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운
텃밭농부
농업은 변화하고 있다. 여러 방면에서 다양한 주체들이 새로운 활로를 찾고 있는데, 치유농업도 한 사례이다. 경기도농업기술원에서 발행하는 계간지 <경기농업+>은 최근에 펴낸 가을호에서 ‘치유농업’을 비중 있게 다뤘다. 치유농업의 역사와 현장을 살피고, 전망을 그렸다. 이 책자에 따르면, 치유농업(agro healing)이란 농촌의 환경과 식물·동물 등 농업의 소재를 활용해 사람의 심리적·사회적·신체적 건강을 도모하는 활동이다. 
치유농장이 최초로 설립된 것은 1975년 네덜란드이며, 우리나라는 2021년 ‘치유농업 연구개발 및 육성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뒷받침하고 있다. 경기도는 2022년에 치유농업 총사업비로 25억 8500만원을 투입했으며, 경기도 내 치유농장은 46개 소(2022년 기준)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경기도농업기술원은 치유농업팀을 두어 치유농업 활성화에 힘쓰고 있다. 치매안심센터와 지역사회서비스원과 업무협약을 맺었고, 치유농업서비스 바우처, 찾아가는 치유농업 등을 통해 치유농업을 현실에 적용하고 있다. 치유농업은 농가의 새 소득원으로서 살림살이를 펴주는 데도 기여하고 있다. 치유농업에 관심을 가진 지자체는 경기도만이 아닐 것이다. 치유농업에 대한 관심은 이미 세계적인 현상이다. 
치유농업이 주목받는 것은 고령화와 저소득 등의 이유로 농업이 축소되는 상황을 개선하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또 아이들이 흙을 만지고 작물의 성장과 수확을 체험하게 함으로써 농업과 자연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농업이 먹을거리의 생산이라는 것을 넘어 정서 안정과 발달, 사람 간의 교류, 건강 증진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농업이 지닌 가치가 넓어지고 있다.
농업의 공익적 가치
사실 농업은 땅의 보전, 온습도 조절, 홍수 예방, 아름다운 풍광을 제공한다. 또 우리 민족의 오랜 전통을 보존하는 역할을 한다. 농업과 농촌이 지닌 가치가 의외로 크다는 점을 생각하게 된다. 한국농촌경제원에 따르면, 농업의 공익적 가치는 27조8993억 원에 이르는데, 환경보전 18조6343억 원, 사회·문화적 기능 4조1040억 원, 식량안보 3조1158억 원, 농업 경관 2조452억 원이다.(농민신문, 2020.8.14.)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헌법에 반영하자는 운동도 펼쳐졌다. 2017년 농업계는 헌법에 농업의 공익적 가치가 반영되도록 하는 서명운동을 진행했는데 1150만에 이르는 사람들이 동참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이 같은 취지를 수용한 헌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언제일지는 알 수 없지만 이후 헌법 개정이 논의될 때 농업이 지닌 가치를 반영하자는 목소리가 다시 힘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 농민기본소득을 시행하거나 적극적으로 도입을 검토하는 여러 이유 중의 하나는 농업이 지닌 가치를 농민들이 지켜가고 있다는 것에 호응하기 때문이다.
농업의 가장 큰 기능은 한 나라의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데 있다. 농경이 중심이 되는 사회가 아니어도 식량은 사람살이를 가능하게 하는 최전선이다. 그러나 농업과 농민은 농경사회에서도 위태로웠다. 조선의 경우, 농업을 본업本業으로 추켜세웠어도 농민의 살림살이는 가난을 벗어나지 못했다. 조선 초기의 성리학자 조위는 당시의 농민들의 처지를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대개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요 먹는 것은 백성의 하늘이니, 임금이 된 사람은 마땅히 심고 거두는 어려움을 알아야 한다. … 그런데 사민[士農工商] 가운데 농민이 가장 고통스럽다. 농민은 추워도 갈고 더워도 김매어 몸에 땀을 흘리고 발에 흙을 묻히며, 일 년 내내 부지런히 움직여도 굶주림과 추위를 면하지 못하는데, 시장에서 이익을 좇는 자는 오히려 배 불리 먹는 즐거움을 얻는다. 이 때문에 본업에 힘쓰는 자는 날로 줄고 말업[공상]을 좇는 자는 날로 늘어나니, 어찌 백성이 곤궁해지지 않겠는가?”(강희맹이 편찬한 『금양잡록』 서문. 송기호, 『농사짓고 장사하고』에서 옮겨옴)   
토종이란 무엇인가
올해 고추 농사는 장마를 이기지 못해 도중에 작파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고추를 제대로 거둬들이지 못했다. 한 달 넘도록 이어진 긴 장마에 뿌리가 썩는 병에 걸렸는데, 이를 이겨내지 못했다. 고추 농사가 어렵다는 것은 익히 들어서 알았지만 직접 경험해보니 난감할 따름이다. 우리 밭에 심은 고추는 토종고추의 한 종인 수비초였다. 경상북도 영양군 수비면에서 오래도록 재배해온 것으로, 생산량은 적어도 맛은 일품이다. 알싸하게 매우면서도 그 느낌이 부드럽고, 감칠맛이 돈다. 그 맛에 심은 것이다. 토종작물을 가꾸자는 의도도 있었다.
