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월화
구룡사 불자
시골길 어둑한 새벽길에 우산 넷이 넉넉하다. 비가 후두둑 안개를 머금고 어둑한 새벽길에 다 큰 어른 넷이서 가을 걸음을 재촉한다. 키 큰 코스모스 너머로 머리가 보일락 말락 우산은 서로 정겹다. 빗방울을 머리에 인 코스모스는 무거워 고개를 숙일까 말까 우리를 힐끗거리며 눈치를 보는 중이다.
시골에 부모님을 뵈러 가면 항상 부모님 곁에서 잠을 청하곤 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하루라도 더 한 시간이라도 더 그 분들과 같이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을 갖고 싶어서이기도 하다. 딸과 엄마는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면 옆에 누운 아버지는 아무 말씀이 없으시다. 그렇지만 나는 안다. 다 듣고 느끼고 계시다는 것을. 전에는 마른 몸을 이리 저리 뒤척거리시고 안마기에 발을 의지하시며 잠을 잘 청하지 못하시는 아버지가 안쓰러워 다리도 주물러 보고 팔도 주물러 드리면 “됐다.” 하시며 그만 자라고 하신다. 일을 하는 딸이 더 안쓰럽고 피곤해 보여서일까.
요즘은 시골에 사시는 분들도 건강을 챙기시느라 하루 시간 중 짬짬이 나는 시간을 이용해 산책을 하시고 마음의 여유를 찾으려고 하시는 것 같다.
언젠가 명절 무렵 아버지께서 아침 산책을 가시면서 “같이 갈래?” 하시며 나와의 동행을 권하셨는데 그날은 너무 피곤해서 같이 가드리지 못한 것이 못내 죄송했었다. 서울에 돌아와 어찌나 그 일이 후회가 되고 마음에 걸려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날도 주섬주섬 나갈 준비를 하시는 부모님께서 먼저 같이 가자고 하셨다. 어제 밤부터 내리던 비가 개일 기미가 없어보였다. 그래서 나는 남편의 차로 두 분의 산책로까지 모셔다드리자고 했다. 남편까지 이끌려 비가 오는 날 산책은 시작되었다. 나는 엄마와 팔짱을 끼고 수다를 떤다. 이런 날이 얼마나 자주 올 수 있을까. 아주 사소한 일이지만 이것도 가을에 느낄 수 있는 추억이 될 것이다.
부모로 살아간다는 것은 흔들리는 봄의 청춘을 갉아먹고 뜨거운 여름과 멋진 가을을 지나 앙상한 가지만을 남기고 낙엽으로 흩어져 자식들의 밑거름이 되어줄 그 날을 위해 비장하게 살아남는 위대한 사계절의 전사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하루를 지나면서 내 아이들이 커가고 때로는 흔들리고 때로는 아파하고 때로는 흔들리는 갈대 사이에서 힘들어할 때 그래도 그 자리에서 가만히 바라봐주고 기다려주고 버팀목이 되어주고 참아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는 것을 느끼면서 나의 부모님도 우리들이 부족하고 미진하고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릴 때 얼마나 조마조마한 가슴으로 지켜봤을까 하는….
며칠 후면 수능시험일이 다가오는데 그 아이들을 위해서 소원성취 기도를 위해 성지순례를 떠나는 불자들도 계시고 각각 사찰마다 수능기도를 올리는 부모님들이 많이 계신데 며칠 전 사찰에 들렸다가 어떤 거사님이 자녀의 수능기도 발원을 위해 정성스럽게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고 너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 적이 있다. 남을 위해 하는 기도는 참으로 아름답고 성스럽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법당에 들러 절을 할 때면 왜 그렇게 마음이 숙연해지는지 모르겠다. 주변의 인연 있는 모든 이들이 행복하고 무탈하게 살아주셨으면 하고 다시 한 번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