 대상이 되어 우리 사찰에 자리하게 된 경위까지 거의 모든 것에 대해 추적한다. 그 근거는 종교와 역사의 오랜 문헌과 기록, 민간에 이어져 온 설화와 신화, 옛 인도 땅과 중국, 우리나라 등에 남아 있는 문화유산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저자는 이들을 종합하여 이제 미지의 존재, 미지의 공간이 되어버린 이 책의 주인공들과 그 세계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는 걸 목표로 한다. 한 예로 망자가 경험하게 될 명부 여행의 과정을 한국판 <신곡>을 그리듯 생생하고 흥미진진하게 묘사하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우리 불교문화와 전통문화 속 진귀한 세계로 떠나는 모험에 기꺼이 가담케 한다.
한국형 판타지의 신 스틸러가 되다
사실 우리는 비단 사찰의 조각과 그림에서뿐만 아니라 만화, 영화, 드라마 등을 통해 의외의 순간 이들을 만나왔다. 각 부에 소개되는 사찰의 신비한 존재들은 한국형 판타지의 ‘신 스틸러’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경우를 꼽자면, 웹툰 원작의 영화 〈신과 함께〉에는 주인공인 망자亡者 자홍의 생전 선악善惡을 심판하는 명부의 존재로 염라대왕을 필두로 한 ‘시왕’이 등장한다. 영화 〈사바하〉에는 악귀를 잡는 악신으로 ‘사천왕’이 소개되고, 인기 만화 『극락왕생』에는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 ‘문수보살’을 비롯하여 주인공을 돕는 ‘도명존자’와 그의 라이벌 ‘무독귀왕’이 등장한다. 제목을 상징적인 의미로 차용하는 경우도 있는데, 영화 〈아수라〉나 〈야차〉의 경우가 그렇다.
이렇듯 친숙하고도 낯선 존재들은 불교의 세계관을 응축한 공간 안에 조각이나 그림으로 봉안되어 나름의 일가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삶과 죽음의 타임라인 위에서 현실적인 고통으로 신음하는 중생의 구제를 위해 저마다의 임무와 역할을 수행한다.
신비함 이면에 새겨진 거대한 역사
놀라운 것은 이들 이면에 새겨진 역사적 맥락을 더듬어 볼 때 거대한 지문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기원전 인도에서 서역, 중국을 거쳐 우리 땅에 도래하였다. 더욱이 그 오랜 기간, 광대한 지역을 건너오며 각 지역의 문화와 습합‧변화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는 그 문화권에서 숭앙된 타 종교나 민간신앙은 물론 전쟁이나 기근 등 당시 사회적 분위기나 사건 등의 영향을 받은 결과이다.
한 예로 신중 가운데는 비슈누, 시바 등 힌두교의 신이나 우물 신, 측신 등 우리나라 재래신도 포함된다. 한편 임진왜란, 병자호란과 같은 혼란 상황 속에서 조성된 조선시대 사천왕상의 발밑에는 왜군, 청나라 병사의 조각이 악귀 대신 자리한다.
중생의 삶에 더욱 가까운 존재로 민중에게 있어 자신들을 지켜줄 수호신이자 복, 장수 등을 빌 사복신賜福神이 된 불교의 신. 이들은 당시 사람들의 염원과 소망, 불안과 고통을 읽을 수 있는 역사적 증거로서 단순한 흥미만으로 읽어 넘기기 힘든 측면이 있다. 하지만 과거부터 삶의 여러 순간 그들을 향해 기도해 온 흔적은 점점 사라지고 세대를 거듭하며 생경해졌으며 더욱 신비하기만 한 존재가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단순한 흥미 이상의 의미를 지닌 이들의 오리지널리티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 과정에서 독자는 절집에 자리한 이들의 오랜 역사에 한 번 놀라고, 신비함 이면의 진짜 의미에 두 번 놀라게 될 것이다.
이제 저자의 안내에 따라 저승인 명부는 물론 불교의 신들이 사는 하늘세계와 부처님의 일가를 이룬 협시‧나한의 세계를 함께 탐험해 보자.
