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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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마음에서 시작된다

정우頂宇 스님
본지 발행인 | 구룡사 회주



불교의 가르침을 설명하자면
“제악막작諸惡莫作하고 중선봉행衆善奉行하라.
자정기의自淨其意하면 시제불교是諸佛敎니라.”
‘모든 악은 짓지 말고 모든 선은 받들어 실천하라.
이것이 바로 모든 부처님이 가르침이다.’
세 살 먹은 아이도 알 수 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평생을 살아도 선을 실천하기는 어렵습니다. 악을 짓지 않고 선을 실천한다는 것은 바르게 살아간다는 것인데, 바르게 사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시인 이채는 ‘6월에 꿈꾸는 사랑’이라는 시詩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사는 일이 너무 바빠 봄이 간 후에야 봄이 온 줄 알았네.
청춘도 이와 같아 꽃만 꽃이 아니고 나 또한 꽃이었음을, 젊음이 지난 후에야 젊음인 줄 알았네. 인생이 길다 한들 천년만년 살 것이며 인생이 짧다 한들 가는 세월 어찌 막으리. 봄은 늦고 여름은 이른 6월 같은 사람들아 피고 지는 이치가 어디 꽃뿐이라 할까.”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면 늘 아쉽고 미진하고 부족한 점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아쉽고 부족하고 미진한 것들을 받아들이고 그냥 그대로 살아가자는 것이 아니라 늦었다고 생각하는 이 시간부터라도 그러한 생각들을 바로 잡아 실천 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난 3년 동안 코로나 팬데믹으로 정신적이거나 육체적으로 낙심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불교인들은 다른 종교와 달리 세상을 보는 관점이 긍정적이기 때문에 잘살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불교는 우리 인생에 윤활유적이고 비타민적인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에너지를 발현할 수 있는 내가 되도록 노력하자는 것입니다. 그것을 불교는 수행修行이라 하고 정진精進이라고 합니다.
믿는 자만이 구원을 받고 천당에 갈 수 있다는 맹목적인 신앙信仰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신행信行 생활로 가꾸는 것이 중요한 덕목德目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위르겐 슈미더 독일의 기자는 4년 동안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는 30여 개의 종교를 직접 체험하고 “신이 인간의 뇌를 만들었을까, 인간의 뇌가 신神을 만들었을까?” 하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우리와 같은 세대에 살고 있는 향봉 스님은 유튜브에서 “신은 인간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 지고 필요에 의해 섬겨지며 신의 지배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내 관점으로 신神은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없다고 생각하면 극락極樂도, 천당天堂도, 지옥地獄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옥의 고통과 괴로움은 현실적으로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세 가지 변하지 않는 진리’ 삼법인三法印에 따르면 제행무상諸行無常이요, 제법무아諸法無我이며, 열반적정涅槃寂靜입니다. 제행무상은 모든 생명이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또 죽음을 맞이하면서 모양과 실체가 변화하듯 허상虛想이 되어 변화한다는 가르침입니다.
제법무아는 존재하는 실체가 없다는 의미로, 나我라는 존재는 주변의 인연에 의해 잠시 존재하는 것일 뿐, 항상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가르침입니다.
열반적정은 일체 사물의 무상함과 실체 없음을 깨달으면 자유로운 세계에 도달할 수 있음을 알려주는 가르침입니다.
불생불멸不生不滅이요, 불구부정不垢不淨이며, 부증불감不增不減한 제법공상諸法空相의 자리, 항상 된 나 법신法身, 즐거운 나 열반涅槃, 참 나 진아眞我 부처, 깨끗한 나 법法이라고 하는 덕목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알지 못하고 있는 우리들 입장에서는 어찌 보면 나도 없는 것입니다.
삼세심불가득三世心不可得이라, 공空의 이치에서 보면 과거심過去心도 얻을 수 없고, 현재심現在心도 얻을 수 없고, 미래未来心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런가 하면 욕지전생사欲知前生事인데 금생수자시今生受者是요, 욕지내생사欲知來生事인데 금생작자시今生作者是라 할 수 있습니다.
