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頂宇 스님
본지 발행인 | 구룡사 회주
유난히 더운 날씨가 길게 이어졌습니다. 유래 없는 무더위로 인해 일상생활에 지장이 많으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계절의 변화 속에서도 우리는 마음의 평온함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자신의 내면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천수경千手經』에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요, 심약멸시죄역망心若滅是罪亦忘”이라. 죄罪는 본래 자성이 없어서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며, 마음이 없어지면 죄 또한 사라지는 것입니다. 모든 죄와 선과 악은 우리의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마음은 모든 것의 근원입니다. 좋은 마음씨를 가지면 좋은 일이 생기고 나쁜 마음을 가지면 나쁜 일이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불교는 항상 마음을 잘 다스릴 것을 강조합니다. 그러니 마음을 잘 다스리는 것이 바로 수행이요 정진의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은 본래 맑고 깨끗합니다. 이를 청정심淸淨心이라 하였습니다.
일상생활 속에 여러 가지 번뇌와 망상으로 이 청정심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끊임없이 마음을 정화해야 합니다. 마음을 닦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참선으로 마음을 고요히 하는 것도 좋고 염불을 통해 마음을 정화하는 것도 좋습니다. 또 자비보시의 나눔으로 마음을 넓히는 방법도 좋은 수행법修行法입니다.
서산대사西山大師 사명대사泗溟大師와 같은 시대에 사셨던 조선 중기의 고승高僧 진묵대사眞默大師는 탁월한 깨달음을 얻으신 스님으로, 많은 후세인에게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특히 진묵스님은 어머니와 인연의 소중함과 효심孝心, 그리고 깨달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화가 많이 있습니다.
진묵스님은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자신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고 어머니가 평생 사셨던 김제시 만경읍에 어머니의 묘소를 짓고 묘소 옆에 성모암聖母庵을 창건하여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염원했습니다. 그곳은 특이하게도 잡초가 자라지 않는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일은 진묵스님의 깊은 효심과 신심이라 믿었고, 그곳을 자연스럽게 성지聖地로 여겼습니다. 이는 진묵스님과 어머니의 깊은 인연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이기도 한 것입니다.
스님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49재를 지내며 깊은 애도와 함께 어머니에 대한 은혜와 감사하는 마음을 담은 글을 지어 지금까지도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열 달 동안 태중에서 길러주신 은혜를 어찌 갚으오리까(태중시월지은胎中十月之恩을 하이보야何以報也하리요).
슬하에서 3년을 키워주신 은혜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슬하삼년지양膝下三年之養을 미능망의未能忘矣로소이다).
만세를 사시고 만세를 더 사신다 해도 자식의 마음은 오히려 부족하거늘(만세상萬歲上에 갱가만세更加萬歲라도 자지심子之心은 유위혐언猶爲嫌焉이온데),
백년도 채우지 못하셨으니 어머니 목숨은 어찌 그리도 짧으시옵니까(백년내百年內에 미만백년未萬百年이오니 모지수母之壽가 하기단야何其短也오리까).
표주박을 들고 노상에서 걸식乞食하는 이 중이야 말할 것이 없겠지만(단표로상單瓢路上에 행걸일승行乞一僧은 기운기의旣云已矣거니와),
귀밑머리도 풀지 못하고 규중에 있어 시집 못 간 누이동생이야 어찌 애처롭지 않겠습니까(횡차규중橫釵閨中에 미혼소매未婚小妹가 영불애재寧不哀哉오리까).
상단 불공도 마치고 하단제사도 마친 뒤 스님들은 제각기 방으로 돌아가고(상단료하단파上壇了下壇罷하니 승심각방僧尋各房이옵고),
앞산은 첩첩하고 뒷산도 겹겹인데 어머니의 혼신은 어디로 가셨습니까(전산첩前山疊하고 후산중後山重한데 혼귀하처魂歸何處오니까).
아, 슬프기만 합니다(오호애재嗚呼哀哉로다).
부모와 자식 간의 인연이 얼마나 깊고 소중한지 깨달을 수 있게 합니다.
이 인연은 단지 현세의 인연만이 아니라 다겁생애多怯生涯를 관통하는 중요한 인연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진묵스님의 전해지는 가르침은 그 누이를 깨우치기 위한 일화입니다.
스님의 누이는 진묵스님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세속적인 삶에만 매달려 가난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스님은 어느 날 누이에게 칠월칠석날 집에 귀한 손님이 찾아 올 것이니 잘 공양을 대접하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 일러주었습니다. 그러자 누이는 큰 기대를 품고 있는 돈 없는 돈 모아 잔칫상을 차려 놓고 손님이 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귀한 손님은커녕, 험상궂은 행색이 남루한 거지들이 찾아 왔습니다.