책속으로
원래 인도의 고대의 베다신화에는 하늘을 관장하는 브라흐마Brahma와 땅을 관장하는 프리티비Prithivi가 등장한다. 이 프리티비를 지신地神, 지모신地母神이라고도 하는데, 만물의 생육을 관장하고 망자亡者를 보호해 주는 신이다. 이 지모신을 산스크리트어로 크시티가르바Ksitigarbha라고 한다. 여기서 크시티는 땅을, 가르바는 모태, 함장含藏을 의미한다. 곧 대지가 무수한 종자를 품어 길러주고 있다고 하여 지장地藏이라 의역한다. -19쪽
시왕 중 우두머리 격인 염라대왕은 망자의 과거를 모두 비추는 업경대業鏡臺를 통해 망자의 생전 악업을 심판한다. 그에 비해 지장보살의 구슬은 망자의 착한 인연을 다 비춘다. 곧 염라대왕의 업경대가 죄인을 벌주기 위해 지난 잘못을 다 밝혀내는 도구라면, 지장보살의 구슬은 조그마한 착한 행위라도 찾아내 지옥에서 구원하기 위한 도구인 것이다. -40쪽
겨우겨우 강을 건너면 커다란 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남녀 두 노인이 지키고 있는데 노인은 나무에 옷을 걸어 주는 현의옹懸衣翁이고, 노파는 망자들이 입고 있는 옷을 벗기는 탈의파奪衣婆다. 노파가 회초리를 들고 망자들이 걸치고 있던 옷을 매정하게 벗기면 노인은 그 옷을 나무에 건다. 이 나무는 옷을 받아 거는 나무, 즉 의령수衣領樹이다. 이때 벌거숭이가 된 망자들은 생전의 기억이 사라진다. 또 망자들의 죄업 무게에 따라 옷을 건 나무의 휘어짐이 다른데, 초강대왕은 그것을 보고 재판을 하게 된다. -75쪽
우리의 전통 설화 속에 등장하는 저승사자는 세 명이 한 조다. 강림차사降臨差使와 이승차사 이덕춘李德春 그리고 저승차사 해원맥解怨脈이 그들인데, 강림차사가 우두머리다. 차사差使는 사자使者와 같은 의미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함흥차사咸興差使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 왕명으로 파견되던 사람이다. 시왕이 죽은 사람의 넋을 데려오라고 파견하던 관리가 바로 사자, 차사다. -150쪽
사천왕은 원래 인도 재래의 민간신이었다. 수미산 높은 곳에 살며 제석천의 명을 받들어 중생의 세상을 지켜 주는 호세신護世神이자 방위신方位神이었다. 불교가 일어나며 인도 재래의 신인 제석천이나 범천梵天을 받아들였듯 사천왕도 불교에 흡수되어 부처님을 호위하고 불법을 지키는 신으로 변모한다. -179쪽
정작 백제의 사천왕 신앙은 일본에 남아 있다. 백제의 장인 3명이 건너가 세운 일본 최초의 왕실 사찰이 바로 오사카에 있는 시텐노지[四天王寺]이기 때문이다. 쇼토쿠[聖德]태자의 후원으로 593년에 완공된 시텐노지는 세계 2차 대전 때 파괴되어 다시 재건한 건물이다. -187쪽
나반존자는 삼명과 자리이타自利利他의 능력을 모두 가지고 있다. 삼명은 전생을 아는 숙명명宿命明과 미래를 꿰뚫어 보는 천안명天眼明, 고통의 원인이 되는 번뇌를 다 끊어내는 누진명漏盡明으로 자신과 타인에게 유익한 삶을 살 수 있게 한다.
이러한 능력 때문에 나반존자는 조선시대 후기 국정이 문란해지고 국력이 약화되는 데다 전염병까지 기승을 부리자 의지할 곳 없는 백성들의 구원자로서 크게 부각되어 나타났다. 독성각은 19세기 이후, 곧 1800년대 이후에 본격적으로 나타났다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44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