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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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회향할 마음이 없지, 물건이 없나요

신규탁(연세대 명예교수, 철학 전공)


1.
『범망경』에서는 대승 수행자가 지켜야 할 가치와 덕목을 네 단계, 열 항목으로 나누어, <10 발취심>, <10 장양심>, <10 금강심>, <10 지>를 차례로 나열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월간 붓다』 11월호에서 <10 금강심>의 둘째에 해당하는 염원하는 마음인 <염심念心>을 소개했습니다. 이번은 셋째의 회향하는 마음인 <회향심廻向心>을 소개할 차례입니다.
돌이켜보면 참 시간이 많이 흘렀습니다. 필자가 『월간 붓다』 독자님들과 만난 게 2015년 2월호부터였습니다. 처음에는 ‘선불교’를 주제로 원고를 쓰기 시작했는데, 그 사이에 주제를 바꾸어 가면서 벌써 20년하고도 10개월이 지나고 있습니다. 필자가 연세대에서 교수로 교편을 잡은 게 1994년 3월이었고 올해 2월로 정년을 마치고, 다시 명예교수로 임명되어 학부생들의 교양 수업을 5년간 더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필자의 교수 생활 절반 이상을 매월 『월간 붓다』 원고를 썼던 셈입니다. 이런 귀한 연연을 맺어주신 <중도기획> 신원식 대표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월간 붓다』 잡지를 운영해 오늘에 이어가는 정우 큰스님께 존경의 마음을 전합니다.
제가 불교와 인연을 맺은 1978년부터, 조계종 총무원과 불교 관련 신문이나 잡지, 그리고 여러 신행 단체에서 활동하는 스님이나 재가 불자를 많이 만났습니다. 단체들의 흥망도 많이 보았고 더불어 사람들의 오감도 많이 겪었습니다. 그동안 제가 보아왔지만, 긴 세월 불교 사업을 유지하고 포교에 매진하는 단체는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물론 나라의 경제 세월 속에서 상황도 변했고, 또 그에 따른 업계의 환경도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우선 잡지만 해도 『월간 붓다』처럼 많은 부수를 발행하고 널리 보급하고 게다가 긴 세월 유지하는 곳은 없습니다. 그것도 종단도 아닌 한 사찰에서 말입니다. 정우 큰스님의 원력이라고 생각합니다.
한편, 출판기획 및 언론 관련 업체들도 많았습니다만, 긴 세월 업소 간판을 달고 한결같이 유지하는 곳이 드뭅니다.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 <중도기획>이 유일합니다. 여기에는 신원식 대표님의 불심이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신 대표님 입에는 남을 헐뜯는 말을 담지 않습니다. 최고로 탓하는 말이라야 “아이고, 깝깝하네”가 고작입니다. 이 말이 가장 심한 질책입니다.
신 대표님은 스님들 일이라면 제백사하고 돕습니다. 미완성의 원고를 들고 와 책이나 자료집 제작을 부탁하더라도, 보충하고 수정하여 100%로 만들어냅니다. 처음 발주한 원고를 고치고 또 고쳐와도, 신 대표님은 묵묵하게 다시 만들어줍니다. 또 우물가에서 숭늉 찾듯이 급히 재촉해도, 밤을 새워 자료집을 만들어 행사 날짜를 맞춥니다. 저는 이런 신 대표님의 모습에 <회향>이라는 단어가 떠오릅니다.


2.
제가 일 때문에 신 대표를 만나면, 첫 마디가 “밥 먹으러 가시지요”입니다. 그때면 식당 아주머니는 말도 안 했는데도 막걸리 한 통을 먼저 내어 옵니다. 그 인연으로 저는 막걸리 맛을 알게 되었고 서로 흉금 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군 생활을 신 대표는 경기도 북부에서 했다는데, 젊은 시절 전북대 ‘대학생불교연합회’에서 활동을 했던 신 대표는 일요일이면 부대원들을 인솔하고 근처의 절을 찾아 부처님께 예불하고 절 밥 먹고, 그렇게 하기를 제대할 때까지 했다고 합니다. 법문 하실 법사님은 안 계셨지만, 부처님께 인연 맺어주는 일을 했던 것입니다. 큰 부대에나 군 법당이 설치되어 있지, 대부분의 부대에는 법당도 군종 법사도 없는 게 우리 현실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 불자들이 군 포교에 적극 노력해야 할 부분입니다. 그 부족한 부분을 군종 병과도 아닌 일개 사병이 젊은 시절 불교학생회 활동한 인연으로 부대원들을 법당으로 안내한 것입니다. 보살님이 운영하는 절이었는데, 신 대표의 인연으로 그 절에서 부대 장병을 위해 샤워 시설도 만들어주었다고 합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저는 생각합니다. 이것이 바로 <회향>이라고 말입니다. 젊은 대학 시절 불교학생회 다닌 인연으로 그 어린 나이에, 그것도 전라북도 순창 고향을 떠나 북쪽 전방 부대에 근무하면서 큰 불사를 했던 것입니다. 고향 떠나고 부모님 떠나 힘들기는 모두가 마찬가지인데, 불교학생회 동아리 활동 인연으로 어린아이가 어린아이를 돌본 셈입니다. 절에 계시던 보살님께서 매월 봉투를 두 개 마련하여, 봉투 하나는 부대의 군인들에게 쓰고, 또 한 봉투는 신 대표 막걸리 사 먹으라며, 그리고 절대로 섞어서 쓰면 안 된다는 당부의 말씀과 함께 전했답니다. 그 봉투로 군인 PX에서 담배도 사주고 빵도 사주고, 일요일이면 친구들을 절로 안내했다고 합니다. 때로는 막걸리 전용 봉투로 병사들 소주도 한잔씩 살짝 사주며 군 생활의 힘든 사정을 서로 나누었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화엄경󰡕의 <선우善友>입니다. <회향>을 몸소 실천했던 것입니다.