박복한 누이동생은 화가 잔뜩 났지만, 거지들은 그래도 진묵스님 체면을 봐서먹는 시늉만 하다가 떠나갔다는 설화說話입니다.
“막혐문전폐의객莫嫌門前廢衣客이요, 영산수기세월장靈山授記歲月長이라.”
길거리에 험한 꼴을 한 사람이 “한 푼 줍쇼.” 한다면, 문전박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영산회상靈山會相에서 어느 세월에 “네가 불자佛子인지 아닌지 확인하러 오실지 어찌 알겠는가.”하는 가르침입니다.
세상은 소홀히 대하지 말고 그 인연 속에 자비의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진묵스님은 이와 같이 누이동생에게 복福 지을 소중한 인연을 담은 가르침을 전하고자 하였습니다. 누이는 남루한 형색의 거지라도 하찮은 존재가 아님을 깨닫게 하고, 그로 인해 자신의 마음을 반성하게 하였다 할 것입니다.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줍니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 그들과의 인연들은 그 어떤 인연도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입니다.
인연법을 일깨워주는 그 깨달음의 길로 이끄는 중요한 열쇠입니다.
마음이 세상을 어떻게 바꾸게 하는지에 대해서도 잊지 말아야 할 부분입니다.
염념보리심念念菩提心, 억념憶念의 시간을 보리심 품고 살아간다면 그 어느 곳이라도 안락국安樂國이 될 것입니다. 보리심이란 깨달음을 향한 마음이며 자비와 사랑, 그리고 지혜를 향한 마음입니다. 그러한 마음을 품고 있으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극락정토처럼 안락하고 평화로운 곳으로 변할 것입니다.
그러나 염념삼독심念念三毒心이면,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가득한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그 어디도 삼악도三惡道 아닌 곳이 없습니다. 삼독심은 탐욕과 분노심과 어리석음입니다. 이러한 마음 상태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 것입니다. 마음이 어지럽고 산만한 생각들로 가득 차 있으면 그 속에서 고통과 괴로움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불자로서 언제나 보리심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마음이 맑고 자비로우면 그 마음이 모든 인연을 맑게 하고 만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행복과 평화를 가져오게 할 것입니다.
불교의 기본적인 가르침이자 반드시 실천해야 할 보리심의 덕목이기도 합니다.
더글러스 보이드의 『구르는 천둥』이라는 글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세상 속에 살지만, 그 위에 있으라. 강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물 위에 떠있는 연꽃처럼 세상을 즐기라. 세상이 그대를 즐기도록 하지 말라. 그대 스스로가 세상을 즐기라. 자신이 버렸다고 생각하지만, 마음 한구석에 남은 집착 때문에 마음이 불편하다면 그것 또한 마음속에 사념邪念을 일으킬 것이다.”
이 글은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상 속에 살지만, 세상에 휘둘리지 않고 그 위에 있어야 합니다. 마치 연꽃이 진흙 속에서 성장 하지만 그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세상을 즐기되, 세상에 집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무상無常하여 변하고 사라집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소중히 여기되, 그것에 집착하지 않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집착은 많은 고통을 줍니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을 때, 원하지 않는 것을 만났을 때 고통과 괴로움을 가집니다. 이 모든 고통의 근원은 집착입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최선을 다해 살아가되, 그 결과에 집착하지 않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것이 모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중도中道의 가르침입니다.
인연은 만나는 모든 사람, 모든 상황을 말합니다. 때로는 좋은 인연도 있으며 때로는 나쁜 인연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인연은 우리에게 가르침을 줍니다. 좋은 인연은 기쁨과 행복을 주고 나쁜 인연은 교훈과 성장의 기회를 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감사히 받아들이며 살아가자는 것입니다.
불교는 인연법因緣法을 매우 소중하게 여깁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일은 서로 연결되어져 있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우리가 지금 여기에 있는 것도 수많은 인연연기의 결과입니다. 그러니 모든 인연에 감사해야 합니다.
좋은 인연이나 나쁜 인연에도 감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들이 우리들을 성장시키고 깨달음으로 이끌어주는 소중한 자양분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맑고 깨끗하면 모든 인연도 맑고 깨끗해집니다. 그러니 순간순간도 늘 보리심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모든 인연을 소중히 여기며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이 세상은 언제나 정토淨土가 될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가르침을 많이 들어도 그것을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도 “알면서 행하지 않는 것은 실로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하셨습니다. 그러니 매일 조석으로 보리심인 사홍서원四弘誓願을 다짐하고, 모든 인연을 소중히 여기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불자가 되기를 염원念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