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頂宇 스님
본지 발행인 | 구룡사 회주
우리가 살아온 인생人生을 뒤 돌아보는 자신에게 스스로 묻게 됩니다.
인생의 열두 고갯길에 서서, 나는 지금쯤 몇 고갯길을 넘어가고 있을까.
그 길 위에서 인생을 마치게 되는 날, 몇 고개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일까요.
몇 년 전, 불광산사의 성운 대사님을 뵈었을 때 인생을 나눈 적이 있습니다. 인생은 생로병사生老病死, 태어나 늙고 병들고 죽는다고 규정 짓는데, 큰스님께서는 “노병사생老病死生이다.” 늙고 병들어 죽으면 다시 태어난다는 믿음을 가지라고 하셨습니다. 인과因果를 믿고 윤회輪迴를 부정하지 않는 불자들의 생사生死는, 나고 죽고 죽고 나는 윤회의 길이 보편적인 불교의 견해입니다.
그런데 성운대사님은 우리의 인생은 이미 태어나 그 시간 속에 늙고 병들어 가지만, 다시 태어난다는 다음 생의 노병사생의 연속성인 인생이었습니다.
인생은 늙고 병들어 죽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다시 태어난다는 믿음을 가지라는 가르침을 불자들에게 전해주시고자 하는 가르침이 아니었을까 싶었습니다.
인생을 열두 고갯길로 표현 했지만, 더 단순화하면 1기 인생은 성장과정, 2기 인생은 활용과정, 3기 인생은 회향해가는 자신을 들여다보며 후회 없는 인생을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으로 가르침을 전합니다.
인생은 짧다는 것이 비극이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살다 어디로 떠날 것인지 모르는 것이 비극이라 했습니다. 우리네 인생이 짧다는 것이 아쉬움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너무 늦게 깨달았다는 것이 인생의 슬픈 아픔이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이 허망하지 않은 이를 곧 보살菩薩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인간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흔히 게으름이라고 하였습니다. 역대 조사 스님들도 “방일放逸하지 마라. 게으르지 마라. 방심하지 마라. 방종하지 말라.”고 강조하신 경계를 전해 주고 있습니다. 방일이나 방종이나 방심이라는 것은 극단적으로 나를 팽게치고 함부로 살아가는 모습일 것입니다.
이런 삶을 살지 않기 위해서는 마음이 허망하지 않도록 경계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부단한 정진이 필요합니다. 마음이 허망하지 않으면 곧 보살입니다.
몸은 비록 복이 없어서 말법시대末法時代에 태어났더라도 이 마음이 고요하여 허망하지 않으면 “하고 있는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과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그대로가 보살행이다.”하신 가르침에 우리 모두는 좀 더 깊은 인식으로 노력하며 살아갈 수 있었으면 합니다.
『선가귀감禪家龜鑑』에도 “허물이 있으면 참회하고 잘못된 일이 있으면 부끄러워할 줄 아는 것, 이것이 대장부의 기상이다.” 하셨습니다.
허물이 있으면 그 허물을 참회하고 스스로 새롭게 태어나면 이내 잘못도 사라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참회라는 것은 자신이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다시 그런 잘못을 범하지 않겠다는 약속이자 맹세입니다.
부끄러워할 줄 아는 것은 안으로는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허물을 드러낼 줄 아는 것입니다. 마음은 본래 텅 비어 있어서 고요하므로 어떤 업業도 그곳에 물 들어질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즘 대선정국의 우리 사회를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생각이 다르면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는데, 자기가 쳐놓은 줄자에 안 맞으면 무조건 비난하고 비판하기 일색입니다.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공부는 모르는 것부터 배워야 하고 시험문제는 아는 것부터 풀어가야 된다고 합니다. 그러니 우리도 어떤 문제부터 풀어가야 할지, 볼 수 있는 변별력과 이해력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안목을 키워가야 할 것입니다.
시험문제를 풀어 가는데 중간에 모르는 문제가 나오면, 그 문제를 붙들고 있으면, 나머지 문제는 풀지 못하고 말 것입니다. 모르는 문제가 있으면 그 문제는 유보하고 아는 문제부터 풀고 그 다음에는 알 듯한 문제를 풀고 시간이 남으면 모르는 문제를 풀어가야 합니다. 공부는 모르는 것부터 배우고 익히는 데 중점을 두고, 시험문제는 아는 문제부터 차근차근 풀어가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문제 삼아서 매일 따지기만 하면, 작은 것도 문제 아닌 것이 없습니다. 세상 전체가 엉클어진 문제 덩어리일 것입니다. 서로 이해하며 살아갈 수 있는 여유들이 우리들에게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 안타까운 사회현실입니다.
말 잘하는 이는 아나운서가 최고요, 노래 잘하는 이는 가수이며 염불이야 스님들이 오래 다듬어졌기 때문에 잘 할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자기 수준에 모든 것을 맞추려고 하면 아쉬운 모습만 들여다보게 될 뿐입니다.
허물이 있으면 진심으로 참회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 부끄러워할 줄 아는 이것이 장부의 기상입니다. 그리고 그런 일은 반복하지 않으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모르고 짓는 업이 더 무겁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잘못한 것인 줄 모르기 때문에 계속해서 반복하여 짓기 때문입니다.
허물을 고쳐 스스로가 새롭게 태어나게 되면 잘못한 것도 이내 사라집니다.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요 심약멸시죄역망心若滅是罪亦忘이라.
