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운
텃밭농부
가을은 냄새로 다가온다. 선선한 바람결에는 마른 잎의 냄새가 스며 있다. 자연이 익는 냄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도 가을이 왔음을 알리는 신호다. 그러나 호시절은 짧은 법. 햇살 맑고 바람이 선선해 가을인가 했는데,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지난달 24일이 상강霜降이었다. 서리가 내린다는 날이었다. 기온이 떨어지면서 지표면과 가까운 데에 있는 수증기가 얼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서리가 내리면 밭 표면이 하얗게 변한다. 볼만한 풍경이다. 기온이 더 내려가면 지표 아래에 얼음이 바늘처럼 생긴다. 서릿발이다. 흙이 부풀어 오른다. 마늘을 심었다면 꾹꾹 밟아주어야 뿌리가 어는 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
농사에서는 가을의 끝자락인 상강을 전후해 수확을 서둘러야 한다. 상강의 다음 절기는 겨울에 들어선다는 입동立冬이다. 이제 곧 겨울의 계절로 들어선다. 거의 모든 작물을 거둬들여야 한다. 서리를 맞으면 작물의 조직이 약해져 오래도록 보관하는 데 지장을 받는다. 마침내 수확의 시기가 온 것이다.
쥐눈이콩을 베어 말리고 있다. 생강, 고구마, 수세미, 더덕도 거두었다. 쥐눈이콩을 보면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 알의 콩에서 싹을 올린 줄기 하나에 맺힌 콩깍지가 많게는 300개쯤 된다. 콩깍지 하나에 두 알의 콩이 들어있으니 600배의 번식력이다. 놀라울 따름이다. 더덕은 한꺼번에 수확하지 않아도 된다. 먹을 만큼만 캐고 봄에 새싹이 올라오기 전까지 그대로 두어도 괜찮다. 추위에 워낙 강한 작물이다.
서리태는 서리를 맞고서도 생생하다. 이 즈음에서야 잎이 떨어지고 콩깍지가 단단해진다. 그러니 11월 말쯤에 수확해도 된다. 서리를 맞은 후에야 거둬들인다고 하여 서리태라는 이름이 붙었다. 겉껍질은 검고 속은 옅은 연두색인데, 그래서 속청이라 부르기도 한다.
30년 농부도 쩔쩔매는 기후변화
지난 여름은 하도 더웠다. 9월까지 늦더위가 이어졌다. 농사짓는 이들은 더 더워지고 더 추워지는 날씨 변화 때문에 농사짓기가 더 힘들어졌다고 깊은 한숨을 내쉰다. 경북 청송에서 사과 농사를 하는 후배는 올 추석에 사과를 보내지 않았다. 길게 그 연유를 풀어놓았다. 봄에 기온이 떨어져 꽃들이 얼어 과실 수를 줄였으며, 긴 장마로 병충해가 창궐해 그나마 맺힌 열매들이 성하지 않았으며, 장마 후의 더위로 과실이 데이거나 성장을 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그나마 만생종인 부사는 가을 햇살을 받아 잘 지금까지는 괜찮은 편이라고 전했다. 기후변화는 30년 경력의 농부도 쩔쩔매게 한다. 재난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후배는 사과 농사를 반으로 줄이고 소득을 보전하기 위해 양봉에도 나섰는데 그것도 마찬가지다. 양봉에 초보인 까닭도 있지만, 꿀벌이 집단 폐사하는 지경이니 양봉인들 제대로 될지 모르겠다고 불안해했다. 생업의 절벽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쥐눈이콩처럼 엄청난 수확을 가져다주는 작물이 있는가 하면, 겨우 종자를 건질 정도의 소출을 내주는 것도 있다. 땅콩은 뿌린 만큼도 거두지 못했다. 까치들이 모조리 쪼아먹었다. 어느 날 밭에 나갔더니 땅콩 줄기가 쓰러져 있었다. 누군가 뽑아낸 줄 알았다. 줄기 주위가 둥그렇게 파여 있는 것을 보고서야 까치들의 소행임을 알았다. 5월에 파종해 거둘 때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새 좋은 일만 했다. 헛웃음이 나왔다. 같이 농사짓는 소방관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땅콩이 맺힐 때쯤에 망을 씌워 까치들이 쪼아먹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새들과의 싸움도 벌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씁쓸할 따름이다.
