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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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는 허물을 뉘우치고 부끄러워하는 것

정우頂宇 스님
본지 발행인 | 구룡사 회주



부처님께서 45년 동안 전법을 하시며 대중들에게 다음과 같은 전법을 강조하셨습니다.
“자 길을 떠나자.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으니 조리 있는 말로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설하자. 갔던 길로 되돌아오지 말고 두 사람이 함께 가지도 말자. 모든 이의 이익과 안락과 행복을 위해서 길을 떠나자.
나도 우루벨라 병장촌에 가서 법을 설하리라.”
가장 많은 불자들이 모이는 날이 바로 초하루 날인데, 듬성듬성한 비어있는 자리들을 보다보니 문득 부처님의 전도 선언이 떠올라 전해드립니다.


지난달 예술의 전당 한가람에서 <코스모스>를 주제로 종정 예하 <성파 선예禪藝 특별전>에서 원효元曉스님 마명보살馬鳴菩薩의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을 주석한 『기신론소起信論疏』 서문을 떠올려보았습니다. 원효스님의 『기신론소』 서문은 일심一心을 바탕으로 진공眞空과 묘유妙有의 상호작용을, 모든 존재는 하나의 근원에서 비롯되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가르침이 예술적으로 구현된 장면을 마주한 듯했습니다. 원효스님은 『기신론소』에서 “하나의 마음이란 모든 법의 근본으로, 진여문眞如門과 생멸문生滅門으로 나뉜다.” 하셨습니다. 진여문은 모든 것이 본래 비어있는 진리를 뜻합니다. 또 생멸문은 비어있음 속에서 끊임없이 창조되고 변화하는 존재의 모습을 뜻합니다. 특별전의 작품들은 이러한 법칙을 선예禪藝의 형식을 통해 구현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코스모스라는 주제는 특히 진여와 생멸의 조화를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작품 속에서 무한한 우주의 질서와 아름다움이 형상화된 모습은 비어있음 속에서 유有가 드러나는 법칙을 깊이 체감하게 했습니다.
각 작품들은 마치 하나의 작은 우주처럼 무형의 진리를 유형의 모습으로 담아내며 진공과 묘유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었습니다.
특별전은 원효스님께서 말씀하신 일심의 묘리가 예술로 형상화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하고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비어있음이 곧 충만함이고, 충만함이 비어있음으로 돌아간다는 순환의 법칙이 스님의 손끝에서 다양한 장르와 매체를 통해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예술적 구현은 단순히 아름다움의 감상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내면에 깃든 일심의 근원을 성찰하도록 이끌었습니다. 대중들은 감탄 했습니다. <성파 선예 특별전>은 단순한 전시를 넘어, 원효 스님이 설하신 법문이 시각적이고 감각적인 언어로 새롭게 해석되고 실현된 장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우주와 인간, 공空과 유有, 그리고 예술과 깨달음, 상호작용에 대해 깊이 있는 통찰을 얻게 하였습니다.