전생을 알고 싶으면 지금 내가 처해 있는 현실을 보면 되고, 내생에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으면 지금 살아가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 될 것입니다. 결국 자작자수自作自受요, 자업자득自業自得이며, 자승자박自繩自縛하는 인과의 논리로 결론을 우리는 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위르겐 슈미더는 4년 동안 30여 개의 종교를 접하면서 겪어 보니, 중요한 것은 결국 어떤 신을 믿느냐는 것보다는 어떻게 내가 살아가고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하였습니다. 내가 지금 어떻게 사느냐, 살고 있느냐, 살아가고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결론적인 답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종교에서 신神은 모든 사람들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마음에 드는 사람만 천국으로 들여보낸다는 것입니다. 믿지 않으면 갈 수 없다고 한답니다. 위르겐 슈미더 기자는 ‘신은 모든 사람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실상은 마음에 드는 사람만 천국에 들여보낸다니, 신에게 잘 보여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죽은 뒤에 만날 신이 내가 아는 그 신이 아니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는 많은 종교를 직접 체험해보기로 했었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종교를 하나로 합치거나 전부 없애버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에, 차라리 직접 체험해보기로 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되도록 많은 종교를 접하면서 그 장점을 취하는 범 신앙론자가 되어야겠다는 목표를 세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구원의 확률을 높이기 위해, 최대한 많은 종교에서 제시하는 삶의 방식과 가치관에 50% 이상 스스로를 일치시키자고 결심하고 그렇게 종교와 신앙체험을 했다고 합니다. 각종 경전과 종교서적 150권, 종교영화 DVD 100편을 보는 것을 시작으로, 필리핀에서 귀신 쫓는 의식을 지켜보고, 중국 도교 사원에서 명상을 배우기도 했다고 하였습니다. 그가 이렇게 여러 종교를 신앙하고 내린 결론은 만약 신이 그렇게 잔혹하고 질투하는 존재라면 인간에게는 애초에 구원의 기회가 없을 것이라는 결론을 얻었다고 합니다. 그 존재가 신이건, 우주이건, 카르마이건, 본질적으로는 선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바르게 살면, 종교와 상관없이 구원의 기회가 있다고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종교인들은 자신이 믿고 있는 종교에 대해서도 확실히 모르면서 자기와 종교가 다르면 틀렸다고 생각하고 나쁘다고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보다 더 어리석은 일이 없다는 것을 여러 종교를 체험하고 신앙하면서 느꼈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그는 모든 종교는 사람이 더 나은 삶을 살기를 원하며, 죽음이 끝이 아니길 바라고, 죽음 이후에도 더 나은 무언가가 있다고 믿는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느 신을 믿느냐가 아니라, 삶(생로병사生老病死)과 생명을 어떻게 바라보며 또 어떻게 잘 살아가는가의 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기원을 합니다.
‘천국이나 극락이나 아름다운 피안의 세계나 그 어디서든 우리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0여 개의 종교를 섭렵하고 내린 결론이 불교와 많이 닮아 있습니다.
불교는 선善을 행行하면 천당도 가고, 극락도 갈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천당도 가고, 극락도 가는 선행善行을 하는 것이 바로 앞서 말씀드린 종교적인 윤활유와 비타민적인 요소라고 할 것입니다.
현재 우리들이 보고 있는 실상들은 빈껍데기에 불과한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바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팔정도八正道에서 정견正見, 바로 본다는 것은 눈앞에 있는 현상만을 눈으로 본다고 의미하지 않습니다.
귀로 보는 것도 보는 것입니다. 눈을 감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말을 들어보세요. 지금 이 목소리를 듣고 이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모르시는 분은 없으실 것입니다. 그러니 귀로도 듣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단지 눈으로만 보고 있는 세상은 껍데기에 불과하다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있을 수 있습니다. 사람이 어떤 것을 정확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오직 마음으로만 볼 수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가족들이나 이웃들이나 나와 인연이 깊은 이들이 부처님 도량에서 함께 할 수 있는 법이 전해질 수 있도록 함께하는 불자가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