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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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나는 누구의 거름이 되었나?

정성운
텃밭농부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기다. 벽에 걸려있는 달력은 마지막 한 장을 남겨두었다. 아직 떨구지 못한 나뭇잎을 바라보다가 잎 끝이 땅을 향해 있는 것을 알았다. 가야 할 길을 찾고 있구나. 낙엽도 가서 머물 자리가 있는가 보다. 바람에 떠밀려서 이리저리 떠도는 것 같지만 그게 아니구나. 바스러져 거름이 되기에 알맞은 곳. 바람과 눈비에 몸을 맡기면 닿는 그곳. 나는 어떻게 지냈지, 하며 지나온 날들을 돌이킨다. 나는 누구의 거름이 되었나?


늙은 농부의 밤 농사


집안의 대소사. 지난 9월에 장인어른이 돌아가셨다. 2년 전쯤에 대장암 진단을 받았다. 담당 의사는 구십이 넘은 고령이어서 병의 진척이 더디고, 완치는 어려우니 차도에 따라서 조치하는 것이 좋겠다는 소견을 주었다. 가끔 하는 외출에서는 화장실이 급해져 바로 돌아와야 했다.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식사를 하지 못했다.
장인은 6·25전쟁 때 육군 장교였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제주도 훈련소 교관 시절의 사진을 확대해 벽에 걸어두었다. 사진 아래에 꺼내놓은 공훈증과 메달은 영정사진 앞에 놓였다. 지역의 보훈단체에서 보내온 큰 태극기로 관을 감쌌다. 화장해서 먼저 가신 장모님과 합장했다. 보내고 난 뒤엔 빈자리가 생긴다. 휑한 바람이 이는 그 자리에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라는 글귀를 비석에 새겨 넣었다.
내가 참여하고 있는 단체에서는 공간 마련을 위한 후원금 모금 행사를 벌였다. 목표했던 액수보다 더 많은 성과를 이뤘다. 2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동참해주셨다. 우리 단체의 배경이 든든해졌다. 처음 치르는 일을 노심초사하며 이뤄낸 도반들이 소중하다. 무엇보다도 사람의 마음을 얻은 것 같아 고맙고 기쁘다.
오래도록 귀촌을 생각하고 있다. 생태귀농학교와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에서 운영하는 귀농귀촌 프로그램이 많은 도움을 주었다. 여기저기를 들러보며 우리에게 적합한 귀촌지인지를 살폈다. 아들은 자기가 사는 김포로 왔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낸 적이 있었다. 먼저 귀촌해서 사는 이들의 얘기도 들었다. 시기를 정하지는 못했다. 아내의 퇴직 시기를 가늠하고 있다.
더위도 빼놓을 수 없는 지나온 날이다. 무지하게 더웠던, 열대야에 잠을 이루지 못해 뒤척였던 밤이 먼저 떠오른다. 무더위에 게을러져 밭일을 소홀히 했다. 찬바람 이는 겨울의 초입에 들었어도 지난 여름의 무더위가 끈적하게 붙어있는 것 같다.


이 음식이 진짜 온 곳은?


내 텃밭 바로 위는 평생 농부로 살아온 70대의 영감님이 부치고 있다. 가끔 밭에서 만나면 점심을 같이 먹기도 하고, 밭두렁에 오래도록 서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대화 주제는 단연 날씨와 더위다. 이 영감님은 낮에는 너무 더워 밤에 일했다고 한다. 저녁식사를 하고 잠깐 눈을 붙였다가 자정쯤에 밭에 나간다. 헤드랜턴을 쓰고 고추밭에 약주고 고추를 땄다고 한다. 깜깜한 밤중, 밭 가운데에 반짝이는 웅크린 물체, 어슬렁거리는 실루엣이 떠올랐다. 늙은 농부는 무더위를 저렇게 견뎌냈구나!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고?” 법정스님은 오관게의 첫 구절을 이렇게 우리글로 옮겼다. 장소를 묻는 질문이 아니다. 한문은 이렇게 되어 있다. 計功多小量彼來處. 그대로 옮기면 ‘공의 많고 적음을 헤아리며 온 곳은 어디인가’ 쯤이 된다. 법정스님은 이 음식이 내 앞에 놓이기까지 많은 이들의 수고에 대한 헤아림(計功多小量)을 살짝 가렸다. 감춘 게 아니다. 우리의 생각을 이끌기 위한 공백을 두었다. 나는 밥을 먹다가 문득, 한밤중에 짐승처럼 웅크려 밭일하는 영감님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저기서부터 내 음식이 탄생했구나.
음식은 먹는 일에는 돈을 건네고 받는 거래로는 채울 수 없는 먹먹함이 배어 있다. 오관게는 “내 덕행으론 받기가 부끄럽네”로 이어진다. “마음에 온갖 욕심을 버리고, 몸을 보호하는 약으로 알아, 도업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


