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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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를 통한 선 사상과의 만남

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한국선학회 회장


일반적으로 선문헌의 경우는 중국중세한어로 기록되어 있다. 이런 류의 책을 해독하기 위해 나는 일본 오우타 다츠오(太田辰夫) 선생의 『중국어역사문법中國語歷史文法』(東京: 江南書院,
1957)과 『중국어역대구어문법中國語歷代口語文法』(京都: 朋友書店, 1957)을 시작으로 많은 공구서의 도움을 우선적으로 받았다. 그리고 계속해서 쏟아지는 많은 구어와 속어의 어법에 관한 선행연구를 참조하고 있다. 각국의 현대어로 쓰인 주석적 번역을 참조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나 스스로도 원자료를 독파해가면서 공구서를 만들기도 하고 번역서를 내기도 한다.
그러하여 마침내는 그 문헌자료에 담긴 사상을 규명하려고 노력한다. 즉, 문자와 언어를 매개로 해서 옛 사람들이 남긴 사상을 만나는 것이다. ‘불립문자’를 표방하는 선종의 사상도 결코 예외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선이라 하면 삼처전심의 고사가 대변하듯이 언어나 문자와는 별 인연이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와 더불어, 선서를 해석한다든지 설명한다는 것은 어느 면에 있어서는
금기사항으로까지 되어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런 현실에 대해 나는 몇 가지 측면에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첫째, ‘선의 체험’과 그것을 체험하게 된 상황을 밝혀놓는 이야기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사실 ‘깨달음 자체’를 설명하고 있는 선서禪書는 없다. ‘선의 체험’ 자체와 그런 체험을 얻게 된 ‘기연’은 서로 다른 영역일 뿐만 아니라, 그에 접근하는 방법도 다를 수밖에 없다. ‘깨달음 자체’가 수행의 영역이라면, 선서에 기록된 이야기에 대한 해석은 문헌학 내지는 인문학의 학문적 대상이다.
둘째, 중국의 조사들은 ‘선의 체험’을 일상생활 속에서 드러내 보임은 물론, 언어로까지도 표현하려고 했다는 점이다. 선사들도 ‘선의 체험’을 언어로 표현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체험을 언어로 표현하려 애썼다.
셋째, 언어와 문자가 ‘깨달음’의 계기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깨달음’이란 문자에 의지하지 않으며, 마음의 법은 스스로 깨치는 것으로 남에 의지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너무도 지당한 말이기는 하지만, 문헌 기록으로서의 ‘선서’와 인간 내면의 사유 작용으로서의 ‘깨달음’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깨닫는 일이야 주체적으로 해야 하지만 그것을 유발하기 위한 ‘계기’는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즉, 언어와 문자도 ‘깨달음’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끝으로, 현재의 수행자들이 무엇을 기준으로 하여 자신의 경지를 점검하고 반성하느냐 하는 점이다. 즉, 조계 혜능 선사의 선지를 귀의처 내지는 이정표로 삼는다면, 조계의 선지를 담고 있는 선서에 대한 바른 이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바로 이점에서도 역대 조사들의 행적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기준이 바로 선서이고 언어문자인 것이다. 이런 태도는 ‘화두話頭’를 ‘공안公案’이라고 표현하는 점에서도 잘 드러난다. ‘공안’이란 말은 원래 법률 용어로서, 관공서에 비치하고 있는 판례 조문이다. 과거의 전례에 견주어 지금의 문제를 검토하는 것이다. 선가에서 말해지고 있는 1,700공안도 선사들의 수행과 깨달음의 기연을 모아놓은 전기 모음집으로서,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상에서 나는 번쇄하게 언어 문자와 선어록과의 밀접한 관계를 나열했는데, 그렇게 한 이유는 한 가지이다. 언어 문자가 사상 그 자체는 아니지만, 그것을 제외하고는 옛 사람의 사상을 밝혀내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주장하려는 것이다. 이하에서는 그 실례로 한국도 물론 일본의 선사禪寺에서도 많이 읽혀지는 『벽암록』의 사례를 들어, 언어 문자의 해독이 사상 연구에 필요조건임을 밝히려 한다. 그런데 그 어떤 선서보다도 『벽암록』은 읽기가 어렵다.
그 이유를 몇 가지로 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벽암록』에 나오는 원오 선사의 논평 곧 ‘하어’는 너무 짧아 갈피를 잡기 힘들다. 두
번째 어려움은 『벽암록』에 종횡무진하게 나오는 구어 내지는 속어이다. 구어로 쓰인 문헌을
문어의 어법으로 독해하는 잘못을 범해서는 안 된다. 세 번째의 어려움은 개성과 말투가 서로 다른 여러 선사들이 한책에 등장하는 점이다. 한 사람의 말투와 그 내력에 좀 익숙해질 만하면 다시 주인공이 바뀐다. 네 번째 어려움은 논리의 전환과 언어의 생략이 심한 점이다.
바꾸어 말하면, 문장과 문장 사이의 ‘행간’이 벌어져 있다. 이 ‘행간’은 책을 읽는 독자 쪽에서 채워 가야 한다. 이 ‘행간’을 채워 가는 작업을 필자는 ‘읽는다’라고 이름 붙인다. 선서는 ‘읽어야만 한다’고 늘 생각하고 있다.
이제 그 읽는 작업의 하나로 『벽암록』 제29칙의 한 구절을 보자. 대수 법진 화상은 위산 선사의 법을 이은 사람이다. 그는 60여 명의 선지식을 찾아뵈었다. 전에 한번은 위산호상의 會上에서 불 때는 일을 맡고 있었다.