두 해째 연거푸 주저앉았으니 새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함께 밭을 일구는 소방관(전직 소방관이어서 이렇게 부른다.)에게 내년에는 수비초 말고 이 지역에서 나는 종자를 심으면 어떻겠느냐고 의향을 물었다.(왜냐면 우리 밭은 토종작물을 우선 심자는 원칙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소방관은 “생각해 봅시다”고 말했다. 소방관도 올해 고추 농사를 망쳤지만, 토종 우선의 원칙을 지키고 싶은 것이다. 
‘토종’이란 토착화된 종자를 말한다. 토착화되었다는 것은 어느 작물의 종자가 그 지역에 적응해서 자신이 가진 고유성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다. 수비초는 우리 밭에서 두 해 연속해서 잘 자라지 못했다. 즉 토착화하지 못했다. 영양 지역에서 수비초는 토종이지만, 우리 밭에서는 토종이 되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영양에서 수비초도 처음에는 외래종이었다. 토종을 위와 같이 정의하면, 개량된 종자도 그 종의 고유성을 이어간다면 토종이 될 수 있다. 이 지역에서 나는 고추를 심어 새로운 토종화에 도전할지, 아니면 기존의 토종을 유지할지는 내년 봄 고추 심을 즈음에 결정될 것이다.
재작년에 정년퇴직한 소방관은 농사를 짓는 한편으로 토종학교, 메주콩 작목반을 만들어 이끌고 있다. 도시농부학교의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는데, 부르는 곳이 꽤 많아 가끔은 강원도나 충청도에 다녀오기도 한다. 토종씨앗을 지켜가는 일도 한다. 지난 봄에 내게 무등산수박 모종을 주어 기르게 했는데, 씨앗을 모으려는 취지였다. 우리 밭에는 비닐, 화학비료와 화학농약, 경운기 등을 들이지 않는다. 이것도 땅을 지키려는 소방관의 의지 때문이다. 농사에 진심으로 아주 열심인 사람이다.
옛 농서 읽기, 온고이지신
소방관과 새로운 계획을 논의하고 있다. 옛 농서를 읽는 모임을 만드는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농업이 기본이어서 수많은 농서가 만들어졌다. 『농사직설』 『산가요록』 『촬요신서』 『식료찬요』 등이 그것인데, 우리가 이 책을 읽을 수는 없다. 구자옥 전남대 농과대학 명예교수와 김미희 김영진이 옛 농서를 바탕으로 ‘고농서의 현대적 활용을 위한 온고이지신’이라는 제목 아래 농본·농정·서책·교육, 농사일반, 작물, 원예작물 네 부분으로 새로이 구성해 10권의 책으로 펴냈다. 우리는 이것을 읽는 것이다. 이 책은 옛 글을 그대로 옮겨 모아놓은 것이 아니다. 토의 및 평가, 결론 및 시사점을 두어 말 그대로 온고이지신으로 이끌고 있다. 또 일본의 식민논리와 서구의 기계론적 농업기술을 넘어서려는 문제의식을 담았다. 이 책은 농촌진흥청 농업과학원에서 펴냈는데, 홈페이지에 PDF파일로 올려놔 누구든 다운로드해 볼 수 있다. 
밭의 풍경이 확 바뀌었다. 고추를 걷어낸 쪽에는 배추와 무, 쪽파, 감자를 심었다. 감자는 3월 말쯤에 심는데, 여름 끝자락에 감자를 심은 이유는 내년 봄에 심을 씨감자를 얻기 위함이다. 참깨를 베어낸 곳에는 시금치, 갓, 양상추, 상추 씨앗을 뿌렸다. 키 큰 참깨와 옥수수, 토마토 대를 걷어내니 밭이 훤해졌다. 언제 더웠냐 싶게 아침저녁으론 선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