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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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산, 겨우살이

 


홍성범
숲해설가


겨울 산에 가면 앙상한 나무 가지 끝에 새의 둥지 같기도 하고 바람에 실려 온 다른 나무의 가지 같기도 한 것을 볼 수 있다. 겨우살이다.
그러나 최근 약재로 관심이 높아져 인적이 드문 곳에서는 함부로 채취하여 그 수가 줄고 있다.
겨우살이는 쌍떡잎식물 단향목에 속하는 기생 식물들을 일컫는 말로 기생관목. 겨우살이, 겨우사리, 동청冬靑, 기생목寄生木 등으로 불린다. 영어로는 Mistletoe라고 한다.
다른 식물에게 기생해서 겨울을 나는 식물로 늦가을에 싹을 틔워 겨우내 숙주가 되는 나무의 수액을 뽑아 먹고 꽃을 피운 다음 열매를 맺는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번식 방법으로 새를 이용하는데, 새가 열매를 먹고 다른 나무의 가지에 배설을 하면 거기서 자라는 것이다. 나무 가지에 잘 달라붙을 수 있도록 열매는 아주 끈적끈적하다. 씨앗은 물이 없더라도 싹이 트지만, 빛이 없는 곳에서는 싹이 안 난다. 나무 가지가 아닌 곳에서는 다른 식물처럼 발아까지는 하지만 제대로 생육하지 못한다. 다른 나무의 가지에서 껍질을 뚫고 들어가 싹을 틔우고 수액과 양분을 빼앗아 섭취하며 살아간다. 특이한 생존방식이다.
겨울이 되면 산은 온통 하얀 세상이다. 초겨울부터 내린 눈이 응달에 쌓이고 쌓여 이듬해 봄에 녹을 때까지 산은 모든 것이 죽은 듯 깊은 잠에 빠진다. 그런데 이 시기에 늙은 나무의 가지에서 제 세상을 만나 푸르름을 잃지 않는 녹색 다발을 우리는 만나게 된다. 바로 겨우살이다.
북풍한설이 몰아칠수록 높은 가지에 까치집처럼 매달려 흔들흔들 마냥 신난다. 추위가 매서울수록 더욱 푸르다. 주로 참나무류의 줄기에 붙어 자라는 것을 쉽게 접하는데 서어나무, 버드나무, 팽나무 등 낙엽활엽수의 큰 나무 등에도 산다. 땅에 뿌리를 박고 사는 나무와 달리 겨우살이는 남의 몸에 깊숙이 다리를 뻗고 산다. 가을에 콩알 같은 둥근 열매가 노랗게 익으면 산새들이 따먹는다. 그리고 그 열매를 배설물과 함께 여기저기에 퍼트린다. 우연히 큰 나무의 가지에 떨어진 씨는 다른 나무의 속살로 파고드는 데 뿌리는 나무껍질을 뚫고 들어가 영양분을 빨아 먹고 정착한다. 겨우살이 열매의 껍질을 벗기면 속에 점액질의 과즙이 들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달콤한 과즙이 새들을 유혹하는 것이고 이는 겨우살이와 새와의 절묘한 공존이다.
새들은 겨우살이 열매를 삼키지만 딱딱한 씨는 소화되지 않고 버려지게 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겨우살이의 씨는 그냥 나뭇가지에 있을 때는 쉽게 발아하지 않는다. 반드시 동물의 장을 통과하여 소화 효소에 의해 섬유질이 분해되고 나서야 싹이 튼다. 겨우살이의 씨를 감싸고 있는 딱딱한 껍질은 표면에 에나멜 성분으로 코팅 처리가 되어 있는데 장을 통과한 뒤에 에나멜질이 녹아 껍질이 수분을 흡수할 수 있게 되고 이어서 싹이 트는 것이다. 또한 새의 분비물은 비료 성분이 적은 가지에서 겨우살이의 성장에 필요한 훌륭한 밑거름이 되기도 한다.
처음 싹이 트면 두 장의 떡잎이 벌어지고 가운데에서 줄기가 자란다. 가지는 계속 두 개씩 뻗어 나간다. 가지 끝에 달린 잎은 두 장이 마주 붙고 긴 타원형이며 두껍다. 황록색의 꽃은 아주 작아서 잘 보이지 않지만 4장 내지 6장의 꽃잎도 있고 수술도 있다.
겨우살이의 뿌리는 단단한 목질부로 이루어져 있다. 숙주나무의 줄기에 쐐기꼴의 목질성 뿌리를 깊이 박아 줄기를 늘어뜨린다. 크게 자라면 줄기가 빽빽한 것이 지름이 1미터 정도의 녹색 공처럼 보이게 된다. 그 위에 흰 눈이라도 쌓이면 선명한 녹색이 더욱 푸르게 보여 겨울 산에서 독야청청이다.
