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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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행증으로 읽는 화엄경 (34) - 신해행증으로 읽는 화엄경 총결산 ②

신규탁(연세대 철학과 교수)


1.
「보현행원품」을 소개하는 것으로 “󰡔화엄경󰡕 총결산”을 하려고 지난 9월부터 제목을 그렇게 붙였다. 여러 번 말씀드려서 대부분의 독자님께서 아시겠지만, 󰡔화엄경󰡕에는 모두 세 종류가 있다. 그중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게 당나라 시대 실차난타 스님께서 번역한 80권으로 된 책이다. 80권으로 번역된 󰡔화엄경󰡕은 조선 시대 내내 출가 스님들도 가장 긴 시간을 투자해서 배우던 책이다. 모두 39품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지난달에 이어 이달에도 소개하는 「보현행원품」은 80권으로 번역된 󰡔화엄경󰡕 속에는 없고, 40권으로 번역된 󰡔화엄경󰡕의 맨 마지막 권인 제40권에만 들어 있다. 40권으로 번역된 󰡔화엄경󰡕의 제1권에서 제39권까지의 내용은, 80권으로 번역된 󰡔화엄경󰡕의 제60권부터 제80권까지 속에 대부분 들어 있다. 즉 중복된다.
매우 특별한 게 40권으로 번역된 󰡔화엄경󰡕 속에 들어있는 제40권의 내용이다. 그래서 당나라 시대 학승들은 제40권만을 똑 떼어내어, 하나의 책으로 만들어 보급했다. 그게 바로 「보현행원품」이다. 이 책은 원체 인기가 좋아 청량 징관(738~839) 스님께서 주석을 붙여서 가행(加行) 독서를 하려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었고, 여기에 그의 제자 규봉 종밀(780~841) 스님께서 다시 주석을 붙여 더욱 내용을 풍부하게 했다. 필자는 2022년 10월에 청량 스님의 주석을 우리말로 번역하여 󰡔화엄경 보현행원품소󰡕(청량 징관 소, 신규탁 번역, 운당문고) 서점에 내놓았다. 이제 그 책을 소재로 《월간 붓다》의 독자님들께 소개하기로 한다.


2.
「보현행원품」의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 때에 보현보살 마하살이 부처님의 거룩한 공덕을 찬탄하고 나서, 여러 보살과 선재동자에게 말하였다” 이 문장을 보면, 보현보살이 부처님의 공덕을 이미 찬탄했음을 알 수 있다. 그 찬탄한 내용이 <보현보살찬불게>라는 이야기는 지난 9월 호에 이미 했다. 여기에 총 95수(首)의 게송이 소개된다는 말도 했다. 그리고 그중 제94수(首)의 게송으로 불공 때에 많이 들을 수 있는 “찰진심념가수지, 대해중수가음진, 허공가량풍가계, 무능진설불공덕”도 소개했다.
이렇게 총 95수首에 달하는 게송으로 부처님의 공덕을 이미 찬송해 마쳤다. 위의 인용문에 나오는 “부처님의 거룩한 공덕을 찬탄하고 나서”란, 바로 그런 정황을 두고 한 말이다. 이렇게 대단하게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했는데도, 그런데도 보현보살은 선재동자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부처님의 공덕은 시방세계의 부처님들이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세계의 티끌 수 같은 겁劫 동안에 계속하여 말하더라도 끝까지 다할 수 없느니라.” 부처님의 공덕이 참으로 드넓고도 하염없이 많음을 보현보살이 선재동자에게 말하는 장면이다.


3.
이렇게 드넓고 많은 부처님의 공덕을 찬양하고 나서 보현보살은 이렇게 선재에게 말한다. “만일 이러한 공덕을 성취하려면, 마땅히 열 가지 넓고 큰 행과 원을 닦아야 하느니라.” 즉, 독자들께서는 “공덕을 성취하려면”라는 본문에 주목하시기 바란다. ‘성취’하는 주인공은 ‘나’이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부처님께서 간직하신 거와 똑같은 그런 공덕을 성취하려는 것이다. ‘성취’란 목적하는 바를 완성하여 내 것으로 만든다는 뜻이다.
「보현행원품」 본문이 시작되기 이전에 부처님의 훌륭한 점을 찬송하여 나열하고, 그런 다음 「보현행원품」에서는 나도 그런 능력을 갖춘 부처님처럼 되려면, 즉 그런 부처님의 공덕을 성취하려면,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 그 실천 방법을 말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부처님이 되려면 어찌해야겠냐는 것이다. 불교는 부처 되자는 종교이다. 신의 구원을 비는 종교가 아니다. 표면만 보면 불교계에 소원을 비는 종교행사들이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방편이고 진실은 부처 되자는 것이다.
부처 되기 위한 실천 방법을 써놓은 책이 「보현행원품」이다. 이 책에는 보현보살께서 실천했던, 또는 보현보살께서 설하신 ‘부처 되는 방법’이 짜임새 있게 정리되어 있다. 그것은 ‘행行’과 ‘원願’이란다. 희망하여, 하고자 하는 것을 ‘원(願 소원)’이라 하고, 지어서 닦는 것을 ‘행(行 수행)’이라고 한다. 그러니, 인과응보로 세상을 설명하는 불교의 논리를 적용하면, ‘행’과 ‘원’이라는 씨앗을 땅에 심으면, 그것에 응하여 완성되는 과실이 ‘부처’인 셈이다. 부처라는 과실을 얻기 위한 원인이 수없이 많지만, 「보현행원품」에서는 핵심적인 열 가지 ‘행’과 ‘원’을 제시하고 있다.


