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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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행증’으로 읽는 화엄경 (36) - 신해행증’으로 읽는 화엄경 총결산 ④

신규탁(연세대 철학과 교수)


1.
본 연재의 진도는 지금 「보현행원품」에 등장하는 보현보살의 10대 행원 소개에 이르고 있다. 10대 행원이란, ⑴부처님께 예경하기, ⑵둘은 부처님을 찬탄하기, ⑶셋은 여러 가지로 공양하기, ⑷넷은 업장을 참회하기, ⑸다섯은 남의 공덕 따라 기뻐하기, ⑹여섯은 법문 설해주시길 요청하기, ⑺일곱은 부처님께서 세상에 오래 계시기 청하기, ⑻여덟은 부처님을 따라 배우기, ⑼아홉은 중생의 뜻을 늘 따라 주기, ⑽열째는 모두 회향하기이다. 이 중에서 지난 11월에는 ⑵와 ⑶을 소개해 마쳤다. 12월에는 이어서 ⑷~⑽을 소개하기로 한다.


2.
먼저 ⑷업장 참회하기를 보자. 참회의 ‘참懺’ 자는 범어 ‘샤마kṣama’를 소리로 번역하여 ‘참마懺摩’라고 한 데에서 유래한다. ‘누우치다’라는 뜻이다. 여기에는 지난 잘못을 뉘우침뿐만 아니라, 과거를 뉘우치고 고쳐서 앞으로는 미래를 닦는다는 뜻이 함께 들어 있다.
불교도들에게 잘못은 크게 둘이 있다. 하나는 부처님께서 계로 금지하지 않았더라도 그 자체가 이미 죄가 되는 것이다. 살생이나, 도적질이나, 음행이나, 수행해서 경지를 체험하지 못했는데도 체험했다고 거짓말하는 것이다. 이것을 전문 용어로 ‘성죄性罪’라고 한다. 한편 그 자체의 행위로는 죄라 할 수 없지만, 죄를 지을 가능성을 높이는 행위를 말한다. 예를 들면 ‘8계’에서 금하는 것으로, 술 마시는 일, 화장하는 일, 노래 부르고 춤추는 일, 때 아닌 때에 식사하는 일 등이다. 이런 죄를 ‘차죄遮罪’라고 한다.
죄를 안 지으려고 노력해야 하지만, 부득이 죄를 지었을 때는 참회를 해야 한다. 비유하면 옷을 더럽히지 않고 깨끗하게 입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오염이 되었을 때는 세탁해서 입어야 한다. 죄를 참회하는 데에는 일정한 격식이 있다. 위에서 분류한 대로 ‘차죄’를 지었으면, 다음과 같이 참회하라고 「보현행원품」 본문에서 말하고 있다.


“내가 지나간 세상 끝없는 겁 동안에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마음으로 몸과 말과 뜻을 놀리며 모든 나쁜 짓을 한 것이 한량없고 가이없으니, 만일 나쁜 짓을 한 것이 형체가 있다면 끝없는 허공으로도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이제 세 가지 깨끗한 업으로 법계에 두루하여 티끌처럼 많은 부처님 앞에서 지성으로 참회하고 다시는 짓지 아니하오며, 항상 깨끗한 계율의 모든 공덕에 머물겠나이다.”


이렇게 ‘차죄’는 참회하는 것으로 된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성죄’이다. 큰일이다. 이 경우는 ‘사참事懺’과 ‘이참理懺’을 동시에 해야 한다고 경문에서는 말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화엄 신앙이 유행했던 고려 이래 조선을 거쳐 지금의 우리나라에서는, 󰡔화엄경󰡕 「여래수호공덕품」에 나오는 다음의 구절에 의해서 ‘참회 작법’을 시행한다. 즉, 부처님이 모셔진 본당에 들어가 “중생계와 같은 선한 신·구·의 3업[身語意]으로 모든 장애를 뉘우쳐 제거한다”라고 말이다. 또 “모든 업이란 그 본성이 시방 어디에 존재해 있다 마음으로 와서 머무는 것이 아니고, 전도 때문에 생기는 것으로 존재하는 곳이 따로 없다”고 한 것 등은 ‘이참’의 방법에 해당한다.
마음으로 경건하고 공경하게 하게, 몸으로는 두 무릎을 꿇고, 입으로는 잘못했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이렇게 ‘사참’을 하면서 그리고 더 나아가 죄의 본성에 대한 근본적인 참회인 ‘이참’을 해야 한다고 한다. ‘이참’에 대해서 전통의 화엄교학에서는 ‘열 가지 생사에 떠내려가는 마음 참회’할 것을 지도하고 있다. 그리하여 생사의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 본래의 청정을 회복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 열 가지란 다음과 같다.
⑴첫째는 인과를 분명히 믿고, ⑵둘째는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어 엄하게 꾸짖고, ⑶셋째는 3악도를 두려워하고, ⑷넷째는 자신의 흠결을 덮지 않고, ⑸다섯째는 계속 이어지는 마음을 끊고, ⑹여섯째는 보리심을 내고, ⑺일곱째는 공덕을 닦아 허물을 보수하고, ⑻여덟째는 정법을 수호하고, ⑼아홉째는 시방의 부처님을 염念하고, ⑽열째는 죄의 성품이 공空한 줄 관찰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⑸다섯은 남의 공덕 따라 기뻐하기, ⑹여섯은 법문 설해주시길 요청하기, ⑺일곱은 부처님께서 세상에 오래 계시기 청하기, ⑻여덟은 부처님을 따라 배우기, 이 넷을 묶어서 설명하기로 한다. ⑸에서 남의 공덕이라 했는데, 이때 제일은 부처님 선행 공덕을 따라 하고 기뻐하는 일로, ⑻이 그것이다. 󰡔법화경󰡕 「수희공덕품」에 그런 정신이 잘 드러나 있다. ⑹은 대승의 보살이라면 중생을 연민하는 정이 있으니, 중생을 위해 성인께서 법문해주실 것을 청하는 것이다. 나와 남을 흠뻑 적시도록 법을 청해야 한다. 그런 성인 중의 성인이 열반에 드시지 않고 세상에 오래 머무시어 중생을 위해 법 설하실 것을 청하는 것이 ⑺이다.
본 강의를 시작하면서 보현의 10대 행원을 크게 셋으로 나누었다. 즉, 󰊱첫째로 ⑴, ⑵, ⑶, ⑹, ⑺, ⑻은 부처님과 관련한 일이다. 󰊲둘째로 ⑷는 자신의 잘못을 참회하는 일이다. 󰊳셋째로 ⑸, ⑼, ⑽은 남에게 잘하는 일이다. 그런데 ⑸는 그 내용을 보면 부처님과도 관련이 된다. ‘남’ 중에서 가장 훌륭한 분이 바로 부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니 ⑸를 󰊱첫째의 부처님께로 향하는 수행으로 분류해도 무방하다.