사회적 문제의 많은 부분은 결국 인간이 스스로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문제는 상호 신뢰가 쌓여야만 해결될 수 있습니다. 살다 보면 분노가 일어나기도 하지만, 기억하고 분노하기보다는 잊고 스스로 용서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보리심菩提心을 잃지 않게 될 것입니다.
분노는 판단력을 흐리게 합니다. 그 분노는 어리석음에서 비롯됩니다.
그 어리석음은 욕심이 많을 때 드러나기 쉽습니다. 이를 이기주의利己主義라 합니다. 이기심利己心을 없애려면 과거, 현재, 미래를 생각하고 윤회輪迴를 믿으며 사는 길밖에 없습니다. 인과因果를 믿고 윤회를 부정하지 않는 사람은 함부로 살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중국 팡 차오의 글에 따르면, “눈이 흐려져 앞이 어른거릴 때는 무엇을 보아도 잘못 보게 되고, 귓병이 있어 소리가 울리면 무엇을 들어도 잘못 듣게 된다. 마음에 선입견이 있으면 무엇을 처리하든 잘못 생각하게 된다. 따라서 마음을 비워두는 것이 중요하다.” 했습니다. 마음속에 어떤 고집을 품고 있으면 비틀어지고 오그라지듯, 떨어질 땐 떨어질 줄 아는 것이 자연의 섭리입니다.
인생도 나이가 들수록 탐욕과 집착이 깊어지는 것을 ‘노탐老貪’이라 하는데, 이를 제어할 방법은 없습니다.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을 때도 우리는 집착을 내려놓기 어렵습니다. 늙고 병들어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내면의 마음을 비우고 이를 잘 살피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고려 시대 나옹 스님과 깊은 인연이 있던 중국 양나라 천축국의 스님인 지공화상誌公和尙은 다음과 같은 시詩를 남겼습니다.
“해가 저무는 저녁에 도를 배우려면 가난함을 싫어하지 말라. 형상에 있는 것은 본래 거짓으로 모인 것이니, 진실이라 할 수 없다. 마음이 맑고 깨끗하면 번잡하지 않나니, 어리석은 이를 가까운 이웃으로 삼지 말라.”
우리는 어리석은 이를 가까이하지 말아야 합니다. “불필요한 일에 마음을 쓰지 않으면, 잠깐이라도 출가한 이라 불러줄 수 있으리라.” 하였으니 본분을 지키려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저잣거리를 배회하듯 기도하는 마음으로는 신행 생활을 이어갈 수 없습니다. 기도는 체험을 통해서 얻어지는 간절한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확신과 신념이 흔들릴 것입니다.
믿음이 흔들리면 의심만 남습니다. 의심이 무엇인지를 묻는 제자에게 “대개는 의심하지 않는 것을 의심이라 한다.”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기도는 단순한 관념이 아닌 깊은 내적 체험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이 교훈은 오랜 동안 전해 내려온 스님들의 가르침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기도는 단순히 절에 와서만 드리는 시간으로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세속의 저자거리에서 아무런 변화 없이 행동하면, 그 기도는 충분하다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체험을 통해 얻어지는 간절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확신과 신념이 흔들립니다. 믿음이 흔들리면 의심만 생기고, 불안해져 마음이 흔들리게 됩니다. 그래서 “의심하지 않음을 의심이라”한 것입니다. 헛된 기도는 머릿속에서만 맴도는 관념에 불과할 것입니다.


옛 시조에도 이런 글이 있습니다.
“까마귀 검다 말고 해오라기 희다 말라.
검은들 모자라며 희다고 남을소냐.
할 일 없는 사람들이 옳다 그르다 하더라.”
그러니 시시비비를 피하며 사는 삶이 중요하다 하는 것입니다.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에 “다른 사람의 허물을 함부로 말하지 말라. 언젠가는 반드시 나에게로 되돌아온다. 되돌아와서 나를 어렵고 힘들게 손상시킬 것이다. 만일 다른 사람을 비방하는 소리를 듣거든 마치 나의 부모를 헐뜯는 것처럼 여겨라. 오늘 아침에는 비록 다른 사람의 허물을 말했지만, 내일은 반드시 나의 허물을 말할 것이다.”
우리는 세상에 살면서 허물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으며 장단점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저도 내년이면 절에 출가한 지 60년이 됩니다. 젊은 시절에는 이상은 높고 현실은 어수선하고 힘은 넘치던 힘든 시기도 있었습니다. 다행히 어른 스님들께서 저를 보살펴 보시고, 통도사 대웅전에서 정기법회를 주선해주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 기회를 통해 대중들과 함께 어울림을 가지며 살 수 있었다고 보여집니다.
『선가구감禪家龜鑑』에 “허물이 있으면 참회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 부끄러워할 줄 아는 것이 대장부의 기상이다.” 하셨습니다. 허물이 있으면 참회하고, 잘못한 일은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하는데, 요즘은 너무 뻔뻔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 역시 다른 이들이 볼 때는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지도 모릅니다.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면 그의 인생은 떳떳하지 못한 삶이 될 것입니다.
참회란 자신의 허물을 뉘우치고 다시는 범하지 않겠다는 맹세입니다.
부끄러워함은 안으로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허물을 드러내는 일입니다.


마음은 본래 비어 있고 고요함으로, 죄업도 깃들 수 없는 것이 진공묘유眞空妙有의 삶입니다. 『법구경法句經』에도 이런 가르침이 있습니다.
“단점은 정확히 말해주고, 잘못은 솔직히 지적해 주는 현명한 사람을 만나거든, 주저하지 말고 그를 따르라. 그는 나에게 보물이 숨겨진 곳을 알려주는 사람이니, 좋은 일만 있을 뿐 나쁜 일은 없을 것이다.” 하셨습니다.
『명심보감明心寶鑑』에도, “나를 칭찬하는 이는 나의 적이요, 나를 지적해주는 이가 진정한 나의 스승이다.”고 했습니다. 이 가르침 속에서 우리는 자신의 허물을 바로 보고, 더 떳떳하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는 불자가 본분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