죄망심멸양구공罪忘心滅兩俱空이면 시즉명위진참회是卽名爲眞懺悔입니다.
죄업은 성품이 없는 것이며 마음으로부터 일어납니다. 만약 마음이 소멸되면 죄업 또한 소멸되고 죄업과 마음이 모두 공적하면 이것을 이름하여 진정한 참회라고 하는 것입니다.
참회라는 것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다시는 범하지 않겠다는 맹세입니다,
부끄러워함은 안으로는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허물을 드러내는 일입니다.
사실 마음이란 본래 비어있어서 고요하므로 죄업이 깃들 곳이 없는데, 우리가 있다고 하는 중생심衆生心이 작용해서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허물이 있으면 참회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 부끄러워하고 용서할 수 있는 도량을 가지고 살아가야 이런 인생이 불자의 참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사람은 감언이설로 포장해서 부도수표를 남발합니다.
부도수표는 현금이 아닙니다. 부도수표를 현금이 아닌 줄 모르면, 부도수표는 현금처럼 가지고 있다고 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전합니다.
『법구경法句經』에 “단점을 말해주고 잘못한 것을 솔직히 지적해 주는 그런 현명한 사람을 만나거든 주저하지 말고 따르라.” 했습니다. “그는 나에게 보물이 숨겨진 곳을 알려주는 사람이니 좋은 일은 있어도 나쁜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했습니다. 『명심보감明心寶鑑』에도 “나를 칭찬하는 이는 나의 적이요. 나를 지적해주는 이가 진정한 나의 스승이라.” 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제악막작諸惡莫作하고 중선봉행衆善奉行하라. 자정기의自淨其意하면 시제불교是諸佛敎니라.” 모든 악을 짓지 말며 선은 받들어 행하라. 스스로 마음을 청정히 하면 이것이 바로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평생을 노력하면서 열심히 사는 이도 그 일을 실천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알 때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이라, 하나 속에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고 모든 것이 포함된 그 속에서 자기 모습을 잃어버리지 않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는 승가공동체의 일원으로 노력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정직한 사람이 성실하게 살아가는 그 모습은 있는 것이 아니라 행주좌와 어묵동정, 일상적인 생활에서 실타래를 풀어가는 수행자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부처님은 누구이시며 보살은 누구입니까? 승가공동체僧伽共同體의 일원인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 사부대중은 누구입니까?
마음이 맑고 깨끗함이 부처님입니다. 우리 모두 가지고 있는 이 마음이 맑고 밝고 깨끗하면 그 자체가 부처님이요, 마음이 지혜로우면 이것이 법法입니다. 달라이라마 스님은 “물질적인 자비의 한계를 넘어 마음이 행복해지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진정한 자비”라 하셨습니다. 세상을 바꾸고 싶거든 먼저 자기 내면의 변화를 가지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가까이에 있는 가족이나 이웃들이 변화할 것입니다.
거기서 주변 범위를 점점 넓혀 나아가면 세상도 바꿀 수가 있습니다.
저는 기후변화 환경운동의 아이콘이 된 스웨덴의 10대 소녀 그레타 툰베리가 환경운동 하면서 이곳저곳 다니며 절절한 절규를 드러내는 모습은 나비의 날갯짓처럼 보일 수 있었지만, 작은 변화가 지구 반대쪽에서는 폭풍우와 같은 커다란 변화를 유발시키는 나비효과로 지구 환경 문제를 목격하고 있습니다.
죽을 때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합니다. 인생의 업적과 영적인 씨앗만 안고 갈 뿐입니다. 씨앗이 열매이고 열매가 씨앗입니다. 열매를 따면 씨앗이 되고 씨앗이 성숙해 익으면 열매를 맺는 것처럼, 씨앗과 열매는 결코 둘이 아닙니다.
생멸生滅이 없고, 증감增減이 없고, 미추美醜가 없고, 대소大小가 없고, 장단長短이 없고, 동서東西가 없고, 남북南北이 없고, 전후前後가 없고, 좌우左右가 없는 것을 『반야심경般若心經』에서는 불생불멸不生不滅이요 불구부정不垢不淨이며 부증불감不增不減이라 했습니다. 색色이 공空과 다르지 않고 공이 색과 다르지 않다는 이 도리道理를 우리는 인식하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물질을 나누어 주는 것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진정한 자비심으로 마음의 행복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을 바꾸고 싶거든 먼저 나부터 달라져야 한다는 가르침 입니다.
출가한 지 오십년이 넘었고 불자들과 어울림을 가지면서 지낸 지도 사십여 년 되었습니다. 그렇게 살아오는 동안 어떤 곳에서 어떤 일을 하더라도 무엇인가 불사佛事를 이루고자 하는 일이 있으면 먼저 솔선하며 살았습니다.
군종교구장 시절 판문점에 평화의 종鐘과 무량수전에 16개국 6.25 참전용사의 위패를 모시고자 원願을 세웠을 때, 구룡사에서 먼저 1억 원을 마련한 다음 권선을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원을 세워 출발을 했기 때문에 11억 원이라는 시주금은 큰 사찰 주지스님들과 불사를 원만히 회향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불사에 침묵하며 스님들께 도와달라고만 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아마 그 불사는 원만히 마무리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보살행원菩薩行願은 내가 먼저 앞장서 나아가는 보살의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