3.
󰡔화엄경󰡕 「십회향품 제25」에 열 가지 회향을 대표적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첫째 회향이 <일체중생을 구호하면서도 중생이라는 상相을 여의는 회향>이라고 합니다. 이 말의 핵심은 <구호>입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회향>을 해야 할까요? 「십회향품 제25」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보살들로 하여금, ⑴청정하고 두려움 없음을 얻게 하려는 연고며, ⑵걸림 없는 변재를 갖추게 하려는 연고며, ⑶걸림 없는 지혜의 자리에 들어가게 하려는 연고며, ⑷온갖 지혜라는 큰마음에 머물게 하려는 연고며, ⑸다함없는 선근을 성취하려는 연고며, ⑹걸림 없는 선한 법[白法]을 만족케 하려는 연고며, ⑺넓은 문인 법계에 들게 하려는 연고며, ⑻모든 부처님의 신력을 나타내는 연고며, ⑼지난 시절을 생각하는 지혜가 끊어지지 않게 하려는 연고며, ⑽모든 부처님께서 여러 근을 보호하심을 얻으려는 연고니라.
또, ⑾한량없는 문으로 여러 가지 법을 연설케 하려는 연고며, ⑿듣고는 다 알아서 받아 지니고 잊지 않게 하려는 연고며, ⒀보살들의 모든 선근을 거두어들이려는 연고며, ⒁세상을 뛰어넘는 도를 이루게 하려는 연고며, ⒂온갖 지혜의 지혜를 끊지 않으려는 연고며, ⒃큰 서원을 개발開發하려는 연고며, ⒄진실한 이치를 해석하려는 연고며, ⒅법계를 알게 하려는 연고이며, ⒆모든 보살을 기쁘게 하려는 연고며, ⒇모든 부처님의 평등한 선근을 닦게 하려는 연고며, (21)일체 여래의 종성을 두호하려는 연고이다.”


이상의 21가지의 각론적 이유로, <회향>을 하는 것입니다. (1)~(10)과 (11)~(21)의 두 문단 중, 앞 문단은 보살들에게 무수한 ‘능력을 갖추도록’ 하기 위함이고, 뒷 문단은 보살들에게 이러저러한 ‘일을 수행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또 다른 측면에서 말하면 앞 문단은 대승 불자 자신의 이익 즉 자리自利를 위함이고, 뒷 문단은 남을 위함 즉 이타利他를 위함입니다.


4.
내 손에 든 게 없는데 무슨 <회향>이 가능하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스무 살 갓 넘은 군인이, 그것도 대학생 불교학회에서 불교를 배었어야 얼마나 배웠겠습니까? 그러나 그에게는 불심이 있었습니다. 동료 장병들에게 부처님 인연 맺어주려는 불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남쪽에서 살던 청년이 열차 타고 북쪽 파주 땅에 오니, 절이 어디에 있는지 알기나 하겠습니까? 그러나 그에게는 불심이 있어 낯선 타향에서도 ‘절’이 ‘눈’에 들어온 것입니다. 가진 게 없는 게 아니라, ‘눈’이 없는 것입니다. 마음의 눈 말입니다. 이제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우리 모두 ‘마음의 눈’을 번쩍 떠서 <회향>을 생각하고 실천합시다. 󰡔범망경󰡕의 <회향심>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불자야, 회향심이란, ‘으뜸가는 참된 진리’이다. 저 진실한 공空의 지혜 가운데 참된 진리가 있음을 안다. 업의 도가 상속하여 마침내 중도中道로 가는 길을 ‘참된 진리’라 한다. 거짓 이름뿐인 것들을 ‘세속의 진리’라 한다. 이 두 진리를 통달하여 깊은 연기법에 들어가 모든 법은 생성과 소멸이 없고, 오고 감이 없음을 알아서, 일체가 모두 실체가 없는 허깨비와 같은 현상인 줄 알아, 그리하여 과보를 받더라도 받음이 없음을 안다. 그런 까닭에 깊은 마음으로 해탈에 이른다.


진실한 공空의 지혜에 마음을 두고 중도中道로 가는 그 길에서 <회향>하며 사는 삶이란 아름다운 것입니다. 막걸리 한 사발에 남의 힘든 사연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서, 밥 한 그릇에 마음이 고파 외로운 사람을 대접하는 사람이 있어, 인생이 훈훈합니다. 우리 모두 남에게 그런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