3.
이렇게 하여, 󰊱첫째의 부처님과 관련한 실천과 발원, 그리고 󰊲둘째의 참회와 관련한 실천과 발원을 모두 설명해 마쳤다. 마지막 󰊳셋째로 즉, ⑸와 ⑼와 ⑽으로, 이는 모두 남에게 잘하는 실천이요 발원이다. ⑸는 위에서도 말했듯이 부처님과도 관련된다. 󰊳셋째의 특징은 ‘중생 구호’이다.
중생에게 공양하고 구호하기를 내 부모에게 하듯이 하고, 스승에게 나아가 부처님께 하듯이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 대승불교의 특징이 이곳에 잘 드러난다. 우리가 음력 초하루나 보름 불공에 참여하면 ‘유치’와 ‘청사’를 하면서 부처님에 공양을 올리는데, 이때 나오는 염불 구절이 바로 「보현행원품」의 열 번째 소개되는 대승의 보살도를 실천하는 회향 대목에 나온다.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내가 모두 따라주면서, 가지가지로 섬기고 가지가지로 공양하기를 부모같이 공경하고 스승같이 받들며, 아라한이나 부처님이나 다름없이 하며, 병난 이에게는 의원이 되고, 길을 잃은 이에게는 바른길을 보여 주고, 캄캄한 밤에는 빛이 되고, 가난한 이에게는 숨은 보배 광을 얻게 하면서, 보살이 이렇게 중생들을 평등하게 이롭게 하느니라.”


이 부분의 한자 원문을 그대로 인용해보자.


“어제병고於諸病苦에 위작양의爲作良醫하며 어실도자자於失道者에 시기정로示其正路하며 어암야중於暗夜中에 위작광명爲作光明하며 어빈궁자於貧窮者에 영득복장令得伏藏하야”


화엄의 보현 행원 사상이 우리나라 불교 신행 현장에 깊이 들어와 있음을 알게 하는 대목이다. 그러면 이렇게 수순 중생하고 구호 중생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보현행원품」 본문에서는 어떻게 답하고 있는가? 즉, 이렇게 보살행을 해야 하는 근거를 말씀해주신다.


“보살이 중생을 따라주는 것은 부처님에게 순종하여 공양함이 되고, 중생을 존중하며 섬기는 것은 부처님을 존중하고 섬김이 되며, 중생들을 기쁘게 하는 것은 부처님을 기쁘게 함이 되느니라.”


중생 구호가 곧 부처님을 기쁘게 하는 행위란다.
그런가 하면 중생 구제가 그렇게 구제하는 당사자에게 보리심을 내게 하여 끝내는 성불하게 한다는 것이다. 남 구제가 자기 성불이라신다. 대승의 불교가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 주는 대목이다. 이 말씀을 인용하면서 금년의 원고를 마치고자 한다.
새해에도 부처님 일을 많이 하도록 저도 발원하고 우리 모두 그러기를 축원합니다.


“부처님은 자비한 마음으로 성품을 삼으시므로, 중생으로 인하여 자비심을 일으키고, 자비로 인하여 보리심을 내고, 보리심으로 인하여 정각을 이루기 때문이니라.”
 
위 인용문에 나오는 자비한 마음은 중생들과 함께하는 마음, 즉 동체대비同體大悲이다. 그리고 ‘보리심’이란, 위로는 깨침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하려는 마음이다. 이 마음의 내용은 “중생은 모두 다 제도하리라, 번뇌는 모두 다 끊으리라, 법문은 모두 다 배우리라, 불도는 모두 다 증득하리라”는 4홍서원이다. 보살은 광대한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의 서원을 세우고, 3아승기 100대겁 동안 6바라밀 등의 행을 닦으면 불과를 얻는다고 한다. 꾸준히 보살행을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