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범
숲해설가
나무는 지상의 모든 생명체를 키우는 어머니 같은 존재다.
한 그루의 나무는 광합성을 통하여 탄수화물을 합성하여 동물을 키운다. 지구 위의 유일한 생산자는 녹색식물이다. 녹색식물만이 산소를 생산하여 동물이 호흡할 수 있도록 하고 대기 중에 이산화탄소를 흡수한다. 나무야말로 지구를 살리는 최초의 어머니이다.
인류는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부터 줄곧 나무에 의존하여 삶을 영위해 왔다. 나무가 내뿜는 산소를 마시고 과일과 곡식 등을 얻었으며 죽어서는 나무로 짠 관에서 입멸한다. 나무에서 얻은 섬유는 인간에게 의복과 종이로 다시 태어나고 목재는 주택의 재료가 된다. 그야말로 사람은 나무에 의존하여 살아가는 셈이다.
사람마다 나무에 얽힌 사연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어떤 청춘은 느티나무 아래에서 사랑을 키웠을 것이고 어떤 이는 그 나무 앞에서 자신의 미래를 다짐했을 것이다. 오래된 나무는 살아온 세월만큼 수많은 사연을 간직하고 있기에 문화적으로도 매우 중요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문화를 그 나무가 꼭꼭 숨기고 있는 셈이다.
만산홍엽, 가을이 되면 온 산이 불탄다. 단풍의 계절이다. 나무는 한여름 왕성한 광합성으로 불린 몸집을 가볍게 정리한다. 겨울로 가는 길목에서 나무가 보여주는 사투다. 단풍은 그 흔적이라고 할 수 있다.
나무는 동물과 다르게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추운 겨울을 견뎌내야 한다. 나무가 택한 월동대책은 몸에 있는 에너지와 수분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다. 잎으로 흐르는 수분을 줄여 최소한의 에너지만 가지고 살아남을 수 있도록 대비한다. 그렇지 않으면 많은 수분 때문에 추운 겨울 얼어 죽을 수 있다.
나무는 잎으로 흐르는 수분의 양을 줄이면서 가지와 잎을 연결하는 떨겨를 만든다. 떨겨가 완성되면 수분이 잎으로 가지 않아 푸름을 유지하던 엽록소도 서서히 파괴된다. 대신에 가을과 함께 온도가 내려가기 시작하면 나뭇잎에 포함되어 있던 안토시아닌이라는 붉은 색소와 카라노이드라는 노란 색소가 선명해지면서 나뭇잎은 저마다의 색으로 아름다운 치장을 시작한다. 사람들은 단풍의 아름다움에 열광하고 이 산 저 산을 누빈다.
단풍丹楓의 ‘단丹’은 붉다는 뜻이지만 노랗게 변하는 은행나무 잎이나 갈색으로 변하는 느티나무 잎도 모두 단풍이라 한다.
기온의 변화에 따라 나뭇잎의 색소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에 나무마다 특성에 따라 각각 형형색색의 잎으로 물든다. 그러나 이는 슬프게도 광합성을 담당했던 잎이 수명을 다해 본래의 푸름을 잃어버리고 불타는 단풍으로 자신의 존재를 보여준 다음 미련 없이 떨어져나가는 소멸의 과정이다.
평범하고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나무도 평소 살아가는 방식을 답습하지만 자기 몸에 겨울이라는 심각한 위험이 가해지면 신체의 변화를 일으켜 마지막 몸부림을 하는 것이다.
나무의 아름다움은 공존과 나눔의 미덕을 몸소 실천하는데서 더욱 빛을 발한다. 아름다움은 자기만의 생존과 이익을 위하는데 급급하지 않고 남과 함께 나누며 살아가는 즐거움을 만끽하는 가운데 발견된다.
나무에게 가을은 열매를 맺고 한 해 동안의 성과를 거둬들이는 계절이기도 하지만 혹독한 추위를 견디기 위해 다이어트를 시작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에너지의 원천이었던 나뭇잎을 단풍으로 만들며 뜨겁게 불태운 다음 미련 없이 낙엽으로 몸집을 가볍게 만드는 것이다.
낙엽이 가르쳐주는 소중한 삶의 교훈은 버리지 않으면 버림받는다는 사실이다. 지금 붙잡고 있는 손을 놓고 지지대를 잡아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옛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이나 옛것을 익힘으로써 새것을 아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미덕을 낙엽을 통해서도 배울 수 있다. 낙엽은 자신을 버려야 새봄의 희망과 함께 새순을 틔울 수 있음을 오랜 경험을 통해 터득한 것이다.
나무는 자신의 일부를 자신을 키워준 땅으로 돌려줌으로써 공존의 길을 간다. 이러한 나무의 진면목은 봄의 신록이나 여름의 녹음으로 알 수 있지만 단풍잎을 다 떨어뜨리고 보여주는 줄기와 앙상한 나뭇가지일 때 더 잘 알 수 있다. 나목일 때 비로소 뼈대와 중심이 드러나고 중심을 버티고 있는 구조를 알아볼 수 있다. 산도 겨울 산에서야 비로소 자신의 골계미를 보여 주는 것처럼.
마침내 나무는 자신을 키워준 땅으로 돌아가 스스로 거름이 되어 다시 자신을 키워내는 자양분의 역할을 한다.
‘낙성落成’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떨어져서 완성한다’는 의미다. 떨어지는 것은 있는 자리에서 마지못해 수동적으로 이탈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완성하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벗어나는 행위다.
낙엽은 떨어지는 순간 실패가 아니라 자신을 키워준 나무가 더 튼실하게 성장하는데 필요한 거름으로 쓰여 진다.
나무는 새봄부터 여름까지 햇빛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한다. 여유가 없다. 그러다 나뭇잎을 다 떨어뜨리고 밖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멈추고 안으로 성숙하는 시간을 맞이할 때 비로소 자신의 존재이유를 성찰하기 시작한다. 비로소 여유 속에서 자유의 참맛을 즐긴다.
내 손이 비어 있을 때 남을 도와줄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내 손에 무언가를 무겁게 들고 있다면 다른 사람의 짐을 나눠 들어줄 여유가 생기지 않는다.
가을, 단풍을 보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행복의 비밀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