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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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계절의 여백에 삶을 쉬게 하다

선운사 <도솔암 찻집>

이서연
시인



전북 고창 선운산에 도착했을 때 고맙게도 불던 바람이 멈추었다. 지난 봄, 선운사 동백에 슬그머니 묻어 둔 ‘마음’이 잘 지낼까 궁금했다. 흔적조차 없는 기억은 있을 수 없으나 되도록 떨어내야 할 번뇌의 껍질이 있다면, 혹여 그런 것이 몸뚱이를 갖고 있는 중생의 티라면 동백꽃이 떨어질 때 떨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마음을 긁어 부스럼 만들어 버렸던 것들을 슬그머니 나뭇가지에 걸어 두었던 것이다.
그 나뭇가지가 고요한 것으로 보아 바람도 사색에 머물러 있나 보다. 겨울은 바람도 사색에 빠지는 계절, 동백은 선운사에서 사는 길을 묻던 내게 쉼표 하나 찍고 가라는 눈빛을 주었다. 쉼표, 그것이 비우는 삶의 미학적 표현이다. 사람에 따라 생각이 다를 수 있지만 겨울은 계절의 여백이라 생각한다. 겨울이 지나면 무엇을 시작해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봄을 맞이하고 연둣빛 잎들이 서서히 짙어갈수록 덩달아 삶도 채우기에 급급해지는 경우가 많다. 치열하게 보낸 여름이 지나면 서서히 그 노력의 흔적만큼 결과가 드러나는 계절이 된다. 그러나 했던 지난 시간들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가장 적합한 계절이기에 겨울 산사는 그 어느 시기보다 텅 빈 자리의 쓸쓸한 풍경조차 그윽하게 아름답다.
지금 겨울은 바람을 통해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고요에 묻히라
그 여백에 삶을 쉬게 하라


바람에 지난 흔적을 지우라
그리고 겨울을 삶의 쉼표로 만들라


살다보면 지우고 싶은 흔적이 있을 때가 있다. 사랑은 연필로 쓰라고 했던 가요가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었던 것도, 가장 소중한 것을 가장 가슴 아프게 잃을 것을 염려하게 될 때 미리 지우기 쉬운 연필로 기록을 하듯 차라리 지우기 쉬운 그런 마음인 게 낫겠다고 여기게 된다. 그러나 그렇게 되는 것이 또한 쉬운 게 아니다. 쓱쓱 지우며 살 수 있다면 삶이 어려울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내 흔적은 아무리 지우고 싶어도 지우기가 어려운 것이며, 결코 삶은 쉽지 않다. 그러므로 불교에서는 이를 ‘업業’이라 하며 인연업보의 소중함을 깨닫고 매 순간을 지혜롭게 살라 하고 있다. 내 힘으로 지우기 어려운 업으로 가슴속이 무거울 때 산책 삼아 산사 도량을 돌아보는 것은 내 습관이기도 하지만 누구에게나 권하고 싶은 시간이다.
답답한 가슴으로 선운산 도솔암에 오를 때 이미 마음의 빗장을 열게 된다. 차밭을 지나 나무뿌리가 다 드러난 오솔길을 따라가면 그 순간, 고민했던 것이 뭔지도 잊어버리게 된다.
진흥굴- 숭불의 왕으로 알려진 신라 24대 진흥왕이 부처님의 계시를 받아 당시 백제 땅인 고창에 의운국사를 시켜 선운사를 창건케 했다고 한다. 왕위를 퇴위한 후 선운사에 머물 때 수도했다는 암굴이 진흥굴이다. 그 굴에 서면 천년의 시간이 바람 한 점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내가 숨 쉬는 이 순간이야 우주의 시간으로 보자면 더 쪼갤 수도 없는 ‘찰나’ 아닐까. 이 짧은 찰나를 허겁지겁 살아야 할 것인가. 무엇을 향한 집착이 나를 허망한 그물에 가둔 것일까, 돌아보는 순간 도솔암에 이른다.
찻집부터 눈에 들어오지만 보제루에서 잠시 부드러운 산 능선의 아름다움을 눈으로 따라 가보고 다시 내원궁으로 향한다.
고려 때의 정교하지 않은 조각에서만 느낄 수 있는 편안함과 소박함이 깃들어 있는 마애불상 앞에 서면 살짝 익살스러우면서도 친숙한 표정을 겸비한 마애불 미소에 그간 마음속에 잡고 늘어진 것들이 얼마나 허접한 번뇌의 껍질이며 업의 잔해인가를 깨닫게 되어 저절로 붙잡고 있던 것을 떨어내게 된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붙잡고 있는 그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게 되는 순간, 작은 법열에 가슴이 떨린다.
마애불에 숨겨진 신비한 이야기는 동학인들에 의해 꺼내지면서 공허한 전설이 되었지만 내원궁에서 무엇인가 얘기를 할 듯한 표정인 천마봉의 바위들을 보니 도량 곳곳에 숨겨진 이야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새기고 살아야 하는 의미가 무엇인가를 찾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목숨 하나 받아 온 인연이 얼마나 귀한가
찰나-이 한 겹을 오롯하게 사랑하라
마주하고 있는 눈빛의 인연을 소중하게 풀라
찰나-우주의 한 겹에 담긴 그 귀함을 위해  


코끝이 시리더니 산신각을 돌고 다시 암자로 내려오는 시간에 백팔 배 한 손마저 차가워졌다. 맑은 물 한 모금으로 가슴은 씻어냈지만 따뜻한 한 모금으로 그 가슴을 데워야 하겠기에 찻집으로 향했다. 
“오! 자네 왔는가” 하며 반겨 주는 ‘도솔암 찻집’은 “마음 쉼터 무료 ‘찻집’”이라는 정겨운 글씨에서 편안함을 갖게 한다. 바람조차 풍경이 되고, 풍경이 법문이 되는 자리에서 차 한 잔 마시다보면 둘이 한 몸으로 살면서도 마음 비끼어 갔던 사람조차 ‘찰나-에 사랑할 내 안의 부처’라는 생각이 든다.
도솔암은 이러쿵저러쿵 말이 없다. 마음을 쉬고 가라고 모든 것을 내어준 도량이다. 찻집도 이런저런 주문이 필요 없다. 내어준 것을 마시고 잠시 풍경 한 점 보다가 깨끗하게 정리하고 가는 자리일 뿐이다. 그렇다, 사는데 필요한 묘책은 따로 없다. 그냥 마냥 사랑할 수밖에. 그러다가 또 어그러지면 또 조금 더 사랑할 수밖에….
비우고 떨어내고, 다시 채우고 데우고, 보인 듯 보이지 않은 듯 함께 한 겨울바람과 속삭이다가 소롯길을 다시 내려온다.


노을을 쏘아 올린
구름을 붙들고서


차마 못한 말 한 마디
건네고 돌아보니


따라온 미륵불 미소
소롯길에 가득하다


- <소롯길 미소> 도솔산 도솔암을 내려오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