벌레들 차지가 된 배추와 무
농약을 치지 않는 농사는 어렵다. 김장에 쓸 배추와 무는 벌레들 차지가 되었다. 모종을 심어놓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까만 벌레가 달려들었다. 여기저기 알아봤더니, 좁은가슴잎벌레라고 한다. 방제하지 못하면 헛농사 짓게 된다는 무서운 존재다. 2~4mm 크기의 까만 이 벌레는 먹성이 좋아 잎을 남겨놓지 않는다. 잎이 없어져 광합성을 하지 못하니 자라지 못한다. 은행 삶은 물을 뿌려주면 이 벌레를 쫓는다고 하여 그렇게 했어도 효과가 없었다. 다행히 기온이 내려가자 이 벌레들은 자취를 감췄는데, 뒤이어 청벌레들이 나타났다. 배추잎과 색깔이 같아 잘 보이지 않는다. 청벌레는 까만 똥을 내놓아 자신의 존재를 알려준다. 농약을 뿌리면 단박에 퇴치할 수 있겠지만, 텃밭농사 하면서 그러기에는 마음이 불편하다. 그들이 먹다 남은 것을 내가 취할 수밖에.
가을은 거두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심기도 한다. 마늘과 양파를 심고 시금치 씨앗을 뿌린다. 지난달 중순쯤에 마늘과 양파 심을 밭을 만들었다. 무너진 이랑을 다시 만들고 거름을 뿌렸다. 쇠스랑으로 꾹 찔러 땅을 뒤집으면서 거름과 섞이게 했다. 이후 비도 두어 번 내려줬으니 흙이 촉촉해졌다. 하늘님께서 도와줘 마늘 심기에 적당했다.
작년 마늘 농사는 우리 식구들이 먹을 만치는 되었다. 그러나 절반이 죽었다. 심은 후 날씨가 따뜻해 싹이 올라왔는데, 이내 추워지면서 싹이 얼어버렸던 탓이다. 콩대와 검불을 덮었는데도 추위를 이겨내지 못했다. 어느 농부는 싹이 올라오면 북을 주고 눌러준다. 추위를 덜 타게 하는 방법이라고 한다. 그것도 괜찮겠다. 나도 따라서 해 볼 생각이다. 반타작한 또 다른 이유는 마늘종자가 내 밭의 흙과 기후에 적응하지 못했던 것일 수도 있다. 지난해 심었던 종자는 마늘로 유명한 의성과 서산에서 올라온 것들인데, 내 밭은 그곳에 비해 더 추운 곳이다. 올해 심는 종자는 지난해 심어 내 밭에서 거둔 것들이니 어느 정도 적응하지 않았을까 기대해본다. 가장 좋은 종자는 내 밭에서 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생각도 나만의 것이지만, 검증해보는 재미도 텃밭농사가 주는 쏠쏠함이다.
더덕과 잔대, 도라지 씨앗도 뿌렸다. 내 밭에서 얻은 이 씨앗들은 겨울을 나는 동안 눈에 씻겨 껍질을 깬다. 이 즈음에 고운 흙과 섞어 흩뿌림하면 4월쯤에 싹을 내민다. 온전히 겨울을 난 것들이니 더 튼실하게 자랄 것이다. 뿌린 자리에서 1년을 기른 후 하나씩 캐어 옮겨 심는다.
11월 11일은 농업인의 날
농업과 관련된 기념일이 여럿 있다. 11월 11일은 ‘농업인의 날’이다. 법정기념일이다. 정부는 이날 농업과 농촌의 발전에 헌신하는 농업인을 포상하고, 농민들의 의욕을 고취시키는 행사를 연다. 이날로 정해진 연유는, 흙 토土 자를 해자하면 十과 一이 되는 것에 착안해 11일을 가져왔다. 여기에 11월은 가을걷이와 겨울작물의 파종을 마칠 즈음이다.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농민단체들은 이즈음에 정부의 행사와 달리 대규모 농민대회를 연다. 정부의 농정을 규탄하고 진정 농민을 위한 농정을 펼치라는 제안을 내놓는다. 이날은 빼빼로데이이기도 한데, 과자 회사의 마케팅 성공 사례의 하나로 꼽힌다. 과자를 선물로 주고받으며 정을 나눈다는 점에서 과히 탓할 일은 아니다. 농업인의 날이 더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그들이 있어 밥상이 차려진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이날은 쌀 소비를 촉진하는 가래떡데이이기도 하다.
안타깝게도 기념일 중에서는 피를 흘림으로써 비로소 정해지는 날들이 많다. 세계 농민의 날은 4월 17일이다. 1996년 브라질에서 토지개혁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다 경찰의 발포로 19명의 농민이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이날을 세계농민의 날로 정했다고 한다. 4월 11일은 도시농부의 날이다. 2015년에 도시농업 관련 민간단체들이 이날을 도시농업의 날로 선포했다. 2017년 정부에서 법정기념일로 지정했다.
10월 16일은 UN에서 지정한 세계 식량의 날이다. 1945년 식량농업기구(FAO) 설립일에 맞춘 날인데, 농업의 중요성을 알리고 기아 해소를 위한 행사를 진행한다. 기아 문제는 식량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라 적절히 분배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다는 지적에 귀를 기울이면 좋겠지만, 아직은 난망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