4.
“그 열 가지란, ⑴하나는 부처님께 예경함이요, ⑵둘은 부처님을 찬탄함이요, ⑶셋은 여러 가지로 공양함이요, ⑷넷은 업장을 참회함이요, ⑸다섯은 남의 공덕 따라 기뻐함이요, ⑹여섯은 법문 설해주기를 청함이요, ⑺일곱은 부처님이 세상에 오래 계시기 청함이요, ⑻여덟은 부처님 따라서 배움이요, ⑼아홉은 중생의 뜻이 늘 따라 줌이요, ⑽열째는 모두 회향함이니라.”
이상의 열 가지 행과 원은 80권으로 번역된 󰡔화엄경󰡕의 「십회향품 제25」에 등장한다. 즉, 보살의 공덕을 회향하는 대목에 나온다. 독자 여러분들께서 운허 스님의 번역으로 참조하려면, 구판 <한글대장경>(1966년 간행) 즉 붉은 표지로 장정된 책 515쪽 상단을 보시면 된다. 이런 열 가지, 불자가 행해야 할 수행은 󰡔이구혜보살소문예불법경󰡕에도 등장한다. 필자가 말하려는 것은, 대승 경전 곳곳에 등장한다. 그만큼 중요한 강령이기 때문이다.
위의 열 가지를 크게 묶어보면 󰊱첫째로 ⑴, ⑵, ⑶, ⑹, ⑺, ⑻은 부처님과 관련한 일이다. 󰊲둘째로 ⑷는 자신의 잘못을 참회하는 일이다. 󰊳셋째로 ⑸, ⑼, ⑽은 남에게 잘하는 일이다. 불자들이 절에 정기적으로 다니면서 부처님께 불공 올리고 스님의 법문을 잘 듣고 전도를 잘하는 것이 󰊱첫째를 실천하는 길이다. 그리고 날마다 집에서 󰡔천수경󰡕에 나오는 ‘10악 참회’를 독송하면서, 그 열 가지에 저촉되는 행동이 있는지 반성하는 게 바로 󰊲둘째를 실천하는 길이다. 끝으로 절에서 주관하는 각종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셋째를 실천하는 길이다. 이렇게 하여 열 가지 ‘행’과 ‘원’을 실천하면, 그것을 실천하는 당사자 본인이 부처님처럼 훌륭해진단다. 「보현행원품」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이런 내용이다. 그것이 공덕 성취이고, 소원 성취이다.


5.
그러면 순서대로 ⑴ 예경에 대해서 좀 자세하게 소개해보자. 예경이란 절하는 행위인데, 이에 대해 청량 징관 스님은 크게 10가지로 소개하고 있다. 독자들도 생각해 보기 바란다. 우리 자신들이 어떻게 절을 하고 있는지?
⑴첫째 아만례我慢禮 : 마치 디딜방아가 올라갔다 내려왔다 하듯이 공경심이 없이 하는 절이다.
⑵둘째 창화례唱和禮 : 고성으로 떠들썩하게 하고 의문儀文의 말씀과 구절을 뒤섞어 어지럽히는 절이다. 이 둘은 절이 아니다.
⑶셋째 공경례恭敬禮 : 5륜輪을 땅에 대고 발을 받들어 절하는 것인데, 땅에 대는 이유는 매우 존중함을 표현한다는 뜻이다. 5륜輪이란 머리, 두 팔, 두 발을 합친 숫자이다.
⑷넷째 무상례無相禮 : 법성法性에 깊이 들어가 ‘능-소’의 티를 여의었기 때문이다. 절하는 자신인 내가 ‘능能’이고, 절을 받으시는 대상이신 부처님이 ‘소所’이다. 즉, 절을 받으시는 부처님과 절을 하는 내가 하나 되는 경지의 절이다.
⑸다섯째 기용례起用禮 : 비록 ‘능-소’는 없지만, 몸과 마음을 두루 움직여 마치 (몸과 마음의) 그림자가 모든 곳에 두루 하듯 하여 가히 예경 할 수조차 없는 (부처님께) 절하기 때문이다.
⑹여섯째 내관례內觀禮 : 다만 제 몸속에 계시는 법신 참 부처님께 절할 뿐 (예경의 대상을 마음) 밖을 향해 찾지 않는 절이다.
⑺일곱째 실상례實相禮 : 마음 안이 되었건 밖이 되었건 다 같은 실상이기 때문이다. 밖의 부처님께도 절하고 내 안의 부처님께도 절하는 것이다.
⑻여덟째 대비례大悲禮 : 올리는 하나하나의 절 마다 모두 두루 중생들을 대신해서 하는 절이다. 그들을 어여삐 여겨 절하는 것이다.
⑼아홉째 총섭례總攝禮 : ⑴과 ⑵는 참된 절이 아니니 그건 빼고, 앞의 여섯 가지 절을 포섭하여 꾸려 하나의 관찰(觀)로 삼기 때문이다.
⑽열째 무진례無盡禮 : 제석천의 그물 같은 경계로 들어가서 부처님이든 또는 절하는 행위이든 그 모두가 겹겹으로 다함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