어느 날 위산 스님이 대수에게 물었다.
“그대는 내 밑에서 몇 년 살았지만, 나에게 전혀 묻지를 않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그러자 대수가 대답했다.
“무엇을 물어야 합니까?”
이렇게 되묻자 위산 스님은 대답한다.
“만일 그대가 뭐라고 물어야 좋을지 모르겠으면, ‘부처란 무엇입니까?’ 하고 묻게나.”
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대수 스님은 손으로 위산 스님의 입을 막았다.
그러자 위산 스님은 말했다.
“이후로 (부처나 깨달음조차도) 싹 쓸어버린 사람(=참 수행자)을 만날 수 있을까?[이후멱개소지인야무以後覓箇掃地人也無]”


이 대화의 마지막에 나오는 위산 스님의 대답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가 관건이다. 원문
마지막에 나오는 ‘-야무也無’는 문장의 끝에서 의문을 표시하는 구어문口語文이다. 이것을 문어문文語文로 읽어 ‘-마저도 없다’라고 부정문으로 번역해서는 안 된다. 다음으로 ‘소지인掃
地人’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이다. 곧 ‘소지인’을 ‘땅을 쓰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읽어 ‘시중을 드는 제자’로 해석할 것인가, 아니면 위에서처럼 ‘부처니 깨달음이니 하는 일체의 생각을 싹 없애버린 참 수행자’로 해석할 것인가이다.
먼저 ‘소지인’의 뜻을 밝힐 필요가 있다. 한 단어의 뜻을 추정할 때는 무엇보다도 같은 책에서 그 용례를 모아 공통된 뜻을 추려 내야 한다. 또 동시대의 다른 문헌에 나타나는 사례를 찾아야 한다. 또 후대 주석가들의 고증도 참고해야 한다. 여기에는 그런 과정들은 생략하고 검토의 결과만을 말하기로 하는데, 그런 결과를 확증한 결정적 근거는 시대는 좀 떨어지지만 『오등회원』 권4에서 찾았다. 거기에는 『벽암록』의 위의 대화가 실리기는 실렸는데, “위탄왈?歎曰, 자진득기수子眞得其髓.”라는 문구가 첨가되어 있다. 즉, “대수 그대는 참으로 핵심을 얻었다.”는 뜻이다. 이것으로 위산 스님의 입을 막은 대수 스님의 행동은 잘한 것임이
확인된 셈이다. 또 『벽암록』보다 뒤에 만들어진 『종용록』 제30칙에도 『벽암록』 제29칙과 같이 위산과 대수 두 스님의 대화가 인용되었다. 이렇게 되어 있다. “니이후유편와개두?以後有片瓦蓋頭, 니이후유편와개두(覓箇掃地人也無).” “편와개두片瓦蓋頭”는 문자대로 읽어보면 ‘깨어진 기와 조각으로 머리를 가려(눈이나 비를 피한다)’인데, 초라하나마 자기의 집을 세운다는
뜻이다. 즉 일가一家를 이룬다는 뜻이다. 위의 원문을 우리말로 옮기면 “그대 대수는 앞으로 일가를 이루어 한 사찰의 주지가 되더라도, 그대처럼 모든 관념을 싹 버린 참 수행인을 찾을 수 있을까?”가 된다.
한 단어의 의미를 고증하는 것은 그 단어로 표현하고자 하는 사상을 들추어내는 데 그 중요성이 있다. 나는 ‘소지인’이란 단어를 처음 접하는 순간 등골이 오싹했다. 그 언어의 강렬함과 상황에 딱 들어맞는 언어의 치밀함에 놀란 것이다. 점수적인 수행단계는 말할 것도 없고, 부처님이니 깨달음이니 하는 일체의 관념을 싹 쓸어 없앤 무심도인의 경지가 이 말로 멋지게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문자는 사상이라는 ‘성城’의 안쪽으로 들어가는 통로의 하나이다. 이 통로를 막으면 ‘입성入城’에 많은 제약을 받는다. 어쩌면 ‘입성’ 자체가 안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