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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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심 있는 불자의 길

정우頂宇 스님
본지 발행인 | 구룡사 회주



49일간 우란분재일盂蘭盆齋日 천도재薦度齋에 동참해주신 봉사자들, 합창단, 그리고 기도에 함께하셨던 불자님들께 찬사를 보냅니다.
회향법회에 불자님들을 만나니 장엄함과 간절함을 언설로는 표현할 길 없는 환희법열이었으며 거룩한 모습에 서로를 찬탄하는 박수를 보내게 됩니다.
여래사 전 주지 각현 스님도 천성산 무문관無門關에서 하안거 정진을 하고 이 법석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계묘년癸卯年 하안거에 정진하고 해제를 한 모든 스님들께도 찬탄을 올립니다. 음력 4월 보름 결제結制하여 7월 보름 해제解制까지 3개월 동안 대중스님들이 부처님 회상에서 정진하는 기간을 하안거夏安居라 합니다. 결제의 사전적 의미는 모으다, 묶다, 매다, 꾸미다, 짓다, 다지다는 뜻입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대중이 합하면 못할게 없습니다.
나뭇가지도 하나일 때는 힘을 발휘할 수 없지만, 둘을 합하고 셋을 합하고 넷을 합하면 쉽게 부러지지 않듯이 그렇게 대중이 운집해서 모여 정진하면 그 에너지의 파장은 상상할 수 없게 커질 것입니다.
대중이 모여 정진 하는 동안 초하루와 보름날이 되면 포살布薩을 합니다.
그리고 안거 기간 중 마지막 보름날이자 하안거 해제일인 7월 백중날에는 자자일自恣日이어서 대중들이 3개월 동안 지내오면서 있었던 여러 가지 의견들을 개진하고 참회하며 화합하기 위해서 허물을 덜어내는 시간을 가집니다.
그 날이 바로 하안거 해제일이자 백중이자 우란분재 회향일이기도 합니다.
해제는 회향廻向한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새로운 시작을 뜻하기도 합니다.
우란분이라는 말은 박쥐가 거꾸로 매달려 있는 것처럼, 불완전하고 불확실한 중생계衆生界의 오탁악세五濁惡世에서 살아가고 있는 모든 중생들에게 부처님의 법을 전하는 날이라 생각을 해도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회향을 잘 하고 부처님 법을 전하기 위해서는 신심信心이 있어야 합니다. 서원誓願이 있어야 합니다. 진지한 삶이 필요합니다.
회향할 줄 아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신심은 불성佛性을 믿고 인과因果를 믿는 것입니다.
인과를 믿고 윤회輪廻를 부정하지 않는 사람을 불자佛子라고 합니다.
신심이라는 말은 원인과 결과에 대한 인과를 믿는다는 의미입니다.
중생심은 밖으로 분별상分別相을 드러내서 무엇인가를 구하려는 마음입니다. 그 중생심衆生心으로 분별상을 드러내면 우리는 괴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열반경涅槃經』에도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을 닦으면 몸도 마음도 편안해 지고 의심도 모두 깨뜨려 여의게 된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몸이 고요해지고 마음도 편안해질 수 있는데 왜 우리는 이렇게 분주한 생각 속에 매여서 사는 것일까요. 그것은 무지無智한 무명無明이 의심병疑心病으로 발현되어 탐욕貪慾에 휩싸여 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탐욕이 많다는 것은 곧 어리석다는 것입니다. 어리석으면 어리석은 것만큼 어둠에 깃들여 있어서 늘 불안하고 초조하며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 모습을 우리들은 흔들림 없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규범規範속에 세상을 살아가려고 노력을 하는 선정삼매禪定三昧를 닦아서 마음이 요동치지 않도록 하며 지혜智慧를 잘 닦아서 의심을 타파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몇 년 전 어느 스님께 그런 말씀을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스님, 살다 보면 앞서거니 뒷서거니 다 그렇게 세상을 떠나야 하는데, 살아생전에 세상을 떠난 것처럼 살아가면 어떨까요.”
2006년도에 통도사 보광전 선원에 내려가면서 지금까지 구룡사에 주지 소임 볼 때처럼, 일일이 간여한 적은 없었습니다. 일산 여래사는 97년에 기공식을 해서 2,000년에 준공을 하고 23년간 여래사 소임자 스님들이 있지만, 한 번도 이래라 저래라 해 본 적 없습니다. 살아생전에 세상을 떠난 것처럼, 꼭 그렇게 하지 않아도 지켜볼 수는 있지 않겠는가 싶은 마음에서 이였습니다.
우리 속담에 ‘첫 단추를 잘못 꿰면 마지막 단추를 꿸 수 없다’고 했습니다.
시작이 소중하고 출발점이 얼마나 새로운 것인가를 보게 하는 일들이 일상적으로 많이 드러나는 뜻이기도 합니다. 살아있으면서 떠난 것처럼, 세상을 지켜볼 수 있는 안목眼目이 있으면 그를 지혜로운 사람이라 할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보리심菩提心이 증장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45년 동안 정법을 펼치셨는데, 가장 오래 머무시던 곳이 『금강경金剛經』 설법 지 기원정사祇園精舍입니다. 기원정사에서 21년을 계셨습니다. 그리고 최초의 사원이자 『법화경法華經』을 설법하셨던 왕사성王舍城의 영축산靈鷲山 죽림정사竹林精舍에서 8년간 계셨습니다. 그리고 이곳저곳 인연이 있는 도량을 다니시며 정법을 펼치시다 룸비니를 100여km 남겨두고 그곳을 향해 누우셔서 열반에 드셨습니다. 부처님은 길에서 태어나시고 길에서 전법하시다가 길에서 떠나신 모범적인 삶을 사셨습니다.
가비라국이 코살라국에 합병당할 때에는 쿠시나가라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계셨는데, 가비라국을 침범해 오는 코살라국의 왕에게 무언無言의 설법을 하시기 위해 뙤약볕 죽은 나무 밑에 서 계셨습니다. 그 뜻을 헤아린 왕이 돌아가기를 세 번 했었는데, 네 번째 전쟁을 일으키자 가비라국의 운명이 거기까지임을 직관하시고 더 이상 뙤약볕에 나가시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부처님 생전에 가비라국은 코살라국과 합병되는 그런 일을 겪기도 했습니다. 금년 10월이면 구룡산 자락에 온지도 어언 38년이 됩니다.
부처님은 제일 오래 계셨던 곳이 기원정사에서의 21년인데, 정우는 구룡산 자락에서 불자들과 함께 38년을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는 불현듯 내가 너무 오래 머무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연이 있다면 더 있어야 되겠지만, 마당에 서서 한 분 한 분 옛 인연들을 반기면서 잊지 않고 오시는 그 불자들과 합장으로 인사를 나누면서 참 반갑고 기쁘고 고맙다는 마음은 여전 하였습니다.