통 큰 마늘을 심다


10월 마지막 주에 심은 마늘이 싹을 올렸다. 끝이 뾰족한 녹색의 새싹이 힘차 보인다. 잘게 자른 고춧대와 마른 풀을 모아 덮어주었다. 그 위에 다시 부직포를 덮었다. 이번에 심은 마늘은 홍산마늘이다. 서산 씨마늘 농장에서 재배한 것을 구입했다. 우리나라에서 개발한 품종인데, 전국에 걸쳐 두루 재배한다. 내가 이 마늘을 심은 가장 큰 이유는 통이 크기 때문이다.
아내는 가끔, 작고 벌레 먹어 볼품없고 질긴 수확물을 타박한다. “농사를 지은 지 10년이 가까운데, 아직도 이 모양이냐”고. 사실이 그랬다. 가지는 군데군데 각질이 생겼다. 노린재가 갉아먹은 자리인데, 가지가 상처를 치유하느라 각질을 만들어낸 것이다. 또 벌레가 갉아먹지 못하도록 껍질을 두껍고 단단하게 하니 질겨질 수밖에 없다. 나는 이런 농작물이 좋은 것이라고 대꾸한다. 작물이 자기치유를 하며 분비한 호르몬이 사람의 면역력을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는 말을 덧붙인다. 진짜 그런지는 모르겠다. 어디서 들은 얘기일 뿐이다.
내가 거둔 더덕은 작고 잔뿌리가 많다. 통통하고 길쭉한 더덕을 기대했으나, 그런 것은 삼분의 일이 되지 않는다. 더덕 전문 농부의 얘기를 들어보니 촘촘하게 심는다고 한다. 또 다른 농부는 지름이 적은 파이프를 이용한다고 한다. 나는 또 아내에게 변명을 늘어놓기를, 열이면 열 다 크게 자라지 않는다. 손가락의 길이와 굵기가 다르듯이 작물도 그렇다. 시장에 나온 더덕은 큰 것만 내놓는 것이다. 작은 것과 잔뿌리는 가루를 내어 꿀에 섞어 먹으면 된다고.
고개를 갸웃, 눈을 가늘게 뜨고 듣고 있던 아내는 마침표를 찍듯 한마디를 던진다. “당신은 농사 체질이 아닌가 봐.”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일이 농사인데, 그것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 저런 소리를 하다니. 화가 치밀었다. 그러나 이걸 가지고 언성을 높여서는 안 된다. 내 수확물은 작고 볼품없는 것은 엄연한 눈앞의 사실이다. 나도 알고 있다.


민망한 나의 저투입 농법


마늘 종자는 굵은 것을 심었는데, 수확물도 그리될지는 모른다. 종자에 알맞은 뒷받침을 해주어야 한다. 홍산마늘은 추위에 약하다. 일찍 보온을 해주어야 한다. 큰 것을 얻으려면 거름도 듬뿍 주어야 한다. 봄에는 물도 자주 대주어야 한다. 마늘잎을 갉아먹는 진딧물과 응애, 깍지벌레도 몰아내야 한다. 이렇게 해야 마늘통이 굵어지는 종자의 특성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런데 내 농법은, 농법이라 이름 붙이기에 민망하지만, 저투입 농법이다. 자연농에 가까운 방법이다. 이 농법을 좋아해서 택한 것은 아니다. 게으른 텃밭농부의 변명일 뿐이다. 저투입 또는 자연농을 부정적으로 말하는 이들은 이를 농사가 아니라 방치라고 쏘아붙인다.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또 변명하자면, 과투입보다는 괜찮은 방법이다.
몸을 더 움직여야겠다. 거름 주고 물 대주는 일은 몸을 더 움직이면 된다. 벌레를 쫓아내는 것은 천연물질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화학농약보다 효과가 떨어지니 횟수를 늘려야 한다. 아내의 타박을 듣기 싫으니 몸을 더 움직일 수밖에 없다. 아내는 내 게으름을 탓한 것이다. 농사 고수인 영감님도 헤드랜턴 농사를 하지 않는가. 농부의 첫 번째 미덕은 부지런함. 내 땀방울, 때론 팔다리 허리를 욱신거리게 하는 근육통이 작물에는 거름이 된다는 사실을 새긴다.
2025년 무탈했다. 그러니 괜찮았다.