겨우살이는 높고 깨끗한 가지, 그중에서도 명당자리만 뿌리를 박고 산다. 일하지 않고도 양식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그러면서도 인간들로부터 불사신의 상징으로, 하늘이 내린 신령스러운 나무로 귀히 대접 받으니 땅에다 뿌리를 박고 사는 다른 나무들의 입장에서 보면 약 오른다.
평안도에서는 전염병이 돌면 문 밖에 겨우살이를 걸어두고 역신을 쫓았다. 모든 생명체가 겨울이라는 계절의 신 앞에 무릎을 꿇을 때도 겨우살이는 홀로 청춘을 노래하기 때문이리라.
스웨덴에서는 겨우살이가 천둥번개 때문에 생기는 식물로 믿었다. 따라서 화마에서 사람을 보호해 주고 벼락을 피하는 효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탈리아에서도 겨우살이를 화재와 재앙을 막아준다고 믿었다. 아프리카 어느 부족은 겨우살이를 몸에 지니면 부상을 입지 않는다고 여겨 전쟁에 나설 때면 반드시 몸에 지녀 부적으로 사용하였다.
겨우살이는 기생식물이지만 녹색 잎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스스로 광합성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종자에 녹말을 저장한다. 다만 뿌리가 없어서 수분과 각종 유기물을 숙주나무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겨우살이는 동서양에서 모두 만병통치약으로 사용하였다. 특히 참나무류에서 자라는 곡기생, 뽕나무 가지에서 자라는 것을 상상기생목, 또는 상기생이라 하여 귀한 약재로 여겼다. 특히 뽕나무에 기생하는 겨우살이가 많았던지 이두吏讀에 상수상동사리桑樹上冬沙里로 표기하고 있다. 옛날에는 누에를 기르는 뽕나무가 많았으니 자연히 늙은 뽕나무에 겨우살이가 흔했을 것이다. 뽕나무가 귀해진 지금은 뽕나무겨우살이도 구하기 어려워 전설속의 약재가 되어가고 있으니 격세지감이다.
최근 독일에서는 겨우살이를 가공하여 항암제를 개발하고 있다. 꼬리겨우살이의 잎이 붙은 줄기에는 아비쿨라린 성분이 포함되어 있는데 혈중 콜레스테롤을 낮추고 혈관을 확장하여 동맥경화, 노인성 치매의 예방과 치료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한다. 또 겨우살이는 눈을 밝게 하고 몸을 가볍게 하며, 머리털과 치아를 단단하게 한다. 산모에게 특히 좋다고 알려져 있기도 하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불안할 때는 당귀와 함께 쓰면 좋다. 협심증이나 고혈압에는 두충, 갈근, 황금, 잇꽃, 꿀풀과 함께 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약재라 해도 의사의 지시에 따라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도 의사의 처방 없이 자신이 임의대로 과용하여 오히려 몸을 망치는 경우도 있다.
몸에 좋다는 풍문에 지리산 고로쇠나무가 수액을 채취 당해 말라 죽어 가고 있으며, 오대산 마가목은 껍질이 벗긴 채 백골로 변해가고 있다. 독초인 쇠뜨기를 끓여 먹고 설사병으로 고생한 사람도 있고. 독초인 인동을 보약인줄 남용하는 경우가 있다. 강장제로 알려진 삼지구엽초가 효험이 있다는 말이 나돌자 비슷한 모양의 독초인 연잎꿩의다리나 산꿩의다리가 비싼 값에 거래되기도 했다니 인간의 우매함이 도를 넘는다. 지구자라고 불리는 헛개나무가 당뇨병에 좋다고 알려지자마자 전국적으로 잘려 나가 지금은 희귀식물이 되었으며, 신경통 치료제라는 이름으로 참회나무, 화살나무, 회잎나무 같은 노박덩굴과 식물도 무더기로 수난을 당하고 있다. 인간의 탐욕이 숲을 망치고 있다.
약이 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실험과 임상실험을 거쳐야 한다. 겨우살이가 약재로 개발되어 불치병을 치료할 수 있다면 얼마나 다행인가. 그때를 위해서라도 겨우살이는 살아 있어야 한다. 무분별한 채취는 중지되어야 한다.
겨울 산, 높은 나무 가지에서 푸르름을 자랑하는 겨우살이가 인간을 살리는 명약으로 되기 위해서도 그들이 기생할 숲이 있어야 한다.
올 겨울, 겨우살이를 만나면 인간의 탐욕과 공존을 생각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