어떤 종교이든지 종교를 믿게 되면 그 종교는, 우리네 생활의 일부가 되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 사찰에서, 각 가정에서 우리네 생활의 일부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수처작주隨處作主라고 했습니다. ‘내 머무르는 곳에서 늘상 주인이 되어라’는 가르침입니다. 주인은 군림하는 사람이 아니라, 주인은 하인처럼 일을 해도 주인입니다. 주인이 하인처럼 산다고 해서 그 사람을 하인이라 여기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하인이 주인 행세를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주인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하인이 주인행세를 한다고 주인이라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 역시 어리석은 사람일 것입니다.


그래서 관세음보살님이나 지장보살님을 기도하면서 염송하고 정진하는 것은 우리도 부처님 같이, 우리도 관세음보살님, 우리도 지장보살님처럼 대자대비大慈大悲 보살행원菩薩行願을 익히고 실천하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기도祈禱한다는 것은 그런 마음가짐, 그러한 행동을 평상시에 늘 잊지 않고 살기 위해서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기 위한 수행방법을 끊임없이 닦고자 하는 것이 기도이고 정진이고 수행 입니다.
맑고 밝은 거울로 사람의 얼굴을 비치면 분명하게 나타나듯이 법을 듣는 법경法鏡도 그와 같아서 누구나 비추이기만 하면 선한 일, 나쁜 일이 분명하게 나타나고 가려지지 않게 되는 뜻을 살펴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런 사람이 선근善根이 있는 사람입니다. 선근이 있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보리심菩提心을 장양長養해가는 사람입니다.
번뇌가 일어나지 않는 곳으로 가까이 다가갈 수 있습니다.
살아생전에 상속해서 염념보리심念念菩提心으로 이어갈 수 있는 사람을 찾아서 물려주는 것은 살아생전에 세상을 떠난 것처럼 할 수 있지만 그것을 유지할 수 없는 사람에게 전해주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도 아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